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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사이-5화 (5/79)

05화

탁. 새로 고침. 탁. 또 새로 고침.

“야, 손제인. 초조하기는 하냐?”

거친 키보드 소리에 사회부 팀장이 물이 가득 찬 믹스 커피를 휘휘 저으며 그녀를 비꼬았다.

“이왕 취임식 간 거 특종 좀 잡아 오랬더니 서도운까지 쫓아가서 겨우 빈손?”

“특종이 있어야 잡죠.”

끄응, 앓는 소리를 낸 팀장은 새로 고침 하는 제인의 왼손을 괜히 트집 잡았다.

“그 왼손잡이 좀 고쳐라. 기자들 사이에서 왼손잡이가 얼마나 재수 없는 줄 알아? 오른손잡이보다 정확성이랑 스피드가 떨어져서 매번 특종을 놓치는 거야.”

“유전인 걸 어떡해요.”

“부모님 중에 왼손잡이가 계셔?”

“몰라요. 있겠죠.”

졸지에 패륜적인 발언을 할뻔한 팀장은 제인의 뒤통수를 향해 눈알을 부릅떴다.

“하여튼 저건 한 마디를 안 져.”

팀장이 구시렁거리면서 자리로 돌아가자 옆자리에 있던 태웅이 의자를 끌어왔다.

“너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서도운 따라 어딜 간 거야.”

“아무 일도 없었어.”

거짓말.

태웅은 초조할 때면 엄지를 질겅질겅 깨무는 제인의 버릇을 알고 있다.

서도운과 심채연 관계에 어떤 냄새를 맡았나?

그녀의 검색 기록으로 막연하게 추측한 태웅은 제인이 물고 있는 엄지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녀의 머리칼 틈 사이로 벌어진 목덜미가 보였다. 흠칫 움직임을 멈추자 놀란 제인이 목을 움츠렸다.

“왜?”

“……아니. 손 물지 말라고.”

태웅은 정확히 제인의 목덜미에 난 열정의 흔적을 봐 버렸다. 바보가 아닌 이상 붉은 자국의 의미는 극명했다.

‘설마 서도운이랑…….’

예리한 직감에 가슴이 철렁하기도 잠시, 옆 연예부 팀장이 요란스럽게 등장했다.

“사회부 어제 서도운 취임식에서 뭐 건진 거 없지?”

기고만장한 태도에 믹스 커피를 마시던 사회부 팀장이 벌떡 일어났다.

“그건 왜!”

“우리 쪽에 지금 대박 특종 들어왔거든.”

대박 특종?

제인의 뒷덜미가 빳빳해졌다.

“대외비라 뭔지는 비밀이고. 어쨌든 우리 터지면 그다음에 올리든가 합시다. 겹치면 답 없으니까 사내 치기는 할 생각 마시고.”

사회부와 연예부는 단 한 끗 차이로 늘 경쟁 구도 체제였다. 휘파람을 불며 나가는 연예부 팀장은 목적 달성을 했다.

“야! 손제인, 하태웅! 너희 어제 뭐 했어! 연예부 지금 서도운 특종 잡았다잖아!”

바짝 약이 오른 팀장은 어제 건국 일보 대표로 간 두 사람을 채찍질했다. 제인의 뇌리엔 서늘한 예감이 스쳤다.

“어? 어떡할 거냐고! 손제인!”

“아니요. 기사 터뜨릴 거 있어요. 우선 저쪽에서 뭐가 터지는지 보죠.”

우선 자신이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길 바라야 했다.

* * *

그날 밤 제인은 아주 늦게 퇴근했다. 연예부가 언제 기사를 터뜨릴지 몰라 우선 대기 상태였는데, 오전의 호기로움과 달리 연예부는 조용했다.

그게 소리 없이 제인의 신경을 갉아먹었다. 그녀의 예상처럼 특종이 서도운과 심채연의 하룻밤이면 안 된다.

서도운이 또 나를 심채연으로 착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옹졸한 질투와 욕심의 샛길에서 정신을 차린 건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 때문이었다.

혹시나 연예부 소식일까 빠르게 확인한 제인은 액정에 뜬 이름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네, 원장님.”

전화의 출처는 ‘꿈으로 보육원’의 원장, 은선이었다.

-제인아. 밥은 잘 먹고 다녀?

“네, 그럼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정한 음성이 마음을 다독여 준다. 제인은 집으로 걸으며 버석한 속마음을 열었다.

“원장님. 저 할 말 있어요.”

-뭔데?

“저 어제 에덴 호텔 취임식 갔어요. 거기서 그 아이도 만났어요.”

-그 아이라면…….

“둘 다요.”

수화기 너머로 은선이 숨을 급하게 들이마신다.

-아직도 복수하고 싶은 거니?

“이제 그런 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전 단지 누군가는 저를 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제인아…….

안 그래도 나긋한 은선의 성대는 더없이 축축해졌다.

-내가 미안하다. 엄마가 그런 선택을 했을 때 바로 잡았어야 했는데.

“아니요. 큰 원장님은 우리를 지키려고 한 거예요. 원장님 잘못은 더더욱 아니구요.”

은선은 모친 정옥의 뒤를 따라 꿈으로 보육원의 원장이 되었다. 정옥은 제인에게 죄인이었고, 그런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며 시름시름 앓다 세상을 떠났다.

-그래, 제인아. 조심하렴. 생각보다 무서운 집안에서 자랐잖아, 그 둘.

무서운 집안이라는 말에 느슨해진 긴장의 끈이 다시 팽팽히 조여들었다.

은선의 말이 맞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무섭다.

어떤 방법과 회유로든 자신들의 비밀을 적절한 이야기로 꾸며 낼 수 있으니까. 바로 심창진과 최연정처럼.

그리고 왜 이제 느꼈을까?

“손제인 기자님?”

꼿꼿하게 세운 척추 뒤로 뜻밖의 부름이 고막을 간질인다.

제인은 바람을 타며 뒤를 돌았다. 도운은 먹잇감을 뒤쫓는 육식 동물처럼 탄탄한 허벅지 근육을 짝다리 짚으며 팬츠에 손을 꽂았다.

“기자가 뒤를 밟히면 쓰나. 어제는 도둑고양이처럼 내 뒤를 밟더니.”

어두운 밤거리. 가로등 하나에 의존한 도운의 눈동자가 뭔가를 확인하듯 좁아진다.

얼굴부터 턱 끝 또 여린 여체로 소리 없이 미끄러진 시선의 끝은 그녀의 손. 도운의 입꼬리가 야릇한 호선을 그린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죠, 손제인 기자.”

“…….”

“너 어제 나랑 했지.”

* * *

“쟤가 지금 뭐라는 거야?”

제인과 도운이 서 있는 반대편 찻길. 고급 세단 안에서 엉덩이만 들썩이고 있는 교진은 이 순간 부디 초코가 되고 싶었다.

인간의 배로 높은 개의 청력으로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엿듣고 싶었고, 개처럼 도운의 옷에 코를 박아 저 망할 놈이 어제 누구와 하룻밤을 보냈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손제인이냐, 심채연이냐.

오전, 도운의 명령으로 보안실 CCTV를 회수하러 간 교진은 기가 막힌 소리를 들었다.

‘야. 어제 VIP층 CCTV 꺼져 있었어. 심채연이 이미 영상 날려 달라고 연락했다더라. 너 정말 심채연이랑 잔 거 아니야? 기억 좀 되살려 봐!’

그 말을 들은 도운은 놀란 기색도 없었다. 어이가 없는지 도리어 헛웃음을 연달아 뱉었다.

‘심채연 이상하네. 뭐 들키면 안 되는 거라도 있나, 왜 이렇게 질척거리지?’

‘야…… 너 웃음이 나와? 바른대로 말해. 누군데. 누구랑 사고를 친 건데!’

‘심채연이 뭐라고 날 나눠 먹게 해. 무조건 손제인이야.’

자신은 지금 겨우 취임 하루가 지난 친구 녀석이 섹스 스캔들이라도 날까 심장이 벌렁거려 죽겠는데 대형 사고를 친 도운은 흥미로운 미소만 반짝였다.

교진은 목에 핏대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걸 만취한 네가 어떻게 아는데! 그 여자는 또 누구고!’

‘내가 느낀 걸 공유할 순 없고. 건국 일보 사회부 손제인 기자야.’

‘기자? 심지어 기자라고?’

‘어, 기자. 너 지금 빨리 손제인 현 거주지 좀 알아봐.’

‘미친놈아! 누가 확인 사살해 달래? 또 뭐 하려고!’

‘나 먹고 튀었잖아. 가서 책임지라고 해야지.’

CCTV가 가장 구체적인 증거인데 하필이면 어제 취임식으로 인해 모든 VIP층 카메라가 셧다운되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가? 아니. 지금 이 상황은 불행 중 불행인가?

누가 됐든 생면부지인 손제인이라면 입막음을 해야 했고, 심채연이면 에덴 건설과 금도 그룹 사이에 화끈한 스캔들이 터지는 것이다.

“그게 물론 사 회장님이 바라던 시나리오라지만…….”

취임 하루 만에 원나잇 사건이 터지는 건 아니지 않나.

머리칼을 쥐어뜯던 교진은 황급히 두 손바닥을 창문에 갖다 대었다.

“어어? 안돼. 가지 마. 멈춰! 기다려!”

이 순간 개가 되어야 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서도운이었다. 창밖에는 제인을 지그시 응시하던 도운이 서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 *

“대답이 늦네.”

“…….”

“기다리는 사람 애타게.”

밤은 어둡고 빛은 미약했다. 상가의 간판이든 가로등 조명이든 오히려 음영을 만들어 제인을 비췄다 가리기를 반복했다.

안 그래도 종일 생각난 저 손이 더 어른거리게.

도운은 볼 안쪽을 혀로 굴렸다. 하루 종일 갈증이 일었다. 그는 드디어 다갈색 눈동자에 못을 박고 걸음을 내디뎠다.

흡사 먹이를 노리는 흑표범 같다. 뚜벅뚜벅, 묵직하지만 느린 구두 소리에는 언제 덮쳐 올지 모르는 위압감이 드리웠다.

당황해 굳어 버린 제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왜 찾아왔을까. 날 알지도 못하면서.

안 그래도 예민한 마음이 더욱 삐뚤어진다.

“제가 서도운 전무님보다 1살 더 많은 걸로 압니다만.”

다물렸던 입술이 틈을 벌렸다. 정확히 두 발자국 남겨 둔 도운의 걸음에 제어가 걸린다.

새로운 정보를 얻은 도운은 기꺼운 듯 코끝을 찡그린다.

“28살이구나, 우리 손제인 기자님은.”

“네.”

“내가 27살이란 걸 알만큼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었고?”

“대한민국에 서도운 전무님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전무님이야말로 여기까지 오신 걸 보면 제 뒷조사를 하신 것 같네요.”

“왜 했는지는 그쪽이 더 잘 알겠지. 질문은 내가 먼저 했으니까 대답 좀 해 봐요.”

“…….”

“너 어제 나랑 호텔 방에서 했냐고.”

“무엇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을…….”

“짝짓기, 교접, 합체. 더 천박하게 말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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