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 같은 사이-3화 (3/79)

03화

“야. 서도운은 어디 갔냐?”

“아까 취해서 어디 가는 거, 손제인 기자가 따라붙던데? 서도운 그 새끼 취임과 동시에 퇴임하는 거 아니냐.”

제인이가 서도운을 따라갔다고?

오매불망 찾던 이름이 귓가에 스치자 태웅은 카메라에서 눈을 뗐다. 어쩐지 한껏 줌을 당겨도 안 보이더라니.

“어디로 간 거야? 연락도 없이.”

난감한 태웅에게 이번엔 새로운 소란이 들려왔다.

“어머. 저기 좀 봐요.”

“세기의 삼각관계 행차하셨네요.”

태웅은 빠르게 카메라를 들었다. 줌을 한 번에 훅 당기자 초점이 흐려진 앵글은 연회장 안으로 나란히 들어온 사국현과 심창진 그리고 최연정을 담았다.

저들의 스캔들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명하다. 재계에서도 사국현과 심창진은 절친한 친구였다.

저 둘의 사이가 어긋난 건 저들이 22살일 때, 갓 대학 새내기로 들어온 20살 최연정 때문이었다.

먼저 눈이 맞은 심창진과 최연정은 연애를 시작했지만, 심 회장의 집에서 반대가 거셌다고 한다. 소문으로는 최연정이 도망갔다는 소리도 있고, 둘이 헤어졌다는 소리도 있고.

문제는 그 틈을 파고든 사국현이 최연정과 밀회를 나누었다는 것이다. 워낙 소문이 파다한 집안이라 사국현과 최연정 사이에 애가 있었다는 말도 있다.

최연정은 두 남자 사이에서 저울질하다 결국 사국현을 버리고 심창진을 택했다.

당사자들만 알고 있을 사국현과 최연정의 진실이 아리송해진 건 심창진과 최연정이 갑자기 8살이 된 심채연을 데리고 왔을 때였다.

심창진과 최연정이 헤어질 그 시기, 사실 최연정은 심창진의 아이인 심채연을 임신했다고 한다. 그동안 금도가의 반대가 거세 진실을 밝힐 수 없었고, 몰래 원정 출산을 하여 비로소 인정을 받았다고.

어째서인지 그 후에 사국현은 서도운을 보육원에서 데리고 왔다.

하필 사국현이 사내아이를 후원한다? 그건 또 그거대로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두 아이를 정략 결혼시켜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지독한 악연이지만, 또 아이러니하게도 에덴과 금도는 서로에게 알맞은 기업이었다.

한편으로는 사국현과 최연정 사이의 아이는 루머가 아니라 진실이며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복수하려 한다는 임금님 귀 당나귀 귀 같은 소리도 난무했다.

지금도 서로를 향해 웃고는 있지만, 눈빛은 흉흉하게 빛난다.

그들의 사진 몇 방을 찍은 태웅은 이윽고 다시 카메라를 돌렸다.

“제인이나 찾아…… 제인아!”

그런데 어떻게 딱, 익숙한 얼굴이 보였는데. 난감해진 태웅은 상대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착각을 했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손제인 기자랑 닮았나 봐요.”

제인으로 보였던 얼굴은 심채연이었다. 웬 남자를 그림자처럼 달고 온 채연은 곧은 걸음으로 태웅 앞에 섰다.

태웅은 귀하게 자란 이의 심기를 건드렸을까 말을 정정했다.

“꼭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손제인 기자를 아시나 봐요.”

“네.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채연은 좌우를 살펴보고 다시 정면에 서 있는 태웅을 응시했다.

“안 보이네요?”

태웅은 슬쩍 미간을 좁혔다.

제인이를 찾는 건가?

세간에는 서도운과 심채연이 결혼할 사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그런 사람에게 당신 예비 신랑을 우리 쪽에서 취재하러 갔다고 말할 순 없다.

“잠시 자리를 비웠습니다.”

“알겠어요.”

살짝 의심이 들었지만, 깔끔히 물러서는 태도에 태웅도 걸음을 옮겼다. 그래서 뒤에서 오가는 말을 미처 듣지 못했다.

“도운이 어디 있어.”

“이제 오냐? 아마 방으로 올라갔을걸? 오늘따라 술을 잘 잡수시길래 우리가 좀 더 먹였지.”

“손제인 기자가 따라 올라갔으니까 찾을 생각 하지 마라. 서도운 내일이면 사회면에 뜰 수도 있으니까.”

“뭐라고?”

손제인이, 서도운이랑 같이 있다고?

예쁘지만 감정 없이 밋밋했던 얼굴엔 균열이 일었다.

* * *

고작 몇 시간 몸을 섞었을 뿐인데. 폭발한 욕심의 후유증은 아찔한 근육통이었다.

술에 취한 서도운은 본능에 충실한 짐승이었다. 몽롱하게 풀린 눈엔 지독한 열망만이 가득했고 한참을 붙어먹어도 또 달려드는 집요함에 제인은 교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얽히고 쏟아 낼수록 허기진 감각이었다. 달뜬 흥분과 붉은 감각은 자꾸만 타올라 시야가 하얗게 부서진 것도 세 번.

만족스러운 재회의 끝은 다시 헤어짐이다. 이 이상 머무를 수 없는 제인은 옷을 정돈하고, 잠든 도운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새삼 기자가 된 목적 하나는 이룬 것 같다.

지금처럼 서도운을 가까이에서 보려고.

“그래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겠지.”

‘누나…… 누나…….’

절정에 오를 때마다 애타게 불러도.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손을 꼭 잡아도. 흐리멍덩한 눈으로 그녀의 손을 한없이 헤아려도.

“넌 나인 걸 모르겠지.”

그게 못내 얄미워 제인은 도운의 어깨에 이를 박아 넣었다. 구릿빛 피부 위로 만족스러운 도장이 찍혔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날 꼭 기억해.”

뻐근한 다리를 세운 제인은 흐트러진 도운의 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다.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다.

꿈은 아닌 모양인지, 걸을 때마다 허벅지 사이가 무척이나 쓰라렸다. 제인은 손을 뻗어 문고리를 돌렸다.

그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열린 문을 닫지도 못한 채 제인은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꾹 주었다.

“안녕하세요, 손제인 기자님.”

기다리고 있었는지 채연이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제인의 앞으로 다가왔다. 오프숄더 드레스를 입어 드러난 점 하나 없는 매끈한 어깨가 제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정말 오랜만에 뵙네요. 이렇게 가까이에서는.”

제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사회부 기자가 된 이후로 멀리서나마 마주쳤던 심채연이다.

심채연도 자신을 주시했다는 걸 제인은 알고 있었다.

문득 열린 문 너머로 채연의 시선이 넘어갔다. 제인은 재빨리 문을 닫으려고 했다. 그보다 빨리 손잡이를 잡아당긴 채연은 벗은 몸으로 침대에 엎드려 있는 도운을 발견했다.

다시 제인에게 돌아온 채연의 눈은 뜨겁게 불타올랐다.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서도운 전무님이 누나를 애타게 찾아서 제가 넘어가 버렸네요.”

입술을 휘며 던진 도발에 채연은 손쉽게 넘어왔다.

“잤어? 서도운이랑?”

채연은 건장한 근육을 드러내며 무의식에 빠져 있는 도운과 셔츠 깃 사이로 보이는 제인의 목덜미 자국을 보며 주먹을 옹골지게 쥐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저 힘이 질투라면 제인은 기꺼이 더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어.”

“왜?”

그리고 정말 순전히 궁금한 거라면 저 뺨을 후려치고 싶었다.

“그럼 너는 나한테 왜 그랬니?”

“…….”

“이게 먼저야, 채연아.”

어금니를 꽉 물어 이름을 강조한 제인은 매몰차게 뒤를 돌았다. 채연은 제게서 다시 뒷모습을 보이는 제인을 돌려세우려고 했지만, 잡히지 않았다.

허공을 움켜쥔 손등이 하얗게 질렸다.

내가 왜 그랬냐고?

“네가 먼저 날 버렸잖아.”

그 시절의 채연과 제인은 둘도 없는 서로의 울타리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제인은 심채연의 거대한 세상이었다.

채연이 1살 많은 언니임에도 불구하고 제인은 늘 용감했고, 친구도 많았고, 보육원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더 사랑받는 동생과 소심하다 못해 덜떨어진 언니. 그게 제인이 좋지만, 알게 모르게 미웠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게 아슬한 평화가 지속되던 어느 날, 서도운이 보육원에 입소했다.

제인의 손에 길들여진 도운은 그녀를 따랐고, 둘은 급속도로 친해졌다.

두 사람이 웃고 놀 때면 채연은 세상에 다시 버려진 기분이었다. 제인이가 나를 다시 찾아 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는 혼자 어떻게 살아가지?

나를 이렇게 만들고, 나를 먼저 버린 건 손제인, 너면서.

불어나는 불안처럼 서도운을 향한 질투도 성장기 아이처럼 빠르게 자라났다.

결국 나를 이렇게 만들고, 나를 먼저 버린 건 손제인, 너면서.

왜 네가 버린 나를 찾지 않고, 다시 서도운과 엮이려고 하는 건지.

채연의 마음은 희뿌연 보상 심리로 휩싸였다. 그녀는 등 뒤에 서 있는 원우를 돌아보았다.

“여기 CCTV 다 정상 작동하는 거야?”

미리 상황 파악을 한 원우는 고개를 저었다.

“불이 안 들어와 있어. 오늘 취임식 때문에 여긴 올라올 사람이 없다고 판단해서 다 꺼 둔 것 같아.”

허술한 보안이 이토록 반가울 줄이야.

“그럼 보안실 가서 내 이름 대고 CCTV 영상 지워 달라고 요청했다고 해. 사국현 회장 귀에 들어가는 건 순식간이니까.”

헨젤과 그레텔처럼 흔적을 흩뿌려야 내가 이곳에 있었다는 증거를 남길 수 있으니까.

원우는 채연에게 한 발자국 다가왔다.

“그리고?”

“그리고…….”

채연은 아직 열어 둔 문 너머로 잠든 도운을 주시했다. 그녀는 곧 핸드폰을 꺼냈다. 문자의 수신인은 도운이었다.

[내일 일어나면 연락해.]

이거면, 너는 제인이를 되찾을 수 없겠지. 제인이는 자신이 네 누나라는 것도 말하지 못할 거고.

“가자.”

채연은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원우에게 팔짱을 꼈다. 그들의 등 뒤로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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