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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착오적인 생각이라 할진 모르겠으나 아빈에겐 연애에 대한 지론이 하나 있다. 연애는 남자 쪽에서 여자를 더 좋아해야 무엇이라도 일이 성사가 되고 또 여자가 비참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빈은 사실 상우란 작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민이 제게 짝사랑을 하고 있다 고백할 때부터 말이다.
‘어휴, 사람 마음이 자기 마음대로 안 되고 또 자기가 좋다니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얘가 쉽게쉽게 갔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일 년간 얼굴은 보지 못했어도, 이젠 마치 실제로 아는 지인처럼 묘한 친밀감마저 드는 그 남자는, 아민의 말에 따르면 얼굴도 반반하단다.
제가 눈치가 없어 모르긴 몰라도, 예전 모임 사람들이 있었다면 이 남자 때문에 또 소동이 일어났을 것이고, 지금도 저 말고 다른 누군가가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그 말을 들으며 아빈은 차라리 아민이 그 남자와 이어지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어장관리 안 하는 놈이라 참 다행인걸.’
저런 놈한테 어장관리를 당한다면 참 얼마나 휘둘리겠는가?
‘고수익 직업에 얼굴도 반반하다며, 이런 남자가 어디 제 몸값 안 할 것 같아?’
원래 잘난 놈은 잘난 값 한다지 않던가, 아빈이 생각하기에 아민에게 좋은 남자는, 아민만 좋아하고 아민만 바라보고 또 아민이 하는 말을 고분고분 듣는 머슴 같은 남자였다.
아빈은 그런 남자가 오랜 시간 혼자였던 아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또 보듬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잘난 거 아는 놈이 그 값 안 할 수가 없다.’
저는 생글생글 가만히 있어도 사람 마음 이리저리 휘두르는 뺀질한 새끼가 아니라…….
그녀도 아민도 나이가 있어, 이제 서로를 돌봐 줄 수 없는 때가 부정할 수 없이 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빈은 아민이 고백을 한다 하니 잘 차여라 생각하며, 동생이 얼른 마음을 정리해 새 사람을 만나길 빌었다.
근데 웬걸.
집에 돌아오지 않기에 전화하면 괜히 재촉하는 것일까 싶어 혼자 있을 시간도 필요하겠지 생각하며 실연 김치전을 부쳐 놓으니 그걸 먹으면서 하는 말이,
“상우 씨도 내가 좋대.”
였다.
‘어?’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아민은 어이가 없었지만 그다음은 정말 일사천리 말고는 다른 단어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이X이…….’
그다음 주 아민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자정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 통금시간도 아니고 성인 남녀 단둘이 있을 때 벌어지는 이벤트가 무엇인진 알고 있지만 아무리 나이가 있어도 그렇지 그다음 주부터 외박…….
‘이거 속된 말로 XX하고 버리는 거 아냐?’
아빈의 머리에 경고등이 켜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 세상에 질 떨어지는 놈이 얼마나 많은데, 동생의 마음을 인질 삼아 제 쾌락만을 취하려는 놈은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다음 날 돌아온 아민이 말했다.
“언니, 나 결혼할까 봐.”
제정신이 아닌 얼굴이었다.
‘엇.’
그게 아무리 사랑에 취해 한 말이더라도 일단 그 말을 꺼냈다는 데 아빈은 오싹했다. 대체 아민에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제가 예상한 것보다 더한 놈인 모양이었다.
‘이거 예사 놈이 아니다.’
아무리 짝사랑이 길었어도 연애한 지 일주일이다. 머릿속에 왱왱 울리던 사이렌이 계엄령에 준하는 경계경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아민아, 네가 오랜만에 누구 사귀는데 내가 얼굴은 한번 봐야 하지 않겠니?”
그날 아빈은 저녁을 먹으며 아민을 살살 꼬드겼다. 아민은 숟가락을 문 채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사귄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순간 아빈은 열이 뻗쳤다.
‘그래, 사귄 지 일주일밖에 안 된 걸 알면서 대놓고 외박을 하고 결혼을 하겠다 해! 그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도 모르는데, 이 미친X야! 남자가 지인일 때와 연애할 때가 같은 줄 알아?’
아빈은 제 마음의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입 밖으로 빠져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짓눌렀다. 그리고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아민을 타일렀다.
“누가 지금 당장 보재니, 너희 좀 무르익고 또 그 사람 시간 날 때 말이지. 응?”
“으응…….”
아민은 그녀의 눈치를 보다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말은 해 볼게.”
그 순간 아빈은 정말 궁금해졌다. 그 남자는 누구일까?
‘처음 들을 때부터 알았지만, 이거 진짜 여시 같은 새끼일세.’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동생을 이렇게 홀린 여시 같은 놈이 누구인가 알고 싶고 보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다.
***
사귄 다음부터 시간이 아주 빠르게 흐르는 것 같다고, 아민은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새해, 얼마 전 지난 설까지, 어쩌면 이벤트가 많아서 그런지도 모른다. 눈을 감았다 뜨니 삼월 하순이었다.
‘기력 달린다…….’
아민은 원래도 마른 편이었는데, 상우와 만난 뒤로 살이 쭉쭉 내렸다. 이유는 단순했는데, 의도한 다이어트는 아니었고, 그저 상당히 격렬한 섹스 때문이었다.
아민은 육칠 년은 미뤄 두었던 섹스를 거의 두어 달 내내 몰아치듯 하는 느낌을 받았다.
좋았다.
아민은 자취하는 남자와의 연애도 처음이었는데, 그것도 좋았다.
‘좋은데 버거워…….’
데이트는 전시회 관람이 되기도 하고 영화 감상이 되기도 하고, 근사한, 혹은 맛있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은 맛집 탐방이 되기도 했다.
그 평범함조차 아민에게는 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의 샘물처럼 달콤했는데, 끝은 자주 상우의 집으로 마무리 지어졌다.
어찌나 불이 붙었는지, 깨달아 보면 늘 옷이 다 벗겨진 채 그의 커다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민의 몸 위에 올라탄 상우가 빙그레 웃으며 온 얼굴에 입맞춤을 하면 아민은 전희 전부터도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샤워, 샤워할게요…… 더러워요, 앗…….”
얼마 지나지 않아 상우는 아민의 성감대를 샅샅이 알게 되었다. 구부러져 들어오는 검지와 중지에 이미 푹 젖어 미끌거리는 안이 비벼지면, 아민은 그야말로 눈에서 별이 반짝거리며 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이전에 했던 자기 위로는 그가 주는 쾌감에 비하면 애들 장난이었다.
“앗, 앗, 잠깐, 앗, 힛, 으아앙……!”
안은 잔뜩 헤집어지는데 주름 사이에 숨겨져 있던 클리토리스는 부풀어 올라 상우의 엄지가 슬슬 비벼지는 통에 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고개를 도리질 쳐 보아도 근육질의 몸에 깔려 도망칠 곳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상우는 나머지 손으로 아민의 머리를 감싸 쥐어 고정시켰다. 그리고 예민한 귀를 핥기 시작했다.
“앗, 허윽, 앗, 아, 아아앙, 흑……!”
뇌 가장 깊숙한 곳까지 뿌리내리듯 파고드는 쾌감에 아민은 머리가 완전히 녹고 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진심 미칠 것만 같다.
‘어떻게 이렇게 잘하는 거야…….’
쾌락조차 극을 넘으면 고통처럼 변한다. 아민은 결국 온몸의 통제력을 잃은 채 성감대 온 곳에서 고통처럼 다가오는 쾌감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허윽, 아앙……. 흑! 아아…… 아…… 아흑!”
정말 울 것 같은 심정이 되었다.
“응, 아니 그냥 넣어 주세요, 넣어 주세요, 제발 그만하고, 앗!”
아니, 이미 울고 있었다. 그만 괴롭혔으면 싶어 애원하자, 상우는 사양하지 않겠다는 듯 젖어 시트까지 적시고 있는 아민의 도톰한 살을 벌렸다.
“으흡…….”
아직도 처음 넣을 때는 버겁다. 이렇게 적실 정도로 애무를 해 주는데도…….
“아, 으응…… 흣!”
아민이 이를 꾹 악물며 허리를 뒤로 젖히자 상우가 입술로 달래듯 단단히 솟은 아민의 유두를 애무했다.
그 순간 아민은 가볍게 절정을 맞았다. 눈앞이 또 하얗게 질렸다 까매지며 반짝였다. 침대 위에서의 상우는 그걸 봐줄 위인이 아니라는 걸 몸으로 알았지만은. 아민의 애원에 맞춰 상우가 허리 짓을 시작했다.
“……!”
아민의 눈이 크게 뜨였다. 손가락이 짓누르는 것관 빗대지도 못할 만큼 큰 쾌감이 다가왔다.
“솔직하지 못하긴. 더 더 기분 좋아질 거란 걸 알잖아요.”
그의 것이 아민의 한계까지 푹, 푹 찔러 들어왔다. 아민은 그 말을 무어라 정정도 하지 못하고 단단한 나무처럼 침대에 뿌리내린 팔뚝을 움켜쥔 채 온몸을 떨며 신음했다.
꼴딱꼴딱, 숨이 넘어갔다.
‘그래도 잠은 집에 들어와서 자라.’
아주 잠깐 이성이, 언니의 말을 떠올렸다.
‘아, 오늘은, 오늘은 정신 차려야 하는데…… 앗……!’
언니가 외박을 꽤 탐탁잖게 여기고 있는 걸 알면서도 아민은 자주 상우의 집에서 잠자리를 가졌다. 가질 수밖에 없는 게, 한 뒤에 제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입 맞추는 상우의 손길을 느끼면 이상하게 잠든다.
체력 탓인지, 아니면 상우가 집요하게 하룻밤에도 몇 번이고 자신을 절정에 이르게 하는 탓인지 아민은 알 수 없었다.
물론 결국은 녹아내리는 애무에 이성이 모두 날아간 뒤 다리로 상우의 단단한 허리를 끈적하게 감아 끌어당기게 되지만은.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겨우겨우 눈을 뜨니 상우는 어젯밤 그 격렬했던 침대 위에서의 기억은 온데간데없이 단정한 차림이었다.
“깼어요?”
저는 운동 뒤 근육통이 온 것처럼 허벅지도 저릿저릿하고 배도 당기는 것 같은데, 상우는 흐트러짐 하나 없는 것이 이상하게도 좀 분한 기분이 들었다.
아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우는 아민의 옆에 앉아 살살 아민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조금 더 있다가 가도 돼요. 마음껏 놀다 가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대로 꺼내 먹고, 뭐라도 보고 싶으면 다 꺼내고 건드려요.”
그리고 빙그레 웃었다.
“돌아올 때 있으면 더 좋고요.”
정말 다른 사람 같다. 이중인격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게 좋지만…… 엄청 좋지만.’
지금까지 잠자리에서든 그 밖에서든 아민을 이렇게까지 끌어당겨 준 사람은 없었다. 아민은 제 머리칼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을 느끼다, 충동적으로 물었다.
“시간 될 때 우리 언니 만날래요?”
언니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또 자신이 만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안심시켜 주고 싶기도 했다. 오히려 아주 좋은 사람이라고…… 말이다.
시간이 더 지나고 관계가 무르익어지면, 말해야지 말해야지 하던 질문이었다.
“좋아요.”
상우는 눈을 둥그렇게 떴지만,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민 씨한테 언니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알아요, 하나뿐인 가족인 거죠. 날 얼마나 특별하게 생각하는지 알겠어요. 고마워요.”
그리고 상우는 머뭇하다, 이내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나도 가까운 미래에 아버지께 아민 씨를 소개시켜 드리고 싶어요.”
이번엔 아민이 눈을 둥그렇게 뜰 차례였다.
“말은 잘 하지 않으시지만 무척 궁금해해요. 이번 설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말했거든요.”
“…….”
“부담스러울까요, 하지만 아민 씨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싶어요.”
신기하게도 부담되지 않았다. 상우가 하는 말이 어떤 무게를 가지고 있는지 알면서도, 아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개시켜 주세요, 나도 상우 씨 아버님을 뵙고 싶어요.”
아민은 그리 말하며 새삼 몇 달 전엔 말도 제대로 못 붙이던 사람과 미래를 함께 바라보게 된 것이 신기했다. 아민의 마음을 읽은 듯이 상우가 말했다.
“나도 신기해요. 십 년 뒤에도 이십 년 뒤에도 우리가 만난 일을 신기하다고 말하게 될 거예요. 어쩌면 우리 아이한테도.”
그래서 일은 그리되었다.
***
상우 씨의 의사를 언니한테 전달하자 아빈은 비장한 얼굴이 되었다.
“그래, 수요일이 좋겠다…….”
왜 언니는 그리 연애하라 했으면서도 제 남자 친구를 만나겠느냐는 말에 적장의 목을 베러 나가는 장수 같은 얼굴을 하는가, 아민은 의아했다.
“언니, 좋은 사람이야.”
“그건 내 눈으로 봐야 알지. 난 눈에 콩깍지 낀 사람 말 못 믿는다.”
“왜 그러는 거야, 좋은 사람이라니까…….”
“그래, 알아. 내 눈으로 그걸 확인하겠다니까.”
아민은 아빈의 말에 눈치를 보았다.
‘엇…….’
그리고 슬슬 무서워졌다.
***
“아주 많이 긴장되네요.”
아민에게 아빈의 취향을 물어 상우가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예약하는 데도 공을 들여야 하는 시내 중심가의 프렌치 레스토랑이었다.
“의견을 여쭤야겠지만 전체적으론 전채 두 종류와 고기 요리 두 개, 하나는 생선으로 할까요, 성게 요리를 잘하는데 언니분은 성게를 좀 드세요?”
“…….”
조금 일찍 상우와 아민이 도착했다. 상우는 살짝 긴장한 듯 보였다.
“아민 씨, 아민 씨?”
“네, 네?”
그리고 아민은 바짝 긴장해 보였다.
“아니요, 제가 뭘요? 언니 만나는 건데요?”
무릎에 손을 비비는데도 손에 식은땀이 계속 맺히는 건 무슨 일인가? 아민은 테이블 아래서 청바지에 불이 날 정도로 손바닥을 비비며 상우를 향해 웃어 보였다. 뭐 설령 언니가 반대한다 해도 아민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을 작정이었지만, 그래도 언니가 상우를 싫어하면 풀이 죽을 것 같았다.
그러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괜찮아요, 물 좀 먹을래요? 와인 한 잔 먼저 시킬까?”
오히려 상우가 아민의 등을 문지르며 그녀를 다독여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약속 시간, 아빈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구두 굽으로 바닥을 내리찍듯 또각또각 걸어 그들이 예약한 테이블로 다가왔다.
“미안해요, 차가 좀 막혔어요. 안녕하세요, 지상우 씨죠? 내가 여기 앉을까?”
아민은 그녀의 목소리만 듣고도 알았다, 언니가 작정했다는걸.
“안녕하세요, 지상우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그럼요, 저도 상우 씨와 우리 동생이 사귀기 전부터도 상우 씨 얘기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귀가 다 따가울 지경이었다니까요.”
다정하게 웃고 있는 둘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가는 것을 바라보며 아민은 마른침을 모아 꼴깍 삼켰다. 그래서 저녁 식사 자리는 어떠했느냐면…….
의외로 좋았다.
“이 음식…… 정말 맛있네요. 그런데 직업이 회계사시라고.”
“예, 작은 회사에 있습니다.”
“어휴, 들어 봤는데 전혀 작지 않던데요.”
도마에 오르는 몇몇 화제에 그걸 듣고 있는 아민은 말없이 조마조마했지만 대체로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아빈은 선을 넘지 않았고 상우는 곧 식을 올리는 아빈의 결혼에만 잠시 관심이 있었을 뿐 주제는 대부분 아민에 대한 이야기였다.
“얘가 보기엔 좀 맹해 보여도 자기 앞가림 잘해 나갈 수 있는 애예요. 지금까지도 그래 왔고요. 나는 내 동생을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빈이 아민더러 말했다.
“잘 알고 있습니다. 모두 아빈 씨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민 씨를 올바른 길로 걷게 하기 위해 아빈 씨가 얼마나 노력했을까요.”
상우의 말에 아빈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아민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단도직입적인 말에 아민이 흠칫했다.
“예, 저야 아민 씨 결정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먼 미래를 바라볼까요, 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가 어슴푸레하게 오고 가긴 했으나 상우가 한 말에는 더더욱 놀랐다.
셋은 마지막 디저트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난 뒤 헤어졌다.
[내가 혹시 실수는 하지 않았을까요, 아까 아민 씨의 의견을 더 묻지 않고 결혼에 대해 대답한 건 아닌가 걱정이 돼요, 하지만 내 마음은 진심이에요, 아직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하진 않았지만]
메시지가 왔다. 아빈의 차 조수석에 앉은 아민은 거기까지 읽다 말고 아빈의 말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뭐 하니?”
“뭐 하긴.”
“네 남자 친구가 내 동태 살피라든?”
“아니이~?”
아민은 허겁지겁 휴대전화를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괜히 제 상반신에 둘러진 안전벨트만 만지작거렸다. 아빈은 흘긋 아민을 바라보았다 다시 전방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래 뭐…… 괜찮더라. 그렇게 전해 줘.”
아빈이 툭 내던지듯 말하고도 아민은 한참 동안 그게 제 남자 친구에 대한 평가라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네 남자 친구 말이야. 그 정도면 뭐 직업 괜찮고 이것저것 들어 보니 별 하자도 없고…… 너나 그 사람이나 나이도 있잖니, 나도 곧 결혼하니 너만 괜찮으면 그 사람 하자는 대로 해라.”
‘그래, 내 눈이 정확하지!’
아민은 신이 났다.
[정말 아민 씨와 결혼하고 싶어요, 욕심을 내자면 올해가 가기 전에.]
아민은 답장을 작성했다.
[나도요! 나도 상우 씨 마음과 같아요!]
“……에휴.”
급히 다시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를 작성하는 아민을 바라보며, 아빈은 뭐라 하려다 말고 한숨을 내쉬었다.
***
눈에 콩깍지 씐 사람의 판단을 어찌 믿겠는가?
아빈의 지론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는데, 그중 맞은 것은 아민이 사랑에 빠져 제 남자 친구에 대한 제대로 된 판단이 불가능하단 점이었다.
아민은 얼마나 그 사람이 부드럽고 소년미 넘치는지, 상냥하고 예의 바르며 다정한지를 아빈의 귀에서 피가 나도록 말해 왔다. 그런데 보이는 게 뭔가?
‘뭐? 다정?’
단정하고 잘생긴 놈인 건 맞지만 아빈이 보기엔 그 단정함이 어쩐지 보는 사람 숨 막힐 정도로 완벽해 보여 정이 잘 가지 않았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직업이 회계사라 했던가? 어울려 보였다.
‘호구 같은 놈을 물어 오길 바랐다만 반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은 놈에게 물려 왔는걸.’
아빈은 생각했다.
‘내 동생이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 호랑이한테 물린 것은 아닌가?’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건, 아민이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해 보이고, 아민을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에서도 꿀이 뚝뚝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아빈은 식사를 하다 말고 나란히 앉은 둘을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염병천병이네.’
저도 사귀어 결혼할 사람이 있다 보니 알 수 있다. 원래 아민을 좋아했다고 들었는데 빈말은 아닌 듯, 아민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아민보다 더 남자도 푹 빠진 듯 보였고 동시에 행복해 보였다.
‘아민이랑 결혼하고 싶어요?’
‘예, 저야 아민 씨 결정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자가 하는 말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아빈에게는 진심을 담은 목소리로 들렸다.
‘에휴…….’
아빈은 운전을 하다 말고 속으로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코흘리개였던 게 엊그제인데…….’
어쩐지 마음이 휑한 기분이 들었으나, 자신도 몇 개월 뒤 결혼을 하는 마당이다. 머슴 같은 놈은 아니어도 남자는 아민을 무척 귀여워해 주고 앞으로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제삼자 눈으로 연애에 푹 빠진 둘을 보니 그래도 서로 잘 사귀다 결혼하겠다 싶은 느낌이 왔다.
‘잘 살아라.’
아빈은 동생의 행복을 빌며 운전을 이어 나갔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