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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고백해서 혼내 줍시다-11화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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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민은 왜 철벽을 쳤을까? 상우가 아민에게 속을 끓이던 시기에, 사랑에 타이밍이 얼마나 중요한지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안다고 자부하면서도, 어째서? 왜?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아민에게도 할 말은 있다.

이제 아민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어 보도록 해야 하겠다.

우선은 필명 문제가 그렇다. 아민은 이 직업을 사랑했고 하늘에 우러러 떳떳했으며 처음 글 쓸 이름을 정할 적에 남들도 다 그러니 나도 그래야 하겠다, 라는 마음으로 진짜 이름과 다른 이름을 선택했지만, 나중에는 아주 적은 사람에게만 제 글 쓸 때의 이름을 알려 주게 되었다.

그건 그녀에게 이름을 물어보는 사람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몰라서였다.

인터넷에서는 모두가 익명성을 띤다. 만나는 사람들이 익명의 공간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는데, 나만 무엇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밝히는 것은 그렇다는 생각을 품게 된 건, 가끔 이 업계에서 일어나는 일 때문이었다.

로맨스 작가 중 몇몇은 더 이상 무슨 글을 쓸지 생각이 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마음의 상처 때문에 글쓰기를 그만둔다.

익명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비판이나 실망이야 당연하지만 글을 읽지 않고도 읽은 척 장문의 글을 써 여론을 조작하거나 여러 개의 아이디를 만들어 한 작가를 집요하게 괴롭히는 경우가 있었다.

달리 이유는 없을 것이다. TV를 틀면 튀어나오는 연예인도 아닌데 글이 싫다면 그냥 검색해 보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글을 쓰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으니까.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에 아무 이유가 없다는 점이 무서운 것이다.

마치 작가가 누구인지 아는 듯이, 글이 아닌 작가에 대한 비방을 적고 하도 지독히도 구는 독자가 있어 유명 작가가 고소하고 보니 가장 친한 친구였다더라. 친척이었다더라. 같이 글을 쓰며 이 일을 준비하던 작가 지망생 지인이었다더라, 하는 말이 업계에서 괴담처럼 내려왔다.

아예 없을 일은 또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 마음이 열 길 물속보다 깊다 하더라도, 상우 씨가 악플을 달겠는가? 아민은 그 정도로 인간 불신에 걸리지 않았다. 다만.

“글 쓰실 때 쓰는 이름 알려 주실 수 있으세요? 검색해서 사서 볼게요.”

‘엇…….’

아민이 상우의 물음에 철렁했던 것은, 쓰는 글의…… 수위 때문이었다.

‘왜? 갑자기 왜?’

연애소설이다. 연애소설이긴 한데…… 또 그것이 판타지긴 하지 않은가. 여성들을 위한 화끈한 판타지 말이다. 19금의……. 다 19금인 것은 아니지만…….

‘갑자기 왜 사서 보시려고요……!’

게다가 그 19금 글 속에는 자신의 판타지도 들어 있었다.

성적…… 성적의…….

이 일을 하는 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은 없으나 짝사랑하는 남자한테 도저히…… 아무리 고민해도 도저히 보여 줄 수 없는 글이었다. 만약 그들의 사이가 연인이었다면 좋은 플레이 재료가 될 수야 있겠으나…….

침묵이 흘렀다.

‘……안 돼.’

물어본다고 해도 대부분 정말 글을 읽는 데까지 이르지 않을 것을 알긴 하나 이름을 검색하기라도 하면 독자님들의 감상문이 주르륵 이어질 것이다.

이제 이 직업으로 전직해 전업한 지 사 년 차, 전업작가라 그런지 글도 많이 써 놨다. 그것도 욕망에 불타던 시기에 특히 더 많이…….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어도 안 돼……!’

지금까지 쌓아 올렸던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지 않겠는가. 상우 씨가 그걸 보았다간 저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들지도 모른다.

‘……어떡하지?’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 등과 목덜미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배가 싸한 것이 오한이 드는 것도 같았다.

“변변치가 않아서요. 여기에서 쓰는 글과는 결이 다르기도 하고, 독자층이 대부분 여성분이라 정말 재미없으실 거예요.”

결국 아민은 필명을 알려 주기 거절할 때 쓰는 단골 멘트를 읊었다. 정 없어 보였지만 정신이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 궁금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상우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으아!’

아민은 속으로 죽어라 안심했다. 상우의 속은 모르고, 아마 알았더라도 어쩔 수 없었겠지. 일은 이리된 것이다.

그리고 연락. 상우에게 사소하게 혹은 크게 다가왔던 소통의 문제.

이에 대해서도 아민은 변명할 수 있다.

아민은, 요즈음 누군가와 전화한 지 참 오래되었다. 콜센터를 그만둔 뒤 사람들과는 메일 혹은 메신저로 소통하는 게 전부였다. 그것도 짧게, 내용만 굵게 보내어 말이다. 그리고 그 소통은 길게 이어지지 않고 단답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개인정보를 여쭤보는 것이라 조심스러웠네요.

그럼 여행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아민은 이 대화의 종지부를 찍는 제 메시지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았다.

‘받았다! 으아! 받았어! 친해진 것 같아서 기쁘대!’

그저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끌어모아 연락처를 따낸 자신이 자랑스러웠을 뿐, 설레면서도 그날 잠도 잘 잤다.

티키타카.

짧은 패스를 빠르게 주고받는 축구 경기 기술, 요즘에는 사람들 사이 합이 잘 맞아 빠르게 주고받는 대화를 뜻하는 이 단어 말이지. 일단 관계가 진전되려면 이것이 있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았다.

‘미친X이 지가 골키퍼였네. 아주 거미손이었어.’

아빈이 알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일이었는데, 아민으로서는 이 생활이 너무 익숙했다.

무슨 생활이냐 하면, 하루에 전화가 한 통도 걸려 오지 않는 생활이다.

그래서 전화, 메신저, 버튼음을 통틀어 무음으로 정해 놓는 게 당연한 생활.

그도 그럴 것이, 동호회 활동을 하기 전엔, 하루에 하는 말 단 한 마디가 ‘아메리카노 레귤러 사이즈로 주세요’였다니까.

아민은 제가 상우한테 조금 과장을 보태어 ‘통곡의 벽’ 수준의 철벽을 쳤다는 것을 정말 몰랐다.

아민의 생각에 제가 보내는 여지와 신호는, 상우 쪽에서 다 거절하는 것 같았다. 독서모임 동호회 1기가 그 꼴로 파투가 난 뒤, 은연중 모임원과의 친목이 지양되던 이 동호회 2기에서 그렇게 애를 써 몰래 번호를 따내고, 또 상우가 가고 싶다던 전시회, 영화는 다 따로 벙을 열어 주고 있는데 말이다.

아민에겐 이거 혹시 모임장 혹은 다른 운영진에게 들키는 것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월권 수준이었다.

‘하기야 저번에 가고 싶다던 미술과 전시회 벙 열었을 때도 참석 안 하셨지.’

일이 바쁘다 하였지만 그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상우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하고 돌아오는 길 아민은 무척 침울했다. 혼자 술을 마시는 편이 아닌데 집 근처 편의점에 들러 만 원에 네 캔 하는 맥주를 산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에 외로우시다 하지 않으셨어요?’

지나가듯 한 말에 모임장이 거의 억지로 주선한 소개팅에 나갔을 때보다 마음이 더 썼다. 당연한 일이었다. 완벽한 거절처럼 느껴졌다.

자신이 보내는 전파는 닿지 않는다.

아니, 닿는데 거절 신호가 돌아왔다. 완벽한.

아민의 생각으로는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그 사람한테 다른 사람을 소개해 주진 않을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이다. 만에 하나 그러다 사랑의 오작교가 되어 버리면 너무나, 마음 아플 테니까.

‘접자. 접자.’

아민은 캔 맥주를 따 꿀꺽꿀꺽 마셨다. 아주 차가웠는데 속은 시원해지기는커녕 더 답답해졌다.

‘마음 접으라고 저렇게까지 하는데, 접지 않으면 무례한 거야, 허아민.’

그녀는 자신을 질책하는 동시에 달랬다.

며칠 뒤의 일이다.

“음, 혹시 소개팅은 괜찮으셨나요? 제 친구가 뭔가 실례를 저지르지 않았나 걱정이 되어서요.”

아민은 이 화제를 피하고 싶었는데 주선자로서는 당연히 물을 질문이었다. 상대는 거절당한 것을 이미 상우에게 밝힌 듯하여 아민은 이런 때 늘 하는 대답을 했다.

“정말 좋으신 분이셨어요, 다만 음, 뭐랄까, 저와 취미가 맞는 점이 없어서요. 아무래도 사귈 땐 그런 점을 보게 되니까…… 그래도 정말 좋았습니다. 덕분에 맛있는 것도 먹었고요.”

무척 근사한 레스토랑이었다. 비싸기도 비쌌고 말이다.

“아하, 친구가 정말 아쉬웠노라, 좋으신 분이었노라 말하더라고요.”

“…….”

“소개팅이 성공할 확률이 참 없네요.”

상우가 웃었다.

‘상우 씨는요?’

아민은 하고 싶은 말을 꿀꺽 삼켰다.

‘상우 씨는 어떻게 되었는데요?’

그때 상우도 소개팅을 받겠다 하지 않았는가. 아민은 상우가 정말 제게 마음이 없노라 그 일로도 확신했으나, 그래도 상우가 소개팅에 성공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마음을 접겠다고 당장 마음이 접어지는 건 아니다.

‘실패했죠?’

상우는 작년 말 실연의 아픔을 잊고 다시 연애 시장에 뛰어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민은 상우가 연애하지 않았으면, 했다. 자신과 연애하지 않는다면 아무와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아, 제 친구는 마음이 있었는데 말이에요.”

상우의 소개팅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에 대해서는, 상우의 입이 아니라 이 주쯤 뒤 상우가 없는 모임 뒤풀이에서 나왔다.

“형님이 마음이 없었나 봐요. 그냥 밥만 먹고 끝났죠, 뭐. 아, 괜찮을 거 같았는데……”

‘뭐가 괜찮을 거 같은데, 어?’

아민은 속으로 그리 생각했지만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데 아민 씨는요? 소개팅 받은 거 어떻게 되셨어요?”

화제는 그녀에게로 돌아왔다. 푸념을 늘어놓던 상우의 주선자가 아민에게 물었다.

“하하, 좋은 분이었는데 저랑은 잘 맞지 않더라고요.”

아민은 그냥 웃기만 했다. 어쨌든 이 일은 해프닝으로 끝난 듯했다.

***

“그럼 저는요?”

뒤풀이를 파하고 집이 근처인 모임원과 함께 걷는 길이었다. 모임원이 갑자기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하여 둘은 아이스크림을 쥐고 걸었다. 아이스크림은 쉽게 녹았다. 흘리지 않으려 자연스레 허겁지겁 입에 넣게 되었는데 옆에서 그가 말했다.

“저는 어떠세요?”

아민은 무슨 말을 하는가 싶어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올려다봤다.

“아민 씨한테 저는 맞는 거 같아요?”

그의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아민은 아, 했다.

“저 지금 아민 씨한테 고백하는 거예요.”

아.

고백을 받았다.

솔직히…….

‘엥?’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왜? 뭔데? 갑자기?’

허아민, 그녀는 거미손 골키퍼이자 통곡의 벽이자 철옹성이었으나 동호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후 가끔 이렇게 곧잘 고백을 받곤 했다.

“저 남자 친구로 어떠세요?”

“……아, 네?”

그래서 자신이 더 철옹성인지 몰랐다.

‘갑자기 나한테 왜 이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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