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그런데 그동안 허아민은 어떻게 연애했을까?
아민도 호감이 있었지만 우선 상대가 무척 적극적이었다. 커피 한잔하자, 영화 한번 보자, 식사 한번 하자, 지금까지 그녀와 사귄 남자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접근했고 아민은 늘 수락하는 입장이었다.
참 쉬운 입장이었다.
그러니 누군가를 꼬드겨 자신이란 함정에 빠뜨려 본 일이 없다. 세 번의 연애를 했으면서도 그녀는 개수작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으으…….’
아민은 자신의 마음조차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만약 영화 보자고 한 다음에, 설령 그 남자가 수락한다고 해도 말이야. 영화 보고 밥도 먹었는데 아니면 어떻게 하지?’
일단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걱정은 왜 그렇게 많은지.
어느 날 콕 박혀 버린 그 남자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호감 이상인가, 고민하면서도, 아민은 어떻게든 그 남자와 영화를 보고 싶었다.
그 영화에 연막작전으로 한둘 더 끼워 넣더라도 말이다.
‘미끼를 던져 보자.’
모임장이 제안한 운영진직을 수락한 이유가 무엇인가?
‘나한테 조금이라도 호감이 있으면 물겠지.’
바로 이런 일을 하려는 게 아니겠는가? 아민은 일단 조심스럽게 그한테 접근해 보기로 했다.
[영화 벙 합니다 (영화 전 저녁 식사)]
때는 여름.
당시 다행히 누구나 한 번 관심을 가져 볼 법한 대형 프랜차이즈 영화가 개봉 중이었다. 이 영화를 주제로 그와 이야기도 나눴었다.
아민은 전 모임원을 대상으로 영화 모임을 열었다.
모임에서 비정기적으로 전시회나 영화를 지정해 보고 그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니, 그는 알아차려도 다른 사람들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리고 벙 당일 삼 일 전이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어플리케이션에 들락날락하고 있던 아민의 눈에 상우 씨가 참석 버튼을 누른 것이 들어왔다.
“와아악―!”
언젠 호감인지 아닌지 불분명하다며? 아민은 휴대전화를 천장 높이 던졌다 받으며 소리를 질렀다.
“됐다! 됐어!”
영화 벙 참석 인원은 총 다섯 명이었다. 저녁 늦게 영화관을 잡았다 보니 넉넉히 한 줄에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아민은 조금 더, 조금 더 수작을 부려 보기로 했다.
이왕 같이 영화를 볼 것이라면, 나란히 앉아 보면 얼마나 좋은가.
팝콘이라도 하나 사면 나눠 먹을 수도 있고, 긴장되거나 재미있는 장면이 나오면 말이라도 한마디 더 걸 수도 있고…….
……남들 몰래 둘이 아는 신호라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으아! 그러고 싶다!’
호감인지 그 이상의 감정인지 불분명하다며? 아민은 저도 모르게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휴대전화 번호 알려 주실 수 있으세요?]
당시 아민은 운영자란 핑계로 상우의 번호를 남들 몰래 알아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알아 놓았을 뿐이지 그 번호로 별 연락은 하지 못했다.
그냥 요즘 모임에 자주 나와 주셔서 감사해요, 친하게 지내요, 정도?
상우는 그때 아민한테 풀잎 위에 앉은 나비처럼 느껴졌다.
집적대는 것이 들키면, 상황이 귀찮아지는 것을 염려해 다른 모임으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전 모임에서도 연애 문제로 나왔다지 않은가?
하지만 천천히, 조금씩 스며든다면…… 자신에게도 승산이 있지 않을까?
‘해 보자!’
아민이 메신저로 손을 달달 떨며 문자를 보낸 것은 수작을 좀 더 부려 보자 결심을 하고도 두어 시간이 지나서였다.
[지금 제 옆자리가 비었는데 거기 앉으실래요? 좌석은 I13이에요.]
마침맞게도, I열 왼쪽 맨 가장자리에 앉은 그녀의 오른쪽 자리가 비어 있었다. 딱 한 칸.
그리고 메시지 옆의 1이 사라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우 씨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엇.’
아민은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저는 원래 앉는 지정 좌석이 있어서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이미 예매를 해 놨어요.]
빨개지다 못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나중에 보니 그가 앉은 좌석은 I열의 반대편 오른쪽 맨 가장자리였다.
***
“아니, 그런데 정말 영화관에서 앉는 좌석이 정해져 있을 수도 있잖아.”
“……그것뿐만이 아니야.”
아민이 슬픈 얼굴로 웅얼웅얼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고.”
부끄럽지만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편하게 앉고 싶었을 수도 있고 시야각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 테고, 아민은 정신승리를 하려고 노력해 봤다.
***
영화를 보기 전, 저녁을 먹기로 한 시각 한 시간 전.
[일이 생겨서 저녁은 먹지 못하고 영화만 보고 가야겠네요.]
어플리케이션 알림음과 함께 모임 전체 메시지가 도착했다.
“…….”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던 아민은 휴대전화를 한참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곧 모임원들이 도착했고 아민은 그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영화를 기다리며 커피숍에서 노닥거렸다.
늘 그렇듯이 모임원들과의 대화는 즐거웠고, 아민은 부러 훨씬 더 많이 웃었다.
하지만 실은 풀이 죽었다.
‘뭔가…… 단둘이 대화하고 밥 먹을 만한 시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는 정말 영화관에 들어가기 직전에 왔다.
영화를 보고 나니 야심한 밤이었다. 모임원 한 명과는 같은 역 부근에 살아 함께 지하철로 이동하며 영화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모임 때보다 더 얼굴도 못 보고 이야기도 못 나눴는데, 한 공간에서 같은 영화를 봤다 한들, 이게…… 영화를 본 게 맞나?
‘내가 이런 일을 왜 시도했을까?’
아민은 시무룩해져서 집으로 돌아왔다. 무심코 휴대전화를 주머니에서 꺼내는데 부재중 메시지가 보였다. 그였다.
‘헉.’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이세요?]
답장은 이십여 분 후에 도착했다.
[늦은 시각이라 다들 태워 드리려 했는데 연락을 받지 않으시더라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잘 들어가셨죠? 오늘 참 즐거웠습니다. 영화 보고 나서 감상을 듣지 못해 아쉽네요. 다음 모임에선 들을 수 있겠죠?]
“…….”
아민은 푸시식― 김이 푹 빠졌다.
***
“뭐 그걸 가지고 차였다는 거야?”
“언니라면 생각해 봐. 언니는 조금이라도 호감이 있다면, 어? 손톱만큼이라도 호감이 있다면, 영화관 옆에 앉으란 말을 거절하겠어? 관심 보이자마자 밥도 안 먹겠다잖아, 나랑. 나랑만 먹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민이 울분을 토해 냈다. 그녀의 말에 아빈은 생각에 잠겼다.
“……흠.”
할 말이 없었다. 하긴…… 그렇겠지. 하지만 아빈은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아민의 연애감정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 야근해서 일이 바빴을지도 모르는 거 아닐까?”
정말 시간이 안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
아민은 그 말에 죽은 동태눈을 했다.
“그 사람이 나 소개팅시켜 준대.”
그렇다.
“뭐?”
“소개팅하래. 뭔 연애를 그렇게 오래 안 했냐고 그러더라.”
언니 말대로 정말 그 정도면 모르겠으나, 결정타가 있었다.
***
아민이 그 신호에도 불구하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한테 집적집적, 집적집적대고 있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아민 씨. 소개팅하실래요?”
상우 씨의 말에 즐겁게 맥주잔을 기울이던 아민은 그대로 빳빳하게 굳어 버렸다.
“괜찮은 사람 있는데. 아민 씨한텐 아깝겠지만, 그래도 제 친구라 아는데 사람은 진국이거든요.”
때는 칠월의 어느 날이었다.
“…….”
어느 남자가 호감 있는 여자한테 소개팅을 권하겠는가?
“……아, 그게.”
“지금 괜찮다고만 하시면 바로 물어볼게요.”
심지어 한번 떠보는 말도 아니었다.
***개인소장 존잼보장
“……그게 다음 주야.”
실제로 소개팅을 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아니, 어? 너무한 거 아냐?’
아민은 그날 겉으론 웃으며, 속으론 피눈물을 흘렸다. 좋아하는 거 눈치챘으면, 가만 놔두기라도 할 것이지. 이건 나 말고 다른 남자 빨리 알아보란 말과 같은 의미 아닌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복기하니 아민은 실제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니, 나 그렇게 매력 없어?”
그래도 고백도 꽤 받아 봤는데 말이다. 아민은 이제 제 매력이 의심되기까지 했다.
“나 못생겼어? 아님 내 몸에서 혹시 냄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