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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모임은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진행되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동호회의 가입 요건을 읽어 본 뒤 가입을 하고 매주 열리는 동호회 모임에 참석 버튼을 누름으로써 참석 의사를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지상우 씨는― 다음 주 모임에도 참석 의사를 알렸다.
‘나온다!’
괜히 마음이 화악 하고 밝아지며 기뻐했다. 이유를 알 수 없이.
그다음 주 모임 당일 하루 전, 상우 씨가 참석 취소 버튼을 눌렀지만 말이다.
이후 그와 비슷한 일이 장장 한 달이 계속되었다.
‘지금…… 장난하나.’
그리고 아민은 이상하게…… 열이 받았다.
***
그즈음이었다. 아민이 운영진 자리를 제의받은 것은.
“제가요?”
때는 일월경, 장소는 모임 장소로 많이 활용되는 카페였다.
카페의 모임장이 불러 별생각 없이 나왔던 아민은 이 제의에 좀 당황했다.
“우리 모임에 오래 나오시기도 했고, 아무래도 다른 분들보단 책을 보는 시각이 넓고 전문적이시잖아요. 저희를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말을 들어 보니, 그동안 모임에서 너무 나댔던 것이 문제였던 듯하다. 아민은 당장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려다 생각에 잠겼다.
“어차피 운영은 제가 하니까 잠깐만 저 시간 없을 때 모임만 열어 주시면 돼요. 괜찮아요. 자주 나오시잖아요. 그냥 직함만 하나 단다고 생각하시고 지금처럼 해 주시면 되는데.”
모임장의 설득 때문은 아니고…… 어쩐지 상우 씨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운영진이 되면…… 모임도 열 수 있고, 뒤풀이도 제안할 수 있겠지?’
흑심이 들었다는 것부터가 이미 관심 만만이었지만, 아민은 아직 아무런 자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직함만인 거…… 맞죠?”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직함엔 늘 그만한 대가가 따라오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이월. 아민이 운영진이 된 지 한 달 만에 동호회 모임은 폭파되었다. 이유는 아주 흔했다.
“그런 이유로 모임은 문을 닫고 무기한 휴식을 갖게 되었어요.”
그녀의 또래인 모임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유는 이 상황을 모르는 다른 모임원한테 밝히지 않을 생각이지만, 참, 대체 사랑이 뭔지.”
모임원 간의 치정 싸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치정’이란 무엇인가?
남녀 간의 사랑으로 생기는 온갖 어지러운 정을 뜻하는 이 단어, 이 모임에도 그게 있었다.
이 모임엔 아주 잘생긴 남자 모임원이 있었는데 그 남자 모임원을 두고 여자 모임원끼리 물밑에서 싸움을 하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큰 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더불어 그 남자 모임원은 아주 많은 모임원에게 ‘여지’를 주었고 말이다. 알고 보니 웬만한 여자 모임원은 다 엮여 들어간 일이었다.
“아민 씨가 이 사건에 끼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남녀가 한 장소에 있다 보면 물론 이런저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어디 정도가 있어야지. 이건 모임을 하러 나온 건지, 아님…….”
그 상황엔 끼지 않았지만…… 누군가에 대한 흑심이 없던 것은 아니니 제 발이 좀 저린다고 할까. 아민은 마른침을 삼켰다.
“아민 씨한테는 정말 미안해요. 운영진이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쩌지.’
모임장은 사과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아민이 걱정하고 있는 건 모임장과는 결이 좀 달랐다.
‘……이제 진짜 못 만나겠다.’
얼굴 한 번 본 남자를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겠다, 하는 걱정이었다.
이상한 걱정이었지만, 아민은 실망했다.
‘뭐 무슨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니었고.’
생각보다 꽤 많이 실망했다.
‘인연이 아니었나 보지.’
‘그럼요.’
모임이 폭파되었으니, 앞으로의 소식도 만남도 기약이 없었다.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아민은 상우를 다시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이 모든 게 3월 전까지의 일이었다.
‘에휴…… 괜찮은 다른 동호회 찾기도 쉽지 않고.’
결이 비슷한 다른 동호회를 찾는 방법도 있었지만 아민은 어쩐지 시들시들해졌다. 그즈음엔 일도 몰려서 바빴다. 결국 아민은 한 달쯤 어떤 모임도 나가지 않고 일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모임장이 다시 모임을 열었다며 그녀를 부른 것이 삼월 중순경의 일이었다.
“모임의 성격을 좀 바꿔 볼까 해요. 독서뿐만 아니라 좀 더 능동적인…… 글도 쓰는 동호회로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삼십 분 정도 시간제한을 두고 공통된 제시어를 바탕으로 자유주제로 글을 쓰면 좋을 것 같은데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당시 아무런 사회활동에 참석하지 않고 있던 아민은 그간의 정도 있고 해서 그 일을 수락했고, 모임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에 대해서도 별 상관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모임 금지 사항에 회칙을 하나 더 추가할까 해요. 모임원 간의 친목 지양 및 연애 금지라는…….”
그리고 그즈음에는…….
……그녀의 젖은 마음에 잠깐 불꽃을 튀게 했던 남자에 대해선 완전 잊고 있었다.
아민은 체념이 빠른 성격이었다.
그러나 잿더미 속에 숨어 있던 불티가 다시 타오르는 일은 얼마나 쉬운가?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전형적인 불조심 표어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었다.
***
날 좋은 사월의 어느 날이었다. 카페를 일터로 활용하는 아민은 그날도 모임 장소에 몇 시간 미리 나와 밀린 일을 하고 있었다.
‘난 이렇게 일만 하다 죽나 보다. 소처럼 말이야…….’
남들 보기에 편하고 좋아 보이는 프리랜서의 삶은 실제로 겪어 보면 이상과 약간 달랐다. 주말은 그저 평일의 연속일 뿐이었다.
‘아. 올해도 이렇게 지나가는 걸까?’
속으로 생각하는데 머리 위로 그림자가 졌다.
“아민 씨.”
그림자의 주인이 아민의 이름을 불렀다.
‘음?’
모임의 성격이 바뀐 이후, 모임에는 글 쓰는 직종의 프리랜서들이 많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다. 아민은 저와 비슷한 상황인 한 명이 모임 장소에 먼저 도착했나 했다.
고개를 들기 전까진 말이다.
“헉.”
아민은 저를 가린 그림자의 주인을 보고 헉, 했다.
지상우 씨였다. 처음 봤을 때보다 훨씬 가벼운 복장을 한 상우 씨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웃었다.
“저예요.”
아민은 입을 벌렸다.
“…….”
그러나 할 말을 잊었다. 그러자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상우 씨는 하하 웃곤 말했다.
“잊어버리셨죠?”
잊었기는.
나! 타! 났! 다!
아민의 머릿속은 지금 미러볼이 켜진 상태였다.
나! 타! 났! 다!
반짝반짝 휘황찬란 아주 정신이 없었다.
***
“영국은 우중충한 도시였다. 나는 스톤헨지를 보고 무척 실망했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거석군인데 막상 도착하니…….”
아민은 그날 자신이 어떤 글을 쓰고 읽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모임의 성격이 독서 감상에서 글로 바뀐 이후에, 별 준비 없이도 모임에 나올 수 있다는 상황에 안심했는데, 그날 3년 차 전업 작가 아민은 식은땀을 흘렸다.
읽은 글에 대해 감상을 한 숟갈 얹는 것과 직접 써서 발표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나 왜 전업 작가라고 나를 소개했지?’
그냥 프리랜서라고 해도 됐는데 말이다. 자의식 과잉이었던 것일까? 읽으면서 아민은 상우 씨란 존재가 무척 의식되었다.
“아민 씨 다음에 읽으려니 겁이 나네요. 옆자리에 앉는 게 아니었는데요.”
그날 상우 씨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아민의 다음 차례였다. 하지만 엄살을 떤 것치곤 상우 씨의 글은 무척 좋았다. 시간제한 때문에 마무리 짓지 못한 단편소설이었다. 내용은 끝난 사랑에 대한 단상이었다.
‘글 쓰는 게 직업인가……?’
자기소개 할 때, 자기가 이런 사람이다 자랑하기도 하지만, 그리 구체적으로 자기 신원을 밝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후 뒤풀이에 참석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만……. 상우 씨는 뒤풀이에 참여한 적이 없었다.
그날의 모임은 하루 당긴 토요일 저녁에 있어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는 뒤풀이로 이어졌다.
“술 먹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서 차 두고 왔어요.”
그리고 상우 씨는 그날 뒤풀이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아.’
아민은 무척 반가우면서도, 딴청을 많이 부렸다.
“혹시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술은 좀 드세요?”
“먹어요. 많이 먹진 못하고요. 그래도 술자리 좋아해요.”
운영진이란 핑계를 대어, 술자리를 찾아 걸어가며 곁에 붙어 먹고 싶은 것도 물어보았지만, 그뿐이었다.
“늘 만나는 사람들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과 먹으니 좋네요.”
어쩐지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던 건 그를 너무 의식해서일까? 아민은 뒤풀이 자리에서도 적극적으로 궁금한 것을 물어보진 못했던 것 같다.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서른일곱이에요.”
“서울에 회사 다닌다고 들었는데 어디세요?”
“강남이에요.”
다행히 사람들이 그녀 대신 물어봐 주었다. 그는 물음에 모두 선선히 대답했다.
‘강남에 회사 다니는구나.’
어쩌다 보니 그와 먼 테이블에 앉게 된 아민의 귀는 딴청을 부리면서도 그에게로 열려 있었다.
“무슨 일 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재미없는 일이에요, 그냥 숫자 계산이죠. 얼마 전까지 정말 바빴어요.”
하지만 아직은 호감과 관심이었다.
그때 그 호감은 그야말로 뽑혔다 새롭게 돋아나는 새끼손톱만큼이었다.
“여자 친구는 있으세요?”
바로 이 대답을 듣기 전까지 말이다.
“얼마 전, 연애가 끝났어요.”
***
“와!”
그녀의 언니는 또 태클을 걸었다.
“됐네, 됐어! 사귀는 사람도 없다잖아!”
“뭐가 됐는데?”
진짜 대체 뭐가 되었단 말인가? 아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아직 아냐.”
그렇다. 골키퍼가 있어도 골은 들어간다지만, 골키퍼가 없어도 상대가 강팀이면 골 넣기가 쉽지 않다. 일단 골문은 자시고 하프라인을 넘질 못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라고…….”
답답해진 아빈은 테이블을 탁, 하고 쳤다.
“이건 커피 마시면서 들을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
아민의 물음에 아빈은 숄더백을 어깨에 걸쳤다.
“술 마시러 가자.”
이 장황함을 보라. 이러다 내일에야 결말을 듣지, 지금이 칠월인데 아민은 지금 사월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민의 입에 술을 부어 넣어 동생의 혀에 날개를 달아 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