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98)화 (298/300)

“진짜 그렇게 생각해…?”

“그럼요. 제가 언제 다이안 도련님한테 거짓말하는 거 봤어요?”

다이안이 내리깔고 있던 시선을 들어 일렁이는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 나 린이 내 양육자라서 정말 좋아. 열심히 자라서, 꼭 린처럼 멋진 어른이 될게.”

다행히도 내 진심이 전해졌는지, 다이안이 결의를 다지듯이 귀엽게 주먹을 쥐고 다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단순히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다이안의 눈빛이 조금 전보다 한결 단단해진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다가, 퍼뜩 주변 상황이 또 궁금해져서 다이안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그런데 다이안, 바깥이 조용한데 일은 다 정리된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 있어요?”

“아, 맞다. 린이 누워 있었던 건 한 시간 정도 되나? 밖은 어느 정도 정리된 게 맞고… 으음. 그리고 린 말고도 제법 크게 다친 사람이 있긴 한데… 의사 선생님이 치료해 줬어.”

“의사 선생님? 설마 콘라드요?”

“응. 의사 선생님이 총괄 집사처럼 나쁜 사람이라는 게 밝혀져서 한바탕 시끄러웠지만… 일단 올리비아가 협박해서 다친 사람들 치료는 하게 했어. 그러고 나서 또 묶어 뒀지만.”

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또 한바탕 시끄러웠겠구나. 콘라드에 대한 건 체스휘가 잘 해결한 건가? 양육자들이 나와 체스휘를 마리엔과 유지니아 살해범으로 오해한 것처럼, 어쩌면 무고한 의사를 감금시킨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않나? 하지만 다이안의 말을 들어 보면 딱히 그런 문제가 발생한 느낌은 아니었다.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다이안이 아니라 체스휘에게 물어야겠다 싶었다.

“다이안, 체스휘는 지금 어디….”

“7호실 자기! 일어났구나!”

그런데 내가 다이안에게 체스휘의 행방을 채 묻기도 전에 누군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체스휘와 다른 양육자들이었다. 체스휘와 내 눈이 마주치자마자, 앞으로 튀어나온 올리비아가 덥석 나를 끌어안았다.

“2호실한테 얘기 다 들었어! 자기 그동안 고생 많았구나!”

“네, 네?”

“저 돌팔이 의사랑 총괄 집사, 그리고 기타 흉측한 것들 때문에 별관에 갇혀 있었다며?”

“예?”

“그동안 저택에서 일어난 온갖 불미스러운 일들도 전부 다 그 자칭 혁명 단체 놈들이 꾸민 거라면서! 음흉한 놈들, 어떻게 그동안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대? 저놈들이 오늘 아예 날을 잡고 같은 편인 무리를 저택에 불러들여서 큰일을 내려고 했는데, 그걸 알고 자기가 필사적으로 탈출해서 우리를 구하러 온 거라는 소리도 들었어!”

나는 올리비아의 말을 듣고 의구심에 미간을 좁혔다.

갑자기 뭐지? 사실에 기반한 내용도 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많이 섞여 있는데? 게다가 체스휘 얘기는 쏙 빠져 있기도 하고.

“그러게, 나는 처음부터 7호실을 믿었다니까. 7호실이 다른 양육자들을 죽이다니, 그런 건 말도 안 되지. 근거도 없이 사람을 그런 식으로 막 의심하고! 그러면 돼? 응?”

“왜 저를 보고 말씀하십니까? 7호실 양육자님이 부재할 때 그런 말을 한 건 4호실….”

“하하, 이 친구 참! 오늘 보니까 모로스들 사이에서 아주 날아다니던데. 역시 근육은 관상용이 아니었어. 아주 믿음직해!”

올리비아에 이어 레이븐도 뭔가가 지레 찔리는 사람처럼 과장되게 반응하며 괜히 옆에 조용히 있던 길버트를 물고 늘어졌다가 서둘러 말을 돌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체스휘를 쳐다보자, 그가 검지를 소리 없이 호선을 그린 입술 위에 가져다 댔다.

나는 그걸 보고 혹시 체스휘의 작품인가 하고 생각했다. 체스휘가 아무리 그럴듯하게 둘러대더라도 정황상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는데, 올리비아를 포함한 다른 양육자들은 지금 저 내용을 너무 쉽게 믿는 눈치였다.

방금 내가 들은 말들에도 곳곳에 허술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 아무도 의문 하나 품지 않는 걸 보면, 체스휘가 나한테 종종 그러던 것처럼 기이한 능력으로 여기에 있는 사람들의 기억을 조작하거나 세뇌한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그들에게 체스휘와 내 부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처했는데 차라리 잘 된 건가…?

체스휘라면 오히려 내가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길 원할 것 같았는데, 이건 뜻밖에도 자기가 한 짓에 책임을 진 셈이었다. 예상치 못한 체스휘의 양심적인 모습에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올리비아에게서 또 흘러나온 말을 듣고 번쩍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참, 외부와 연락이 닿았는데 곧 관리 기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방문하기로 했어. 이번에는 가짜가 아니라 진짜로.”

뭐?!

잠깐만, 기껏 한 건을 해결하고 나니까 또 벌써 다음 차례가 온 거야? 이건 너무 빠르잖아!

“저기, 그 전에 양육자 여러분과 먼저 상의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속으로 갈등하다가, 손을 들고 진지한 얼굴로 양육자들을 둘러봤다.

체스휘를 한번 쳐다봤으나 내가 무슨 말을 할 생각인지 이미 짐작한 눈치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걸 보니 아무래도 이제 날 방해할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다이안을 다른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보내고, 굳게 마음을 먹은 뒤 양육자들에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내 말을 전부 들은 사람들은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내 올리비아가 정리하듯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7호실 말은…. 아이들이 무사히 성인이 되어서 최종 선발되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새로 정화될 빈 세계의 선구자, 즉 왕 같은 존재가 되는 게 아니라, 영원히 혼자 공허 속을 부유하는 영혼이 될 뿐이라는 거야? 그리고 최종 선발에서 탈락하면 탈락하는 대로, 애들이 처분당해서 죽을 거라고?”

“간단히 말하자면 그래요.”

물론 아이들이 애초에 빈 세계에 제물처럼 내던져지기 위해 배양된 존재라거나, 또 부적격 판정을 받고 선발에서 탈락해 레드포드 저택을 떠난 아이들이 바로 죽는 게 아니라 무덤이란 곳에 버려진다거나 하는, 기타 등등의 복잡하고 미묘한 사실들이 많이 있긴 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걸 양육자들에게 전부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건 무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양육자들은 이런 심각한 얘기를 들어 놓고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7호실 자기, 혹시 갇혀 있는 동안 공상이라도 한 걸 지금 현실로 착각하는 거 아냐?”

“7호실 양육자님의 말씀이 너무 갑작스러워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내 생각에는 그 자칭 혁명 단체라고 하는 불순한 사상을 가진 놈들한테 들은 얘기를 7호실이 순진하게 다 믿는 것 같은데?”

그럴 줄 알았다만, 역시 안 믿는군…. 게다가 마지막에 레이븐이 꺼낸 말에, 다들 나를 의혹 어린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앗, 내가 너무 섣불렀나?’

그때서야 나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무래도 내가 처음 맛보는 동료 뽕에 취해서 성급하게 말을 꺼낸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한 법이라, 이러다가는 나도 반동분자로 의심받을 수도 있을 듯했다.

나는 이번에도 혹시 체스휘가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까 싶어서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체스휘는 나더러 알아서 하라는 듯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기만 했다.

“린 씨 말은 추상적이네요.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말 레이븐 씨 말처럼 불순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잘못된 생각을 주입 당한 건 아닌지 모르겠는데.”

아니,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나를 향한 의심 어린 말을 앞장서 던지기까지 해?

나는 배신자를 보듯이 체스휘를 향해 눈을 부릅떴다.

“내, 내가 언제 그렇게까지 말했어? 거, 2호실 비약하는 게 좀 심하네? 아무렴 7호실이 진짜 불순한 놈들에게 감화되기라도 했겠어? 아까도 7호실이 앞장서서 위험한 놈들을 전부 치워 버린 거 생각 안 나?”

오히려 레이븐이 펄쩍 뛰면서 나를 두둔해 줬다. 어쩌면 평소에도 체스휘를 마뜩잖게 여기던 레이븐이라, 그냥 그를 비난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레이븐의 말에 다들 그건 그렇다면서 나를 향한 의심의 시선을 살짝 거두었다.

“7호실. 자기도 알겠지만, 밖에서는 어떤 아이가 최종 선발에서 선택받을지 거금을 걸고 내기까지 한다고. 선택받은 아이를 키운 양육자한테는 엄청난 부와 명예가 보장되고. 빈 세계의 주인이 되는 게 그만큼 영광스러운 일이니까 그런 거지. 내 후원자들도 나한테 얼마나 큰 기대를 걸고 있는데.”

“그럼 올리비아 씨는 세르쥬보다 부와 명예가 더 중요해요? 아, 어느 쪽이든 비난할 의도는 없어요. 이건 그냥 순전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그건….”

내 물음에 올리비아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나도 딱히 지금 올리비아를 더 들쑤실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분위기를 보고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

“크흠, 사실 저도 지금 당장 이런 말을 다 믿자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확인 정도는 해 볼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저는 다이안이 걱정돼서 좀 더 알아봐야겠어요.”

내 말에 양육자들이 떨떠름함과 찝찝함이 뒤섞인 얼굴로 곰곰이 고민했다. 그러다가 길버트가 가장 먼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건 7호실 양육자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불안정한 요소가 있다면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낫겠죠.”

다른 양육자들도 마지못한 듯이 고개를 동조했다.

“뭐…. 찜찜하긴 하니까 확인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좋긴 하겠지.”

“그런데 어떻게?”

일단 양육자들의 일차적인 수긍을 받아 낸 뒤, 나는 만족스럽게 다음 계획을 말했다.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있죠.”

“그게 뭔데?”

“일단 오늘 저택에 파견 나올 사람을 족쳐 봅시다.”

“뭐, 뭐라고?”

“붙잡고 털어 보면 뭐라도 나오겠죠.”

“잠깐, 7호실! 위, 위에서 파견 나온 사람을 건드린다고? 양육자 자격을 박탈당하고 저택에서 쫓겨나고 싶어?”

“누가 나를 쫓아내요? 난 누가 쫓아낸다고 해서 쫓겨나는 사람이 아니에요.”

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대답에 양육자들이 두 눈을 흔들었다.

그들은 나를 조용히 회까닥 돈 사람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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