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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97)화 (297/300)

체스휘는 다가오는 손을 보고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는데, 그가 피할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닫자 마지막에 나도 모르게 손에서 힘이 빠졌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처음보다 위력이 현저히 줄어든 내 주먹이 체스휘의 가슴팍에 꽂혀 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분명 때린 사람은 나인데 왠지 맞은 체스휘보다 일순간 삐끗한 내 주먹이 더 아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체스휘를 한 대 때리고도 분이 덜 풀려서 그를 주먹으로 몇 대 더 퍽퍽 쳤다.

“음, 아프니까 이제 그만 때려요.”

“아프긴 뭐가 아파, 오히려 내 주먹이 아프거든요?”

“그러니까. 린 씨 손 아프니까 그만 때리라고.”

차라리 상대가 다른 놈이면 있는 힘껏 때려눕혀 버릴 텐데,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한테는 차마 그렇게 주먹질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중간에 모로스들이 나를 공격하지 않은 게 체스휘의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조금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칫, 그러니까 내가 조금은 봐준다.

결국 나는 체스휘를 때리는 걸 그만두고 퉁명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내가 살아 있어서 아쉽겠네요?”

작정하고 퀘스트까지 떠오른 걸 보면, 체스휘는 정말 일이 틀어졌을 때 화풀이 삼아 다른 사람들을 깡그리 죽이고 나를 가둘 생각이었다는 뜻이었다. 그냥 감금도 아니고 영혼 적출 후 감금이라고 쓰여 있어서, 정확히 뭘 어쩔 생각이었는지도 몰라도…. 어쨌든 굉장히 살벌한 계획이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니 어쩌면 체스휘는 조금이라도 정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실망했을지도 몰랐다.

“무슨 그런 서운한 소리를 해요?”

하지만 일단 겉으로는 나한테 그런 모습을 보일 생각이 없는지, 체스휘가 내 말에 되려 자신이 유감스러운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무렴 내가 진짜 린 씨가 죽을 거라고 생각해서 혼자 두고 갔을까 봐.”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떼는 체스휘의 모습에 또 발끈해서 열이 올랐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살벌한 퀘스트를 띄워?”

“퀘스트? 무슨 퀘스트?”

“이번에 내가 죽으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죄다 몰살시키고 나한테 또 몹쓸 짓 하려고 했잖아요.”

내 말을 들은 체스휘의 눈에 한순간 예리한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아…. 시스템이 그런 것까지 알려 줘요? 신기하네. 미래를 예지하거나 사람 마음을 투시하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그런 걸 알지?”

그런데 저 눈빛은… 살짝 위험한 느낌인데? 왠지 실험대 위에 올려 둔 개구리를 당장이라도 해부할 것 같은 눈이잖아? 물론 이 경우에 체스휘가 해부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니라 시스템일 테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이미 퀘스트 내용으로 알고 있긴 했지만 내 말이 사실인 걸 더 이상 부정하지 않는군. 나는 정말로 영구적인 배드 엔딩 루트를 밟을 뻔했다는 생각에 일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린 씨, 꼴이 말이 아니네요.”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듯이, 체스휘의 시선이 아까부터 피가 흐르고 있는 내 옆구리와 다른 부상들을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내가 죽지 말라고 한 건, 그렇다고 해서 다쳐도 상관없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체스휘의 말을 듣고 나자, 나도 갑자기 상처 부위가 쑤시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다급한 상황에서의 긴장감과 흥분으로 아픈 것조차 잊고 있었는데, 불현듯 육체의 통각이 불시에 급습하는 느낌이었다.

체스휘가 손으로 붙잡고 있던 두 사람을 바닥에 떨어뜨린 뒤 내게 다가왔다.

나는 그제야 잠깐 잊고 있던 콘라드와 또 이름이 제… 뭐라고 했던 혁명 단체 동료의 존재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저 사람들 멀쩡한 건가? 하긴, 죽었으면 체스휘가 굳이 별관에서 데리고 나오지 않았을 텐데. 아무래도 지금은 그냥 의식을 잃은 것뿐인 듯했다.

내게 다가온 체스휘가 손을 뻗어 먼지가 묻은 걸 닦아 주듯이 말없이 내 얼굴을 문질렀다. 그런데 체스휘의 손이 닿는 순간 따끔한 느낌이 든 걸 보면, 얼굴에도 생채기 같은 게 나 있었던 모양이다.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리자 나한테 닿아 있던 손이 멈칫했다.

“아, 별로 안 아프….”

나는 혹시나 또 쓸데없이 체스휘를 자극할까 봐 서둘러 입을 열었으나, 내 시야에 비친 그의 굳은 얼굴에는 예상과 다른 감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걸 보고 말을 멈췄다.

이건… 미약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날 시험할 생각으로 혼자 두고 가서 내가 이렇게 다친 것에 약간의 가책 같은 걸 느끼는 듯한 눈빛인데?

“7호실!”

그때, 다른 양육자들도 방 안을 완전히 정리했는지 나를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울리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체스휘를 다시 똑바로 쳐다봤다.

“체스휘 씨.”

내 부름에 체스휘도 가만히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나는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어쨌든 봐요, 내가 이겼죠?”

“…….”

“이제 당신 생각처럼은 안 될 거라고 그랬잖아요.”

여러 악조건 속에서 나는 다치긴 했지만 죽지는 않았고, 다이안도 무사히 지켜 냈다. 예상 밖으로 양육자들이나 사라로사 같은 다른 사람들이 조력해 준 것도 도움이 되었다.

이 정도면 체스휘의 시험도 꽤 성공적으로 통과한 거 아닌가?

그런 생각에 은근한 뿌듯함과 의기양양함이 내 얼굴에 서렸는지, 체스휘가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그가 찌푸린 건지 웃는 건지 약간 헷갈리게 입매를 비틀었다.

“그러게. 운이 좋은 사람들이네.”

왠지 자기가 봐준다는 듯한 뉘앙스였지만, 그래도 체스휘의 입으로 직접 내 말에 동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제야 나도 완전히 몸에서 긴장이 풀렸다.

나는 안고 있던 다이안을 그에게 불쑥 내밀었다. 체스휘는 반사적으로 나한테서 다이안을 받아들었다.

체스휘가 뭐냐는 듯이 나를 쳐다봤지만 대답할 여력은 없었다.

옆구리에서 타는 듯한 통증이 엄습하면서 몸에서 급격히 힘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이안을 체스휘에게 맡긴 뒤 바로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린 씨?”

▶퀘스트: ■□※$∞의 시험

■□※$∞은 린 도체스터가 앞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당신을 공격하는 카드리고 가문의 고용인들과 모로스들에게서 살아남으세요!

-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 보상 수령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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