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89)화 (289/300)

체스휘는 나만 있으면 다른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했다. 물론 그가 나를 가장 중시하는 건 거짓말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말 나 하나만으로 충분할 리가 없었다.

나는 예전에 지하실의 문을 이용했을 때, 악령들만 있던 폐허 속의 저택에서 체스휘의 빈 육신을 발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체스휘는 사는 게 지겨워서 여러 번 스스로 죽었었다고 했다. 그가 산 사람이 아무도 없는 폐허를 굳이 골라 그 안에 들어갔던 이유는 확실히 외부와 단절해 스스로 고립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체스휘도 결국은 시간이 지나, 다시 사람들이 있는 레드포드 저택에 섞여들었다. 나는 그것이 반드시 나를 찾기 위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근거는 없지만, 긴 시간 동안 체스휘와 함께 했던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어떤 직감 같은 것이었다. 정말 그가 혼자 있어도 괜찮았다면, 폐허인 저택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녹아들지 않아도, 나를 찾아낼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테니까.

시간이 멈춘 레드포드 저택에서도 체스휘는 다이안과 미뉴엘의 이름을 가진 고양이들을 곁에 두고 있었다. 고용인들이 고양이들을 대하던 태도를 보면, 단순히 나를 속이기 위해 갑자기 데려온 게 아니라 꽤 오랫동안 저택에 두고 길러 오던 아이들인 듯했다. 나는 그것 또한 체스휘에게 남은 인간적인 감정을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내 이기적인 소망인데, 나는 체스휘가 나 말고 다른 소중한 걸 더 많이 만들기를 바랐다.

나중에 혹시 내가 또 이 린 도체스터의 몸으로 죽게 되면, 다음 몸을 찾아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를 버티게 할 것들이 주위에 많이 있었으면 했다.

“이제 보니까 당신은 스스로에게 자신이 좀 없는 것 같아요.”

나는 손을 들어 다이안의 귀를 막았다. 은근히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다이안이 움찔해서 나를 쳐다봤다. 다이안은 약간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나는 그의 귀를 막은 손을 떼지 않고 체스휘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만나도 내가 예외 없이 늘 당신을 좋아했었다고, 분명 그 입으로 말하지 않았던가?”

“…….”

“그 말은 내가 아무것도 모를 때조차, 그 긴 시간 동안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한 게 당신이라는 얘기인데.”

물론 다이안을 비롯해 지금까지 내가 만나 정을 줬던 아이들 모두가 애틋했지만, 지금 말한 사랑이란 감정과는 좀 달랐으니 일단은 별개로 치기로 했다.

“그러니까 간단히 버릴 거라는 생각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어.”

내 말에 체스휘의 눈이 아주 희미하게 미동했다. 물론 겉으로는 티가 잘 나지 않는 작은 변화였고, 체스휘는 여전히 서늘한 얼굴을 한 채 나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남자가 지금 내 말에 일순간 동요한 것을 알아차렸다.

“난 린 도체스터인 지금은 쉽게 죽지도 않을 거고, 이제는 당신도 찾았으니까. 그러니까 분명 지금까지와는 많은 게 달라질 거예요.”

여세를 몰아 꽉 닫힌 그의 마음을 계속 끈질기게 두드렸다.

“그러니까 같이 가요.”

그리고 체스휘를 똑바로 마주하며 다시 한번 말했다.

“물론 나도 시스템 때문에 걱정이 되니까, 아예 거기에 지금 눌러앉자는 건 아니고. 인사 차원에서 잠깐만 다녀오는 정도면… 괜찮지 않나?”

어차피 내가 갓 나타난 직후에는 모로스가 한두 마리 정도만 나올 테고, 거기에는 아이들을 지키는 양육자가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예전에 한밤중에 모로스가 대거 출몰했을 때도, 아이들과 양육자들만큼은 멀쩡하지 않았던가?

다만 내가 떠나기 전에 검은 베일을 쓴 여인이 고용인들의 영혼을 거의 다 먹어 치워서 멀쩡한 사람이 드물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상황이 어떨지는 직접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이건 조금 약은 생각인 것 같지만…. 정 상황이 어려워지면 체스휘가 어떻게든 해 주겠지 하는 생각도 마음 한편으로 하고 있었다.

“저기, 지금 둘이 무슨 얘기 중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때, 다이안이 나한테 귀를 막혀 소리를 전부 차단당한 상태로 눈만 도르륵 굴리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차피 돌아갈 거면 좀 빨리 가면 안 돼? 루스카가 저택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은데.”

예상치 못한 말에 나는 흠칫했다.

“루스카가 저택을 떠난다고요?”

다이안에게서 손을 떼고 물었다. 내 표정이 퍽 심각해 보였는지, 다이안이 살짝 우물쭈물하면서 설명했다.

“얼마 전에 1호실 양육자랑 3호실 양육자가 그렇게 됐잖아. 그래서 남은 애들도 결정을 해야 했거든. 비비는 남기로 했는데 루스카는 다른 양육자를 기다리지 않고 그냥 그만두겠다고 해서… 오늘 다른 사람이 데리러 올 거라고 했어.”

그의 말을 듣고 얼굴이 굳었다.

루스카가 결국 저택을 떠나기로 했다니…. 예전에 내가 루비 아이네로 처음 게임을 했을 때, 내 첫 육성 대상이던 소년이 저택을 떠났던 기억이 났다. 그 이후 그는 미카엘 카드리고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들에 의하면 저택을 떠난 후 그의 일상은 썩 평온하지 못한 게 분명했다.

물론 루스카는 부적합 판정을 받아 퇴출되는 게 아니라, 양육자가 죽은 뒤 다른 페어를 결성하기를 거부하고 떠나는 것이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서 그의 결말이 내가 아는 것과 다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저택에 보내질 아이들을 관리하는 곳에서는, 그들은 하나의 소모품으로만 보는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체스휘를 더 회유하지 않고, 고개를 번쩍 들어 그에게 한결 더 강경하게 말했다.

“갑시다. 체스휘, 미카엘 씨.”

“응? 미카엘?”

다이안이 낯선 이름을 듣고 의혹 어린 눈으로 나와 체스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도 편의상 평소에는 몸의 주인인 체스휘로 그를 명명했지만, 지금은 두 사람 모두를 설득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전부 입 밖에 꺼냈다.

아차, 그러고 보니 여기에서 나가기 전에 다이안에게 먼저 한 가지 사항을 확인하는 걸 잊었다.

“그런데 다이안. 한 가지 미리 말해 둘 게 있는데, 앞으로 내 옆에 있으면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나랑 같이 가고 싶어요?”

“뭐 그런 걸 묻고 그래?”

다이안은 마뜩잖은 듯이 체스휘를 보다가, 이내 찌푸린 눈으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당연히 같이 있어야지. 린도 내 양육자가 되면 위험할 걸 알면서도 나를 선택한 거잖아? 그러니까 마찬가지야. 나도 무슨 일이 있어도 린하고 같이 있을 거야.”

나는 예상했던 대로의 답변을 받고 왠지 마음이 찡해졌다.

“그렇구나. 고마워요.”

다이안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준 뒤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은 체스휘에게 내밀었다.

“자, 이쪽 손은 당신이 잡아요.”

“난 두 손 다 갖고 싶다고 말했을 텐데.”

체스휘는 역시 쉽지 않은 남자라는 걸 입증하듯이 내가 내민 손을 쳐다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읊조렸다. 그 야멸찬 태도에 발끈한 건 다이안이었다.

“뭐야, 2호실 양육자가 뭔데 린의 호의를 무시해? 그리고 나야말로 린의 한 손을 그쪽한테 양보하고 싶지 않거든? 린, 그냥 그쪽 손도 나랑 잡자!”

물론 나는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체스휘에게 다가갔다.

“음, 그러면 말이죠….”

그러고는 다이안의 손을 붙잡은 내 손을 체스휘의 손에 강제로 쥐여 줬다. 그런 뒤 나머지 한 손으로 체스휘의 다른 손을 움켜쥐었다.

“이렇게 해요.”

그렇게 다이안의 손과 내 손을 모두 체스휘에게 쥐여 주고 입술을 당겨 웃어 보였다.

“자, 이러면 내 두 손을 체스휘씨랑 미카엘 씨가 다 가진 게 되는 거예요. 그렇죠?”

내 앞에 있는 남자의 입에서 작은 실소가 샜다.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여 나를 쳐다봤다. 지금까지와는 살짝 다른 의미로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나를 마주했다.

체스휘가 미동 없이 서서 나를 시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반면, 내 손 안에 잡힌 다이안의 손은 불편하게 꼼지락거렸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2호실도 같이 간다는 거지? 별로긴 한데, 린이 괜찮다니까 할 수 없지…. 아무튼, 린. 그럼 빨리 이 화원에서 나가자!”

“그래요. 체스휘 씨, 미카엘 씨. 루스카가 저택을 나가기 전에 빨리 가요.”

“뭐 해? 이렇게 꾸물거리다가 늦으면 2호실 양육자가 책임질 거야? 린, 그냥 이 사람 두고 가면 안 돼?”

“안 돼요. 우린 앞으로 이렇게 셋이 한 세트인 거예요.”

“어? 이렇게 셋이? 지금만 잠깐 그런 게 아니라 앞으로도? 왜? 왜 꼭 그래야 하는데?”

“아, 미뉴엘까지 넣어서 넷이서 한 세트요. 제가 깜빡했네요.”

“그게 아니라, 난 린이랑 단둘이면 되는데? 왜 굳이 2호실까지 넣어야 해?”

“으음, 지금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게 그렇게 됐어요. 그리고 다이안, 원래 세상은 다 같이 살아가는 거예요.”

나는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스러워하는 다이안을 말로 토닥이면서 체스휘를 힐끔거렸다. 사실 일부러 들으란 듯이 말하기도 했는데, 체스휘에게 통할지는 알 수 없었다.

체스휘는 차갑게 얼어붙은 얼굴을 한 채 우리 두 사람의 시선을 받다가, 또 이 상황이 몹시 기가 막힌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뭐 이렇게 얼렁뚱땅….”

하지만 곧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우리를 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또 조금 갈등하는 듯했지만, 결국 내가 쥐여 준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체스휘가 한 차례 긴 숨을 토해 냈다. 눈도 한번 천천히 길게 감았다가 떴다.

그런 뒤 다시 나를 향한 그의 눈빛은 마음속의 고뇌를 모두 걷어 낸 듯이 한결 명료해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