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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88)화 (288/300)

“지, 진짜 린이야? 아니면 내가 헛걸 보는 건가?”

“나, 나 진짜 맞는데….”

너야말로 내가 아는 그 다이안이니?

나는 살짝 꼬질꼬질한 몰골로 나를 멍하니 쳐다보는 다이안에게 긴가민가한 상태로 다가갔다. 그제야 내가 환영이 아니라 진짜라는 걸 확신했는지, 다이안이 헉 숨을 들이켰다.

“린…!”

그는 갑자기 눈물을 팡 터트리면서 쏜살같이 달려와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으아앙! 왜 이제 나타난 거야으어아앙…!”

어, 어라? 이 반응을 보면 진짜 내가 돌보던 그 다이안이 맞는 것 같은데? 체스휘가 조금 전에 나한테 한, 내가 찾는 게 이곳에 있다는 말을 생각해 봐도 그랬다.

“넌 뭐야! 왜 마음대로 린을 데려간 거야! 이 나쁜 놈! 못된 놈!”

내가 당황한 사이에 다이안은 울망거리는 눈을 내 옆에 있던 체스휘에게 돌렸다. 그는 작은 주먹을 말아쥐고 체스휘를 마구 때리기까지 했다.

체스휘는 눈썹의 높이를 비대칭으로 만들며 그런 다이안을 가만히 쳐다보기만 했다. 다이안이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 때려 봤자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한 반응이었는데, 다이안은 거기에 더 화가 난 것처럼 더욱 열성적으로 체스휘에게 주먹을 날려댔다.

음, 으음….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이전에 있던 레드포드 저택에서 본, 다이안과 미뉴엘의 이름을 가진 고양이들의 대접전을 떠올렸다. 왠지 지금의 다이안을 보니 그들의 허접하던 싸움이 저절로 연상되었다. 체스휘를 야심 차게 가격하는 주먹질이 내 눈에도 너무 솜방망이처럼 보여서 그런가?

아무튼, 계속 때려 봤자 다이안의 손만 아플 것 같았다. 게다가 조금 전부터 말이 없는 체스휘가 신경 쓰였다. 물론 그는 다이안에게 해코지하지 않고 있었고, 지금은 그럴 마음도 없는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눈이, 다이안을 내려다보는 눈이 너무 싸늘하잖아…!

“다, 다이안?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왜 여기에 있어요? 응?”

애기야! 위험하니까 그쪽은 그만 자극하자.

왠지 언제 터질지 모를 폭탄을 눈앞에 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다이안을 체스휘에게서 다급히 떼어 냈다. 다행히 다이안은 생각보다 순순히 주먹질을 멈췄다. 사실은 벌써 지친 듯이, 체스휘를 때리는 다이안의 손길은 확연히 느려지고 힘도 약해진 상태였다. 그래서 씩씩거리며 손을 멈추면서도 그는 분한 얼굴이었다.

“제이가… 2호실 양육자가 린을 데리고 악마의 화원으로 가는 걸 봤다고 해서.”

다이안이 어쩌다가 이곳에 그 혼자 뚝 떨어지게 되었는지 나한테 설명했다.

“그래서 나도 린을 찾으려고 악마의 화원에 들어와 봤더니, 안에 문이 있는 게 아니겠어? 그래서 혹시 하는 마음에 문 안으로 들어가 봤지.”

나도 그제야 아까 방에서 체스휘의 반응이 묘했던 이유가 뭔지 깨달았다. 어쩐지 좀 이상하더라니, 다이안이 문을 넘은 걸 느껴서 그런 거였구나? 아무래도 체스휘는 이 18세계의 주인 같은 존재가 되어서 그런 걸 느낌으로 알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상해. 문을 몇 번이나 통과해도 계속 이 화원만 나와. 그래서 혹시 안개로 가려진 다른 공간에 린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찾다가, 잠깐… 으음.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그때 린이 온 거야.”

다이안은 귀엽게도 자신이 괴물 꽃들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 덜덜 떨고 있던 걸, 앞으로의 일을 고민 중이었던 거라고 포장해서 말했다.

아무래도 다이안은 이 레드포드 저택의 시공간이 무수히 많이 분열된 걸 몰라서, 아무리 문을 넘고 또 넘어도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온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나는 다이안의 말을 들을수록 마음이 촉촉해지다가, 이내 감동했다.

‘그렇구나! 나를 찾으러 무서움도 꾹 참고 여기까지 오다니…!’

이 겁도 많은 부스러기가 용기를 내서 악마의 화원에 들어온 것부터가 감동적이었다. 물론 이 안에 있는 괴물 꽃들은 어린아이들에게는 접촉하지 않는 것 같았고, 그래서 지금도 다이안을 둘러싸고 그냥 지켜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러웠을 만했다. 그런데 나를 찾아서 그 모든 역경과 시련을 이겨 내고 악마의 화원을 돌아다니기까지 했다는 게 아닌가?

“세상에, 날 위해서 그런 고생을 했단 말이에요?”

“당연한 일이지. 린을 찾는 게 무슨 고생이야?”

“다이안…!”

“린…!”

우리는 눈물을 삼키며 서로를 끌어안고 잠깐 부둥부둥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록 다이안과의 추억은 모두 착각이었고 사실 나는 이번 회차에서 그를 처음 만난 거였지만, 그래도 함께하면서 그와 쌓아 간 시간과 감정적인 교류는 진짜였다.

오해로 시작된 관계라 해도 그 안에 진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도 나는 이 아이를 몹시 좋아했고, 또 아꼈다. 내가 이 아이의 양육자로 있었던 건 짧은 시간이지만, 서로 매 순간을 진심 어린 마음으로 대했으니 정이 들기에는 충분했다.

“하.”

그러다가 옆에서 들려온 작은 실소에 나는 문득 몸을 움찔거렸다. 슬쩍 눈을 굴려 잠깐 잊고 있던 체스휘의 눈치를 살폈다.

역시 그는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부둥켜안고 있는 다이안과 나를 보는 눈은 싸늘하게 식은 채 설핏 찌푸려져 있기까지 했다. 나를 여기에 데려온 건 본인이지만, 정작 이런 꼴을 두 눈으로 보게 되자 심기가 불편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우리를 떼어 놓지는 않고, 그냥 팔짱을 낀 채 어디까지 하는지 보자는 식으로 다이안과 나를 쳐다보고 있기만 했다.

나는 그런 체스휘에게도 고마움과 감동을 느꼈다.

아까 방에서 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갈등하는 듯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냥 무시하고 싶었는데, 그럼 이하린이 날 용서하지 않을 것 같아서.”

체스휘가 악마의 화원에 감춰진 문을 넘은 다이안을 그냥 무시하고 내버려 두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내가 모르는 새 다이안이 다른 시공간에서 미아가 될 뻔한 게 아닌가?

체스휘라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척 나를 속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결국 나를 이곳에 데려오는 걸 선택했다.

그 사실이 내 마음을 무척 기쁘고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린, 옷에 묻은 이 피는 뭐야? 설마 다쳤어?”

그런데 내 품에 안겨 겨우 안정을 되찾은 듯하던 다이안이 뒤늦게 내 옷에 묻은 피를 발견하고 두 눈을 부릅떴다.

“아니요, 안 다쳤어요. 지금은 멀쩡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다이안은 내가 몇 번이나 안심시켜 주고 나서야 마음을 놓았다.

“우리 그만 저택으로 돌아가자, 린.”

그리고 그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다이안은 단지 이 안개를 헤치고 악마의 화원 밖으로 빠져나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다이안에게 시선을 떼고 체스휘를 다시 쳐다봤다. 체스휘는 여전히 가만히 서서 온도가 낮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오가는 묘한 기류를 눈치챈 듯이 다이안이 눈을 치켜떴다.

“저 사람이 못 가게 붙잡는 거야? 너, 린한테서 떨어져!”

다이안이 다시 체스휘를 향해 냥냥 펀치라도 날릴 것처럼 으르릉거렸다. 실제로 체스휘 쪽으로 다시 한번 겁 없이 가까이 다가가기까지 했다. 나는 진땀이 나는 기분을 느끼며 서둘러 그런 그를 붙잡았다.

“다이안! 아니야, 아니에요.”

왠지 체스휘에 대한 다이안의 오해가 아주 깊었는데… 생각해 보면 오해는 아닌가? 애초에 내가 체스휘한테 붙잡혀 가서 반 감금당한 상태였던 건 맞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나도 체스휘를 탓하는 마음이 아니었고, 다이안이 체스휘를 비난하는 건 더더욱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체스휘에게 다가가서 손을 내밀었다.

“같이 가요.”

체스휘가 굳이 나를 다이안이 있는 이곳에 직접 데려오기까지 했으니, 지금이 다시 한번 그를 회유할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사실은 체스휘 씨도 미뉴엘이 걱정되지 않아요?”

“별로.”

칼같이 떨어진 체스휘의 무감한 답변에 다이안이 머리 위로 돌덩이가 쾅 떨어진 것처럼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체스휘를 보는 그의 눈빛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묻는 듯했다.

그걸 보며 체스휘가 비스듬한 미소를 지었다.

“미뉴엘도 지금 딱히 내 걱정을 하거나 나를 찾고 있지는 않을 텐데요.”

이번에도 다이안이 움찔했다. 체스휘를 보는 그의 눈은 방금과 다른 의미로 흔들리고 있었다.

아, 으음. 그것도 맞는 말인가 보군….

다이안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으로 다 보여서 나도 잠깐 할 말을 잃고 먼 곳을 쳐다봤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짧게 헛기침을 내뱉으며 체스휘를 다시 설득했다.

“거짓말. 예전에 체스휘 씨는 양육자 없이 혼자 있던 다이안까지 걱정하고 마음 써 줬잖아요. 지금도 사실은 다이안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어서 나를 여기에 데려온 거 아니에요? 그런데 정말 지금 체스휘 씨를 기다리고 있을 미뉴엘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요?”

내 말에 눈에 띄는 반응을 보인 건 이번에도 체스휘가 아니라 다이안 쪽이었다.

그는 몸을 움찔 떨며 잠깐 나를 말 없이 빤히 쳐다보다가 체스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 다이안의 표정은 체스휘를 잔뜩 경계하며 노려보고 있던 조금 전까지와 달리 어딘가 묘했다. 왠지 예전에 자신에게 잘해 줬던 체스휘를 떠올리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체스휘도 약간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말 없이 응시했다.

체스휘는 가끔 모든 인간성을 상실한 것처럼 무자비하고 이질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지만, 나는 그에게 아직 예전의 마음이 남아 있다고 믿었다.

그냥 단순히 내 바람에서 비롯된 희망 사항을 말하는 게 아니라,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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