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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79)화 (279/300)

당장 고객 센터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지금은 시스템이 무반응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새로운 소년은 ■■■이 썼던 방과 물건을 사용하고, 마치 처음부터 이곳의 작은 주인이었던 것처럼 저택에 순식간에 녹아들었다. 다른 고용인들도 원래 그를 모시던 사람들인 양,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어느 한 사람도 이전에 있던 소년을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 아예 저택에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오직 이하린만 내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게임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며칠 동안 이하린은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을 느꼈다.

“이건 누구 거야? 서랍 안쪽에서 찾았는데.”

그러던 어느 날, 저택에 완전히 자리를 잡은 어린 소년이 방에서 무언가를 찾아와 고용인들에게 물었다. 이하린은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부릅떴다.

소년의 손에 들린 것은 눈에 익은 만년필이었다. 이하린은 누가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서 그것을 확 가로채듯이 빼내 왔다. 늘 조용히 있던 메이드가 갑자기 눈에 띄는 행동을 하자, 소년은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원내대로라면 이하린은 이전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아 새로 온 소년의 전담 메이드로 일해야 했다. 하지만 계약 만료가 얼마 남지 않은 탓에 그냥 잡무를 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물론 이하린은 낯선 소년과 붙어 있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거기에 불만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어쨌든, 그래서 이 소년과 이하린은 며칠 동안 그다지 얼굴을 자주 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메이드가 감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다가왔으니, 소년이 놀란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하린은 한순간 감추지 못한 감정을 갈무리하며 최대한 의연한 태도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이전에 있던 도련님 거예요. 제가 보관했다가 나중에 돌려드릴게요.”

그 순간 실내의 공기가 조용해졌다. 예전에 저택에 있던 소년이 누군가의 입에서 언급된 건 지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전에 있던 도련님?”

어린 소년은 이하린의 말을 듣고 또 놀란 듯하다가, 이내 알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나서 잇따라 소년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에 이하린은 한순간 울컥했다.

“아아, 그 부적격자 말이야?”

어린 소년은 조금 의외라는 듯이 흥미로운 눈으로 이하린을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었지. 어떤 메이드가 나보다 먼저 저택에 다녀간 녀석에 대해 소식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이야. 그게 너였구나.”

“…….”

“저택을 떠날 때 두고 간 물건을 나중에 대신 전해 주겠다는 것도 그렇고…. 둘이 친했나 봐?”

보아하니, 이 소년은 자신보다 먼저 레드포드 저택에 들어왔다가 떠난 소년이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다른 고용인들은 이 상황이 묘하게 불편한 듯했지만,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고 방관하는 분위기였다.

“흐음, 특이하네. 어차피 다 소용없을 텐데….”

그러다가 소년이 혼잣말을 하듯이 작게 중얼거린 소리를 이하린은 놓치지 않았다. 어쩌면 착각일 수도 있었지만, 소년의 말에서 풍기는 느낌이 뭔가 미묘했다. 꼭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하린은 이윽고 이 상황에 흥미를 잃은 듯이 먼저 뒤돌아 복도를 걸어가는 소년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고는 눈앞에서 막 닫히려 하는 방문을 재빨리 비집고 들어갔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 소용이 없어요?”

소년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방에 밀고 들어온 이하린에게 아까보다 더욱 크게 놀란 듯했다. 그는 당황한 듯이 입술을 달싹였다. 사실은 일개 메이드가 예의 없는 짓거리를 한 셈이니 당장 쫓아내도 무방했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지 소년은 제법 순진하게 반응했다. 그는 이하린의 물음에 주춤거리면서도 일단 대답은 해 주었다.

“아니…. 그야, 이미 저택을 떠났는데 다시 돌아올 리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물건을 보관하고 있어 봤자 소용이 없다는 거지.”

“다른 곳에 자리를 잡으면 소식을 알아봐서 물건을 전달해 줄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저택을 떠나도 위에서 생활이 가능하게 지원해 주겠다고 했다던데요? 그러니까 이 저택의 관련자 중에는 소식을 아는 사람도 있을 거 아니에요.”

이하린은 아직 어린 소년에게 따져 묻듯이 말하지 않으려고 감정을 추슬렀다. 물론 눈앞에 있는 소년에게 이렇게 묻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정보를 알고 있을 저택의 윗선에게 알아보는 게 옳은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하린이 떠난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메이드장과 총괄 집사는 입을 꾹 다물었다. 게다가 방금 이 어린 소년이 무심코 꺼낸 말이 왠지 모르게 이하린의 육감을 건드리기도 했다.

과연 이하린의 느낌이 맞은 것일까? 그녀의 말에 어린 소년이 돌연 헛소리를 들은 것처럼 피식 웃었다.

“쓸모가 없어서 탈락한 부적격자한테 이후의 생활을 지원해 준다니, 그 말을 누가 믿겠어? 아마 나보다 먼저 저택에 왔다가 떠났다는 그 이전 도련님이라는 녀석도 안 믿었을걸.”

그 순간 이하린의 얼굴이 굳었다.

“지원을 안 해 준다고요…? 그럴 리가 없어. 그럼 ■■■은 지금 혼자 어디에 있다는 건데?”

“뭐, 기껏해야 우리가 예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갔겠지. 물론 나도 자세한 건 몰라. 난 부적격자가 되지 않을 테니까 굳이 그런 일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어서 따로 더 알아보려고 하진 않았거든.”

그래도 소년이 예전에 있던 시설 같은 곳으로 돌아갔다면 일단은 안심할 수 있었다. 이하린은 마음을 한결 내려놓고, 조금 전보다 차분해진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예전에 있던 곳은 어딘데요? 여기에서 멀어요?”

그러나 어린 소년은 그저 이하린의 얼굴만 빤히 쳐다볼 뿐, 이번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외부인에게는 말 못 해.”

의외로 어린 소년의 태도는 단호했다. 이는 이하린에게도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그녀의 육성 대상이던 소년도 그의 내력과 저택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 자물쇠라도 잠근 것처럼 침묵했기 때문이다. 제법 마음을 열고 가까워진 지난 몇 년 동안에도 그런 소년의 태도만큼은 변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하린은 지금 눈앞에 있는 어린 소년도 그녀의 질문에 더는 대답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꼭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절대로 그들의 과거와 이 저택에 관련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된다고 단단히 단속당하기라도 한 것 같았다.

이하린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소년의 방을 떠나기 위해 문고리를 잡았다.

“알겠어요. 밖에서 먼저 연락이 올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리면 되겠지.”

“부적격자한테 연락이 올 리가 없다니까 그러네.”

“자꾸 부적격자라고 하지 마.”

소년은 이하린의 싸늘한 말에 입을 다물었다. 이하린은 익숙한 방 안에 낯선 소년을 혼자 두고 자리를 떠났다.

그 후 시간이 더 흘렀지만, 이하린은 저택에 새로 온 소년에게 좀처럼 적응할 수 없었다.

물론 이 소년이 잘못한 일은 없다는 사실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 역시 어른들의 사정에 이용된 아이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래 있던 소년의 자리를 차지하며 대신 저택에 들어온 다른 아이를 좋아한다는 건, 적어도 이하린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예전에 있던 부적격자와 그렇게 많이 친했어?”

그러나 이 어린 소년은 오히려 그런 이하린에게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거봐, 아직 연락 안 왔지? 기다려 봤자 소용없을 거라니까. 설령 네 말처럼 어디에선가 잘 지내고 있다고 해도, 너 같은 건 벌써 다 잊었을걸?”

그는 이하린에게 한 번씩 찾아와서, 꼭 일부러 그녀를 자극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듣기 싫은 소리를 툭툭 내던졌다. 이하린은 그런 소년에게 대부분 무관심하게 반응했다. 그러자 소년도 언젠가부터는 서서히 이하린에게 흥미를 잃어 가는 듯했다.

그사이 이하린은 고용인 계약 기간을 연장해, 레드포드 저택에 조금 더 머물기로 결정했다. 저택을 떠난 소년의 소식을 알기 위해서는 외부로 나가는 것보다 이곳에 그대로 있는 편이 좀 더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험해 본 결과, 어차피 이하린은 레드포드 저택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예전부터 묘하게 레드포드 저택의 문을 나선다는 생각만 해도 거부감이 밀려들었지만, 그래도 마음을 굳게 먹고 시도 정도는 해 봤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하린은 그때마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다시 시도해 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설정상, 게임의 배경인 레드포드 저택의 바깥 세계는 구현되어 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이하린은 자신이 이 게임 속의 저택에 꼼짝없이 갇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도 언젠가 시스템 오류가 고쳐지면 게임 밖으로 나갈 수 있을 테니, 조금만 참자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오랫동안 지속되는 시스템 오류에 불안감은 점점 커졌지만, 틈틈이 운영진과의 연결을 시도하며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그 후로 2년 동안이나 게임 속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는 이하린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하, 웃기네. 결국은 나도 이런 꼴로 밖으로 쫓겨나게 되다니.”

그 무렵, 이하린의 육성 대상 다음으로 레드포드 저택에 들어왔던 소년 역시 부적격 판정을 받아 떠날 날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이 상황이 많이 허탈하고 어이가 없는 듯했다.

소년은 일부러 저택을 떠나기 전에 이하린을 불렀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서로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어 그동안 그녀를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된 김에 한 가지 알려 줄게. 어차피 나도 저택을 떠나게 되어서, 더는 지금까지의 규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니까.”

그리고 그때 소년이 이하린에게 해 준 말이 남은 그녀의 인생을 좌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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