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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70)화 (270/300)

“왜 또 그렇게 쳐다보지, 난 사실 린 씨가 그렇게 화난 얼굴로 볼 때 좀 설레던데.”

몸을 크게 뒤틀어 체스휘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그는 여전히 별로 힘을 들이지도 않은 편안한 모습으로 나를 붙들고 있었다. 꼭 포악해진 짐승을 어르듯이 쉬이, 하고 낮은 소리까지 내는 모습이 웃기지도 않았다. 거기에 더 자극을 받아서 이불에 둘둘 말린 상태로 발버둥을 쳤다.

그런 노력에도 내 몸을 감싼 이불 한 겹 벗겨 내지 못했으나, 그 대신 이불 밖으로 반쯤 나온 머리는 산발이 되었다. 체스휘가 열심히 헛수고한 나를 위로하듯이 부드러운 손길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낮에 느닷없이 선물이랍시고 해사한 얼굴로 꽃을 가져왔던 것도 그렇고, 지금도 이렇게 체스휘가 그와 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서늘한 목소리로 체스휘에게 경고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이거 놔요.”

“미안. 싫어요.”

진짜, 박치기라도 해야 하나?

“아까부터 자꾸…. 나 지금 당신이랑 이럴 기분 아니야.”

“린 씨가 이럴 기분이 아닌 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귓가에 흘러드는 목소리는 여전히 상냥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제법 냉정하다고 할 만했다.

“린 씨가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든 그렇지 못하든, 이제는 상관없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다시금 떠오르는 그때의 대화에 일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

“그러니까 난 내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거고, 린 씨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내가 고려할 사항이 아니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체스휘가 나한테 하는 행동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해서 화가 났었는데, 정작 이렇게 매정한 말을 듣자 그 또한 마음이 좋지 못했다. 차가운 체스휘의 눈을 가까이에서 마주하자 왠지 심장이 이상하게 좀 쑤시면서, 꼭 그 안에 모난 돌덩이가 굴러와 박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보다, 린 씨가 악마의 화원을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자주 놀러 가지는 마요. 기껏 오래 쓸 수 있는 몸으로 골랐는데, 자꾸 이런 식으로 망가뜨리면 아깝잖아.”

체스휘의 말투는 여상하여 내가 악마의 화원에 혼자 들어갔던 이유를 아는지 모르는지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아니면 날 부르든지. 린 씨가 원하면 얼마든지 같이 들어가 줄 수 있으니까.”

체스휘는 평소처럼 다정하게 덧붙였지만, 나는 굳은 얼굴로 그를 말 없이 응시하기만 했다.

“일단 자고, 할 말이 있으면 내일 다시 해요. 방금까지도 자긴 했지만, 그래도 화원에 들어갔다가 나왔으니까 피곤할 텐데.”

체스휘는 정말 나를 재울 생각인지, 이불에 둘둘 말린 나를 끌어안고 조금 전처럼 다시 몸을 토닥였다. 내 마음은 신경 쓰지 않고 뭐든 자기 멋대로 하겠다고 싸늘히 말한 것과 달리, 의외로 나한테 뭔가 나쁜 짓을 하지는 않았다.

체스휘의 품은 더없이 안락해서, 이런 상황에서조차 나한테 평온한 느낌을 주었다. 나는 그게 제법 분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상하게도 한동안 그리웠던 것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만난 듯한 느낌이 조금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악마의 화원에서 체스휘와 관련된 환영들을 여러 개 봐서 그런가? 나는 점점 체스휘에게 들은 말에 부정할 의욕을 잃어 가고 있었다. 처음에 예상한 것보다 빠른 속도였다.

내가 악마의 화원 안에서 본 장면들이 체스휘가 심어 둔 가짜가 아니라면, 그건 정말 내가 지금까지 잊고 있던 과거의 기억이 맞다는 의미였다. 내가 이 게임 속에 들어와서 린 도체스터가 아닌 다른 사람들로 살았던 적이 있다는 것도, 또 체스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전부 사실인 셈이 되었다.

이번에 악마의 화원에 들어갔다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체스휘의 말을 어떻게든 부정해 보려는 의심 어린 마음이 컸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은 그런 마음이 반쯤은 꺾인 상태였다.

이제야 체스휘의 말이 조금씩 실감이 나기 시작하면서, 점점 초조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내가 헛소리로 치부했던 체스휘의 말이 정말 모두 사실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혼란스럽고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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