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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52)화 (252/300)

“엠버 그린로스? 너…!”

마리네즈는 손목에 붉은 리본을 맨 메이드들과 함께 방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대뜸 쳐들어온 나를 보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난 일주일간 실의에 빠진 연기를 하느라 바빴다고 하더니, 정말 마리네즈의 얼굴은 전에 비해 약간 창백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번뜩이는 걸 보면, 역시 겉모습처럼 기운이 없거나 슬픔에 잠긴 상태는 아닌 게 분명했다.

“마침 제 발로 날 찾아왔군. 그렇지 않아도 저택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궁금하던 참이었는데.”

나는 빠른 걸음으로 방을 가로질러 마리네즈를 향해 다가갔다.

“난 이 메이드와 할 말이 있으니 너희들은 먼저 나가 보….”

철썩!

다음 순간, 방에 있던 메이드들에게 지시를 내리던 마리네즈의 얼굴이 옆으로 홱 돌아갔다. 연약한 엠버의 팔뚝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상대에게 솜뭉치보다 못한 타격을 입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상당히 큰 파열음이 방 안에 울린 것과 동시에 내 손바닥도 찢어질 것처럼 얼얼해졌다.

옆에 있던 마리네즈의 메이드들이 헉, 하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들은 경악한 얼굴로 정신 나간 사람 보듯이 나를 쳐다봤다. 얼이 빠진 건 마리네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녀는 나한테 뺨을 맞아 얼굴이 옆으로 돌아간 상태로 넋이 빠진 것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네가 사람이면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야지.”

나는 이를 악물고 마리네즈를 향해 속에서 끓어오르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루시오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데, 마리네즈는 벌써 그를 버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루시오가 저택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한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엠버의 말이었지만, 마리네즈 역시 루시오를 꼬드긴 건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마리네즈만큼은 오히려 엠버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루시오를 지켜내려고 노력해야 마땅했다. 그녀는 루시오의 단 한 명뿐인 양육자였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루시오가 아닌 다른 아이의 양육자가 되겠다고? 루시오에 대한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이렇게 바로 그를 버리겠다고?

“이, 이런 미친 것을 봤나…! 마리네즈 님께 이게 무슨 정신 나간 짓이야?!”

한발 늦게 정신을 차린 메이드들이 나를 향해 벌떼처럼 소리쳤다. 하지만 이런 간 큰 짓을 저지른 데 이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마리네즈를 노려보는 내 모습에 그들은 분노보다 망연함을 느끼는 눈치였다. 마리네즈의 충성스러운 메이드들은 제자리에서 안절부절못할 뿐, 강제로 나를 밖으로 끌어내거나 마리네즈 대신 응징을 가하지는 못했다.

“감히… 감히 네가 나를 쳤어?”

그리고 이내,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마리네즈의 고개가 천천히 돌려졌다. 붉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눈은 당장이라도 나를 집어삼켜 버릴 것처럼 아주 거칠게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리네즈와 내 거리는 아주 가까웠기 때문에, 당연히 지척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마리네즈가 마침내 입술을 천천히 벌려, 씹어뱉듯이 한 글자 한 글자를 내게 토해 냈다.

“너, 절대 가만 안 둬…!”

나는 감정을 앞세워 마리네즈의 방에 대뜸 쳐들어와 그녀의 뺨을 갈겨 놓고, 이제야 조금 이성을 되찾았다. 그러고 나자 상황이 나한테 불리하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했느냐고?

“이 미친 X…! 거기 서!”

곧바로 뒤돌아서 줄행랑을 쳤다.

서로가 서로의 비밀을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니, 그 사실을 마리네즈에게 인식시키면 내 안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방금 본 마리네즈의 눈은 완전히 미쳐서 맛이 간 상태였단 말이다! 정신 나간 짐승과 대화가 통할 리 있겠는가?

나는 당장 나를 찢어 죽이고 싶어서 혈안이 된 마리네즈를 피해 도망쳤다.

그렇게 저택 바깥의 추격자들에게서 벗어나기 무섭게, 이번에는 내부의 적으로부터 목숨줄을 지키기 위한 도주극이 펼쳐졌다.

마리네즈는 나한테 귀싸대기를 맞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중요한 거사를 앞두고 루시오를 잃어 마음의 상처를 받은 시늉을 더 열심히 해야 할 텐데, 그녀는 그 사실도 잊은 것처럼 눈에 불을 켜고 나를 찾아 저택을 뒤졌다.

나는 마리네즈와 그녀의 하수인들을 피해 어느 방으로 숨어들었다. 뛰어 봤자 벼룩이라고, 어차피 개복치인 엠버의 몸으로 경솔한 짓을 했나 싶은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리네즈의 귀싸대기를 한 대라도 갈긴 건 속이 조금 후련했다. 오죽하면 마리네즈가 황당함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을 때 두어 대 더 때려 주고 도망 나올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들 정도였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방의 한구석에 숨은 채 다리를 모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 위에 얼굴을 기댔다.

화가 났다가 속상했다가, 또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가, 속에서 오만가지 감정이 뒤섞여 들썩거렸다.

끼익.

그런데 어느 순간, 내가 숨은 곳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리네즈라면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들어왔을 텐데, 들려오는 소리가 작았다. 그래서 지금 이곳에 찾아온 게 다른 사람인 걸 알았다. 그래도 혹시 마리네즈의 명령을 받고 나를 잡으러 온 사람일 수도 있어서 그냥 소리를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엠버 씨, 혹시 여기 있어요?”

하지만 뒤이어 내 귀에 흘러든 나지막한 목소리는 내가 지금 이 저택에서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아도 될 극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의 것이었다. 나는 체스휘의 목소리를 듣고 숨어 있던 곳에서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체스휘는 나를 발견하고 잠깐 뒤쪽의 복도를 확인하더니, 이내 문을 잘 닫고 안으로 들어왔다.

“엠버 씨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한참 돌아다녔어요. 그래도 다행히 내가 먼저 찾아냈네요.”

그는 발소리를 죽이고 나한테 다가와, 내 옆에 나처럼 몸을 숙이고 앉았다. 나는 엉겁결에 옆으로 몸을 조금 움직여 그에게 자리를 내줬다. 내가 숨어 있던 공간은 협소해서, 어쩔 수 없이 체스휘와 팔과 어깨가 맞닿았다.

“날 왜 찾았는데요?”

내 물음에 체스휘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요. 엠버 씨가… 마리네즈를 때렸다고. 그래서 그쪽에서 엠버 씨를 쫓고 있다던데.”

체스휘는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리는 눈치였다. 광분해서 나를 찾아 헤매는 마리네즈나 그녀의 하수인들을 혹시라도 직접 봤다면 믿지 않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그 사람이 맞을 짓을 했어요.”

나는 인상을 쓰면서 작게 꿍얼거렸다. 체스휘는 내 말이 의외였던 듯이, 나를 잠깐 말없이 쳐다봤다. 나는 또 찌푸린 얼굴로 잠깐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손을 들어 내 얼굴도 찰싹찰싹 몇 번 내려쳤다. 체스휘가 깜짝 놀라서 내 손을 붙잡았다.

“갑자기 왜 그래요?”

“나도 맞을 짓을 했어요.”

아까는 충동적으로 행동했지만, 사실 마리네즈를 때릴 자격은 나한테 없었다. 내가 마리네즈에게 손을 든 건 화풀이나 다름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루시오가 이렇게 된 원인 중 일부가 마리네즈에게 있는 건 맞았지만, 멀쩡히 두 눈을 뜨고 있었으면서 그를 총에 맞게 내버려 둔 건 내 실책이었다. 그래도 마리네즈를 때린 걸 후회하거나 반성하는 건 결코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 정도는 그녀가 나를 위협하고 죽이려 했던 것에 비하면 보복이라고 할 수조차 없을 만큼의 귀여운 수준이었다.

“그래도… 왜 스스로를 아프게 하고 그래요? 이것 봐. 얼굴이 빨개졌잖아요.”

하지만 이런 내 속내를 모르는 체스휘는 느닷없이 자학하기 시작한 내가 이해되지 않는 눈치였다.

“엠버 씨가 무슨 맞을 짓을 했다고…. 마리네즈를 때린 것 때문에 그래요? 지금까지 당한 게 있으니, 사람인 이상 언젠가 폭발하는 게 당연하죠. 사실 여태껏 참은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

그는 눈매를 찌푸리며 내 얼굴을 보다가, 뒤이어 다소 충동적인 움직임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뺨이 후끈거려서 그런지, 살며시 닿아 온 체스휘의 손이 약간 시원하게 느껴졌다. 나는 안타까운 듯이 내 뺨을 어루만지는 체스휘를 말없이 쳐다봤다.

체스휘는 무심결에 내 뺨에 손을 댔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후에야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은 듯했다. 내 얼굴에 닿은 그의 손이 일순간 멈칫했다. 다음 순간, 체스휘가 내게서 천천히 손을 거두어들였다.

“손바닥도 부었네요.”

하지만 그의 손은 나한테서 완전히 떨어지는 게 아니라, 다음 자리를 찾아 옮겨졌을 뿐이었다. 나는 손바닥의 부은 곳을 살살 문지르는 손가락의 감촉이 간지럽고 쓰라려서 손을 살짝 움츠렸다.

사실 체스휘에게 보여 주기에는 얼굴보다는 손이 더 민망했다. 지금 내 얼굴을 내려쳐서 이렇게 손이 부은 거면 양쪽이 모두 동일한 상태여야 하는데, 슬쩍 확인해 보니 체스휘에게 붙잡힌 한쪽 손만 유별나게 빨개져 있었다. 그러니 이건 아까 마리네즈의 낯가죽을 있는 힘껏 갈겨서 부은 게 분명했다.

체스휘가 내 손을 계속 간지러울 정도로 살살 쓸어내리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까도 몸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좀 괜찮아요?”

“네, 아까보다는….”

그 후 한동안 그와 나 사이에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사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체스휘가 이렇게 내 손을 만지작거리게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머리에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상태였고, 체스휘도 다른 생각에 잠겨 무의식중에 내 손을 어루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체스휘가 나를 옆에 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잠시 후에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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