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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51)화 (251/300)

“어, 아니, 이건 별것 아니에요. 그냥….”

나는 내가 듣기에도 상태가 별로 좋지 않게 들리는 목소리로 몇 마디를 내뱉었다. 그런데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갑자기 며칠 동안 퍽 익숙해진 감각이 코 밑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손으로 코를 막았다. 하지만 붉은 액체는 멈추지 않고 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굳은 얼굴로 내 말을 듣던 체스휘가 놀란 듯이 두 눈을 살짝 크게 뜨며 손수건을 꺼냈다.

“잠깐, 고개를 뒤로 젖히면 안 돼요.”

피는 금방 체스휘의 손에 들린 손수건을 흠뻑 적셨다. 그런데 어째 이번에는 다른 때보다 쉽게 지혈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엠버! 방으로 가 있으라고 했더니…. 아니, 너 지금 피가!”

그때, 손님을 방으로 안내하고 나온 메이드장 제인이 복도의 한구석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다가왔다가 내 꼴을 보고 기겁했다. 결국은 제인의 손수건까지 나를 위해 희생되었다.

“양육자님, 여기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그만 돌아가시지요. 고용인들의 일에 이렇게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제인이 체스휘를 먼저 보내려 했으나, 그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상태가 이렇게 나빠 보이는 사람을 두고 어떻게 먼저 가라는 겁니까?”

“하지만 손님이….”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닙니다. 이럴 시간에 한시라도 빨리 닥터 콘라드를 불러오는 게 낫겠군요.”

체스휘는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듯이 제인을 향해 서늘하게 일축했다. 제인은 체스휘의 냉담한 모습이 낯선 듯이 살짝 놀란 기색을 내비쳤지만, 곧 경력 있는 메이드장답게 그와 실랑이하지 않고 바로 다른 사람을 불러 콘라드를 데려오게 시켰다.

“그린로스 양, 또 당신입니까?”

그리하여 잠시 후 콘라드가 도착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지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망할 혁명 단체의 일원인 콘라드의 낯짝을 보자 열이 올라서, 가뜩이나 멎지 않는 코피가 더욱 거세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편 콘라드는 내가 자신을 왜 이렇게 성난 눈으로 노려보는지 이유를 몰라서 의문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의혹과 떨떠름함이 섞인 눈으로 나를 힐끔거리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줬다.

얼음팩으로 10분쯤 찜질을 하고 나서야 콸콸 쏟아지던 코피가 멎었다. 그러고 나서야 체스휘는 마지못해 응접실로 돌아갔다. 저택에 온 손님이 도대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인의 거듭된 권유에 탐탁지 않은 내색을 하면서도 결국은 체스휘가 원래 자리로 돌아가긴 한 걸 보면 정말 중요한 손님이긴 한 모양이었다. 이후에 제인도 나를 그녀의 방으로 데려갔다.

“엠버 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니?”

그녀는 의자에 앉아 골치가 아픈 듯이 미간을 문지르며 나를 보았다. 나는 당연히 근무지 이탈 건으로 제인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그녀는 사뭇 조심스러운 태도로 나한테까지 맞은편 자리를 권유했다. 그런 뒤 제인이 내게 건넨 첫마디에는 분노가 아니라 혼란이 담겨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나를 향한 그녀의 눈에 고뇌와 망설임이 어려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 일주일 만에 내 눈앞에 나타난 너를 처음 봤을 때는 화가 단단히 나서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따져 물을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구나.”

무릎 위에 올려진 제인의 손도 그녀의 심정을 나타내듯이 어딘가 불안하게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제인은 방금 그녀의 입으로 내뱉은 대로,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잠깐 뜸을 들였다.

“이렇게 언질도 없이 오랫동안 할 일을 내팽개치고 저택을 무단으로 이탈한 건,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할 큰 잘못이지. 그래서 네가 돌아오면 크게 질책하고 연유를 물은 다음, 그래도 납득할 수 없으면 이번에는 정말 저택에서 내보낼 마음까지 먹고 있었어. 그런데… 일주일 만에 이렇게 피골상접한 몰골로 돌아온 걸 보니 아무래도 너한테 보통 큰일이 있던 게 아닌 것 같구나.”

살짝 가늘게 접힌 제인의 눈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조심스러운 물음이 뒤따랐다.

“내가 원래도 네 몸이 썩 건강하지 못한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심각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으마. 엠버, 혹시 너 중병에라도 걸린 거니?”

나는 한바탕 코피까지 쏟고 난 여파로 머리 회전이 느려져서 다소 멍하게 제인의 말을 반쯤 흘려듣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 더욱 깊은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아니, 아니, 아니다. 그냥 대답할 필요 없다. 으음…. 지금 네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는구나. 일단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라.”

제인은 내가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 미처 어떤 반응을 내보이기도 전에 먼저 대화를 끝냈다. 그러고는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다가와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 주고, 문밖으로 부축해 주기까지 했다.

이렇게 메이드장 제인과의 대화는 싱겁게 끝이 났다. 그리고 나는 혹시 이번에야말로 해고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도, 예상보다 큰 문제 없이 레드포드 저택에 다시 무사히 입성할 수 있었다.

***

악마의 화원으로 들어간 미카엘은 좀처럼 일찍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오매불망 목이 빠지도록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도대체 뭘 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걸까?

“야, 대박 소식이야. 내가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알아?”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서 다시 악마의 화원에 가 볼 생각으로 서둘러 복도를 걷고 있을 때, 한쪽에서 고용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나도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냥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방금 저택에 다녀간 손님 있잖아. 누구인지 알아?”

“장의사 아니야? 1호실 도련님 때문에 온 거겠지.”

듣자 하니, 저택에 방문했던 손님이 지금 막 돌아간 모양이었다. 레드포드의 사람들은 지난주에 루시오가 모로스에게 당해 죽었다고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양육자와 아이가 죽는 것은 큰일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저택을 관리하는 윗선에도 소식이 닿았을 터였다.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야. 양육자를 육성하는 시설을 총 관리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높으신 분들이 오늘 온 거래. 최종적으로 레드포드에 보낼 양육자들을 엄선해 보내는 역할을 하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면접관? 뭐 그런 분들이라던데?”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왜 왔지? 아… 혹시 1호실 양육자님 때문인가? 맡은 도련님이 그렇게 되었으니, 이제 저택에서 나가는 거 맞지? 마지막으로 무슨 절차 같은 걸 밟아야 해서 관리자가 직접 온 건가?”

“내가 방금 들은 대박 소식이 그거야. 1호실 양육자님 말이야, 앞으로도 계속 저택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대.”

“뭐, 진짜? 왜?”

“1호실에 곧 새로운 도련님이 들어올 건데, 마리네즈 님이 그 아이를 맡을 수도 있대.”

바로 그 순간, 복도를 가로지르던 걸음이 나도 모르게 멈춰졌다.

“지금까지도 그런 전례는 없지 않았어? 내가 그쪽 일을 잘은 모르지만, 양육자가 할 일은 도련님들을 지키는 건데 어쨌든 마리네즈 님은 결국 책임을 못 진 거잖아? 그런데 어떻게 믿고 기회를 한 번 더 줘?”

“나도 건너 건너 들은 얘기야…. 글쎄, 마리네즈 님이 오히려 그 부분을 가지고 호소했다잖아.”

누구인지 모를 고용인은, 마리네즈가 양육자 육성 시설에서 파견 나온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 어떤 양육자도 지금의 그녀만큼 마음이 절박하지는 않을 거라고. 죽은 루시오에 대한 죄책감과 그를 지키지 못한 원통함이 가슴에 사무치는 만큼, 만약 자신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준다면 다음에는 정말 그 아이를 목숨 바쳐 지키겠다고 아주 절절하게도 호소했다고 했다.

“면접관인지 뭔지 모를 사람에게는 그게 퍽 진심같이 들렸나 보지. 단순히 상성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저택을 나가는 양육자도 있는 판국에, 이렇게 제 목숨 바쳐서 반드시 아이를 지키겠다는 투지로 똘똘 뭉친 사람을 보니까 어쩌면 정말 새로운 양육자를 들이는 것보다 효과가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나 봐.”

“그래서 진짜 다음에 새로 올 1호실 도련님을 마리네즈 님이 맡게 된다고?”

“확정된 건 아니라는 것 같았어. 그래도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지, 아마?”

나는 지금 내가 이 두 귀로 들은 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잠깐 곱씹어 생각했다.

그리고 이내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는, 다시 한번 머리끝까지 열이 뻗치는 느낌을 받으며 방향을 바꾸어 걷기 시작했다.

“근데 그건… 좀 그렇지 않나? 혹시 또 누가 이상한 말을 지어낸 거 아니야? 마리네즈 님이 루시오 도련님을 얼마나 아꼈는데 장례식을 하기도 전에 이렇게 바로 다른 아이를….”

“맞아. 지난 일주일 동안 보기 딱할 정도로 슬퍼하시던데. 그런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렇게 상심해서 기운 없이 축 처져 있던 사람이 면접관 앞에서는 그렇게 열성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점점 작아져 갔다. 누군가는 그렇게 불신을 드러냈지만, 나는 방금 들은 내용이 사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원래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 조만간 이곳을 떠나야 하지만 마음을 바꿨어. 저택에 남아서 좀 더 하고 싶은 게 생겼거든.”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내가 앞으로 저택에 편하게 있으려면 이번 일의 진짜 배후는 너인 걸로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마리네즈가 저택에 더 남아 있을 생각인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다른 소년의 양육자가 되기 위해서였다고?

왜 내가 이렇게 분통이 터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마리네즈의 머리에 어떤 계획이 들었는지 확인하고 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곧장 마리네즈의 방으로 찾아가서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도 레드포드에 돌아오자마자 그녀와 가장 먼저 만나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카엘과 루시오가 함께 악마의 화원으로 사라진 일 때문에 신경이 다른 곳으로 쏠려서, 지금까지 마리네즈의 일은 잠깐 뒷전으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고용인들의 대화를 듣고 마리네즈의 얼굴을 보는 걸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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