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50)화 (250/300)

“헛소리하지 마!”

나도 모르게 미카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까 루시오가 사라진 걸 발견했을 때부터 크게 뛰기 시작한 심장이 지금은 바닥까지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피가 빠져나가서 온몸에 한기가 드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온몸에 열이 올라 등에 축축한 식은땀이 배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왜 루시오가 일어나서 혼자 움직이는데도 몰랐지? 내가 좀 더 잘 보고 있었어야 했는데. 그럼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런 후회와 죄책감이 숨을 턱 막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총상이 난 부위를 눌러도 피가 멎지 않았다. 마차 안은 금방 진한 피비린내로 가득 찼다. 미카엘은 나를 더 말리지 않고, 내가 헛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러다가 마차에서 거의 내릴 때가 되었을 때쯤, 그가 또 나를 향해 짤막한 물음을 던졌다.

“그렇게 살리고 싶어?”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이런 빌어먹을. 난 어린애가 내 눈앞에서 죽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단 말이다.

미카엘은 그 후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보며 말이 없었다.

이후에 무슨 정신으로 레드포드 저택으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가까운 곳에 있는 전문 의사를 찾아봐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으나, 미카엘은 저택으로 바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나는 미카엘을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고 비난하고 싶었으나, 그는 냉정한 얼굴로 루시오를 살리고 싶으면 자신의 말대로 하라고 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으로, 별장에서의 사건 이후로 추격자는 우리를 따라오지 않았다. 마침내 레드포드 저택에 도착했을 때, 미카엘은 루시오를 데리고 곧장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미카엘 씨? 의사가 있는 건 저쪽인데 지금 어디 가는 거….”

“살릴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 보지.”

그는 나한테 지나가듯이 짧게 말한 뒤, 설명할 시간이 없다는 듯이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영문을 알 수가 없어서 미카엘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뒤늦게 그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숨을 들이마셨다. 아까는 루시오가 살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하더니, 그를 구할 다른 방법이 생각나기라도 했나?

나는 이미 저만큼 멀어진 미카엘을 서둘러 따라갔다. 주말이 된 레드포드 저택은 한적해서 건물을 빙 둘러 가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미카엘이 저 멀리서 막 몸을 들이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악마의 화원이었다.

뭐야? 왜 저기로 들어가?

나는 미카엘이 루시오를 데리고 들어간 곳이 어디인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당황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볐다가 다시 봐도, 저곳은 악마의 화원이 맞았다.

미카엘이 미쳤나? 설마 루시오를 괴물 꽃들의 먹이로 던져 줄 생각인 건가?

그는 금방 악마의 화원을 뒤덮은 안개 속으로 들어가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미카엘을 쫓아가기엔 이미 거리가 많이 벌려진 상태라, 나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살짝 열린 철문 앞에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못내 의심스러운 마음이 드는 한편으로, 다른 쪽에서는 설마 진짜로 미카엘이 루시오를 괴물 꽃의 먹이로 던져 주는 등의 고약한 짓을 할까 싶었다. 만약 루시오를 해칠 마음이 있었다면 지금까지도 그럴 기회는 충분히 많지 않았던가?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다친 루시오를 그냥 그 자리에 버리고 왔으면 되었으리라. 아니, 최소한 지금 저택 안에 데리고 들어온 이후에라도 그냥 방관하며 가만히 내버려 두면 되었을 텐데.

“거기, 엠버 아니야?”

그런데 내가 그렇게 이도 저도 못 하고 악마의 화원 앞에 서 있을 때, 누군가 나를 발견해 말을 걸어왔다. 나는 흠칫 놀라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맞네! 일주일 동안 어디 있었던 거야? 말도 없이 사라져서 다들 얼마나 궁금해했는데!”

고개를 돌리자마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어떤 메이드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가 손에 들고 있는 바구니를 보아하니, 저택 뒤에 위치한 소각장으로 가는 중이었던 듯했다.

“그런데… 엠버, 너 지금 그 앞에서 뭐 해?”

원래는 악마의 화원에서 미카엘이 다시 나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지만, 나를 보는 메이드의 눈에 깊은 의구심이 서린 걸 보니 일단 지금은 자리를 옮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어…. 소각장에 버릴 게 있어서.”

“그래? 그럼 같이 갈래? 나도 지금 소각장에 가려고 했는데.”

“아니, 난 방금 다녀오는 길이라서. 그럼 메이드장님한테 들러야 해서 먼저 가 볼게.”

나는 이름 모를 메이드에게 대충 둘러댄 뒤, 미련을 남긴 채 악마의 화원을 등지고 걸음을 옮겼다. 도중에 한번 힐끔 뒤돌아보았더니, 메이드가 아직도 가던 길을 가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악마의 화원 쪽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그 자리를 완전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다소 정신이 없는 상태로 걸음을 옮겼다. 레드포드 저택의 날씨는 오늘따라 지나치게 화창했고, 머리 위에서 눈부신 햇살이 한가득 내리쪼여 시야를 하얗게 만들었다. 주말이라 메이드들이 개인적인 빨랫감을 한꺼번에 처리하기라도 했는지, 어디선가 포근하고 향기로운 냄새가 풍겨 왔다.

평소와 다를 바가 거의 없는, 그 평온하기 짝이 없는 광경에 나는 갑자기 ‘어? 혹시 내가 겪은 일들이 모두 꿈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저택을 거닐수록 그 생각이 점점 진짜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누가 알았다면 바보 같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지만, 나는 그때 머리가 과포화 상태가 되어 인지 능력이 다소 떨어져 있었다.

“어?! 엠버잖아?”

레드포드 저택 안으로 들어와 복도를 걷는 동안 마주친 몇몇 고용인들이 나를 아는 척해 왔다.

“일주일 동안 어디 갔다 왔어? 갑자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었어?”

“메이드장님도 들은 게 없다고 해서, 말도 없이 그냥 그만둔 줄 알았는데.”

다들 내 부재의 원인을 궁금해하며 한마디씩을 보탰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지난 일주일간의 일이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자각했다.

처음에 이곳을 나갈 때만 해도 다시 문이 열릴 때가 되려면 한참 남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저택이 생각보다 조용한 걸 보니, 그동안 저택에 다른 사건이 터지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예상대로 마리네즈는 내가 루시오를 데리고 미카엘과 함께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지는 바람에 섣불리 원래 계획대로 나를 음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사정이 좀 있었어.”

나는 버석거리는 목소리로 작게 대꾸한 뒤 내게 말을 건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이 더욱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그것을 신경 쓸 여력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조금 전에는 대충 둘러댔을 뿐, 진짜 메이드장을 가장 먼저 찾아갈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나는 우연히 복도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메이드장 제인도 나를 보자마자 깜짝 놀란 듯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너 행색이…. 아니다. 지금은 손님이 와 계시니 나중에 얘기하자. 내 방에 먼저 올라가 있어.”

그 말처럼, 지금 제인은 처음 보는 사람 두 명을 앞세우고 손님 접객용 응접실에 막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나는 열린 문틈을 살짝 엿봤다. 그 안에는 양육자들이 모여 있었다.

당연히 거기에는 체스휘도 속해 있었다. 그는 내가 아는 온화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앉아 있다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그런데 그의 눈길이 조금 더 움직여, 문밖에 서 있는 내게 우연히 스치듯이 닿았다. 바로 그 순간, 나와 마주친 보라색 눈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얼굴을 굳힌 체스휘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막 방으로 들어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때마침 다른 양육자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티가 크게 나진 않았지만, 그가 대뜸 문 쪽으로 걸어오기 시작한 모습은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급한 일이 좀 생겨서.”

체스휘가 다른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소리가 문밖에까지 작게 들려왔다. 아무래도 나를 발견하고 쫓아 나오는 것 같은데…? 나는 곤혹감을 느끼며 서둘러 문 앞에서 멀어졌다.

“엠버 씨!”

하지만 내가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 체스휘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보다, 그가 방에서 빠져나와 나를 따라잡는 게 더 빨랐다.

체스휘는 꼭 내가 그의 눈앞에서 다시 사라질까 봐 두렵기라도 한 것처럼 내 손목을 세게 움켜잡아 나를 멈춰 세웠다. 지난번에 내가 그의 손을 뿌리쳤던 이후로는 이런 식으로 허락 없이 내게 손을 댔던 적이 없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전부 잊은 것 같았다.

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를 보고, 오히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졌다.

“이제 돌아온 거예요? 일주일 동안 보이지도 않고, 사람들한테 물어봤더니 갑자기 사라졌다고 해서 걱정했….”

그런데 체스휘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가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은 내 얼굴이 아니라 좀 더 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혹시 다쳤어요? 피가 묻어 있는데.”

이내 체스휘가 한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과연 내 옷에는 붉은 핏자국이 번져 있었다. 아무래도 루시오에게서 묻은 것 같았다. 그 순간 거의 반사적으로, 총을 맞고 쓰러지던 루시오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며 심장이 덜컹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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