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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48)화 (248/300)

“뭐야…. 내가 왜 이런 바닥에 누워 있어?”

내가 막 미카엘에게 한 소리 하려고 했을 때, 밑에서 소년의 미성이 들려왔다. 그 난리통에도 잠자는 숲속의 왕자처럼 내내 잠들어 있던 루시오가 깨어난 것이었다. 그는 미카엘이 잠깐 내려놓은 상태 그대로 여전히 바닥에 곱게 누워서, 고개만 돌려 우리를 말똥말똥하게 쳐다봤다.

“날 이런 곳에 내팽개치고 형이랑 누나는 그렇게 딱 붙어서 지금 뭐 하는 거야?”

“루시오, 일어났구나. 지금은 사정이 좀 있어서 잠깐 내려놓은 거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미카엘 씨가 널 계속 안은 채로 이동하는 중이었어.”

다행히 코피는 금방 멎었다. 미카엘은 또 장소를 이동할 생각인지, 나를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준 뒤 루시오를 다시 안아 들었다. 루시오는 이번에는 낯을 가리지 않고 미카엘에게 찰싹 달라붙어 나를 내려다보았다.

“메이드 누나, 다쳤어? 왜 코피가 나? 어쩐지 자다가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별것 아니야. 일단 장소부터 옮기자.”

나는 피가 묻은 손수건을 대충 주머니에 구겨 넣으며 눈을 돌려 비밀 관리국의 입구를 찾았다. 그런데 갑자기 서늘한 온기가 내 손을 감싸 쥐었다. 흠칫해서 고개를 들자,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미카엘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루시오를 챙기는 데 이어, 잊지 않고 내 손까지 붙잡은 뒤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불만과 겸연쩍음을 동시에 느끼며 주저하다가 미카엘을 따라 걸었다. 설마 내가 이 나이를 먹고 미아라도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그렇게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도 미카엘의 손을 놓지는 않았다.

“다른 곳으로 더 이동하지는 않고 그냥 여기에 머물려고요?”

내가 말하는 다른 곳이란, 검은 문을 통해 연결된 다른 세계를 의미했다. 미카엘도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바로 대답했다.

“입국 절차가 까다로운 곳이니까, 여기라면 금방 쫓아오지 못하겠지.”

아까 낡은 잡화점 같은 곳에서 이동하기 전에 미카엘은 문 앞에 서서 입도 벙긋하지 않았지만, 그 입국 절차란 것은 가이드를 통해 이루어졌을 것이다. 나도 44세계에서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리는 경험을 해 봤기 때문에 그의 말에 쉽게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에게 설명을 들어 보니 이번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39세계로, 이곳에서는 평화롭고 한가로운 정취가 물씬 느껴졌다. 그동안 우리가 이용했던 문들이 대부분 번화한 도심에 위치했던 것과 달리, 이곳의 비밀 관리국은 한적한 해변가에 자리해 있었다. 바닷가가 가까이에 있어서 사방에서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들렸고, 하늘에는 흰 갈매기 떼가 무리 지어 날고 있었다.

이번에도 추격자가 뒤따라올 경우에 바로 장소를 옮길 수 있게, 우리는 비밀 관리국과 가까운 곳에 있는 여관을 임시 거점으로 삼았다. 이곳에서 얼마나 머무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른인 미카엘과 나라면 또 몰라도 루시오에게는 편안히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방값은 미카엘의 소매에 하나 남은 커프스 버튼으로 해결했다. 따분한 얼굴로 카운터에 앉아 있던 여관의 주인은 미카엘이 준 커프스 버튼의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고는, 혹시나 이쪽의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 두려운 듯이 서둘러 그것을 낚아채 가져갔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여관의 가장 좋은 방을 내주고, 원하면 한 달이라도 내리 머물러도 된다고 했다. 마침 늦은 저녁 시간이라 시장할 테니 바로 요깃거리를 준비해 주겠다며 한 상을 거하게 차려 주기까지 했다. 미카엘이 여느 때처럼 서늘한 얼굴로 혹시나 누가 우리에 대해 물어도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협박 비슷한 소리를 하는데도 주인은 여부가 있겠느냐면서 웃는 얼굴로 방을 나섰다.

“메이드 누나, 입맛이 없어? 그럼 누나가 먹던 거 나 줘.”

“그래, 내 것도 먹어라…. 그래도 넌 식욕이 있다니 다행이구나.”

루시오는 꼭 귀여운 새끼 돼지처럼 먹성 좋게 음식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배를 채웠다. 테이블 위에 있던 음식들은 거의 다 루시오가 먹어 치운 것 같았다. 원래도 미카엘이 뭔가를 열정적으로 먹는 모습은 잘 본 적이 없었고, 나는 몸이 힘들어서 그런지 입맛까지 똑 떨어져서 수프나 몇 입 떠먹는 게 고작이었다. 아무래도 테이블을 치우고 나면 먼저 잠이나 한숨 자서 기력을 회복해야 할 것 같았다.

“메이드 누나, 난 언제 루스카한테 데려가 줄 거야?”

시간이 조금 더 지나, 이제 어느 정도 배가 찼는지 루시오의 손이 느려졌다. 그는 나를 보며 예전에 한 약속을 언제 이행할 것인지를 물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무심코 한숨을 옅게 내쉬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다.”

“왜? 여기랑 거리가 멀어? 아까처럼 문을 이용하면 되잖아.”

“에구, 그래그래. 그런데 너 루스카가 어디에 있는지나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

“그야 배양실이겠지. 선발되지 않은 애들은 다 거기에서 차례를 기다리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얼마나 어렵게 빠져나왔는데, 어떻게 거기로 다시 들어가니?

아까 오전에 미카엘에게 이 얘기를 듣고는 그야말로 눈앞이 암담해서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일을 저지른 사람은 엠버인데, 마음고생은 내가 다 하고 있었다.

내가 소장이 있던 시설에서 직접 들어가 봤던 그 배양실에는 갓난아기들밖에 없었다. 그런데 미카엘도 그렇고, 루시오도 그의 쌍둥이인 루스카가 있을 만한 곳으로 배양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혹시 좀 더 자란 실험체들을 따로 모아 놓는 다른 배양실이 더 있는 건가 싶었다.

어쨌든, 루시오와의 약속을 지키려면 기껏 힘들게 빠져나온 시설에 다시 돌아가야 했다. 당연히 나로서는 막막한 일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곳을 떠나기 전에 루시오와 루스카를 만나게 해 주면 좋았을 텐데,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을 해 봤자 부질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그때는 루시오와 엠버가 한 약속도, 또 시설에 루스카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으니 확실히 지금 아쉬워해 봤자 소용없긴 했다.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지, 루시오는 배를 채우고는 또 바로 잠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더 고민하며 곤란스러워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루시오는 그 이후로 꼬박 하루 반 동안이나 깨어나지 않아서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루시오, 일어났으면 밥 먹어.”

“졸려…. 더 잘래.”

그때부터 루시오는 눈을 떠도 밥도 잘 먹지 않고, 깨어 있는 시간도 비몽사몽으로 보냈다. 내가 아무리 루시오를 걱정해도, 이건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문제는 루시오만이 아니었다.

“또 코피 나요?”

“응.”

하루는 갑자기 미카엘이 창밖을 보던 나한테 가까이 다가와서, 내가 움직이지 못하게 한 손으로 뒷덜미를 잡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냅킨을 가져와 지혈하듯이 코에 대고 눌렀다. 그런 그의 얼굴은 이번에도 미미하게 찌푸려져 있었다.

이 해변가의 여관에 머문 지 오늘로 이틀째. 그동안 나는 네 번이나 코피를 쏟았다. 그때에서야 나는 미카엘이 내가 처음에 코피가 났을 때, 어디에 부딪혀서 그런 거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했던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팔에 있는 검은 얼룩도 쉬지 않고 영역을 넓혀 가서, 이제는 거의 한 뼘 정도가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엠버의 육체에 이런 변고가 일어나는 이유는 소장과 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다는 그 사이비 같은 연구 때문이었다.

일찍이 소장이 속한 시설은 스텔라를 포함해 빈 세계로부터 다른 세계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 대다수의 세력과 힘을 모아, 적합자의 유전자로 만든 아이들에 관한 연구를 이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뒤에서 혁명 단체와 결탁해, 아이들을 이용한 불로장생의 연구를 몰래 진행하는 중이었다.

한번 빈 세계의 공허에 먹혔다던 18세계의 레드포드 저택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온갖 미스터리한 일들이 일어나는 장소였다. 이곳은 일정 조건만 충족되면 다른 빈 세계와 달리 적합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목숨의 위협 없이 출입이 가능했고, 그러면서 검은 공기의 오염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도 않았다. 그러니 빈 세계에 보낼 아이들에게 미리 적응 과정을 거치게 하기에도 용이했고, 한번 죽음을 맞은 뒤에 다시 부활한 존재인 모로스에 대해 연구하기에도 편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텔라의 감시망 속에서 대놓고 레드포드에 조사 인력을 투입할 수도 없었고, 아이들에게 따로 손을 대는 것도 어려웠다. 소장이 혁명 단체의 사람들과 손을 잡은 이유는 그래서인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일반인을 표본으로 한 실험도 진행했다. 거기에 속한 실험체가 바로 엠버나 세라처럼, 소장과 함께 찍은 사진 속에 있던 갈 곳 없는 고아들이었다.

소장은 그들을 데려와 레드포드 저택이 있는 18세계에서 영감을 얻어 고안한 실험을 자행했는데, 말하자면 지금 엠버의 몸에 검은 얼룩이 나타난 것이나, 이렇게 코피를 쏟는 건 전부 그 연구로 인한 부작용의 일환이었다. 즉, 엠버가 이다지도 개복치 같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나야 진짜 엠버가 아니니까, 그녀의 상황에 완전히 이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엠버의 박복한 인생사에 탄식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시한부 미인이라니…. 거울을 볼 때마다 팔자가 사나워 보였던 이유가 있었어.’

나는 예전에 퀘스트를 진행하던 중에 엠버와 세라에게 의문을 품었던 부분들이 대부분 해소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엠버가 레드포드 저택에 들어가 뭘 얻어 내려 한 건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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