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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47)화 (247/300)

“이 도둑놈…! 감히 그동안 우리가 공들여 성취한 유산을 훔쳐 가다니!”

기다렸다는 듯이 사자후 같은 목소리가 매섭게 날아와 고막에 꽂혔다. 우리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들은 주변 사람들이 ‘도둑이라고? 어디?’ 하면서 동요하는 소리가 파도치듯이 사방으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인파 속에서 느껴지는 수상한 인기척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사람들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튀어나와 우리를 공격했다.

“좋은 말로 할 때 훔쳐 간 걸 순순히 내놔!”

물론 미카엘도 순순히 당하지는 않았다. 미카엘이 몸을 움직이자, 그의 팔에 감싸진 배가 눌리면서 허리가 앞으로 접혔다.

“우악!”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꼭 몸속의 장기가 모조리 입 밖으로 빠져나갈 것 같았다. 내 몸은 미카엘에 의해 강제로 끌어당겨져, 추격자의 공격을 피하는 동안 종잇장처럼 이리저리 팔랑거렸다. 뭔가가 빠르게 머리 위, 혹은 몸 옆으로 휙휙 날아다니고, 미카엘이 신속하게 그것을 피해 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워낙 빠르게 일어나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저 대강 어떤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지, 소리로만 파악할 수 있을 뿐이었다.

“꺄악…!”

“뭐야?! 설마 여기에서도 폭도가 나타난 거야?”

“몰라, 빨리 도망쳐!”

당연히 근처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큰 소란이 벌어졌다. 갑자기 나타나서 사방으로 위험한 흉수를 펼치는 정체불명의 사람을 피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이들로 거리는 금방 시끄러워졌다.

추격자가 휘두른 긴 가방 같은 게 미카엘과 나를 비껴 지나가 바닥에 내리꽂혔다. 생긴 건 평범한 가죽 가방인데 도대체 속에 뭐가 들었는지, ‘쿵!’ 소리가 나면서 바닥이 깊게 파였다. 미카엘이 루시오와 나를 양쪽 팔에 안은 채로 길거리에 있던 소화전을 발로 딛고 날아올라, 그 뒤에 달려드는 다른 추격자의 턱주가리를 날렸다. 누수된 소화전이 물을 터트리면서 주변은 한층 더 번잡해졌다.

추격자들의 목적은 루시오이기 때문인지, 공격은 소년을 피해 미카엘과 나를 향해서만 퍼부어졌다. 하지만 다행히 미카엘은 재주 좋게 그 공격들을 모두 피해 냈다. 나와 루시오, 두 사람을 양팔에 안고 있어서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는데도 참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렇게 무턱대고 공격해도 되나? 그동안 공들인 소중한 실험실의 자산이 단번에 가루가 될지도 모르는데.”

그러고도 제법 여유로운 모습으로 미카엘은 악당 같은 대사를 내뱉었다.

“이쪽 여자도 소장이 제법 아끼던 실험체가 아니던가? 가능하면 살려서 데려오라고 했을 줄 알았는데 죽어도 상관없나 보지?”

냉소 섞인 미카엘의 말만 들으면, 정말 연약한 여자와 소년을 노리는 사악한 납치범이 따로 없었다.

“이, 비겁한 놈이…! 여자와 아이를 둘 다 놓고 지금 꺼지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방금은 내가 죽든 말든 상관없는 것처럼 마구잡이로 공격을 퍼부었던 주제에, 추격자들은 이제 와서 나까지 데려가는 게 목적이었던 것처럼 입을 놀렸다.

그보다, 왠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내가 단체의 사람들을 배신하고 미카엘과 한통속이 되어 루시오를 빼낸 게 아니라 같이 납치당한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미카엘의 무쇠 같은 팔에 짐짝처럼 들어 올려진 채 헛구역질을 참아 내고 있었다. 추격자들과 미카엘이 싸움판을 벌여 정신없이 여기저기 옮겨지면서 장기가 눌린 상태로 흔들렸더니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굳이 거울을 보고 확인할 필요도 없이, 개복치인 엠버의 얼굴은 지금 새하얗게 질려 있을 게 분명했다. 불과 하루 만에 다 죽어 가는 것 같은 꼴이 된 나를 보면, 확실히 추격자들이 나 또한 미카엘과 함께 목숨을 건 위험한 짓을 벌였다고 생각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아니면 혹시… 미카엘이 이런 그림을 노리고 일부러 지금 나를 보란 듯이 짐짝처럼 들고 나르면서 악당 같은 대사를 날린 건가?’

나는 혹시 미카엘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나를 추격자들의 공격 대상에서 빼내 주려고 한 게 아닌지 갑자기 미심쩍은 기분이 좀 들었다. 그래서 미카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지만, 표정만으로는 그가 무슨 의도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감히 아르테스 가문을 모욕하고 수도를 어지럽히는 폭도들이 누구냐…!”

“헉! 아르테스의 친위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추격자들과 우리의 대치는 길지 않았다. 갑자기 제복을 입은 자들이 말을 타고 나타나 사람들을 제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쩐지 이 나라의 상황이 별로 평화롭지 못한 것 같더니, 친위대라고 하는 자들이 폭도들로 인해 어지럽혀진 도시를 정리하러 등장한 모양이었다. 물론 지금 이곳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건 이 나라의 폭도들이 아니라 한 소년을 사이에 두고 피 튀기는 납치극을 벌이고 있는 수상쩍은 무리들이었지만 말이다.

“앗, 거기 서!”

어쨌든, 그렇게 상황이 어수선해진 틈을 타서 미카엘은 추격자들의 감시망을 빠져나가려 시도했다.

“이쪽이다! 폭도들을 전부 붙잡아라!”

당연히 추격자들이 미카엘을 뒤쫓았으나, 친위대에게 가로막혀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다. 그 틈에 미카엘은 루시오와 나를 데리고 인파 속으로 섞여들었다.

“미, 카엘 씨…. 헉, 그만 내려 줘요! 이제 내 발로 뛸게요!”

“느려서 방해만 돼.”

아까부터 눌리고 있는 배도 아프고 속도 안 좋아서 미카엘에게 말했으나, 그는 너무도 간단하게 내 의견을 묵살해 버렸다. 나는 그에게 좀 더 강하게 내 뜻을 피력하려다가, 거북이 같은 엠버의 달리기 속도를 떠올리고는 눈물을 머금으며 그냥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미카엘이 말한 비밀 관리국은 정말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곳은 허름한 가게로 보였다. 미카엘은 간판도 제대로 없는 곳에 망설임 없이 뛰어 들어갔다. 문에 달려 있던 종이 크게 울리자, 가게의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창가에 서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어수선한 바깥의 광경을 내다보다가 안경을 고쳐 쓰며 우리를 돌아봤다.

“소란을 피해 들어온 거요, 아니면 손님이요?”

“외부로 향하는 문, 잠깐 빌리지.”

“엇, 출국 절차를 밟으려는 거요? 그럼 내가 안내를….”

“필요 없어.”

미카엘은 주인을 지나쳐 가게의 안쪽으로 거침없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가게 곳곳에 빼곡하게 자리한 오래된 골동품과 낡은 책들이 눈앞을 휙휙 지나갔다. 가게의 구석진 곳에는 문 대신 천장에 달린 주렴으로 공간이 분리된 작은 방 같은 곳이 있었다. 미카엘이 그 안으로 들어갈 때 주렴의 구슬에 이마를 부딪혀서 아팠지만 불평할 겨를 따위는 없었다.

주렴 너머에 있는 공간에는 각 벽마다 문이 한 개씩 존재했다. 미카엘은 정말 예전에 이곳에 와 본 적이 있었던 듯이, 곧바로 세 개의 문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정말 눈에 익은 검은 문이 달려 있었다.

그다음 순서는 내가 44세계의 비밀 관리국에서 이미 겪어 봤던 것과 비슷한 듯했다. 미카엘이 문 앞에 서자 시야에 눈 부신 빛이 퍼졌다. 누구라도 저절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꺼풀을 다시 들어 올렸을 때, 내가 서 있는 곳은 이미 가게 안이 아니었다.

“미카엘 씨… 이제 나 좀 내려 줘 봐요. 진짜 토할 것 같다고요.”

이제야 한숨 돌리겠다 싶어서 아직도 나를 들고 있는 미카엘의 팔을 손으로 마구 치면서 이번에는 정말 강력하게 나를 내려놓으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미카엘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매를 움칫 찌푸렸다. 왜, 네가 보기에도 내 안색이 별로이긴 한가 보지?

이번에는 미카엘도 내 말을 무시하지 않고 팔을 풀었다. 그런데 엠버의 몸은 도대체 어디까지 개복치인 걸까? 반갑게 내 두 발로 바닥을 딛자마자 갑자기 갓 태어난 망아지처럼 다리에서 힘이 풀렸다. 제대로 서지 못하고 바닥으로 풀썩 주저앉는 나를 이번에도 미카엘이 붙잡아 줬다.

“아이고, 감사… 응?”

그런데 입을 열자마자 갑자기 비릿한 뭔가가 입술을 적시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의아함을 느끼기 무섭게, 미카엘이 손을 들어 뜬금없이 내 코를 꼬집었다.

“으에? 지그 머하는 거에혀?”

나는 얼굴을 와그작 구기면서 코맹맹이 소리로 그에게 따졌다. 미카엘은 여전히 인상을 쓴 상태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짤막하게 답했다.

“피 나.”

그 소리에 어리둥절하게 손으로 인중을 훔치자, 정말 붉은 것이 묻어났다.

“헐, 진짜네. 미카엘 씨 때문에 조금 전에 주렴에 있는 구슬에 맞아서 그런가 본데요?”

사실 아까 주렴에 맞은 곳은 이마지 코가 아니었지만, 괜히 미카엘을 골려 주고 싶어서 공갈을 쳤다. 내 말에 미카엘의 미간에 잡힌 주름이 한결 더 짙어졌다.

“진짜 그 이유 때문인 거 맞아?”

“뭐야, 자기가 그래 놓고 지금 발뺌하네.”

나는 미카엘을 향해 투덜거리는 척했다. 미카엘은 내 주머니에서 자연스럽게 손수건을 꺼내 내 코피를 지혈해 줬다.

하지만 진짜 왜 갑자기 코에서 피가 나는지 나도 의문이었다. 혹시 요즘 몸을 너무 혹사해서, 피곤해서 그런가? 아니면 미카엘에게 붙들려서 옮겨질 때 몸이 반으로 접혀서 피가 머리에 쏠리기라도 했나? 뭐, 엠버의 몸은 개복치였으니 코의 점막이 약하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긴 했다.

그런데 잠깐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던 미카엘이 자신을 탓하는 나한테 미안해하지는 못할망정 배은망덕한 소리를 내뱉었다.

“그래, 부딪혀서 그런 거면 다행이고.”

뭐, 인마? 다행은 뭐가 다행이야?

나는 어처구니가 없는 눈빛으로 내 앞에 있는 미카엘을 흘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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