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이면 창밖을 확인하던 미카엘도 그때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친 순간, 반사적으로 내가 먼저 시선을 피했다. 그러고 나서 곧장 후회했다. 눈이 마주쳤으면 마주친 거지, 왜 이렇게 티 나게 고개를 돌렸지?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 나도 모르게 무의식중에 한 일이라서 나도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뒤늦게 후회해 봤자 어쩔 수 있는 노릇도 아니었다.
나는 옷매무새를 정리하는 척 자연스럽게 딴청을 부렸다. 그러다가 슬쩍 다시 눈을 굴려 옆쪽을 확인해 보니, 다행히도 미카엘은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으음….”
그때, 우리 두 사람 사이에 있던 루시오가 잠투정 섞인 소리를 작게 내뱉으며 미카엘과 내 몸 위로 녹은 찹쌀떡처럼 늘어졌다. 분명 밖으로 나올 때만 해도 깨어나 있었는데, 그는 그새 또 잠든 모양이었다. 어디로 봐도 이상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루시오의 상태에 저절로 미간을 찌푸리게 되었다.
미카엘도 눈매를 좁힌 채 루시오를 보고 있는 건 나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는 나처럼 루시오를 걱정해서 그런 얼굴을 하고 있던 건 아닌 것 같았다.
미카엘은 성가심이 담긴 손길로 소년의 몸을 내 위에서 치웠다. 루시오는 조금 몸을 뒤척이다가, 아기 코알라처럼 미카엘의 팔에 기댄 상태로 움직임을 멈췄다. 미카엘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눈으로 그런 루시오를 내려다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떼어 내지는 않았다.
나는 미카엘에게 기대어 색색 잠든 루시오를 심란한 눈으로 응시했다.
‘그냥 보통의 어린애 같은데, 만들어진 인간이라니….’
아까 미카엘에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들어서 머리가 복잡했다. 물론 미카엘은 내 모든 질문에 답을 주지는 않았지만, 이미 들은 내용만으로도 내 머리는 포화 상태였다.
저택의 아이들, 그들을 이용한 불법적인 실험. 단순히 빈 세계에 집어넣을 적합자를 만들기 위해 인간을 배양한 것만으로도 속이 거북한데, 소장과 세라가 있던 시설에서는 그들을 이용한 또 다른 불법적인 실험까지 진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불현듯 어제 배양실에서 봤던 아기들이 꼭 혼이 빠져나간 빈 껍데기처럼 나를 쳐다봤던 기억이 났다. 그러자 또 살짝 등에 소름이 올라오려고 해서 괜스레 앉아 있던 몸을 꿈틀거렸다.
원래 내가 사는 현대 세계에서도 과학이 상당히 발전해 있었고, 인조인간이니 클론이니 하는 소재는 오래전부터 영화나 소설 같은 이야기로도 드물지 않게 나오던 것이라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실험이 실제로 성공한 사례는 듣지 못했다.
생명 창조 분야에 몰두한 과학자들은 어느 세기에나 존재했지만, 짧은 시간 안에 금방 버젓한 결과물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쉬운 연구는 아니었다. 오히려 인간이 인간을 만들어 내는 일은 과학을 넘어선 신의 영역으로 치부되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소장 같은 사람들은 그걸 해냈다는 거지.’
게다가 미카엘의 설명을 듣고 추측하자면, 엠버와 세라도 그 연구와 연관이 있는 듯했다. 나는 어두운 눈으로 검은 얼룩이 번진 팔을 내려다보다가, 병든 병아리처럼 맥을 못 추고 있는 루시오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언니랑 오빠, 부부예요?”
그런데 내가 루시오를 심란한 눈으로 내려다보면서 한참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앞쪽에서 웬 해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싶어서 의문 어린 얼굴을 들었다.
이 마차는 완전히 폐쇄된 게 아니라, 앞쪽의 벽에 난 작은 창구로 마부석의 사람과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마차가 빨리 달릴 경우에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수도 있어서 벽에 작은 구멍을 뚫어 두는 경우는 원래 있었지만, 이렇게 아예 마부석이 있는 앞쪽에 창문 같은 걸 만들어 둔 건 처음 봤다.
어쨌든 그곳을 통해 바깥을 확인해 보니, 마부 옆에 앉은 앳된 소녀 하나가 순박한 얼굴로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근깨 박힌 동글동글한 얼굴이 왠지 사라로사를 떠올리게 해서 나는 마음이 약간 누그러졌다.
그런데 이 여자애는 누군데 저기에 타고 있지? 혹시 마부의 수제자 같은 건가? 아니면 딸이나 조카 같은 친인척인가? 아무튼, 저렇게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면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걸 보면 방금 한 말도 우리한테 한 말인 것 같은데….
그 내용이 영 뜬금없어서 나는 요상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런데 황당함이 깃든 침묵을 오해했는지, 소녀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되게 예쁘고 잘생긴 엄마 아빠네요! 그런데 결혼을 되게 일찍 했나 봐요. 언니, 오빠는 엄청 젊은데 가운데 있는 그 애는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여요! 두 사람 아들 맞죠?”
소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마차 안으로 흘러들수록 미카엘과 내 주변의 분위기는 썰렁해졌다.
“예전에 우리 옆집에 살던 꽃집 오빠도 결혼 증표를 주고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마을 자치 대장 언니한테 청혼했는데.”
하지만 소녀는 분위기를 읽지 못한 듯이 여전히 해맑은 목소리로 발랄하게 재잘거렸다.
“그러고 나서 바로 일주일 뒤에 결혼했잖아요! 원래 보통은 그렇게 어릴 때 결혼하진 않는데, 하루도 못 떨어질 정도로 서로 죽고 못 살면 그런 경우도 있긴 하대요.”
“…….”
나는 소녀의 말을 듣고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 침묵했다.
어딜 봐서 내가 이만한 아들이 있을 나이로 보이지…? 하기야 앞에서는 미카엘에게 얼굴을 파묻고 잠든 루시오가 잘 보이지 않을 테니까 나이를 추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저 여자애는 아직 어리기도 하고….
“그런데 혹시 피난 가세요? 사실 저희도 오늘까지만 여기에서 일하고 내일은 옆 도시로 가려고요. 그런데 그 애는 어디 아파요? 아까 언니 오빠가 걸어온 쪽에도 사람들이 막 몰려들어 있던데, 혹시 거기에서 다친 건 아니죠?”
“아니…. 그냥 자고 있는 거야.”
“아, 그래요? 다행이다!”
소녀는 진심으로 루시오의 무사함을 기뻐하는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뒤이은 소녀의 말에 나는 웃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애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닮았나 봐요. 머리가 둘 다 검은색인 걸 보면요!”
“…….”
…아빠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야!
졸지에 미카엘과 묶여 유부녀로 오해받고 있는 상황이 당황스러웠다. 옆에 있는 미카엘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차마 고개를 돌려 확인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서둘러 소녀에게 진실을 밝혔다.
“얘야? 이 사람하고 나는 부부가 아니란다.”
하지만 소녀는 바로 수긍하는 게 아니라, 내 말을 믿지 않는 듯한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데…. 아까 언니랑 오빠랑 둘이 손을 꼭 붙잡고 걸어왔잖아요.”
“그건, 그냥 밖에 사람들이 많아서….”
“마차가 세워진 곳은 사람들이 없었는데도 계속 잡고 왔으면서요?”
“그게….”
“마차에 탄 뒤에는 둘이 계속 번갈아 가면서 서로 쳐다봤잖아요. 내가 다 봤는데. 한두 번도 아니었는데?”
“아니, 그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언니랑 오빠 사이에 있는 그 애도, 꼭 예전에 우리 엄마 아빠가 살아 있을 때 나한테 그런 것처럼 둘 다 엄청 살뜰하게 챙기고요.”
“앗.”
나는 소녀의 말에 뭐라고 대꾸하지 못하고 입을 뻐끔거릴 수밖에 없었다. 은근히 변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지적해서 가뜩이나 말을 버벅거리고 있었는데, 마지막에는 특히나 말문이 막혀 버렸다. 뭐, 뭐야. 이 여자애, 부모님이 없는 거야? 지금 갑자기 그런 얘기를 꺼내면 내가 뭐라고 반응해야 해?
그렇게 내가 난처함에 잠깐 할 말을 잃고 있는 사이에, 소녀가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조용히 몸을 돌렸다. 그러고 나서 소녀는 옆에 앉은 마부에게 작게 속닥거렸다.
“삼촌. 뒤에 있는 언니, 오빠 싸웠나 봐요….”
“에그, 이 녀석아. 그러게 내가 방정맞게 입 놀리지 말라고 했지? 거, 죄송합니다, 손님! 조카가 아직 어려서요.”
나는 마부의 사과를 들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언니, 오빠.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래요. 그러니까 되도록 빨리 화해하세요. 네?”
소녀는 마지막으로 우리를 향해 속닥거린 뒤, 마부의 꾸지람을 듣고 조용히 입을 다문 채 다시 몸을 돌렸다.
그렇게 내가 표정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문득 옆에서 바람이 빠지는 듯한 얕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지금의 상황이 조금 우스운 듯이 가볍게 입꼬리를 올린 채 나를 보고 있는 미카엘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좌석 옆에 있는 팔걸이에 팔꿈치를 느슨하게 올리고 손에 고개를 비스듬히 괸 상태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재미있네. 우리가 엄마, 아빠, 아들로 보인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아무래도 미카엘은 소녀의 말에 시시각각 변하는 내 얼굴을 구경하는 게 퍽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미카엘을 째려보며 성난 콧김을 내뱉었다.
“참나…. 어떻게 생각하긴 뭘 어떻게 생각해?”
내가 미카엘에게 도대체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만났던 거냐고, 또 나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느냐고 몇 번이나 물어도 끝까지 그 대답은 안 해 줬으면서 웃기고 있었다.
미카엘은 레드포드 저택의 아이들과 혁명 단체 등에 대해 내가 물어봤을 때는 비교적 쉽게 대답해 줬지만, 나와 그의 관계에 대해서는 계속 입을 열지 않았다. 뿐만이 아니라, 미카엘은 그 자신에 대해서도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나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앞에 앉은 마부와 소녀에게 우리가 하는 말이 들릴 수도 있어서 지금 여기에서 속에 든 말을 전부 꺼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신 미카엘을 뿔난 눈으로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마음속에서 뭔가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