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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44)화 (244/300)

“일단 루시오, 넌 이제 막 정신을 차렸으니까 좀 쉬어야 돼.”

미카엘은 언제 나를 비웃었냐는 듯이 무심한 태도로 다시 창가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그를 흘겨보면서 루시오에게 말했다. 일단 급한 대로 둘러댄 거긴 하지만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 짧은 대화를 나누는 잠깐 사이에도 점점 더 느릿느릿 비실비실해지고 있는 루시오의 모습을 보면, 그에게 몸을 정양할 시간이 필요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루시오는 내 말에 알겠다는 듯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오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몹시 힘없는 손길로 물컵을 드는 모습이나 몽롱하게 풀린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는 얼굴을 보니 그를 더 붙들면 안 될 것 같았다.

“혹시 졸려? 좀 더 잘래?”

“응.”

“정말 아픈 곳은 없는 거 맞아?”

“으응.”

루시오는 내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건성으로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런데 메이드 누나, 팔은 왜 그래?”

그런데 조금 멍하게 눈을 깜빡이던 루시오가 문득 뭔가를 발견한 것처럼 내게 물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소매 밑으로 드러난 팔뚝의 검은 얼룩이 어제 보았을 때보다 한결 더 커져 있는 걸 발견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멈칫했다.

“글쎄, 뭐가 묻은 것 같은데 뭔지 모르겠….”

의심 어린 기분으로 다시 고개를 들면서 대답했는데, 루시오는 이미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이러다가 다시 눕기도 전에 잠들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루시오가 앉은 상태로 꾸벅꾸벅 졸다가, 심지어 들고 있던 컵을 손에서 놓칠 뻔하기까지 했다. 나는 얼른 루시오의 손에서 떨어지려고 하는 컵을 붙잡아 대신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루시오는 내가 가까이 가자마자 바로 내게 몸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나는 금세 잠든 루시오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루시오를 다시 소파로 옮겨 주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엠버의 근력으로는 무리였다. 나는 관망하듯이 창가에 기대서서 끙끙거리는 내 모습을 멀거니 구경하고 있는 미카엘을 노려보았다. 그제야 미카엘이 한쪽 눈썹을 추어올리면서 다가와 루시오를 소파로 옮겨 주었다.

“미카엘 카드리고 씨? 이제 나하고 얘기 좀 합시다?”

루시오가 다시 조용히 잠들고 나자, 드디어 미카엘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나는 미카엘이 거부하기 전에 그를 데리고 루시오에게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루시오도 자고 있고 지금은 할 일도 없으니까 이번에는 더 미루지 못하겠죠? 내가 어제부터 계속 이 순간만 기다렸… 응?”

그런데 미카엘이 내 눈을 마주하지 않고 시선을 내리더니, 갑자기 내 손목을 붙잡았다.

약간 서늘한 온도를 가진 손가락이 피부 결을 따라 미끄러졌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 하지만 미카엘은 다른 의도를 가지고 내게 손을 댄 것은 아닌 것처럼, 움켜쥔 내 팔을 들어 올려 무언가를 확인하듯이 내려다보았다.

“여기, 언제부터 이랬어?”

미카엘의 시선이 닿은 곳은 조금 전에 루시오도 지적했던 얼룩이 묻은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루시오가 한 말을 듣고 미카엘도 내 팔에 관심을 가진 것 같았다.

매끄러운 손가락이 팔을 훑자 온몸의 솜털이 바싹 일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록 불순한 의도는 없더라도 미카엘의 손이 닿은 곳은 못 견디게 간지러웠고, 이렇게 그와 딱 붙어 있는 상황이 나로서는 좀 의식되기도 했다. 나는 내 팔을 움켜쥔 미카엘의 손을 곧바로 뿌리쳤다.

“뭐… 야,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왜 이래요?”

나는 미카엘이 또 미남계(?)로 내 정신을 빼 놓으려고 이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경계하는 마음을 품고, 가까이 붙어 선 미카엘에게서 조금 떨어졌다.

“그냥 어젯밤에 뭐가 좀 묻은 것뿐인데.”

“어제부터 이랬다고?”

하지만 미카엘은 눈매를 살짝 날카롭게 좁힌 채 여전히 내 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걸로 유난을 부린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갑자기 찝찝해졌다. 그래서 인상을 쓰며 나도 다시 한번 팔을 살펴보았다.

어제 봤을 때보다 조금 더 영역을 확대한 검은 얼룩은 이제 동전만 한 크기가 되어 있었다. 꼭 먹물이 번진 것처럼 농도는 균일하지 않았고, 그래서 더 얼룩덜룩해 보였다.

나는 미심쩍은 눈으로 미카엘을 쳐다보았다. 미카엘이 시선을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번에는 그가 손을 움직여 내 얼굴을 만지는 게 아닌가?

“저기, 이봐요? 아, 이 사람이 또 왜 이래?”

미카엘은 꼭 열이 없는지 재는 것처럼 손으로 내 이마를 훑고, 뺨을 감싸 이리저리 옆으로 돌려 보기도 했다. 당연히 이번에도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방금 쉽게 내 팔을 놓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나한테 달라붙은 손길이 꽤 끈질겼다. 미카엘은 내 턱과 뺨을 한 손으로 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킨 채, 꼭 의사가 환자의 동공을 확인하듯이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나는 얼결에 미카엘의 손길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그에게 얼굴을 내주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뒤로 확 빼냈다.

허 참, 하고 기가 막혀서 내뱉은 소리가 연거푸 입술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는 미카엘에게 잡혔던 얼굴을 문지르며 아까보다 더 사납게 그를 노려봤다. 하지만 미카엘도 나 못지않게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이 남자가 뭘 잘했다고 이런 표정을 짓고 있나 속으로 투덜거리다가, 그에게 마지못해 물었다.

“혹시 이거 그냥 얼룩이 아닌 거예요?”

미카엘의 이 찝찝한 반응만 봐도 감이 왔다. 하지만 도대체 이게 뭔데 그러지? 설마 독이라도 되나?

나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마른세수를 하듯이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 이거 아무래도 생각보다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데….”

탐탁지 않은 기분에 무거운 목소리로 한숨 섞인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고 나서 다시 마음을 굳히고 미카엘을 응시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하나씩 질문할게요. 미카엘 씨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아는 대로 대답해 주면 돼요. 무슨 말이 나와도 들을 준비 됐으니까.”

일단 내가 궁금한 건 우리가 루시오를 데리고 이곳으로 오기 전에 혁명 단체의 사람들과 잠깐 머물렀던 시설에 대한 설명과, 그곳이 루시오와 같은 저택의 아이들하고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또 미카엘이 소장을 그렇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상태로 만든 이유도 궁금했다. 혹시 조금 전에 루시오가 말한 것처럼 레드포드 저택이 정말 아이들에게 위험한 게 맞는지 만약 미카엘이 아는 게 있다면 듣고 싶기도 했다. 당연히 미카엘이 왜 자꾸 나를 예전에 만난 적이 있는 것처럼 구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도 빼놓지 말아야 했다. 그 밖에도 미카엘에게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진지하게 미카엘과 문답을 시작했다. 물론 그는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에는 침묵한 채 그냥 내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미카엘은 결국 입을 열었고, 나는 그가 말을 이을수록 굳어지는 얼굴을 감출 수 없었다.

***

콰앙!

어느 순간부터 창밖에서는 시끄러운 소음이 울리고 있었다. 좁은 골목까지 밀려든 굉음에 고막이 다 얼얼했다. 어젯밤에 언뜻 봤을 때도 도시가 많이 망가진 것처럼 보였는데 더 때려 부술 게 남았는지, 소리는 그치지 않고 연신 이어졌다.

결국 늦은 저녁 무렵, 미카엘과 나는 루시오를 데리고 하룻밤 묵었던 빈집을 빠져나왔다. 창밖을 주시하던 미카엘이 ‘장소를 옮겨야 할 것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밖에서 쉴 새 없이 울리는 요란한 폭발음이 신경 쓰이던 참이라 나는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신 아르테스는 물러나라!”

“이 땅은 교활한 야만족의 것이 아니야…!”

막연히 추측했던 것처럼 폭동이라도 일어난 게 맞는지, 거리에는 광분한 인간들이 벌떼같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를 힘겹게 비집고 움직이다가, 하마터면 인파에 떠밀려 넘어져서 그 많은 사람의 발밑에 깔릴 뻔했다. 하지만 다행히 사람들로 만들어진 벽을 뚫고 그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나를 붙잡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들자, 앞서 걷던 미카엘이 루시오를 안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아까 낮에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무심코 얼굴을 굳혔다. 하지만 겉으로는 되도록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다시 표정을 편 뒤 몸을 바로 세웠다. 그런 뒤, 곧바로 미카엘의 손을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내 손을 놓지 않고 오히려 더 힘주어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인파를 뚫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렇게 손을 잡고 폭동의 현장에서 벗어났다. 혹시 또 통행국으로 이동해 다른 세계로 옮겨 가지는 않을까 싶었는데, 미카엘은 그러지 않고 비교적 조용한 곳에 세워진 공용 마차를 잡았다. 설마 이렇게 위험한 곳에 좀 더 있으려는 건가 싶어 눈매를 찌푸리며 그에게 물었다.

“여기에 더 머물려고요?”

“아니. 다른 장소에 있는 비밀 관리국의 문을 이용할 거야.”

하지만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나는 미카엘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에 올랐다.

예전에 내가 린 도체스터의 몸으로 44세계에 갔을 때도 일반인은 사용할 수 없고 아는 사람만 아는 샛길인 비밀 관리국이 몇 군데 있었던 기억이 났다. 미카엘도 스텔라 출신이니 그런 걸 잘 아는 모양이었다.

나를 먼저 안쪽 좌석에 앉힌 뒤 미카엘도 루시오를 데리고 마차에 올라탔다. 나는 달리기 시작한 마차 안에서 옆에 앉은 미카엘을 힐끔 훔쳐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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