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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43)화 (243/300)

“맛있어?”

“응.”

“그래, 많이 먹어….”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나는 다람쥐처럼 볼록해진 뺨을 오물거리면서 빵을 먹는 루시오를 보고 뻘쭘하게 말을 아꼈다. 미카엘은 재주도 좋게 정말 어디선가 먹을 걸 구해 왔다. 하지만 정작 그는 배를 채울 생각이 없는지, 루시오와 나한테만 빵을 먹으라고 주고 본인은 손도 대지 않았다.

루시오는 오랜만에 깨어나서 그런지 여전히 기운이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래도 허기가 지긴 한 듯이 작은 손을 움직여 부지런히 빵을 뜯어 먹었다.

나는 그런 루시오의 모습을 보면서 머쓱함을 느꼈다. 꼭 예전에 체스휘가 미뉴엘이 고열로 앓았을 때 혼자 과하게 반응했던 것처럼, 나도 한순간 루시오가 잘못된 줄 착각해서 괜한 소란을 피웠던 게 좀 민망했다.

그래도 다행히 루시오의 상태는 생각보다 괜찮아 보였다. 밥도 굶고 내내 잠만 잤던 탓에 몸에 힘이 빠져서 기운 없이 비실거리는 것 말고는 특별히 눈에 띄는 이상은 없는 듯했으니, 일단은 한시름 놔도 될 것 같았다.

“메이드 누나도 배고파? 이거 먹을래?”

내가 말없이 힐끔거리는 걸 보고 오해했는지, 루시오가 아직 잠기운이 묻어난 나른한 손짓으로 나한테 빵이 든 종이봉투를 밀어 줬다. 난 됐으니까 그냥 너 혼자 먹으라고 말하려다가 문득 나도 어제부터 거의 공복 상태라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거절하지 않고 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미카엘 쪽을 쳐다보았더니 그는 아까처럼 팔짱을 낀 채 창가에 기대서 있었다.

나는 루시오에게 궁금한 게 있었지만, 일단 밥은 편하게 먹이자 싶어서 조용히 있었다. 하지만 루시오가 먼저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까 메이드 누나, 마리네즈하고 싸웠었지? 저택에서 빠져나오기 전에.”

루시오는 창가에 서 있는 미카엘을 향해서도 작게 턱짓했다.

“저 형도 같이.”

루시오는 가방에 숨어 마차의 뒷좌석에 타고 있던 상태에서도 우리가 실랑이하는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싸웠다기보다는, 그냥 대화를 좀 한 거야.”

“무슨 대화를 그렇게 살벌하게 해?”

“살벌하기는. 그냥, 의견이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아무튼 별건 아니야.”

어린애한테 사실은 서로 목숨을 건 결투를 할 뻔했다고 솔직히 말하기도 좀 그래서 에둘러 말을 돌렸다. 루시오는 내 말을 믿는 건지 믿지 않는 건지 알 수 없는 투명한 눈으로 나를 말똥말똥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내 놓고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걸 보면, 어쩌면 어느 쪽이든 딱히 상관없어서 뜨뜻미지근하게 구는 건지도 몰랐다. 나는 이왕 루시오의 입이 열린 김에 말을 꺼내자 싶어서 그에게 물었다.

“루시오…. 그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그날 널 마차에 태우기 전에 마리네즈가 너한테 뭐라고 말했어?”

내 물음에 루시오가 빵조각을 입에 물고 우물거리면서 나를 쳐다봤다.

“넌 강제로 마차에 탄 게 아니었잖아. 마리네즈의 말을 순순히 따른 이유가 뭐야?”

레드포드 저택에 있는 아이들은 저택 밖으로 외출하는 경우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좀 이상한 일이었지만, 지금까지 나도 특별히 의식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리네즈는 루시오를 밖으로 내보내려고 했다. 더군다나 그냥 낮에 잠깐 같이 외출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저택의 문이 닫히기 직전인 그 한밤중에 루시오 혼자 마차에 태웠다. 또 단순히 그냥 마차에 곱게 태운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가방 안에 몰래 숨기기까지 했으니, 아무리 어린애라고는 해도 수상한 걸 느끼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마리네즈가 이대로 레드포드에 있으면 죽을 거라고 했어.”

루시오는 대수롭지 않은 말을 하듯이 천천히 눈을 깜빡이며 마찬가지로 느릿한 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가 지나가듯이 가볍게 내뱉은 말은 결코 쉽게 흘려들을 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적합자로 판정받아서 최후에 선발되든 그렇지 않든, 어차피 결국은 다 죽을 거라고 하던데. 하지만 밖에 나가면 그런 위험한 일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들었거든.”

루시오의 말을 듣고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빵 조각을 떨어뜨렸다.

“뭐? 선발되든 선발되지 않든 어차피 다 죽을 거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선발되면 빈 세계로 혼자 들어가야 한다고 쳐도, 선발되지 않으면 그냥 저택에 들어오기 전에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야?”

“마리네즈의 말로는, 무덤에 갈 거라고 그러던데? 무덤은 죽은 사람이 묻히는 곳이니까, 그 말이 그 뜻인 거 아냐?”

무덤?

나는 소년의 입에서 나온 익숙한 단어에 무심코 미카엘을 쳐다봤다. 확실히 소년이 말한 것처럼, 마리네즈가 말한 무덤이란 건 의미 그대로 죽은 사람을 묻는 장소를 지칭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루시오의 말을 듣는 순간, 정확히 형용하기 어려운 기묘한 느낌이 뒷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믿었던 라파엘 님께서 무덤지기나 되었어야 마땅한 폐품 인간에게 개인적인 흥미를 가지신 걸 알면 경악하실 겁니다.”

갑자기 44세계의 인간… 라파엘과 카드리고의 집사가 린 도체스터를 비하하는 의미로 꺼냈던 말이 떠올랐다.

“미카엘 도련님의 방입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카드리고 가문의 차남이셨지요.”

“그리고 린 도체스터 님처럼 카타콤 출신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뿐만이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있는 미카엘도 나와 같다고 말했다. 나한테 무덤이니 카타콤이니 하는 말을 꺼낸 건 그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양육자와 아이들이 없던 기묘한 레드포드 저택에서 체스휘가 내게 했던 말도 그와 비슷했다.

“린 씨는 같은 무덤 출신이면서 모르는 게 많네요.”

루시오의 말을 듣고 나자 머릿속에서 뭔가가 연결될 듯 말 듯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빵을 먹다가 사레가 들린 루시오가 기침을 터트렸다. 그 소리에 한창 이어지던 내 상념도 끊어졌다.

“빵이 퍽퍽해서 목이 메는데 마실 건 없어?”

“기다려 봐. 물 가져다줄게.”

“물? 아까 준 물은 맛이 이상해.”

“그거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어.”

보통의 어린아이라면 지금 본인이 처한 낯선 상황에 겁을 먹거나 주눅이 들 만도 한데, 루시오는 상당히 신경 줄이 두꺼운 모양이었다. 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은 모습으로 못마땅한 듯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루시오에게 물을 가져다주기 위해 내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을 때, 창가에 서 있던 미카엘이 먼저 움직였다. 부엌 쪽으로 가는 걸 보니 나 대신 물을 떠 올 생각인 것 같았다. 아까부터 미카엘은 루시오와 내 대화에 끼어들 생각이 없다는 듯이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벽 뒤로 사라진 미카엘을 보다가 다시 루시오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네 말처럼 저택에 있는 아이들이 다 위험한 거면, 가서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 줘야 하는 거 아니….”

하지만 무심코 말을 잇다 말고 도중에 멈칫했다. 가만, 오히려 마리네즈와 단체 쪽에서 이걸 노리고 거짓말을 한 걸 수도 있잖아? 저택에 있는 애들을 자기 발로 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말이다.

“나도 애들한테 얘기는 한번 해 봤는데, 아무도 안 믿더라고.”

일단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루시오의 말에 현혹된 아이들은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얼른 그의 말에 수긍했다.

“하긴, 마리네즈의 말 말고는 다른 증거도 없는 소리인데 바로 믿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지.”

“지금 나한테 생각이 짧다고 돌려 말하는 거야?”

“그… 런 의미는 아닌데?”

앗, 그게 그렇게 해석될 수도 있는 건가?

루시오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날 쳐다봤다. 난 오해라는 눈빛으로 그런 그를 마주했다.

“뭐, 사실 나도 마리네즈의 말을 완전히 믿은 건 아니야.”

루시오는 내 의도를 더 추궁할 마음은 없는지, 이번엔 그냥 넘어가겠다는 듯한 얼굴로 또 얕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그런데 이 녀석 참… 반응이 볼수록 애늙은이 같네? 처음에는 쌍둥이인데도 두 소년의 성격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루시오와 루스카는 닮은 부분이 있었다.

“솔직히 내가 저택 밖으로 나온 건 메이드 누나 때문이지.”

“뭐?”

그런데 이 녀석이 지금 뭐라는 거지? 나는 다음 순간 덧붙여진 예상치 못한 루시오의 말에 흠칫 놀라서 이맛살을 구겼다. 그런 내 반응을 본 루시오가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내려놓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메이드 누나, 지난번에도 그렇고 왜 나랑 약속한 걸 자꾸 잊은 것처럼 그래? 혹시 이제 와서 딴말할 생각인 건 아니겠지? 난 메이드 누나가 그렇게 염치없는 거짓말쟁이는 아닐 거라고 믿어.”

그는 귀여운 얼굴로 가차 없이 제법 야멸찬 독설을 날렸다.

“메이드 누나가 나한테 약속했잖아. 저택 밖으로 나가면 루스카랑 같이 살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난 그 말만 믿고, 무서운 것도 꾹 참고 혼자 이렇게 저택 밖으로 나온 건데….”

멍하니 루시오의 말을 듣다가 나는 그만 탁자를 쾅 내려친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엠버, 너였냐…?! 루시오를 꾀어내서 레드포드 저택 밖으로 꺼내 온 일등 공신이 마리네즈가 아니라 엠버였어?!

“그래서 이제 밖에 나왔으니까 약속 지킬 거야?”

나는 루시오의 동그란 눈을 마주한 채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루시오에게 한 엠버의 말이 진심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책임져야 할 입장이 된 나로서는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그게….”

그렇게 내가 곤란해하고 있을 때, 미카엘이 물이 든 컵을 들고 와서 테이블에 소리가 나게 내려놓았다. 그러는 중에 미카엘과 시선이 한번 마주쳤는데, 그는 꼭 내가 난감해하는 걸 즐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술을 살짝 비뚤게 기울이고 있었다. 꼭 나한테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것을 보고 나는 더욱 열이 오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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