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41)화 (241/300)

삐삑!

하지만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기도 전에, 갑자기 책상 쪽에서 정체 모를 소리가 울렸다. 내가 소장을 이 꼴로 만든 건 아니었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연히 흠칫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책상 옆에 부착된 버튼에서 불이 깜빡이고 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방금의 그 이상한 소리는 저기에서 난 것인 듯했다.

- 소장님.

다음 순간, 낯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 죄송합니다. 오늘 확보한 표본의 검진 결과에 대해 잠깐 보고드릴 게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책상 쪽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에 나는 숨소리를 죽였다.

- 혹시 제가 잠깐 방문해서 직접 말씀드려도 될까요? 지금 에이브릴과 함께 계십니까?

소장실이 너무 외진 곳에 처박혀 있다 싶더니, 아무래도 평소에는 저 버튼 단말기 같은 것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 소장님?

하지만 재차 이어진 말에도 이쪽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자, 누구인지 모를 사람도 의아해진 것 같았다.

- 자리를 비우신 건가…. 아니면, 혹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건 아니지요?

이상함을 느꼈는지, 건너편에서 미심쩍은 목소리가 잇따랐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발밑에 미동 없이 널브러져 있던 소장이 몸을 미약하게 바르작거리며 ‘으으’ 하는 작은 신음 소리를 흘렸다.

뭐야, 죽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미카엘이 무심하게 들어 올린 구둣발로 소장의 머리를 짓밟았다. 사뭇 우아하게 느껴지기까지 한 매끄러운 움직임과 달리, 광대뼈나 코뼈… 혹은 치아가 으스러지는 것 같은 소리가 우득거리며 울렸다. 그 직후, 소장의 움직임과 신음이 다시 완전히 멈췄다.

나는 입을 벌린 채 서늘한 얼굴을 한 미카엘을 쳐다봤다.

서, 설마 이번엔 진짜 막타인가? 지금 내 눈앞에서 소장의 명줄이 완전히 끊어진 건지, 아니면 그냥 기절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미카엘이 원흉인 건 이제 부정할 수 없었다.

- 소장님…!

그런데 이쪽의 수상한 기척을 포착했는지, 이번에는 무언가를 확인하듯이 좀 더 빠르게 다시 한번 소장을 부르는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무언가를 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미카엘의 팔을 낚아챘다. 그러고는 단말기에서 ‘지금 바로 소장실로 가겠다.’는 말이 이어지는 것을 등 뒤로 흘리며 미카엘과 함께 급히 방에서 빠져나갔다.

“아니, 미카엘 카드리고 씨…!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다행히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소장실이 있는 층에 멈춰 있었다. 그래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바로 탑승할 수 있었다.

“설마 소장을 죽이는 게 여기에 온 목적이었어? 그래도 이렇게 대책 없이 갑자기, 아니, 그럼 최소한 나한테 미리 말이라도 해 주던가!”

나는 아래층으로 향하는 버튼을 연타로 누르며 미카엘에게 마구 따져 물었다.

젠장, 왜 하필 지금 소장을 저 꼴로 만들어 놓은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지금 소장실에 안 왔을 텐데! 하필 이상한 타이밍에 미카엘의 범행 현장을 목격해서 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미카엘은 나를 난처하게 만든 장본인 주제에, 혼자만 담담했다. 그는 방금 무슨 일을 했냐는 듯이 눈썹 한 올 까딱하지 않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나한테 잡힌 팔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마주했다.

“지금 어디 가?”

“어딜 가긴, 일단 사건 현장을 벗어나야 될 거 아니야!”

뻔한 걸 묻는다 싶어서 미카엘을 노려봤다.

“당신, 진짜 처음부터 이러려고 여기에 왔어? 아니, 그럼 좀 더 은밀하게 완전 범죄를 저질렀어야지, 왜 나한테도 들키고, 다른 사람한테도 들키고, 이렇게 허술하게 일 처리를 하는데?”

너, 좀 더 빠릿빠릿하게 일 처리 할 수 있는 녀석 아니었어? 너 때문에 내가 지금 아주 난감하고 당황스럽단 말이다!

나는 미카엘에게 한 번 더 따지려다가, 이후에 지나가듯이 내뱉어진 그의 말을 듣고 입을 꾹 다물었다.

“만약 조금 전에 문을 열고 들어온 게 다른 사람이었다면 적어도 첫 번째 목격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사라졌겠지.”

“…….”

아무렇지도 않게 살벌한 소리를 하는 미카엘 때문에 괜히 목덜미가 스산해졌다. 그래서 아직도 붙잡고 있던 미카엘의 팔을 놓고 닭살이 돋은 듯한 목을 문질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소장실에서 자연스럽게 이 사람을 데리고 나왔지? 그냥 나 혼자 그 자리를 벗어나도 되었던 건데 말이다. 게다가 정말 미카엘의 말처럼, 그의 입장에서는 사건 현장에 재수 없게 나타난 나를 바로 해치워서 증인을 인멸해 버리는 게 가장 나았던 거 아닌가?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고, 나도 지금에서야 굳이 미카엘과 내가 공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 그의 만행을 덮어 주려고 애쓸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아니지. 내가 범인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

그러다가 나는 문득 깨달은 사실에 헛숨을 내뱉었다.

생각해 보면, 방금 소장실에 연락한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은 소장이 나를 여기로 부른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혹시라도 소장을 저렇게 만든 범인이 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가만, 그럼 지금은 내가 괜히 더 수상한 짓을 한 거 아닌가? 그냥 나도 우연히 사건 현장을 목격한 척, 놀라서 다른 사람들을 불렀어야 하는 거 아닌가? 아니지, 그냥 그런 척하는 게 아니라 우연히 목격한 게 사실이잖아…!’

갑자기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 게 가장 좋았던 건지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골치가 아파졌다.

하지만 이미 나와 미카엘은 함께 사건 현장에서 도망치듯이 벗어난 뒤였고, 때마침 엘리베이터도 중간층에 도착했다. 이렇게 된 이상 일단은 이 자리를 완벽하게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우리가 빨랐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급히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소장을 찾아온다고 했던 사람과는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이동했다.

이제는 내가 팔을 잡아끌고 있지 않으니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가 버리면 될 텐데, 미카엘은 여전히 내 뒤를 따라왔다. 그러다가 나는 갑자기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어서 미카엘을 돌아보며 숨죽인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싶어서 묻는 건데…. 소장뿐만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전부 다 죽일 생각인 건 아니겠지… 요?”

만약 미카엘이 소장을 저런 꼴로 만든 게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스텔라의 명령 같은 거라면, 이 시설의 괴멸 같은 걸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어정쩡한 물음에 미카엘이 잠깐 나를 아무 말 없이 쳐다봤다.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을 마주하자, 문득 모골이 송연해졌다. 미카엘은 꼭 지금 내가 꺼낸 말을 현실로 옮길지 말지, 속으로 가늠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마침내 미카엘이 입을 열었다.

“글쎄, 그래도 상관은 없지만….”

바로 그 순간, 건물에 경보음 같은 것이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았다. 미카엘도 차가운 시선을 빈 복도 쪽으로 미끄러뜨렸다.

“지금 상황에서는 번거로울 것 같긴 하군.”

벌써 다른 사람이 소장을 발견했나? 젠장, 쓸데없이 빠르잖아.

그때쯤 되자 나도 ‘에라, 모르겠다.’ 싶어졌다. 그래서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 그만두고 루시오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루시오가 있는 방의 문은 잠겨 있었다. 그걸 보니 안에 루시오와 함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문을 딸 만한 실핀 같은 것도 없고, 힘으로 해결하자니 엠버의 솜뭉치 몸으로는 가당치도 않았다. 그래도 내가 끙끙거리는 걸 본 미카엘이 바로 문고리를 뜯어 줘서 금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루시오의 몸과 연결된 장치를 모조리 떼어 냈다. 그러고는 침대에 누운 루시오를 번쩍 들어 올리려다가… 소년이 꿈쩍도 하지 않는 걸 발견하고 미카엘을 잡아끌었다.

“뭐 해요? 빨리 들어요.”

내 말에 미카엘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그런 그를 한 번 더 닦달했다.

“어차피 이렇게 됐으니까, 일단은 루시오를 데리고 여기서 나가자고요.”

어차피 미카엘은 내가 진짜 엠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지금의 내 행동을 굳이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소장이 그렇게 되고 나서 경보가 울렸으니까, 곧 루시오를 확인하러 다른 사람들이 올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앞으로는 보안이 더 강해질 것 같다는 확신이 나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일단 오늘 밤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지만, 루시오가 여기에 있어서 좋을 게 없을 것 같다는 직감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변함이 없었다.

미카엘은 이번에도 그저 나를 한번 가만히 쳐다보았을 뿐, 별다른 말 없이 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나는 방에서 나서기 전에, 루시오를 가볍게 안아 든 미카엘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당신. 어제 나한테 했던 얘기도 그렇고, 지금 이곳에 대해서도 나보다 잘 알고 있는 거 맞죠?”

손아귀에 세게 힘을 준 채 미카엘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며 덧붙여 말했다.

“밖으로 나가면 당신이 아는 거 나한테도 다 말해 줘. 어쨌든 지금은 같이 움직이고 있는데, 나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 싫으니까.”

물론 미카엘에게 나한테 모든 걸 말해 줄 의무는 없을지도 몰랐지만, 더 이상 지금처럼 답답한 건 싫었다.

“원래는 여기에서 좀 더 정보를 알아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급하게 나가는 건 다 당신 때문이잖아?”

나와 마주한 미카엘의 눈에 한순간 기묘한 광채가 스쳐 지나갔다.

미카엘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대로 그것이 긍정의 의미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루시오를 데리고 미카엘과 나는 함께 정체 모를 소장의 연구 시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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