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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39)화 (239/300)

“공로?”

하지만 그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는 소장의 말에 공감하지 않는 듯이, 무미건조하게 다물려 있던 입매를 가늘게 비틀었다. 그리고 이어진 싸늘한 음성에, 소장은 스스로를 공치사하던 것을 잠깐 멈추고 마주한 사람을 찡그린 눈으로 응시했다.

“태아가 작은 세포일 때부터 오염된 검은 공기에 노출시켜, 훗날 빈 세계에 내던지는 제물로 삼는 걸 보통 공로라고 하나?”

아무래도 이 한밤중의 낯선 손님은 인류를 위한 위대한 업적을 추앙하기는커녕 비난하고 싶은 듯했다. 소장은 마뜩잖게 턱을 쓸어내리며 그래도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뭐…. 자네도 단체 소속이니, 이런 일에 반대하는 건 알겠지만 말이네.”

중앙 세계 기준으로 2543년에 처음으로 세계와 세계를 잇는 문이 나타났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혼란스러워졌으나,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는 공허만이 존재하는 ‘빈 세계’의 존재였다.

생물체가 살지 않는 빈 세계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해 원인을 알 수 없게도 점차 영역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결국은 그와 근접한 세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빈 세계에 고인 독기 어린 오염된 검은 공기가 생물체를 살아갈 수 없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었다.

다행히 여러 세계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끝에, 빈 세계의 검은 공기에 내성이 있는 체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중 한 명을 시험 삼아 빈 세계에 들여보내자, 놀랍게도 뚫려 있던 문이 닫히고 빈 세계와의 연결이 끊어졌다.

하지만 비정기적으로 나타나는 빈 세계에 그때마다 적합자로 분류된 사람을 희생양 삼아 집어넣을 수는 없었다. 중앙 세계의 인권 단체에서 윤리적인 문제를 제기해 비인도적인 행위를 전폭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하여 최대한 도의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위대한 과학자들이 모여 적합자들의 유전자를 따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선책으로 빈 세계에 들여보낼 인간을 세포에서부터 배양해 직접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물론 이 또한 수많은 질타와 비난을 받았으나, 인류의 위기 앞에서 결국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묵인하며 순응했다.

“보아하니 자네는 18세계에 보내는 아이들을 동정하는 쪽인가? 단체의 대다수는 그 아이들을 악마라며 혐오하는 분위기던데 특이하군.”

더욱 확실한 결과물을 내기 위해, 실험은 일찍이 연구물이 태아 형태일 때부터 빈 세계의 검은 공기에 적응시키는 방향으로 진척되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험체가 연구를 버티지 못해 죽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대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었다.

“알다시피 그 아이들은 어미의 태에서 나고 자라는 게 아니라, 유전자 조합으로 만들어져 배양되는 가짜 인간들, 즉 모조품들이지. 그러니 애초에 연민을 느낄 이유가 없다네. 나야 물론 소중한 연구물인 아이들을 아끼긴 하지만, 솔직히 엄밀히 따져서 그들은 공장에서 찍어 낸 말하는 인형이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그래도 여전히 잡음은 존재했다. 특히 스스로를 혁명 단체라 일컫는 극성 과격파들은 예전부터 아예 대대적인 선전 활동을 벌이며, 빈 세계의 문을 닫을 아이들을 육성하는 일 자체를 반대해 왔다.

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진정으로 소신을 갖고 움직였던 것도 다 옛일이었다. 소장이 이 연구를 총책임지게 된 대략 20여 년 전 전부터 혁명 단체의 수뇌부는 이 연구 시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들이 오늘 18세계의 레드포드 저택에서 빼돌린 성장한 표본을 이렇게 소장에게 데려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내가 말한 내 업적이란 건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닐세. 그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경이로운 일인데… 이것 참, 외부인에게 이런 중대한 비밀을 함부로 발설할 수도 없고.”

소장은 자신의 놀라운 치적에 대해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지러운 듯이 괜히 입맛을 다셨다.

그의 눈에서는 어느새 반짝이던 빛이 살짝 흐려진 상태였다. 눈앞의 낯선 청년에게 잠깐 흥미가 동하긴 했지만, 그새 마음이 한결 식어 버렸다. 원래 소장은 연구 외의 다른 일에는 끈기가 별로 없는 편이었다. 이 이름 모를 청년이 그가 연구하는 것과 같은 분야에 관심이 있는 듯해 잠깐 상대할 마음이 들긴 했으나, 자신의 대단한 실적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닫고 나자 흥이 조금 식어 버리려고 했다.

“위대하고 경이로운 일?”

하지만 이 정체 모를 침입자는 놀랍게도 소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당신이 하고 있는 그 영생에 대한 연구를 말하는 거라면, 그만큼 부질없는 짓거리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도 조용한 방 안에 울린 건 조소 어린 서늘한 음성이었지만, 소장은 그 내용에 놀라 남자의 반응을 신경 쓰지 못했다.

“자네…! 그런 말을 누구에게 들은 건가? 혹시 내 후원자의 아들이나 손자… 뭐 그런 건가? 오…. 그러고 보니 내 후원자 중 자네와 닮은 외양을 가진 사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네만! 그럼 혹시 연구 과정이 궁금해서 오늘 자네를 대신 이곳에 보낸 건가?”

그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혼자 결론을 내리고서는 흥분에 찬 얼굴로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럼 이럴 게 아니라, 같이 배양실에… 아니지, 이번에 자네가 직접 데려온 표본이 있는 곳으로 가 보지 않겠나? 마침 이번에 가벼운 실험을 해 보려고 했는데 말이네.”

소장은 오랜만에 어린애처럼 들뜬 상태로 한달음에 맞은편 자리로 달려가, 남자의 팔을 덥석 붙들었다.

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막무가내로 남자를 일으켜 세우려 하던 소장이 멈칫했다. 남자를 응시하는 소장의 눈에도 의혹이 내비쳤다.

“아니, 그런데 자네…. 뭔가 좀….”

그냥 눈으로 보기만 해서는 알아차릴 수 없던 기묘한 감각이 맞닿은 손에서부터 스물스물 배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정확한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웠지만, 이것은 오랫동안 빈 세계를 연구해 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위화감이었다. 더불어 빈 세계의 오염된 검은 공기와 주기적으로 접촉해 본 자만이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아주 희미한 거북함이었다.

“호오… 호오오! 아니, 아니, 이럴 수가…!”

마침내 중대한 깨달음을 얻은 소장의 눈에 번들거리는 광채가 발발했다.

원래대로라면 침입자의 정체를 깨닫는 순간 몸에 소지한 비상벨을 눌러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들이 그토록 몰래 베끼고 훔쳐내려 노력한 최상위 세계의 산물을 처음으로 직접 본 순간, 소장은 온몸을 휘감는 전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의 눈에는 두려움이 아닌 희열로 인한 광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 그 몸을 내게 보여 주게…!”

소장은 손에 움켜쥔 남자의 팔을 더 강하게 옥죄며 다급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죽었지? 몇 번이나 그 육체에서 다시 살아났나?”

“…….”

“기억은 온전하고? 응? 분명 내가 알기로 자네 같은 자들은 육신이 죽어서 새로운 영혼을 받아들여도 모로스처럼 그 사실을 망각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앞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점점 더 싸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지 못한 듯이, 소장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의자에 앉은 남자를 계속 조급하게 닦달해 댔다.

“아! 어깨도 좀 보여 주게. 분명 자네도 그걸 몸에 심었겠지? 응? 어서 나한테도 보여 주… 커헉!”

바로 그 순간, 소장의 입에서 급박하게 숨이 넘어가는 듯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어느새 그는 억센 손에 목을 붙잡힌 채 테이블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목을 부러뜨릴 듯이 세게 움켜쥔 손아귀에 점점 더 강한 힘이 가해졌다. 소장은 숨통이 조여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한 상태로 꺽꺽거렸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고 했을 텐데 쓸데없이 혀가 길어.”

한기 어린 차가운 목소리가 잘 갈린 칼날처럼 위에서부터 뚝 떨어져 목덜미를 베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가뜩이나 기분도 더러운데, 더 불쾌해지게.”

그때서야 소장은 위기감을 느끼고 더듬더듬 손을 움직여 웃옷의 안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비상벨은 남자의 손에 넘어가 개박살이 나고 말았다. 그는 허튼짓하지 말라는 듯이 소장의 머리를 테이블에 쾅 소리가 나게 한 번 더 처박았다. 그 한 번의 타격만으로도 두개골이 깨지는 느낌이 들면서 눈앞이 핑핑 돌았다.

“생각보다도 머리가 나쁜가? 내가 지금 그쪽을 얼마나 많이 봐주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그 거슬리는 손부터 하나 없애고 다시 대화를 시작할까?”

머리 위에서 울리는 서슬 퍼런 목소리에 소장은 서둘러 고개를 내저었다. 발이라면 또 몰라도 손이 없다면 더 이상 연구를 계속할 수 없게 된다. 그것만은 생겨서는 안 될 일이었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 짜증나게 굴지 말고.”

소장이 숨을 헐떡이면서 급히 대답하고 나서야 그의 목을 짓누르던 손의 힘이 아주 조금 약해졌다.

“그 배양실에서 만들어낸 것들. 방금 네가 공장에서 찍어낸 인형이라고 말한 것들의 수명은 어떻게 되지?”

“수, 수명?”

하지만 뒤이은 남자의 질문은 다소 뜬금없어서, 소장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얼빠진 목소리로 반문했다. 그러자 소장의 목을 붙든 손아귀에 또다시 강하게 힘이 들어갔다.

“그, 글쎄….”

위협을 느낀 소장이 서둘러 머리를 굴렸다.

“중간에 다른 외부적인 원인으로 죽지 않고 자연사할 때까지 살아남았을 경우를 말하는 건가? 그럼 대략, 대략… 스무 살 안팎이 아닐까? 아무리 길어도 스물다섯은 넘지 않을 걸세….”

가까스로 대답했으나, 그를 짓누른 남자에게서는 잠깐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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