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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37)화 (237/300)

“어, 괜찮아. 네 말처럼 소장님이 저러는 건 익숙하니까, 뭐….”

나는 적당히 세라의 말에 아는 척 응수하며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젠장, 엠버의 몸으로 있으면서 날이 갈수록 그나마 능력치가 늘어가는 건 체력이 아니라, 모르는데도 아는 척 연기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하기야, 미카엘은 그마저도 재주가 없다는 듯이 나를 비웃었지만.

세라도 나와 함께 걸으며 내 얼굴을 살폈다. 재잘재잘 신나게 떠들던 아까의 모습과 달리 세라는 잠깐 아무 말도 없이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래서 혹시 세라가 이제야 나한테 위화감을 느낀 건가 싶어서 문득 경계심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는 의심이 아닌 걱정이 담겨 있었다.

“에이브릴. 그런데 너, 진짜 몸은 괜찮아? 지금 생각해 보니까, 내가 너무 들떠서 내 얘기만 하느라 널 신경 써 주지 못한 것 같아. 소장님 말대로 확실히 이렇게 오랜만에 온 김에 너도 검사를 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야 네가 그런 걸 싫어하는 걸 아니까 일단 소장님 앞에서 말을 돌린 거긴 하지만.”

“아니야, 조금 피곤한 것 말고는 진짜 괜찮아. 그냥 잠을 못 자서 그래.”

엠버가 개복치 몸을 가지고 있는 걸 친구인 세라도 알아서 그런가? 그녀는 내가 괜찮다고 말했는데도 탐탁지 않은 눈으로 나를 훑어봤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럼 이제 어떻게 할래?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어?”

그걸 나한테 물어봤자…. 일단은 나도 상황을 좀 보면서 생각해 보는 게 좋을 듯한데.

물론 건물 내부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과 루시오에게 가 보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았지만, 이대로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기에는 아까부터 몸이 축축 처졌다. 확실히 연약한 엠버의 몸으로는 요 이틀 동안의 일이 무리가 된 모양이었다. 게다가 어젯밤에는 거의 날밤을 새우기까지 했으니….

그렇다고 해서 호기심을 앞세워 몸 상태가 완전 멀쩡하다고 거짓말하면 세라가 같이 시간을 보내자고 할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건 좀 위험부담이 있었다.

나는 일단 핑계를 대서 세라를 떨어뜨리려고 입을 열었다.

“글쎄, 어떻게 할까? 일단 방에 가서 조금 쉬든가….”

“배양실에 먼저 안 가 보고?”

그런데 어물거리며 말을 흘리는 나를 보고, 세라가 조금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오자마자 바로 거기부터 갈 줄 알았더니.”

뭐야, 배양실? 거긴 또 뭐야? 그보다 세라,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이었어? 그럼 처음부터 아예 그렇게 말을 꺼내지, 왜 괜히 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거야?

“정말 몸이 많이 안 좋은 거야? 그럼 진짜 소장님한테 말해서 검사부터….”

“아, 하긴! 네 말대로 오랜만에 돌아왔으니까 먼저 배양실부터 좀 둘러보고 싶기도 하네?”

세라가 말하는 그 검사라는 게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닐 것 같아서 그냥 노선을 변경했다. 원래 병원이나 치과 검사 같은 것도 꺼려지기 마련이잖아? 엠버도 원래 그 검사라는 걸 싫어했다고 하고.

처음에는 세라의 의심을 사면 귀찮아질 것 같아서 맞장구를 친 거지만, 일단 말을 내뱉고 나니 정말 그 배양실이라는 게 뭔지 궁금하기도 했다. 꼭 지금 자세히 살펴보는 게 아니더라도, 일단 위치를 알아 두면 나중에 나 혼자 다시 가 봐도 되는 거니까.

다행히 세라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금방 의혹 어린 표정을 지우고 웃었다.

“그렇지? 그럼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들렀다가 가. 쉬는 데 방해될 수 있으니까, 나도 지금은 내 방으로 갔다가 점심 먹기 전에 네 방으로 다시 찾아갈게. 참, 네가 쓰던 방은 그대로 놔뒀어. 청소는 해 뒀으니까 그냥 바로 사용해도 돼.”

그런데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세라는 나와 함께 가지 않고 여기서 헤어질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엠버를 잘 아는 세라와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는 게 부담스럽던 참이라, 나한테도 잘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반갑게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말고 멈칫했다.

잠깐, 생각해 보니 여기서 헤어지면 내가 좀 곤란하지 않나? 난 길을 모르잖아?

세라와 함께 여기까지 걸어오는 동안 길을 외운다고 외웠지만, 그건 로비에서 소장실까지 이어진 길이었다. 세라가 말한 배양실이 어디인지, 또 원래 엠버가 사용했다는 방이 어디인지는 당연히 몰랐다.

아까 보니까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로 복도가 만들어져 있던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건물 안에서 미아가 될 수도 있었다.

뭐야, 좋다가 말았네. 나는 어떻게 세라에게 자연스럽게 길 안내를 하게 만들까 하다가, 하는 수 없이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먼저 세라에게 권유했다.

“그러지 말고 너도 같이 가자.”

“나도? 난 배양실 별로 안 좋아하잖아.”

“그래도.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래. 응?”

“너도 참. 알겠어, 그럼 그냥 같이 가자. 대신 나는 안에는 안 들어갈 거야.”

세라는 내 입에 발린 말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웃으면서 내 손을 잡아끌었다. 세라가 이렇게 티 없이 웃는 것도 처음 보고, 또 그녀와 이렇게 친밀하게 손을 잡고 걷는 것도 처음이라 자꾸만 나도 모르게 몸을 흠칫거리게 되었다. 하지만 애써 자연스럽게 행동하려 애쓰며 나도 그녀를 따라 호호 웃어 보였다.

세라 언니, 이제 보니 친한 사람한테는 물렁한 감 같은 여자잖아? 그동안 까칠한 모습만 보다가 갑자기 말랑 보송한 모습을 보려니까, 진짜 적응이 안 되네. 그보다 세라 언니의 본명이 뭐더라? 헤, 헤스…. 생각날 듯 말 듯한데…. 인물 프로필을 볼 수가 없으니 영 불편하네. 분명 세라보다 훨씬 긴 이름이었는데. 헤스티아? 헤스티…. 아, 생각났다!

“헤스티니아. 배양실에 다녀온 이후에 우리, 루시오한테도 잠깐 들러 보면 안 돼?”

“루시오? 그게 누구… 아, 오늘 저택에서 데려온 그 아이?”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세라와 함께 있을 때 아예 루시오가 있는 장소까지 알아보려고 슬쩍 말을 꺼냈다. 그러자 세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 안 될 건 없지만…. 굳이 왜 가 보려고?”

“그냥, 내가 데려왔으니까 조금 신경이 쓰여서.”

내 말에 세라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별다른 물음 없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소장님한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지금 다시 가서 물어볼까?”

“그냥 얼굴만 잠깐 볼 건데도 허락을 받아야 하나?”

세라의 얼굴에 어린 고심하는 빛이 한결 더 강해졌다. 그러다가 이내 세라가 나를 보면서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래, 어차피 잠깐이니까 그냥 우리끼리 몰래 갔다 오자.”

세라는 생각보다 말이 잘 통했다. 나는 아까보다 한결 가벼운 기분으로 세라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목적지가 다르니 이번에는 소장실에 갈 때와 다른 길을 이용했는데, 역시 구조가 복잡해서 이곳에 처음 오는 사람은 절대 혼자 다니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에이브릴, 네가 없는 동안 나 혼자 얼마나 심심했는지 알아? 너 아니면 같이 놀 사람도 없고. 그나마 너 대신 배양실에 가끔 들러 보긴 했는데, 너도 알다시피 난 그쪽 일은 적성에 안 맞아서…. 오죽하면 소장님도 내가 배양실에 들락거리면 애들 성장이 느려진다고 탐탁지 않아 했다니까? 일손이 부족하니까 그렇다고 아예 손을 뗄 수도 없고 말이야. 그래도 네가 와서 이제는 좀 안심이 된다. 앞으로 며칠은 여기에 머문다고 했지? 그동안 배양실에도 자주 들러 줘. 물론 나하고 같이 있을 때는 제외하고, 남는 시간에!”

그렇게 걷는 동안, 잠깐 멈췄던 세라의 재잘거림이 또다시 시작되었다.

아까 세라가 마중을 나왔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그녀는 정말 엠버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기야, 나중에 세라가 레드포드 저택에 들어간 가장 이유도 엠버 때문이었으니까….

나는 찝찝, 떨떠름한 눈으로 몰래 세라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아, 벌써 다 왔네. 들어가 봐, 에이브릴.”

그러다가 마침내 배양실이라는 곳에 도착했는지, 세라가 먼저 내 손을 놔주며 말했다.

“금방 나올 거지? 난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다들 지금 네 얼굴을 보면 엄청 반가워하겠네. 그래도 인사는 적당히 하고 빨리 나와.”

아까 했던 말처럼, 세라는 정말 이 안에 나와 함께 들어가지 않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나는 호기심과 의혹을 느끼며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복도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공기가 밀려와 온몸을 감쌌다. 꼭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나 LP판을 틀어 놓은 듯이, 곡명이 뭔지 모를 빛바랜 음악 소리가 평온하게 귓가에 흘러들었다. 꼭 갓 빨래를 마친 후에 풍기는 섬유 유연제의 냄새 같은 부드러운 향기가 코를 스쳤다.

나는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배양실이라는 이름대로, 이곳은 무언가를 자라나게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환경을 조성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리고… 이 안에서는 수많은 인기척이 느껴졌다.

세라의 말을 듣고 여기가 단순히 세포나 식물 같은 걸 기르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이곳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배양실인 걸까?

나는 기묘한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배양실의 내부를 문가에서 보이지 않게 일부러 분리해 놓은 듯이, 방의 한가운데에는 두꺼운 커튼이 장막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그 안쪽에서 희미하게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의 근원지가 있는 곳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커튼을 손으로 걷어 올렸다. 그리고 마침내 시야에 드러난 광경에 나도 모르게 무심코 얼굴을 굳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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