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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32)화 (232/300)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요. 우리가 뭐 엄청 친한 사이도 아니고, 내가 그럴 이유가 어디 있다고…. 그냥 이러다가 나까지 엮여서 피해를 입을까 봐 그러는 거지.”

어쨌든 나도 나한테 모순적인 부분이 있다는 건 전부터 인지하고 있던 사실이었다.

미래의 체스휘에게 그렇게 데여 놓고도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과거의 체스휘와 미카엘에게도 마냥 독하게 굴 수 없는 게 내 생각에도 좀 이상했다. 하지만 막상 그걸 미카엘의 입으로 지적당하고 나자 속이 좀 껄끄러워졌다.

“참, 그러고 보니까 아까 난 왜 막은 거예요? 당신이 말리지만 않았어도 루시오를 밖으로 꺼내 주려고 했는데.”

그래서 지금의 대화에서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대충 꺼낸 건 아니었다. 잠깐 잊고 있던 광경을 떠올리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방금 그 근육 덩치 놈, 생각할수록 진짜 웃기잖아? 애를 몇 번이나 ‘물건’이라고 말하지를 않나, 가방에 불편하게 웅크려 있는 애를 꺼내서 상태를 살피기는커녕 계속 그 안에 처박아 두려고 하지를 않나.

마리네즈와 루시오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레드포드 저택 밖으로 나온 건 루시오의 의지였던 듯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솔직히 루시오가 마리네즈에게 속은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미카엘이나, 그의 영혼이 섞인 미래의 체스휘도 가끔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기상천외한 짓을 벌일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 어린애를 건드린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던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점점 더 루시오의 행방이 염려되기 시작했다.

가만…. 수상한 단체 놈들이 저택의 아이를 데려다가 뭘 할 생각인지 궁금하긴 한데, 이대로 루시오를 그놈들 손에 들려 보내도 되는 걸까? 아이들을 악마의 씨앗이라고 부르며 저택에 숨어 들어와서 서슴없이 자폭까지 시도하는 사이코들이 널린 그런 위험한 곳으로?

나는 굳은 눈으로 꽉 닫힌 방문을 한번 힐끔 쳐다봤다.

어차피 주말 자정이 지나 레드포드 저택의 문은 다시 잠겼을 테고, 따라서 마리네즈도 현재 상황에서 외부에 연락할 수단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건, 루시오가 바로 그녀의 눈앞에서 우리와 함께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저택에 남은 마리네즈로서는 섣불리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메이드장과 총괄 집사도 대우해 주던 미카엘이 나와 함께 사라졌으니까…. 원래의 계획처럼 나한테 저택에서 일어난 일을 뒤집어씌우는 것도 어렵지 않을까?

나는 슬쩍 눈을 돌려 다시 미카엘을 쳐다봤다.

지금 다른 방에 있는 남자처럼, 앞으로 이동할 장소에 또 다른 운반책이 있을지는 따로 확인해 봐야 했다. 하지만 아까처럼 가방 안을 확인하는 순간들만 잘 넘기면, 이후에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에 루시오를 빼돌려도 들키지 않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아까와는 조금 다른 눈으로 미카엘을 진지하게 뜯어봤다.

이 남자가 원하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서로에게 어느 정도 협조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가방 안에 잠든 것처럼 미동 없이 누워 있던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자 마음이 불편하고 또 약간 초조해졌다. 역시 안색이 별로 좋지 않던데…. 일단 그 덩치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이라도 노려서 루시오의 상태가 괜찮은지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머릿속으로 심각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내 머리에 손이 올라왔다.

지금 이 방에 있는 사람은 나와 미카엘뿐이었고, 고로 당연히 이건 미카엘의 손이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으나, 미카엘은 나를 보며 태연하게 눈을 깜빡였다.

“악마의 화원에 들어갔다가 나온 이후로 후유증 때문에 머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게 사실이었나.”

“뭐라고요?”

“단체 소속이면서 나보다 모르는 게 많은 건 둘째치고, 그걸 들킬 만한 일도 너무 서슴없이 하는데…. 악마의 화원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이 백치가 된 선례가 있었던가.”

미카엘이 평온한 말투로 지껄인 말은 나를 어처구니없게 만들었다.

이 녀석… 지금 날 돌려 까는 건가? 지금 날 바보 취급하는 것 같은데?

물론 미카엘도 완전히 심각하게 내 상태를 문제로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고, 뜻밖에도 그 안에는 의외의 장난기도 엷게 묻어 있었다.

당연히 나는 엠버가 아니니까 아는 정보에 한정이 있는 데다가, 가끔 그걸 잊고 부주의하게 굴기도 한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미카엘에게 이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내가 원래의 엠버보다 바보 같아 보인다는 말인가?

하지만… 하지만 엠버라고 해서 다를 거라고 누가 그러던가! 어쩌면 엠버도 원래 말단이라 아는 게 별로 없는 걸 수도 있잖아! 게다가 원래 엠버가 덜렁거리는 성격이라고 모리나에게 다 들었는데!

“뭐야, 남 이사 머리가 정상이든 아니든! 이유가 뭐든 간에 가방 안에 불편하게 숨어 있는 어린애를 꺼내 주고 싶어 하는 게 뭐가 이상해요?”

나는 미카엘의 손을 짜증스럽게 쳐 냈다.

“엠버 그린로스 양이 속한 곳에서는 저택의 아이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을 텐데.”

미카엘은 순순히 내게서 손을 뗐다.

“거짓말을 하려거든 좀 더 똑똑하게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그게 무슨 소리예요? 거짓말이라니?”

“달리 말하면 연기를 하는 데에는 별로 재능이 없는 것 같다는 뜻이기도 하고.”

연달아 고막을 파고든 미카엘의 말에 나는 까닭 모를 기이함을 느끼고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미카엘 카드리고 씨,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몰라?”

그리고 다음 순간, 내 시야에 비친 남자의 모양 좋은 입술에 실선 같은 가느다란 미소가 떠올랐다.

“당신이 엠버 그린로스인 척하는 걸 말하는 건데.”

헉….

미카엘이 지나가듯이 무심한 어조로 읊조린 말에 나도 모르게 놀라서 숨을 들이켰다. 무방비 상태에서 훅 치고 들어온 불시의 기습에 놀라도 너무 깜짝 놀라서 심장이 다 철렁거리는 느낌이었다.

꼭 사과는 빨간색이고 오렌지는 주황색이지, 따위의 말을 하듯이 단조롭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말이 나한테 끼친 영향력은 작지 않았다.

미카엘의 말처럼 나는 거짓말을 썩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의 말을 듣고 경악한 심경을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내고 말았다. 바로 코앞에 있던 미카엘도 그걸 목격한 것 같았다.

“아니, 엠버 그린로스가 아니라 에이브릴 그린로스라고 해야 하나? 물론 그린로스도 진짜 성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방에 들어오자마자 내게 밀쳐진 상태로 벽에 기대서 있던 미카엘이 이번에는 먼저 걸음을 떼서 나한테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반대로, 나는 그와 좁혀진 거리를 다시 벌리기 위해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레드포드 저택의 호화로운 방들과 달리 이 여관방은 좁았고, 미카엘은 내 경계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금방 내 등이 반대쪽 벽에 닿게 되었다.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는데요?”

나는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불쑥 나를 찔러 들어온 미카엘의 말에 놀라서 당황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이상한 말이지? 내 귀로 듣고도 당최 이해를 못 하겠네? 와, 와아,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말까지 막 더듬고 있네?”

여기서 어떻게 반응하는 게 자연스러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나도 이렇게까지 동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미카엘이었고, 그는 여전히 내 속을 관통할 것 같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저기요, 손님? 레드포드 저택에 오래 머무시더니 사고 회로도 이쪽 사람들한테 물드셨나 봐요? 내가 엠버 그린로스가 아니라니, 그럼 누가 엠버 그린로스인데요? 혹시 내가 엠버 그린로스의 몸을 빼앗은 모로스라도 돼요? 와, 되게 참신한 생각이다. 하하하.”

내가 듣기에도 부자연스러운 웃음소리가 좁은 방 안에 울렸다.

하지만 미카엘은 나를 따라 웃지 않았다. 고개를 옆으로 비스듬히 기울인 그가 방금 내가 한 말을 입 안에서 혀로 굴려 곱씹듯이 천천히 되뇌었다.

“엠버 그린로스의 몸을 빼앗은 모로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

“…….”

“어쨌거나 내가 관심이 있는 건 이 껍데기가 아니라, 안에 든 알맹이니까.”

내 어깨 부근을 가볍게 툭 건드린 손가락이 꼭 피부가 아니라 심장을 예리하게 찌르는 것 같았다.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이 딱 붙은 상태로 식은땀이 배어난 손을 말아쥐었다.

아니, 평소에도 감이 좋은 남자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건 좀 진짜 소름이지 않나?

지금까지 이 몸으로 지내는 동안, 내가 진짜 엠버가 아닌 걸 알아차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원래의 엠버를 알고 있던 메이드장 제인이나 모리나 같은 사람들도 이런 식으로 나를 의심한 적은 없었단 말이다!

그런데 미카엘은 왜 내가 엠버가 아닐 거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지? 미카엘은 엠버를 그렇게 잘 알던 것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설령 위화감을 느낀다고 해도, 누가 이런 식으로 사람의 알맹이가 바뀌었을 거라고 의심을 해?

게다가 미카엘이 내 쪽을 가짜라고 확신하는 것도 이상했다. 나는 이 저택에서 미카엘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그가 이곳에서 처음 만난 엠버는 나였다. 그럼 설령 이상함을 느꼈다고 해도, 내가 아니라 진짜 엠버 쪽을 수상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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