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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30)화 (230/300)

물론 그 고민은 아주 잠깐뿐이었다. 자리를 옮기며 뒤돌아보니 우리를 태우고 여기까지 왔던 마차는 또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댕, 댕.

광장에 있는 시계탑에서 큰 종소리가 울렸다. 미카엘의 눈 색처럼 짙은 주홍빛 석양이 내린 호숫가에서 한가로이 모이를 쪼고 있던 비둘기들이 그 소리에 놀란 듯이 날아올랐다.

마차를 타고 떠나기 직전에 내가 본 레드포드 저택은 막 자정을 앞둔 한밤이었다. 반면에, 지금 이곳은 저택보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직 늦저녁의 노을을 대지에 드리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유동량이 꽤 많은 곳인 듯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활기차게 길을 오가는 모습이 퍽 정겨웠다.

지금까지 내가 와 본 적이 없는 다른 세계인 건 확실한데, 여기가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쪽이야.”

남자는 미카엘과 나를 데리고 여관처럼 보이는 건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고 바로 계단을 올라가는 걸 보니, 미리 잡아 둔 방이 있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근육을 괜히 키운 게 아닌지, 숨 한번 헐떡이지 않고 가방을 위층까지 옮겼다.

“뭐야? 여기까지 따라 들어오려는 거야? 우린 확인할 게 있으니까 형씨는 밖에서 기다렸으면 좋겠는데.”

마침내 방에 도착해 열쇠로 문을 따서 막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에, 석연찮은 남자의 시선이 미카엘에게 꽂혔다. 하지만 미카엘은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일 뿐, 남자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마침 옆방에서 나온 사람들이 우리를 힐끔 쳐다보고 지나갔다.

결국 또 내가 대신 미카엘을 대변해 말했다.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이미 아니까 같이 들어가도 상관없는데요.”

“뭐, 진짜? 네가 알려 줬어? 아무리 네가 영입 제안을 했다고 해도, 그런 중요한 사안을 외부인에게 함부로….”

“아니, 아니. 내가 알려 줬다는 소리는 아니었는데?”

남자가 대번에 사나운 눈초리로 나를 보기에 바로 덧붙였다. 남자는 그럼 어떻게 제삼자가 이런 중차대한 일을 아느냐는 듯이 의심 어린 눈으로 나와 미카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나는 살짝 찡그린 눈으로 미카엘을 슬쩍 쳐다봤다.

일단 내 짐작대로 말했지만,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아는 게… 맞겠지? 어차피 미카엘은 지금 남자의 말대로 얌전히 문밖에 서 있을 마음이 조금도 없는 듯하고, 그렇다고 해서 엠버가 입이 가벼운 여자로 오해받는 것도 불합리하니까….

나는 떫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저택에 있을 때 이 사람이 나한테 도움을 좀 줬어요.”

이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저택에서 내가 엠버의 몸으로 위험에 처했을 때 미카엘이 몇 번 구해 준 건 사실이었으니까.

“도움을 주다니, 뭘?”

“그냥 이것저것….”

“이것저것?”

“그냥 그런 게 있어요. 아무튼, 그러다 보니까 이런저런 것도 자연스럽게 알게 돼서….”

“이런저런 거?”

그런데 남자가 계속 말꼬리를 잡듯이 찝찌름한 어투로 되물었다. 나는 그게 못마땅해서 도리어 눈을 치켜떴다.

“아니, 대충 그렇구나 하면 되지, 뭘 그렇게 자꾸 꼬치꼬치 따져 물어? 그보다 언제까지 여기에 이렇게 세워 둘 건데요? 봐봐, 지금 지나간 사람도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아까부터 우리를 힐끔거리는 투숙객들이 신경 쓰였다. 미카엘과 엠버는 상당히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었고, 아직 이름을 알지 못하는 남자도 근육질의 몸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 같았다.

그래서 빨리 안으로 들어가려고 좀 세게 말하자, 남자가 이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뒤이어 그가 고개를 숙여 내 귀에 대고 작게 속닥거렸다. 나는 귓가에 와 닿는 뜨끈한 숨결에 질색했다.

“에이브릴, 너 저택에서 연애했냐? 저 자식, 사실은 네 이거지?”

남자가 나한테 새끼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이 구겨진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혹시 미카엘도 이 헛소리를 들었나 싶어서 슬쩍 그의 눈치를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웃는 건지 찡그린 건지 헷갈리게 살짝 찡그린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미카엘과 시선이 마주쳤다.

“뭐야,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지도 못해? 하여튼 네 친구나 너나, 똑같이 까칠해서는. 어쨌든 둘 다 들어와. 확실히 복도는 대화하기에 적절하지 못한 것 같으니까.”

작게 혀를 찬 남자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카엘과 나를 둘 다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러고 나서 문을 잠근 그가 방에 있는 테이블 위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같이 온 사람이 이미 알고 있다니, 나도 더 따지지 않고 그냥 확인하겠어. 에이브릴, 너는 나중에 제대로 설명해.”

남자는 급한 듯이 바로 손을 움직였다.

잠시 후 가방이 열리고, 그 안에 있는 소년이 시야에 드러났다. 어쩐지 줄곧 지나치게 조용하다 했더니, 루시오는 잠들기라도 한 것처럼 미동 없이 눈을 감은 채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음, 확실하군. 이렇게 멀쩡한 상태로 빼 오기 쉽지 않았을 텐데 고생했네.”

그런데 어쩐지 소년의 혈색이 아까 레드포드 저택 안에서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보다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혹시 몸이 불편한가? 하긴, 저 좁은 가방에 숨어서 내내 다리 한번 펴지 못하고 여기까지 옮겨졌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좋아, 이대로 목적지까지 옮기면 되겠어.”

그런데 남자는 소년을 가방 밖으로 꺼내지 않고, 그대로 다시 입구를 닫았다.

뭐야? 왜 그냥 가방을 닫아? 설마 그냥 이대로 계속 방치하려고?

나는 남자의 몰상식한 짓거리에 기함해서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때, 옆에서 누군가 내 팔을 붙잡았다. 미카엘이었다.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는 사이, 남자가 가방의 잠금장치를 완전히 채우고 내게 말했다.

“지금은 시간이 늦어서 통행국이 닫혔을 거야. 그래서 원래는 나 혼자 내일 새벽에 이동할 예정이었는데, 아까 들어 보니 에이브릴 너도 보고할 게 있어서 저 남자를 데리고 동행한 거라고 했지? 중간 경유지를 몇 번 거쳐서 이동할 거지만, 개중에는 낙후된 곳도 있으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지금 여기서 사.”

“…….”

“그리고 네가 직접 물건을 갖고 올 줄 몰라서 두 사람 방은 따로 안 잡아 뒀는데… 어떻게 할래? 어차피 하루니까 그냥 여길 같이 쓸래? 바닥은 내줄 수 있는데.”

그런데 선심 쓰는 듯한 남자의 권유에 갑자기 미카엘이 나를 잡아당겼다. 나는 남자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며 루시오가 있는 가방을 구겨진 눈으로 노려보다가, 졸지에 미카엘에게 휙 끌려갔다.

“뭐야, 왜… 이래요?”

무심코 미카엘에게 따지려다가,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나를 지그시 응시하는 걸 보고 주춤했다. 앞에 있는 남자가 불편한 눈으로 밀착한 우리를 쳐다봤다. 확실히 뭔가를 오해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이를 악물면서 말했다.

“그렇게까지 폐를 끼칠 수는 없으니까… 이쪽은 알아서 할게요.”

“그래, 그럼…. 난 피곤해서 쉬어야겠으니까 나가 봐. 방은 최대한 가까운 데로 잡고.”

나는 미카엘에게 붙들려서 방을 나서다가, 결국 미련을 떨치지 못해 다시 걸음을 멈추고 남자를 뒤돌아보았다.

“저 가방, 제가 가지고 있으면 안 돼요?”

“이걸? 왜?”

“그냥 저 큰 걸 혼자 보관하려면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서…?”

“됐어, 원래 내가 할 일인데. 다른 사람한테 맡기는 게 더 불안해.”

하지만 역시나라고 해야 할지, 남자는 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뒤돌아 문 쪽으로 걷다가, 다시 한번 남자를 뒤돌아보았다.

“저기.”

“왜 또?”

“급하게 나오느라 돈을 안 가지고 왔는데 좀 빌려주면 안 돼요?”

“…….”

그렇게 남자에게 돈을 좀 뜯어내고 방에서 빠져나온 후에, 나는 분노 어린 손길로 미카엘의 멱살을 확 붙잡아 당겼다.

“당신 뭐야? 아까부터 계속 무슨 짓이야? 도대체 나랑 뭐 하자는 건데? 어?”

미카엘은 나한테 멱살을 잡혀 놓고도 화를 내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나를 힐끗 쳐다본 미카엘이 오히려 고개를 좀 더 숙여,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쉿. 동료가 문 앞에서 엿듣고 있어.”

나지막한 목소리와 숨결이 동시에 귓바퀴를 간질이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면서 목을 움츠렸다. 미카엘의 말이 사실인지, 등 뒤에 있는 문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필 그때, 누군가가 계단을 올라왔다. 그 사람은 바짝 붙어 서 있는 우리 두 사람을 보고 멈칫하다가, 곧 못마땅하게 구시렁거리며 복도를 지나갔다.

“쯧, 하여간 요즘 젊은것들은.”

미카엘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잠시 멈췄던 걸음을 옮겼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 상태로 미카엘에게 이끌려 계단을 내려갔다.

“방 하나요.”

“침대가 두 개 있는 방으로 드릴까, 아니면 하나 있는 방으로 드릴까?”

“혼자 쓸 거니까 하나요.”

“여기 2층 네 번째 방 열쇠. 식당은 8시까지 이용 가능하고 후불이에요. 목욕은….”

카운터에 있던 사람이 설명을 끝마치기도 전에 나는 미카엘을 붙잡고 계단을 다시 빠르게 올라갔다.

“자, 그럼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수작질인지 어디 한번 말해 봐요.”

그리고 방에 도착하자마자 미카엘을 벽에 밀어 넣고 그에게 따져 물었다.

“당신, 왜 저택에서 날 데리고 여기까지 왔어? 원하는 게 도대체 뭐야?”

처음에는 나름대로 미카엘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굴었지만, 이 상황이 점점 이해가 안 돼서 속이 답답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 인내심도 쉽게 바닥이 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다 털어놓고 허심탄회하게 말해 봅시다. 사람을 계속 무섭게 협박하기만 하지 말고요. 예?”

미카엘은 내가 밀친 대로 벽에 기대선 채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협박?”

그런데 내 말이 미카엘의 흥미를 꽤 끌었는지, 이내 시야에 비친 그의 입술이 가느다란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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