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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28)화 (228/300)

귀를 기울이자, 아주 작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내가 있는 침대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뒤따랐다.

나는 그 시점에서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몸을 움직이면 내가 깨어 있다는 사실을 들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고개를 돌려 확인할 수는 없었다. 그 대신 나는 엠버의 소지품인 총과 칼을 숨겨 둔 이불 속으로 소리 없이 손을 움직였다.

“이봐, 일어나.”

하지만 내가 그 무기들을 당장 사용할 일은 찾아오지 않았다.

이 목소리는….

“마리네즈?”

나는 바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 시간에 왜 마리네즈가 내 방까지 찾아왔지? 루시오가 죽은 이후로 방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고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나 해서 와 봤더니, 약속 시간이 다 되도록 혼자 잠이나 자고 팔자 좋군.”

더군다나 지금의 마리네즈는 어제 봤을 때와 달리, 원래처럼 까칠하고 냉담한 얼굴을 한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따라와. 어제 일은 계획에서 좀 어긋났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은 예정대로 마저 끝내야지.”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마리네즈의 모습에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자세히 살펴보기도 전에 그녀는 이미 내게서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마리네즈의 뒷모습을 찌푸린 눈으로 보다가 침대에서 벗어났다.

그나저나 이 야심한 시각에 이렇게 당당하게 내 방에 직접 들어오다니, 어제의 사건으로 룸메이트인 모리나가 죽은 걸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제는 어떻게 된 거예요? 원래 계획하고 다른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까 전부 다 오늘 안에 처리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할 것 같아서, 일정을 조금 앞당겼어.”

마리네즈와 나는 방에서 빠져나가 함께 어두운 복도를 걸어갔다.

추측했던 대로, 어제 모로스가 출몰한 일 자체는 마리네즈의 계획 중 일부가 맞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어제 죽은 루시오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입 밖으로 직접 꺼내지는 않고, 나보다 조금 앞서 걷고 있는 마리네즈를 힐끔 살펴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모습만 보면 어제 별관에서 소년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부짖던 광경이 모조리 꿈인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지금은 또 어디를 가는 거지?’

저택의 아이 중 하나를 밖으로 빼돌리는 일을 마저 하려는 건가? 하지만 그럼 아이들이 자고 있는 곳으로 가야 할 텐데, 마리네즈는 지금 건물 밖으로 나가 후미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잠시 후, 마리네즈가 목적지에 도착한 듯이 걷는 속도를 늦추었다.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사람이 우리를 향해 기다렸다는 듯이 아는 척하며 인사했다.

그는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레드포드 저택을 오갈 때마다 반드시 만나야만 하는 마부 존이었으니까.

“그럼 부탁할게.”

“예, 원래 이렇게 늦은 시간에는 곤란합니다만…. 양육자님의 부탁이시니 이번만입니다.”

미리 오간 얘기가 있었는지, 마리네즈와 존은 짤막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뒤 존이 먼저 자리를 옮겨 마부석으로 이동했다. 마리네즈는 반대쪽으로 걸어가 마차의 뒷문을 열었다.

그 안에는 미리 실어 놓은 듯한 짐가방이 있었다. 뭐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이즈를 봐서는 옮기는 물건이 제법 큰 모양이었다.

그런데 마리네즈가 이상한 행동을 취했다. 그녀는 마부석을 힐끗 곁눈질로 확인한 뒤, 꼭 무슨 신호라도 주듯이 짐가방을 두 번 가볍게 두드렸다. 그러고는 잠금장치를 풀어 가방 문을 살짝 열었다.

“루…!”

나는 그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무심코 놀라서 입을 벌렸다가, 막 튀어나올 뻔한 이름을 급히 되삼켰다.

상자 속에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는 건 다름 아닌 루시오였다. 하지만 그는 어제 내가 봤을 때처럼 죽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 멀쩡히 살아서 눈을 뜨고 있었다.

내 경악한 얼굴을 본 루시오가 싱긋 웃으며 쉿, 하고 조용히 하라는 듯이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뭘 그렇게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 원래 이런 약인 거 알고 있었잖아.”

마리네즈가 놀란 기색이 역력한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나는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방금보다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효과를 직접 본 건 처음이라… 좀 놀라서요.”

“하긴, 나도 처음에는 이 약이 진짜 잘 들을지 긴가민가했으니까.”

마리네즈도 그럭저럭 내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감쪽같이 죽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약이라니. 게다가 진짜 하루가 지나니까 이렇게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잖아. 분명 숨도 멎고 심장도 멈췄었는데 말이야. 그 돌팔이가 그래도 가끔은 쓸 만할 때가 있어.”

어제 내가 보는 앞에서 피를 흘리며 죽어 있던 루시오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다니, 내 두 눈으로 보고도 놀라웠다. 처음에는 혹시 모로스인 게 아닌지 의심스러웠지만, 마리네즈의 말을 들어 보면 그건 아닌 듯했다.

“어제 별관에 그 손님이 등장했을 때는 정말 놀랐다니까. 꼭 뭘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쳐다봐서….”

사람을 하루 동안 죽은 것처럼 가사 상태로 만드는 약이라니…. <로미오와 줄리엣> 속에서 줄리엣이 먹은 약이 이랬을까? 하지만 이런 게 실제로도 가능한 거였어?

마리네즈의 말처럼 콘라드는 가끔씩 진짜 명의 같을 때가 있었다. 기복이 너무 심해서 문제긴 하지만.

“루시, 내가 먼저 한 말 잘 기억하고 있지?”

“응.”

“그래, 목적지에 도착하면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거야.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잠깐만 안에서 눈 감고 있어.”

마리네즈는 손을 뻗어 루시오의 머리를 한번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나는 잠깐의 작별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을 묘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마리네즈가 단체의 지령을 받아 밖으로 내보내려는 아이는 루시오였던 모양이다. 게다가 상황을 보아하니 뜻밖에도 마리네즈가 강제로 납치하듯이 빼돌리는 게 아니라, 루시오와도 이미 이야기가 된 상태인 듯했다.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그림과 너무 달라서 그런가? 평온해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이 왠지 좀 기이하게 느껴졌다. 일단 당연히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던 소년이 이렇게 살아서 저택을 나가는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말이다.

이런 식으로 루시오를 일부러 죽은 것으로 처리한 건, 혹시 있을지도 모를 추격을 피하기 위해서인가?

마리네즈는 짧은 인사를 끝마친 뒤 다시 가방을 잠갔다.

“혼자 보내는 거예요?”

이후 마차의 문까지 닫는 마리네즈를 보고 물었다.

“출발해.”

마리네즈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앞에 있는 마부에게 말했다.

나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마차를 보며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지금 레드포드 저택은 아주 조용했다. 어제의 사건이 있고 나서 저택의 사람들은 더욱이 몸을 사리며, 특히 해가 진 이후부터는 방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내가 루시오를 조용히 저택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돌릴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마리네즈는 왜 굳이 내 방까지 와서 나를 여기로 데려온 거지?

그 순간, 돌연 내 허리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바짝 닿아 왔다. 나는 조용히 숨소리를 죽였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역시 이대로 놔두자니 거슬려서 말이야.”

고요한 밤바람에 실려 온 마리네즈의 목소리가 내 귀 옆에서 울렸다.

오염된 검은 공기에 잠옷 주머니에 꽂은 성수 꽃이 시들면서 마지막으로 그윽한 향을 뿜어냈다. 마리네즈가 내게 바짝 다가와 허리에 칼을 겨눈 탓에, 그 향기는 두 배로 짙게 느껴졌다.

“어제 일로 너 정도는 쉽게 죽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명줄이 길었나 봐.”

마리네즈의 말을 듣고, 나는 그녀가 일부러 내게 계획을 하루 앞당긴 것을 어제 알려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 조만간 이곳을 떠나야 하지만 마음을 바꿨어. 저택에 남아서 좀 더 하고 싶은 게 생겼거든.”

“…….”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내가 앞으로 저택에 편하게 있으려면 이번 일의 진짜 배후는 너인 걸로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마리네즈가 지껄이는 개소리를 듣고, 억눌린 숨을 천천히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지금 날 죽이면 질투에 미친 마리네즈가 엠버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고 할걸요?”

“지금 날 걱정해 주는 거니?”

내 말에 마리네즈가 가소롭다는 듯이 작은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 저기, 소각장 보이지? 네 시체는 저기서 바로 태워 버릴 거니까. 넌 죽은 게 아니라 도망간 걸로 처리할 거야. 어제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바로 다음 날 실종되었으니, 내일 점심쯤이면 네가 범인과 연관되어 있다고 소문이 쫙 나지 않을까?”

‘내 메이드들이 그런 부분에서 좀 유능해.’ 하고 덧붙이며 마리네즈가 말을 이었다.

“뭐, 날 의심하는 사람이 일부 있을지도 모르지만…. 소중한 아이를 잃고 슬픔에 잠긴 사람을 대놓고 추궁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어?”

하고 싶은 말을 다 끝냈는지, 마리네즈가 내 몸을 따갑게 누르고 있던 칼을 고쳐 잡았다. 나는 여전히 눈앞에 있는 마차에 시선을 고정한 상태로 마리네즈에게 경고했다.

“당신이 지금 그걸로 날 찌르면, 나도 방아쇠를 당길 거예요.”

“뭐?”

철컥.

손에 들고 있던 총의 잠금장치를 풀자 작은 소리가 우리 둘 사이에 울렸다. 마리네즈는 그제야 내가 총구로 자신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너 언제….”

잠깐 침묵하던 마리네즈가 이내 분개한 듯이 이를 악물고 읊조리는 소리가 낮게 고막을 긁었다.

“그보다 조금 전부터 마차가 멈춰 있는데, 가서 저것부터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어?”

나는 눈앞에 멈춰 선 마차를 보며 마리네즈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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