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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26)화 (226/300)

퍼억!

키아아악…!

바닥에 넘어진 내 위로 살기 등등하게 덮쳐들던 모리나가 다음 순간 그녀를 가격한 강한 힘에 휩쓸려 나가떨어졌다. 곧바로 내 눈앞에 검은 피가 튀었다. 나는 단말마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허물어지는 모리나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죽었나? 하지만 그런 걸 확인할 새는 없었다.

“당신, 지금 여기서 뭘 하는 거예요?”

체스휘는 모로스에게 박힌 단도를 회수하지도 않고 빠른 걸음으로 내게 성큼 다가와, 내 어깨를 아프게 부여잡았다. 나도 모르게 눈매를 찌푸리며 작게 신음했으나, 체스휘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평소의 체스휘라면 내가 조금만 아픈 시늉을 해도 진작 사과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허락도 없이 이런 거친 손길로 나를 움켜잡는 일 자체가 없었겠지. 하지만 지금 그는 그런 게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이성적이지 못한 상태인 것 같았다.

“밖은 위험하니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했는데! 모로스가 출몰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어, 아니, 듣긴 들었는데….”

“그런데 왜 밖에 나와서 돌아다니고 있어? 죽고 싶어서 작정한 사람처럼…!”

엇…. 나는 앞에서 정신없이 퍼부어지는 체스휘의 가열 찬 목소리를 듣고, 입을 본드로 붙인 것처럼 냉큼 다물었다.

원래 평소에 온화한 사람이 한번 화를 내면 더 무섭다더니….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체스휘를 통틀어서, 그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열을 올리는 모습은 얼마 전에 마리네즈를 상대할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다정 존댓말 남주’의 키워드라도 달고 있을 것 같던 남자가 이렇게 예고 없이 말꼬리를 반토막으로 자르며 존댓말을 때려치운 걸 보면,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내가 애도 아니고, 당연히 내 의지대로 방 밖에 나와서 돌아다닐 자유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체스휘의 반응을 보니, 왠지 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체스휘는 당황한 나를 두고, 다소 거칠게 흐트러진 숨을 골랐다. 아무래도 격해진 감정을 삭이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일단 일어나요.”

그러다 이내 체스휘가 먼저 내 앞에 숙였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체스휘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체스휘가 모리나… 아니, 그냥 이제는 계속 모로스라고 하자. 체스휘가 모로스의 급소에 단번에 찔러 박은 단도를 뽑는 동안, 나는 아까 떨어뜨린 총을 주웠다.

“그건 엠버 씨 거예요? 설마 그것만 믿고 모로스가 있는 복도를 혼자 돌아다니고 있던 건 아닐 거라고 믿을게요.”

“왜… 요. 저 사격 잘해요.”

“그런 것치고는 방금도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 진짜요. 원래는 총알 한 발에 모로스 한 마리씩 막 잡고…. 아무튼, 백발백중이거든요?”

그러나 체스휘는 내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꼭 양치기 소년을 보는 듯한 눈빛에 나는 억울함을 느꼈다.

“아, 정말인데? 나 진짜 조금 전까지는 하나도 안 위험했는데?”

“그럼 방금은 왜 그랬는데요?”

“그건….”

차라리 체스휘가 다른 질문을 했다면 나도 내 명예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변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는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무심코 고개를 숙여 바닥에 널브러진 모로스의 사체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꽃에 둘러싸여 미동 없이 누워 있는 모로스는, 차라리 나를 공격할 때보다는 원래 내가 알고 있던 그녀의 모습과 더 비슷해 보였다.

나를 따라 시선을 옮긴 체스휘도 그때쯤에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했다. 그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나와 모로스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이내 모리나의 얼굴을 알아본 듯이 ‘아’ 하고 탄식 어린 소리를 내뱉었다.

“미안. 친구인 줄은 몰랐네요.”

체스휘가 곤혹감이 깃든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사과했다.

“아니에요.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오히려 도와줘서 고맙죠.”

하지만 나는 그냥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한 뒤, 모리나의 일을 신경 쓰지 않는 듯이 방금 주운 총에 남은 총알을 확인했다.

여기에 있는 동안 모리나와 정이 든 건 사실이지만, 내가 진짜 엠버도 아닌데 지나치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좀 그랬다.

“2호실 형, 이쪽은 다 처리했어요!”

그때, 복도를 타고 누군가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마주쳤던 남자 양육자의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조금 울리는 걸 보니 층계참에서 소리를 내지르는 듯했다.

“그쪽은요?”

“이쪽도 정리됐어!”

체스휘도 잠깐 주위를 둘러보더니 똑같이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체스휘의 말대로 어느새 주변이 조용해진 걸 보니, 우리가 있는 1층은 상황이 마무리된 듯했다. 지금까지 지나온 복도의 모로스는 내가 처리했고, 맞은편에서는 체스휘가 상황을 정리하며 여기까지 온 것 같았다. 게다가 더는 악취도 나지 않았다. 그러니 최소한 1층에 또 다른 모로스가 등장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럼 엠버 씨, 일단 방으로….”

체스휘는 나를 방으로 돌려보내려는 모양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내게 하려던 말을 끝맺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밖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울렸기 때문이다.

체스휘와 내 고개가 동시에 소리가 날아온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 소리는… 별관 쪽이야!’

게다가 고막을 찔러 든 목소리가 낯익었던 탓에, 나는 비명의 주인을 단번에 특정 지을 수 있었다.

“마리네즈?”

체스휘도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혼잣말을 읊조렸다.

나는 바로 가까운 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체스휘도 곧 정신을 차리고 내 뒤를 따라왔다.

“엠버 씨는 먼저 방으로 돌아가요!”

“앗! 잠깐…!”

제기랄! 내가 먼저 뛰기 시작했는데 왜 이렇게 간단히 추월당해 버리는 거야?!

심지어 체스휘는 순식간에 나와 거리를 벌려, 이미 저만큼 앞서 달려가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달리기 하나도 성에 차게 하지 못하는 엠버의 몸을 원망하며, 훌쩍 멀어진 체스휘의 뒤를 따라 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그곳에는….

“안 돼, 루시오…. 루시오…!”

울음 섞인 여인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터져 나와, 기묘한 침묵으로 가득 찬 실내의 공기를 어지럽혔다.

나보다 앞서 온 체스휘가 바닥에 못 박힌 듯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시야에 비친 건 그의 뒷모습뿐이라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눈에 봐도 그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상태였다.

나는 체스휘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마침내 눈앞에 드러난 광경에 다시금 멈춰 서고 말았다.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제발 눈을 떠, 루시오…!”

늘 당당하고 강한 모습만 보이던 마리네즈가 지금은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끊임없이 애걸하며 말을 걸고 있는 소년은 그녀에게 대답할 의사가 조금도 없는 것 같았다. 마리네즈의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바닥에는 불길한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나는 이 장면을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게임의 44회차가 시작되고 나서, 내가 가장 처음 처리한 별관의 보라색 방 사건 때. 그때 분명 나는 지금 보고 있는 것과 똑같은 환영을 목격했다.

지금처럼 붉은 꽃을 주위에 흩뿌린 채 죽어 있는 소년. 그리고 그 소년을 끌어안고 울부짖는 붉은 머리칼의 여인.

“…마리네즈.”

체스휘가 나보다 먼저 굳은 다리를 움직여 마리네즈에게 다가갔다.

나는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지금 저택의 곳곳에서 모로스가 출몰해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린 이 상황은 분명 마리네즈를 돕기 위해서 누군가 꾸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지금 이건 도대체 뭐지? 루시오가 왜 죽은 거야? 마리네즈의 계획은 또 어떻게 된 거고….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와 봤더니.”

그렇게 내가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 뒤쪽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흠칫 놀라 몸을 돌리자, 무언가를 한 손에 느슨히 움켜쥔 채 걸어오고 있는 미카엘의 모습이 보였다. 이어지는 미카엘의 걸음을 따라, 그의 손에 붙들린 정체 모를 검은 형체가 지이익, 하고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났다.

미카엘이 내 바로 옆까지 가까이 다가온 뒤에야, 나는 그것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굳은 눈으로 미카엘의 손에 붙들린 사람을 보았을 때, 미카엘은 내 얼굴을 내려다봤다.

곧이어 내 뺨을 건드리듯이 가볍게 훑는 손길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다.

“다쳤잖아. 내가 빌려준 건 별로 쓸모가 없었어?”

고요한 울림을 가진 나지막한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지금 우리가 속한 장소와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여전히 차분하고 건조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나는 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인 채 내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미카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느새 마리네즈의 흐느낌도 멎은 실내는 조용했다. 그녀에게 다가가던 체스휘 역시, 미카엘의 등장에 움직임을 멈춘 상태였다. 그는 아까보다 한결 얼어붙은 얼굴로 미카엘을 응시하며 물었다.

“그건… 모로스입니까?”

“아니.”

미카엘이 거기에 무심한 어조로 대답한 뒤, 제 손에 들린 남자를 내려다보았다. 미카엘의 손에 성의 없이 옷깃을 붙잡혀 끌려 온 건, 기절한 건지 죽은 건지 모를 남자였다.

“저택이 소란스러워서 쉴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귀찮은 일을 벌인 장본인을 찾아서 잡아 왔는데….”

다시 위로 들어 올려진 미카엘의 시선이 이번에는 마리네즈의 품에 안긴 소년에게 닿았다.

“죽었나?”

붉은 피로 젖은 옷과 바닥에 피어난 붉은 꽃들을 보면, 누구라도 소년의 죽음에 애도를 표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재미있군.”

하지만 이어진 미카엘의 반응은 역시 보편적이지 않았다. 그의 입술에 어스름한 초승달 같은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어울리지 않게 눈물로 얼굴을 흠뻑 적시고 있던 마리네즈가 그걸 보고 몸을 흠칫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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