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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24)화 (224/300)

응?

나는 콘라드의 약을 주머니에 챙겨 넣다가, 뒤이은 그의 말을 듣고 의아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닥터 콘라드는 이번 계획에 이제 더 참여 안 해요?”

뭐야, 왠지 뉘앙스가 좀 미묘한데? 꼭 자기는 이 약을 나한테 주는 걸로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말하잖아?

콘라드는 외알 안경을 벗어 옷에 대충 문질러 닦다가, 내 미심쩍은 시선을 받고 오히려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엠버 양이야말로 왜 당연한 질문을 하시지요? 제가 맡은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애초에 육탄전은 체질적으로도 맞지 않는 데다, 저처럼 섬세하고 우아한 사람은 험한 장면을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정서적 충격을 받는단 말입니다.”

“육탄전이 체질에 안 맞는 건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엠버 양은 패기와 근성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이 인간이, 괜찮긴 뭐가 괜찮아? 아무튼, 난 당연히 콘라드랑 같이 일을 도모해야 하는 줄 알고 오늘 의논을 좀 해 보려고 온 건데 그게 아니었단 말이야?

“그럼 설마 이렇게 연약한 저 혼자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란 말이에요?”

“저런, 생각보다 악마의 화원에 들어갔다 나온 후유증이 큰가 보군요. 이것도 기억이 안 납니까? 엠버 양 말고 한 명이 더 있습니다. 물론 저는 아니고요.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그런데 콘라드가 뜻밖의 소리를 했다.

“닥터 콘라드 말고 사이비… 아니, 동료가 한 명 더 있다고요? 그렇게 중요한 얘기를 왜 이제 해 줘요? 그게 누구인데요?”

“저도 모르는데요?”

“모른다고?”

“예, 모릅니다. 그게 원칙이거든요.”

콘라드는 슬슬 나를 상대하는 게 귀찮아진 듯이 괜히 부스럭부스럭 큰 소리를 내며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비밀이 새어 나가지 않으려면 같은 편이라도 속여야 할 때가 있는 법이죠. 그래서 레드포드 저택에 같이 잠입한 동료라도 서로의 신상을 전부 다 알고 지내는 건 아닙니다. 어쨌든 그쪽은 엠버 양보다 베테랑이니, 공로를 빼앗기고 싶지 않으면 분발하십시오.”

나는 콘라드에게 반쯤 쫓겨나다시피 연구실을 빠져나오며 인상을 썼다.

뭐야, 그럼 난 괜히 어렵게 머리 굴릴 필요 없이, 그냥 이 일에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거 아닌가? 더군다나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체를 숨기고 저택에 들어와 있는 또 다른 사이비 단체의 동료는 베테랑이라고 하지 않는가?

혹시 내가 뭘 잘못하면 엠버가 독박을 써서 혼자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 보니 눈치껏 이 일에서 발을 빼도 될 것 같았다. 일단은 내일 간만 좀 보다가 마리네즈 쪽에 가서 상황을 슬쩍 살펴보는 게 좋을 듯했다.

하지만 어디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만 되는 법이던가?

예상과 달리, 저택이 소란스러워진 건 바로 그날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

“으아악…!”

“꺄악!”

모두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을 시간. 어지럽게 뒤섞인 비명이 복도를 타고 내가 있는 곳까지 날아와 가차 없이 고막을 찔렀다.

그때 나는 모리나가 씻으러 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방에서 혼자 이불 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저게 무슨 소리지?’

결코 잘못 들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선득하고 날카로운 비명이었다. 나만 이상함을 느낀 건 아닌지, 방문 밖이 한결 어수선해졌다. 그나마 소리가 들려온 곳이 고용인들의 숙소와 거리가 가까운 것 같지는 않았다.

저택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올 만한 일이라면, 원인은 모로스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만약 그렇다면 양육자들이 나서서 해결해야 했지만….

‘지난번처럼 체스휘 말고 다른 양육자들은 또 전부 다 나 몰라라 하는 거 아냐?’

일전에도 엠버의 몸으로 있을 때 한번 비슷한 일을 겪었던 기억 때문인지, 갑자기 불길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나 양육자가 없는 다이안이 그때처럼 또 오늘이 주말이라고 잠깐 방 밖으로 나왔다가 위험한 상황에 처한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다이안 못지않게 개복치 별의 사랑을 받는 듯한 엠버의 몸을 이끌고 부랴부랴 방을 나서려 했다. 그런데 내가 막 문고리를 잡았을 때, 좀 더 큰 비명이 다시 한번 귀청을 때렸다.

한순간 소름이 끼쳤다. 지금 들은 비명은 아까보다 좀 더 많은 사람의 것이 섞여 있었다.

불현듯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건 바로 그때였다.

‘설마… 마리네즈?’

문득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어, 모리나 몰래 숨겨 놨던 총을 챙겨 들고 방을 뛰쳐나갔다. 바로 계단을 뛰어 올라가 5층의 검은 독수리 조각상을 확인했다. 생각했던 대로라고 해야 할지, 불과 한 시간 전쯤 조각상 밑에 넣어 둔 콘라드의 약은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지금의 사태가 마리네즈의 소행이라고 의심하는 건 억측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 육감이 이번 일과 마리네즈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묘한 확신을 갖게 했다.

나는 검은 독수리 조각상을 거의 팽개치고 또 서둘러 뛰어갔다.

‘계획의 실행일은 내달 초하루라며…! 아직 예정된 날짜가 되려면 하루 남았는데?’

“다이안!”

당연히 내가 상황 파악을 한 뒤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다이안의 방이었다.

“엠버?”

다행스럽게도 다이안의 방 주변은 조용했다. 다이안도 다친 곳 하나 없이 무사해 보였다.

“뭐야, 왜 그래? 이 한밤중에…. 그렇지 않아도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신경 쓰였는데, 무슨 일 있어?”

다이안도 밖의 소란을 들은 듯이 방 한가운데에 서 있다가, 갑자기 문을 벌컥 열고 쳐들어온 나를 보고 얼굴을 굳혔다. 나는 다이안에게 서둘러 물었다.

“혹시 누가 여기에 안 찾아왔었어요?”

“누구? 너 말고 아무도 온 적 없는데?”

“앞으로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도 절대 나오지 말고, 꼭 이 방 안에만 있어요! 제가 나가면 바로 문을 잠그고요. 누가 찾아와도 절대 문 열어 주면 안 돼요! 알았죠?”

나는 속사포 같은 당부의 말을 쏟아낸 뒤 다시 다이안의 방을 나섰다. 당연히 다이안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자세한 설명을 곁들일 시간이 없었다.

방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텅 빈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저택의 한편에서는 한참 시끄럽게 일이 진행되는 중인데 다이안의 주변이 이렇게 조용한 걸 보면, 아무래도 마리네즈의 목표물은 다이안이 아닌 듯했다. 그럼 그녀가 노리는 건 도대체 누구지?

게다가 분명 마리네즈가 나한테 사람들의 주의를 끌라고 한 건 내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이 상황은 도대체 뭘까? 왜 하루 일찍 일이 시작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혹시 계획에 뭔가 차질이 생겨서 갑자기 일정이 앞당겨진 건가?

어쨌든, 사실 확인을 위해서라도 마리네즈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어어, 잠깐만. 지금 그쪽은 길이 막혔어요.”

그런데 서둘러 움직이던 어느 순간, 어떤 남자가 나타나 내 앞을 막아섰다.

연한 슈크림색 곱슬머리를 가진, 다부진 육체에 비해 제법 앳돼 보이는 귀여운 얼굴을 한 남자였다. 꽤 눈에 띄는 외모인데도 얼굴이 낯선 걸 보니, 저택에서 처음 보는 사람인 듯했다. 그의 손에는 내가 전에 회랑의 악령을 처리할 때 사용했던 도끼 같은 게 들려 있었다.

나는 때마침 만난 사람에게 상황을 물었다.

“계속 저택이 시끄러운데 무슨 일이에요?”

“뻔하지, 뭐. 모로스 때문에요. 지금 다른 양육자랑 같이 처리하는 중이긴 한데….”

그런데 남자가 내 물음에 답하던 중에 또 비명이 울렸다. 이번에는 소리가 들려온 방향이 또 조금 전과 달랐다. 남자가 골치 아프다는 듯이 손으로 머리를 헝클였다.

“아, 이놈들이 왜 짜증 나게 한 마리씩 순차적으로 기어 나오고 난리지? 저기, 여기는 원래 평소에도 늘 이런 식이에요?”

“예?”

“아니, 원래 모로스는 한 달에 두세 번 정도만 드물게 나온다고 들었는데? 게다가 한 번에 한 마리씩만 나와서 간단히 처치하면 되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떼거리로 튀어나와? 사람 귀찮게.”

뭐야, 이 사람. 저택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나?

“항상 오늘 같은 건 아니긴 한데….”

“그래요? 아무튼, 내가 기대하던 양육자 생활하고 좀 다르네.”

남자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처럼 불만 어린 얼굴로 투덜거렸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마주한 사람을 다시 봤다.

이 남자, 양육자였구나?

그러고 보면 이 시기에 저택에 있던 양육자들은 내가 알던 1년 후의 구성원과 동일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겹치는 사람은 2호실의 체스휘와 3호실의 유지니아…. 그 정도밖에 없는 것으로 기억했다. 나머지 양육자들은 그 1년 사이에 교체될 예정이었고 말이다. 그런데 이 남자도 그중 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전 다시 가 볼 테니까, 고용인 숙소로 갈 거면 저쪽 길로 돌아서 가요. 이상하게 오늘따라 모로스가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니까 수상한 소리가 들리면 가까이 가지 말고.”

“혹시 다른 양육자들은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글쎄, 2호실은 방금 비명이 들린 쪽으로 먼저 갔을 것 같고…. 4호실하고 6호실은 오늘 저택에 없다고 했던가? 나머지는 모르겠네…. 아, 1호실은 아까 멀리서 언뜻 보니까 애 데리러 별관 쪽으로 가는 것 같았는데?”

남자는 이 상황을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방금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갔다.

나도 곧바로 그 자리를 떠났다. 마리네즈가 이동했다는 별관 쪽으로 가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복도의 어디에선가 이상한 악취가 풍겨 오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냥 무시하려고 했는데, 곧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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