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23)화 (223/300)

하지만 어떤 식으로 저택에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지, 거기에 대해서는 따로 내려온 명령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그 방법을 자율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모양이었는데, 유사시에 대비해 마리네즈가 폭탄을 넘겨준 것인 듯했다.

그런 이유로 내 고뇌도 시작되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엠버로서 적극적으로 마리네즈의 계획을 도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저택의 아이를 빼돌리지 못하게 중간에 나서서 그녀의 일을 방해해야 하는 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일단은 상황을 봐서 결정한 뒤 행동에 나설 생각이었지만, 여러 가지로 신경 쓰이는 게 많다 보니 줄곧 머릿속이 혼잡하고 산만했다.

“…그러다 무심코 어느 한 곳에 발을 디딘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묵직한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뜻 모를 긴장감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렇게 마음은 콩 밭에 가 있는 상태로 눈앞의 활자를 기계적으로 계속 읽어 내려갔다.

“역시 느낌이 이상했다. 사위가 조용한 와중에 사박사박 들려오는 녹색 파도 소리조차 왠지 기묘하게 소름 끼쳤다. 크흠…. ‘여기는 위험해! 빨리 밖으로 나가야겠어.’ 그는 굳어 있던 몸을 다시 움직였다.”

그러다가 대사 부분이 나와서 국어책을 읽듯이 부자연스럽게 글씨를 읊자 앞에서 피식, 바람이 새는 것 같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필이면 그 소리가 내 귀를 쿡 찌르고 들어왔다.

이 자식…. 나한테 이런 쓸데없는 짓을 시켜 놓고 비웃어?

종이에 박혀 있던 눈을 들어, 앞에 있는 사람을 불순하게 노려봤다.

미카엘은 언제 나를 비웃었냐는 듯이 테이블 위에 분해한 총구를 계속 점검하고 있었지만, 방금 내가 들은 소리는 절대 착각이 아니었다. 내 시선을 느낀 미카엘이 여전히 손을 움직이면서 눈만 들어 나를 쳐다봤다. 하던 걸 계속하지 않고 뭐 하냐는 듯한 눈빛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종의 본능이었다…. 왠지 이곳은 지금 내가 막연히 예감한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불길한 것을 깊은 곳에 감추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엠버의 방 앞에서 미카엘이 내게 따로 시킬 게 있다고 한 건, 알고 보니 이처럼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미카엘의 명령을 들은 다음 날 방으로 찾아가자, 그는 나를 자리에 앉힌 뒤 책 하나를 던져 줬다. 그러고는 그걸 소리 내서 읽으라고 했다. 뜬금없는 요구에 나는 어이가 없었다.

미카엘 카드리고는 몹시 한가한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모리나에게 들은 정보에 의하면 미카엘은 저택에 머무는 동안 매일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고 했는데, 내가 엠버의 몸에 들어온 후로는 이상하게 그가 좀처럼 자리를 비우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어쨌든 이건 또 무슨 이상한 취미인가 싶었지만, 한사코 싫다고 거부할 이유도 마땅치 않아서 일단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카엘은 책 내용 자체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내가 책을 읽는 동안 맞은편에 조용히 앉아 내 얼굴을 뚫어져라 주시하기만 했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앞에서 읽어야 하는 책은 매일 한 권씩, 꼭 레드포드 저택의 서고에서 아무것이나 집어 온 듯이 장르도 다양했다. 그러는 동안 미카엘은 꼭 나를 관찰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시도 시선을 떼지 않고 서늘한 눈을 내게 고정시키고 있었다.

당연히 처음에는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다. 내 눈의 작은 깜빡임과 책을 소리 내서 읽는 입술의 움직임, 책장을 넘기는 사소한 손짓 하나하나, 하다못해 숨을 쉬는 것까지 모조리 감시당하는 느낌이었으니까.

하지만 인간의 적응력은 놀라워서, 시간이 지나자 이런 것도 나름대로 익숙해졌다. 더는 미카엘의 시선이 신경 쓰여서 책을 더듬거리며 읽지 않을 정도로는 말이다.

“…물씬 풍기는 피 냄새에 무뎌진 코끝을 파고든 건, 알싸한 초콜릿 냄새였다. 삶의 마지막 순간, 눈을 감기 직전에서야 그는 비로소 자신을 죽인 살인자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그리고 이제는 읽고 있는 책의 내용에 어느 정도 몰입이 될 정도로는 미카엘과의 시간에 익숙해진 편이었다.

오늘 내가 읽은 건 추리 소설이었는데, 드디어 마지막 장면이 끝나 가고 있었다. 작가가 누구인지는 몰랐지만, 글발이 제법 좋아서 특히 후반부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해서 손에 땀을 쥐게 되었다.

그렇게 범인의 정체가 밝혀진 부분에서 나는 서둘러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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