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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22)화 (222/300)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이쪽은 일반 사람이 통행할 일이 없는 복도인데….”

“그런 질문을 지금 나한테 해도 되나?”

그런데 그냥 생각나는 대로 던진 물음에 미카엘이 지나가는 듯한 어투로 반문했다. 내가 일순간 멈칫한 사이, 나를 응시하던 미카엘이 시선을 움직였다.

“나야 대답하는 게 어렵지는 않지만….”

노을빛 눈이 훑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 방금 말한 대로 여긴 청소를 담당하는 고용인 정도만 올 법한 장소로 보이는데.”

“…….”

“왜 이런 곳에 내 메이드가 혼자 와 있는 건지, 내가 똑같은 질문을 하면 어쩔 셈이지?”

그건 미카엘의 말대로였다. 특히나 나처럼 수상한 짓을 하다가 들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곤란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었으니까. 하지만 미카엘의 표정이나 어조는 시종일관 무심하기만 해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내게 이런 말을 꺼낸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거… 묻지 않을 거잖아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야, 애초에 그런 걸 따져 물을 생각이었으면 방금도 수상쩍은 나한테 이상한 친절을 발휘해서 폭탄 사용법 같은 걸 알려 줬겠어? 대신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여러 가지를 추궁하고도 남았겠지.

“굳이 그런 걸 물을 정도로 관심이 있지 않아서…?”

“누가 그래?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이어서 내 귀를 파고든 목소리는 내 말문을 다시 한번 막히게 만들기 충분했다.

“관심이 없으면, 내가 왜 지금 여기에 서 있을까? 엠버 그린로스 양.”

일직선으로 날아온 시선이 단숨에 나를 관통하고, 나는 거기에 몸이 꿰뚫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순간 모든 움직임을 잃었다.

그동안 얼굴을 본 날이 체스휘에 비해 많지는 않지만, 미카엘은 그럴 때마다 늘 이런 식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미동도 흔들림도 없는 눈빛으로, 내 뼛속까지 모조리 투시해서 안까지 들여다보듯이…. 마주한 그의 눈에서는 언제나 한 치의 망설임이나 주저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실수로라도 미카엘의 눈을 똑바로 마주해서 이렇게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거기에 빨려들 듯이 무의식중에 숨을 죽이고 주먹을 그러쥐게 되었다.

그렇게 나를 둘러싼 시공간의 흐름이 점점 이상해지는 느낌을 받고 있을 때, 불현듯 가벼운 손길이 내 이마를 툭 건드렸다.

“이런 바보 같은 표정도 짓는군.”

시야에 안개처럼 번진 희미한 미소에 당황했다. 어쩌면 미카엘에게서는 처음 보는 종류의 미소였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만 쳐다보고, 볼일 다 봤으면 따라와.”

하지만 착각이었나 싶을 정도로 금방 미소를 지운 미카엘이 먼저 몸을 돌려 나보다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프지도 않은 이마를 만지작거리며 미카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썩 내키지는 않았으나 어차피 이 복도에서 벗어나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결국은 나도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미카엘의 뒤를 따라 걸었다.

가만, 그런데 미카엘이 나한테 왜 따라오라고 하는 거지? 뭐 시킬 일이라도 있나?

“관심이 없으면, 내가 왜 지금 여기에 서 있을까? 엠버 그린로스 양.”

그러고 보면 방금 그 말도… 꼭 나를 찾아서 여기까지 왔다는 것 같은 뉘앙스였는데?

하지만 미카엘은 이후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복도를 걸었다. 그렇게 미심쩍은 눈으로 미카엘을 힐끔거리며 복도를 걷다가, 문득 그의 허리춤에 시선이 닿았다.

“그 총, 어디에서 파는 물건이에요?”

미카엘의 방에 갔을 때부터 계속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의문이 있어, 살짝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지금 미카엘이 가지고 있는 총은 그의 방 장식장 위에 놓여 있던 것이었다.

“그건 왜 묻지?”

“아뇨, 그냥…. 전에 어디서 봤던 것 같아서.”

“이 총을 전에 다른 곳에서 봤었다고?”

바로 그 순간 미카엘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럴 리 없을 텐데. 이건 맞춤 제작한 거라서.”

“그럼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서 되물은 뒤, 찡그린 눈으로 미카엘의 총을 다시 한번 내려다봤다.

“나야말로 궁금한데. 이 총을 도대체 어디에서 봤었다는 건지.”

“생각해 보니까 그냥 비슷한 걸 보고 착각한 것 같네요.”

나는 얼른 뻔뻔하게 말을 바꾸었다.

“제가 총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요. 그냥 모양이 비슷한 걸 언뜻 보고 헷갈렸나 봐요.”

미카엘은 고개를 모로 기울인 채 나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다가 곧 그가 무슨 의미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실소를 지으며 내게서 시선을 뗐다.

“하긴, 비슷한 게 있을 수도 있겠지.”

미카엘과 나는 다시 말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굳은 눈으로 미카엘의 총을 힐끔거렸다. 처음에 미카엘의 방에서 봤을 때는 착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한번 보니 확실했다.

얼마 전 지하실의 검은 문을 통해 잠깐 들렀던 악령들의 저택. 그곳에서 내가 빙의했던 남자가 가지고 있던 총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과 동일했다.

‘그럼 혹시 그 남자가 미카엘 카드리고였나…? 아니면 진짜로 그냥 내가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게 생긴 총이었던 것뿐인가?’

그렇게 고민하며 걷느라, 어느새 고용인들의 유동량이 많은 복도까지 오게 된 걸 눈치채지 못했다. 문득 상황을 깨달았을 때는, 수많은 눈이 놀라서 부릅떠진 상태로 미카엘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앗…! 뭐야, 생각 없이 걷고 있었는데 미카엘의 방으로 가고 있던 게 아니었어?’

오히려 시야에 비치는 익숙한 복도의 풍경이나, 유독 눈에 익은 고용인들의 얼굴을 보면 이곳은….

“어디야?”

“예?”

“지금 쓰는 방이 어디냐고.”

“끝에서 두 번째….”

미카엘의 물음에 무심코 대답했으나,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 미카엘이 지금 고용인들 숙소에 와 있지? 게다가 왜 내 방이 어디냐고 묻지?

혼돈 상태에 빠진 나와 달리 미카엘은 여전히 담담하기 짝이 없는 얼굴을 한 채로 내가 알려 준 곳을 향해 걸었다. 하필 그 자리에 있다가 우리와 마주친 운 없는 고용인들은 미카엘을 피해 벽과 거의 혼연일체가 되어 구석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그들과 내 흔들리는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잠시 후, 목적한 방문 앞에 다다라 걸음을 멈춘 미카엘이 내게 인사 대신 작게 턱짓했다.

“내일부터는 따로 시킬 일이 있으니, 내가 자리에 없어도 그냥 가지 말고 기다려.”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긴 뒤, 그는 바로 몸을 돌려 지금까지 지나왔던 복도를 다시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나는 의구심 어린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진짜 뭐지…? 설마… 지금 날 방까지 데려다주려고 여기까지 같이 온 건가? 에이, 설마?

“엠버! 너, 너 방금 뭐야?”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호들갑스럽게 내 귀를 파고들었다. 살짝 열려 있던 옆방의 문을 벌컥 열어젖힌 모리나가 그 안에서 뛰쳐나왔다.

“아니, 왜 손님이 방 앞까지 너랑 같이 온 건데?!”

아무래도 다른 메이드의 방에 놀러 갔다가 막 밖으로 나오려던 찰나에 미카엘을 발견하고 숨어 있던 모양이다.

그사이에 미카엘이 복도를 완전히 떠났는지, 복도에 있던 다른 고용인들도 어수선한 소음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대로 있다가는 굉장히 피곤한 상황에 직면할 것을 예감하고 얼른 모리나와 함께 쓰는 방문을 열었다. 다행히 눈치가 없지는 않은지, 모리나가 그런 내 뒤를 후다닥 따라 들어왔다.

“그것 봐, 역시 내 말이 맞았지?! 너한테 관심이 있는 게 맞잖아? 역시 메이드장님한테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모리나의 입에서 ‘메이드장’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갑자기 그동안 깜빡 잊고 있던 무언가가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메이드장 제인이 나한테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저택을 나가라고 해고 통지를 했었지? 그런데 마리네즈가 말한 계획의 실행일은 내달 초하루라고 했다. 그럼 내가 이대로 해고되면 안 되는데?

게다가 다이안을 위해서라도 나는 마리네즈의 계획이 마무리될 때까지 이곳을 떠나지 않기로 마음을 바꿨다. 그럼 더더군다나, 내가 여기에서 해고돼 저택을 떠나면 더 이상 지하실의 문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니까… 이거야말로 큰 낭패가 아닌가?!

“헐! 안 돼, 메이드장님…!”

“앗! 엠버, 어디 가?! 손님이랑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는 마저 해 주고 가…!”

뒤에서 모리나가 나를 애처롭게 불렀지만, 그녀를 무시하고 황급히 방에서 뛰쳐나갔다.

목적지는 당연히 엠버의 해고 통지를 취소해 줄 메이드장 제인의 방이었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 금방 마리네즈의 작전이 실행될 날짜가 다가왔다.

애석한 일이지만, 나는 계획의 대략적인 내용만 알고 있었다. 이후 마리네즈를 직접 만난 일은 한 번도 없었고, 그녀의 말을 전달하러 만났던 콘라드와의 대화에서도 기대했던 만큼의 상세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두 사람 다 내가 이미 계획을 숙지하고 있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대화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콘라드에게는 근래 있었던 사고들 때문에 기억이 오락가락한다는 핑계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콘라드도 당일에 엠버가 해야 할 일을 알려 줬을 뿐, 마리네즈가 추진 중인 계획의 전체적인 내용까지는 굳이 설명해 주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엠버의 방을 뒤져 봤으나, 보관하고 있는 다른 암호 종이 같은 건 눈에 띄지 않았다. 단지 예전에 세라의 방에서 본 적이 있는 사진을 엠버의 짐 속에서 발견했을 뿐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마리네즈가 저택에 있는 아이 중 한 명을 밖으로 빼내는 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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