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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21)화 (221/300)

“아, 찾았다. 마리네즈가 말한 게 이건가?”

그날 저녁, 나는 인적 없는 5층의 구석진 복도에서 혼자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시간이 빌 때 5층의 검은 독수리 밑에 있는 걸 가져가. 물론 아직 예정일이 좀 남기도 했고, 상황에 따라 그런 것까지는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긴 하지. 그래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나쁠 건 없을 테니까.”

어디 보자. 아까 마리네즈가 한 말에 의하면 그녀가 나한테 전달하려는 물건이 분명 여기에 있을 텐데.

처음에는 검은 독수리가 뭔가 싶었는데, 5층의 가장 후미진 복도에 놓인 조각품을 의미하는 듯했다. 날개를 활짝 펼친 위용 넘치는 독수리 모양 조각을 들어 올려 확인하자, 그 밑에 난 홈에 무언가가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뭐야? 이 네모난 물건은?

그것은 작은 반지 상자만 한 크기였고, 색은 검은색이었다. 표면에 다른 표시나 무늬 같은 건 없었다. 재질은… 언뜻 보면 플라스틱처럼 반질반질한데, 그렇다기에는 크기에 비해 좀 더 무게가 나가는 편이었다.

마리네즈가 물건이 숨겨진 위치만 말해 줘서, 지금 발견한 이게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한눈에 정체를 알아볼 수 있는 물건일 줄 알았는데, 외양적 특징이 거의 없는 정육면체라서 이것이 뭐에 쓰는 물건인지 영 아리송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가지고 있으라고 했으니까, 중요한 물건인 것 같긴 한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은 독수리 조각품을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 안에서 떼어 낸 물건을 손에 쥐고 요리조리 살펴봤다.

“실행일은 원래 예정되어 있던 내달 초하루야. 저택이 가장 혼잡한 주말 마지막 날 자정 직전에 악마의 씨앗 하나를 밖으로 데려갈 거야. 나도 이다음 순번 때 네 일을 도울 테니까 너도 순순히 협조해. 혹시 방해라도 했다간 가만히 안 둬.”

마리네즈는 단체의 지령으로 악마의 씨앗을 레드포드 저택 밖으로 빼돌릴 것이라 했다. 나도 직접 참가했던 단체의 수상한 모임과 레드포드에 위장 잠입한 사람들을 통해, 그 악마의 씨앗이란 것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고 있었다.

레드포드 저택에 머무는 선택 받은 소년들. 그런데 그중 하나를 빼돌릴 거라니…. 내가 작전에 대해 너무 모르는 티를 내면 의심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들의 목표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혹시 1년 후에 그러던 것처럼 그들이 노리는 게 다이안은 아닐지 의심스러웠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지만, 혹시 계획에 실패해서 내가 몰랐던 것일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미간을 찌푸리며 마리네즈에게 전달받은 수상한 물건을 뜯어보던 어느 순간이었다.

틱! 째깍….

갑자기 뭔가가 작동되는 듯한 희미한 소리와 함께 시계 초침 소리 같은 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응…? 째깍? 째깍이라니?’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에 숨을 멈추고 다시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역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뭐, 뭐야? 이게 갑자기 왜 이래? 특별히 건드린 데도 없는데?’

더군다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쩍은 물건이라 나도 주의해서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중이었단 말이다!

혹시 손으로 스위치 같은 걸 잘못 눌렀나 싶어서 황급히 확인했으나, 어디에도 눈에 띄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급한 대로 손으로 정육면체의 표면을 마구잡이로 눌러 봤지만, 역시 아무 소용도 없었다.

째깍, 째깍.

그러는 동안에도 계속 들려오는 희미한 소음이 사람을 괜히 더 불안해지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 왜 여기서 시계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거지? 이렇게 몰래 숨겨서 비밀리에 전달해 줘야 할 물건이 단순한 타이머일 리는… 없을 것 같고. 그럼 도대체 무슨 용도인 건데?

때마침 내 본능적인 위기감이 작동하기라도 한 것일까? 과거의 어떤 기억이 퍼뜩 뇌리를 스쳐 지나간 건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예전에 의상실 직원으로 잠입해 저택에 들어왔던 샤벨과 마벨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이것과 생김새는 다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던 소형 폭탄에서도 이런 작동음이 났던 것 같았다.

‘…미친?! 그럼 더 큰일이잖아!’

그래도 타이머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걸 보면, 이건 그때와 달리 바로 터지는 폭탄이 아닌 듯했다. 그래도 이걸 어떻게 중지시켜야 할지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물론 이게 폭탄이 아닐 확률도 있었지만, 일단은 이 수상쩍은 물건을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야 할 것 같은 위기감과 강박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당장 이걸 저택의 창문 밖으로 멀리 던져 버려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5층의 구석진 복도는 밀폐형이라 창문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내가 속으로 욕을 읊조리면서 서둘러 몸을 돌린 순간, 나른하게 들리는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날아들었다.

“위험한 걸 가지고 놀고 있네.”

코끝에 언젠가 맡아 본 적이 있는 시원하고 묵직한 향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이어서, 내 앞으로 다가온 크고 단단한 남자의 손이 내가 들고 있던 물건을 가져갔다.

내 눈앞에 나타난 사람은 저녁 늦은 시간에 어울리게 당장 침실에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가벼운 옷차림을 한 채 나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미카엘이었다. 그는 나한테서 가져간 물건을 잠깐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미카엘이 손가락을 움직이자, 계속 신경 쓰이던 초침 소리가 뚝 멎었다.

꺼, 꺼진 건가? 집중해서 귀를 기울여도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걸 보면 작동이 멈춘 게 맞는 것 같았다.

급한 대로 재빨리 뛰어가서 제일 가까운 창문을 찾든가, 아니면 최대한 복도의 반대쪽에라도 멀리 던져 버리려고 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아니, 그러게 애초에 왜 이런 위험한 물건을 이딴 장소에 숨겨 놔?! 무슨 일이 생기면 대처할 수가 없잖아!

당연히 남들에게 보일 수 없는 위험한 물건일 테니 이렇게 은밀한 장소에 숨긴 것일 테지만, 지금의 내게는 도움이 쥐뿔도 안 되는 주도면밀함일 뿐이었다.

폭탄 같은 게 작동을 멈춘 건 다행이긴 한데,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미카엘인 건 별로 다행스럽지 않았다. 금방 씻고 나오기라도 했는지, 이마를 덮은 남자의 검은 머리칼이 약간 촉촉해 보였다. 그 밑으로 내리깔려 있던 석양 같은 눈이 소리 없이 위로 들려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거, 본인 물건?”

“아니요.”

미카엘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부정했다.

“그… 떨어져 있는 걸 발견해서 주웠어요. 그런데 뭘 잘못 만졌는지,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어쩔 수 없이 변명을 덧붙였으나 아무래도 급조한 만큼 다소 궁색하게 들리기는 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지금 미카엘과 마주친 장소는 하필이면 평소에 잘 올 일이 없는 밀폐된 복도였다. 그래서 무슨 변명을 대도 둘러대는 것처럼 느껴질 터였다.

미카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눈빛만 봐서는 내 말을 믿는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만약 미카엘도 레드포드 저택에 반동분자들을 찾아내 처결하라는 명령을 받고 온 거라면 나를 수상하게 여길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은근히 긴장해서 뒷덜미가 뻣뻣해졌다.

“지, 진짜인데…. 이게 제 거면 방금 왜 그렇게 당황해서 허둥지둥거렸겠어요?”

젠장, 좀 쪽팔리긴 하지만 내 무고함을 주장하려면 방금의 멍청한 행동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위험한 목적을 가지고 저택에 숨어 들어온 수상한 인간이 이런 물건의 작동법도 모르고 있다면 꼴이 우습지 않겠는가? …물론 그 우스운 인간이 바로 나인 건 맞았지만!

어쨌든 미카엘도 내 허술한 작태를 보았으니, 정황상 의심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그것이 확신으로까지 뻗어 나가지는 못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미카엘은 뜻밖에도 내게 무언가를 더 캐내려 하지 않고, 그냥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들고 있던 것을 다시 내 손에 쥐여 줬다. 손에 딱딱한 물체와 서늘한 남자의 온기가 동시에 닿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 눈매를 떨었다.

“여기, 모서리 부분을 만지면 아주 작게 파인 것 같은 자국이 있지?”

그런데 미카엘은 내게 물건을 돌려주고 나서 바로 손을 떼지 않았다. 내 손 전체를 감싸듯이 붙잡은 미카엘이 내 손가락을 움직여 그 안에 있는 것을 움켜쥐게 했다.

“여기를 두 번 누르면 작동.”

틱! 째깍.

“한 번 더 누르면 멈춤.”

“…….”

“이렇게 생긴 건 대체로 모서리 쪽에 보이지 않는 버튼이 있고, 작동법도 비슷하니까 한번 알아 두면 편하겠지.”

도대체 뭘 하는 건가 했더니… 그는 폭탄으로 추측되는 물건의 작동법을 내게 알려 줬다.

“보통 10초 안에 조작하지 않으면 폭발하게 되어 있으니 주머니 같은 데 넣고 다니다가 실수로 건드리지 않게 조심하고.”

심지어 한술 더 떠서,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한테 주의시키듯이 안전성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내가 미카엘에게 폭탄 사용법을 전수받는 이 상황이 굉장히 낯설고 괴상하게 여겨졌다.

미카엘이 그런 내게 알겠느냐고 묻듯이 시선을 마주해 왔다.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에서야 미카엘의 손이 내게서 떨어졌다. 나는 조금 전까지 온기가 겹쳐졌던 부분이 괜스레 후끈거리는 듯해서 얼른 손을 내려 감추듯이 등 뒤로 보냈다.

나도 그렇고, 미카엘도 어느 한 사람 먼저 걸음을 옮겨 복도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좀처럼 알 수가 없어 잠깐 눈을 굴리며 긴장감에 바짝 탄 입술을 혀로 축이다가, 결국 먼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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