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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18)화 (218/300)

차라리 얼마 전에 세라와 함께 지하실로 가는 데 사용했던 또 다른 문을 찾는 게 이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술기운이 남은 상태로 무작정 끌려가서 그런가? 좀처럼 비밀 통로의 위치가 기억나지 않았다.

‘역시 총괄 집사에게는 쟁반의 위력이 즉효인가?’

총괄 집사를 무력으로 타파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린 도체스터가 아닌 엠버의 몸으로도 그에게 유용한 타격을 입힐 수 있을지는 솔직히 미지수였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은 누구지?’

그렇게 부엌에 들렀다가 미카엘의 방으로 가는 길에, 뒤에서 따라붙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다. 확실히 토요일 오후라 그런지, 아까에 비하면 저택의 고용인들도 밖으로 많이 빠져나가서 다른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 줄었다. 그래서 내 뒤를 따라오는 기척이 더욱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일부러 복도의 모퉁이를 돌아가는 척 몸을 숨긴 뒤, 고개를 불쑥 내밀어 뒤쪽을 확인했다. 그러자 곧바로 검은 머리카락에 푸른 눈을 가진 소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사흘 전에 마리네즈가 있던 별관에서 봤던 그 아이였다. 현 1호실 소년이자, 마리네즈가 양육 중인 루스카의 쌍둥이 형제.

그는 나를 쫓아 복도를 걸어오다가, 이번에도 지난번과 비슷하게 나하고 눈이 마주친 순간 바로 뒤돌아섰다.

“아, 잠깐만!”

무심코 소년을 불렀지만, 그는 그대로 뛰어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뭐지? 나한테 볼일이라도 있었나?’

의문이 가시지 않았으나, 마리네즈와 작게라도 엮이는 것 자체가 별로였기 때문에 굳이 소년을 또 붙잡지는 않았다.

루스카의 쌍둥이 이름이 루시오였던가? 아무튼, 저택에 있는 소년을 봐서 그런지 다이안의 생각이 더 많이 났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어차피 지하실의 문을 사용하는 게 지체된 김에 차라리 다이안이나 한 번 더 보러 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냥 이대로 다이안과 거리를 두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앞으로 언제 이곳을 떠날지도 알 수 없었고, 내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도 다이안에게 몹쓸 짓인 것 같았다.

똑똑!

“크흠.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내키지 않는 마음에 최대한 늦장을 부렸는데도 손님 방에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다.

그런데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도 내 할 일은 해야 했기 때문에, 일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점심을 가져오라고 했으면서 어딜 간 거야?’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비어 있는 방을 둘러봤다. 분명 미카엘이 이번 주말에는 레드포드 저택에 남아 있다고 들었는데, 그새 또 자리를 비우다니…. 이 남자는 도대체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은 걸까?

‘오히려 잘된 건가? 이참에 방이나 좀 살펴보자.’

테이블에 쟁반을 내려놓고 미카엘이 머무는 손님 방을 눈으로 훑었다.

일전에 44세계에 갔을 때, 라파엘을 따라 카드리고 저택에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꼭 그때 봤던 미카엘의 방처럼 이곳 역시 퍽 삭막했다.

물론 레드포드 저택에서 가장 좋은 손님 방이니만큼 인테리어도 훌륭했고, 구비된 가구나 장식품들도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 역시 사용감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꼭 모델 하우스 같은 느낌을 물씬 풍겼다.

어쩌면 미카엘의 개인 소지품이 거의 없는 것 역시 그런 분위기에 일조한 건지도 몰랐다. 지금 내 눈에 띄는 것도 기껏해야 테이블 위에 있는 장갑과 지난번에 그가 읽던 책 정도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장식장 위에 놓인 어떤 물건에 눈길이 멈췄다.

‘어? 뭐야, 저건 어디서 본 건데?’

그것도 분명 바로 얼마 전에….

달칵.

“……!”

하지만 내가 장식장으로 다가가 그 위에 있는 물건을 확인하는 것보다, 욕실 쪽에서 소리가 들려온 게 먼저였다. 나는 서둘러 미카엘의 방에서 빠져나갔다.

“휴, 하마터면 마주칠 뻔….”

방이 조용해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씻고 나서 옷이라도 갈아입는 중이었나?

물론 죄지은 것도 없으니 미카엘과 마주친다고 해서 문제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현재의 체스휘와 마찬가지로, 미카엘의 얼굴을 보는 것도 왠지 좀 껄끄러웠다.

하긴, 방금 같은 경우에는 어쨌거나 주인 몰래 방을 구석구석 뜯어보고 있었던 것이니 지레 찔려서 나도 모르게 피한 것일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직접 건드린 물건은 없으니까, 내가 방을 살펴본 걸 미카엘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장식장에 있던 그거….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눈이 가늘게 좁혀들었다.

“메이드 누나.”

혹시라도 미카엘이 방에서 나올까 봐 잰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갔다. 그러던 중에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리자, 아까처럼 내 뒤를 밟기라도 한 듯이 복도에 서 있는 1호실 소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잠깐 주위를 둘러본 뒤, 그에게 다가갔다.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몸을 낮춰 시선을 맞춘 뒤 물었다. 소년도 이번에는 자리를 피하지 않고, 나와 눈을 마주하며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기울였다.

“몸은 좀 괜찮아?”

뭐야…. 이 꼬맹이가 지금 날 걱정해 주는 거야?

나는 마리네즈의 양육 대상이 내 안부를 묻는 상황에 살짝 당황했다. 하기야, 양육자와 아이는 별개의 인격체였다. 그러니 이렇게 소년이 나를 염려해 준 것도 놀랄 일까지는 아닐지도 몰랐다.

“으응, 괜찮아.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

내 대답을 듣고, 소년이 나를 물끄러미 보던 얼굴에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니 쌍둥이이긴 해도 루스카와 루시오의 인상은 많이 다른 편이었다. 루스카가 늘 차분한 무표정에 감정 표현이 지극히 없었던 반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소년은 가볍게 미소 지은 얼굴이 좀 더 사교성 있고 생기 있어 보였다.

“그날, 내가 알려 줬어.”

“응? 뭘?”

“메이드 누나가 악마의 화원에 간 거 말이야. 체스휘한테 내가 알려 줬어.”

앗, 그때 날 발견하고 모른 척 도망간 게 아니라 체스휘를 부르려고 간 거였어? 어쩐지, 그래서 체스휘가 그렇게 빨리 악마의 화원으로 달려왔었구나.

“그렇구나. 도와줘서 고마워.”

“별말씀을.”

내 인사에 소년이 좀 더 귀엽게 방긋 웃었다. 그걸 보고 나도 무심코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메이드 누나.”

그런데 다음 순간, 몸을 움직여 내게 좀 더 가까이 다가온 소년이 내 귀에 대고 속닥거렸다.

“나하고 한 약속은 언제 지킬 거야?”

“뭐?”

뜻밖의 소리에 멈칫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약속?

나는 루시오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어 그의 눈을 응시했다. 소년도 그런 나를 잠깐 물끄러미 마주하다가, 내게 가까워졌던 몸을 다시 뒤로 물렸다.

“뭐, 일단 지금은 됐어. 시간이 얼마 없으니까 날 따라와.”

그렇게 말한 뒤, 루시오가 먼저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소년이 재촉하듯이 나를 뒤돌아보았다.

뭐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일단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쪽이야.”

루시오는 먼저 앞서 걸으며 나를 어디론가 이끌었다. 복도는 주변을 오가는 고용인들도 없는 듯이 아주 조용했다.

“들어가.”

소년은 어느 방 앞에 다다라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내게 직접 문을 열어 주기까지 했다.

나는 여전히 아리송한 기분으로 소년을 한번 내려다본 뒤, 그가 열어 준 문 안으로 몸을 들였다.

그렇게 들어서게 된 방에는….

“이제 오는 건가? 감히 나를 기다리게 하다니 간이 부었군.”

마리네즈가 있었다.

헐!

경악해서 고개를 돌리자마자 방문이 쿵 하고 닫혔다.

저, 저 꼬맹이가! 지금 나를 속였어? 야, 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날 걱정해 준 거 아니었어?

귀여운 검은 길고양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부르기에 따라갔더니, 그 종착지에 아가리를 벌린 사자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점심 식사만 손님에게 가져다주고 나오면 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지? 접객을 담당한다고 해도 방 주인과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별로 없다고 들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봐?”

내가 당황하거나 말거나, 마리네즈는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싸늘한 눈으로 나를 보며 이죽거리듯이 읊조렸다.

“체스휘를 노린 걸로도 모자라서 손님에게까지 손을 대다니, 참 대단해. 수완이 좋다고 박수라도 쳐 줘야 하나?”

이번에 체스휘와 미카엘 둘 다 마리네즈와 고용인들에게 엠버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한 일 때문인가? 아무래도 마리네즈는 그것 때문에 지금 나한테 약이 올라 빈정거리는 듯했다.

한편 나는 검은 고양이에게 뒤통수를 맞은 충격에 황당해져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침착함을 되찾았다.

“아니, 이제는 어린애까지 이용해서 사람을 속이고…. 진짜 왜 이러세요?”

티 나지 않게 슬슬 뒷걸음질 쳐서 등 뒤에 있는 문고리에 손을 댔다.

“얼마 전에 한 짓으로도 모자란 거예요? 하지만 또 건드리시면 저도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가만히 안 있으면 뭘 어쩔 건데?”

그러게? 호기롭게 협박하긴 했지만, 확실히 엠버의 몸으로 마리네즈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방금… 손님한테 잠깐만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시 오겠다고 말했거든요? 그러니까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라고요.”

“꼴값을 떠네.”

좀 모양 빠지긴 해도 호랑이의 위세라도 빌려 당당하게 말했으나, 마리네즈는 나를 비웃기만 했다.

“재미없으니까 그쯤 하지 그래? 어디 내 앞에서까지 돼먹지 않은 연기질이야?”

마리네즈에게 들키지 않게 조용히 손에 쥔 문고리를 돌렸다. 다행히 문은 잠기지 않은 것 같았다. 문밖에서도 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좋아, 그럼 마리네즈만 따돌리면 된다! 문을 열자마자 시끄럽게 비명이라도 질러서 사람들의 이목을 끈 뒤 손님 방을 향해 미친 듯이 뛰는 거다!

만약 바로 그다음 순간에 이어진 마리네즈의 말이 아니었다면, 생각한 것을 곧장 실행에 옮겼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엄청나게 심한 짓을 한 것처럼 말하는데,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않아? 아무리 그래도 악마의 화원에 들어가는 것까지는 좀 지나친 게 아니냐고 내가 말렸는데도 네가 무시했잖아.”

“예?”

나는 방금 귀에 꽂힌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이 여자가 뭐라고 한 거지? 꼭 마리네즈와 엠버가 작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상한 말을….

그 순간, 갑자기 등줄기가 싸늘하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마리네즈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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