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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13)화 (213/300)

“응? 뭐야….”

그런데 침대에서 내려가려다가 무심코 내 행색을 확인해 보니, 입고 있는 메이드복이 아까와 달리 깨끗했다.

“내 옷, 누가 갈아입혔어… 요?”

미심쩍은 눈으로 미카엘을 보며 묻자, 그가 나를 향해 무미건조한 답변을 내뱉었다.

“누가 했을 것 같아?”

설마 너냐? 날 여기에 데려온 이유는 모르겠지만, 침대도 빌려주고 옷까지 갈아입히고….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아까 화원에서의 반응도 그렇고, 지금의 미카엘 카드리고는 생각을 종잡을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강한 경계심을 품게 되었다. 그런 게 내 얼굴에서도 티가 났는지, 미카엘이 입술 끄트머리를 슬쩍 끌어 올리며 덧붙였다.

“아까 같은 방을 쓴다는 메이드가 잠깐 다녀갔는데, 전혀 몰랐나 보지?”

“모리나가?”

“이름은 모르겠고.”

미카엘이 꼭 ‘왜, 내가 네 옷을 직접 갈아입혔을 줄 알았어?’라고 말하듯이, 어딘가 비웃는 것 같은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를 오해했던 나는 살짝 뻘쭘해졌다.

모리나가 이 방에 다녀갔었구나. 어쩐지 남의 걸 빌린 걸치고는 사이즈가 너무 이 몸에 꼭 맞더라.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이 이상해졌다. 왜 룸메이트인 모리나가 오기까지 했는데, 나를 내보내지 않고 계속 이 방에 둔 거지?

‘신발은 또 어디에 있는 거야?’

나는 몰래 미카엘의 기색을 살피면서 찡그린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침대 밑에 당연히 벗어 둔 신발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잠시 후, 나는 내가 찾던 신발을 미카엘의 옆에서 발견했다. 엠버의 신발로 보이는 것은 미카엘이 앉은 의자의 바로 옆에 놓여 있었다.

아니, 남의 신발을 왜 저렇게 멀리 가져다 둔 거야? 사람을 침대에 눕혔으면 당연히 그 근처에 놔둬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언짢은 마음을 안고 침대에서 내려와 미카엘을 향해 다가갔다. 내가 신발을 찾고 있는 걸 뻔히 알았을 텐데도 그는 아무 말이나 행동도 취하지 않고 나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화원에서 봤던 것처럼 기이한 광채로 반짝이는 눈빛까지는 아니지만, 지금도 미동 한번 없이 나를 주시하고 있는 눈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미카엘과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질수록 내 걸음의 속도도 늦춰졌다. 왠지 꼭 사자 우리에 머리를 들이밀러 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저기, 제 신발이 그쪽에 있는데 좀 건네주시면 안 될까요?”

“…….”

“아니면 제가 가져갈 테니까 다리 좀 치워 주시면…. 예, 그럴 마음이 없으시구나. 그럼 그냥 의자 뒤로 돌아가서 들고 가겠습니다.”

일부러 나를 골탕 먹일 생각이기라도 하는지, 신발은 미카엘이 앉은 의자와 벽 사이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내 조심스러운 부탁에도 미카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면서 미카엘의 의자 뒤쪽으로 직접 이동했다. 그러고 나서 얼른 바닥에 놓인 신발을 주워들며 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어쨌거나 화원 밖으로 데리고 나와 주신 건 고맙습니다. 그럼 전 이만….”

“1호실 양육자가 사람을 풀어 그쪽을 찾고 있던데.”

뭣?!

미카엘의 입에서 지나가듯이 무심한 어조로 흘러나온 나지막한 목소리를 듣고 막 일으켜 세우던 몸을 반사적으로 흠칫 떨었다.

“마리… 아니, 1호실 양육자가 지금 저를 찾는다고요?”

미카엘은 여전히 턱을 비스듬히 괴고 앉아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뒤에서 몰래 찾는 걸 보면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하려는가 보지.”

미카엘의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마리네즈의 행적이 수상했다. 하지만 이미 자신이 한 짓을 체스휘에게 들켰는데도 또 엠버를 어떻게 해 볼 생각인 건가? 아, 그러니까 이번에는 정말 안 들키려고 뒤에서 몰래 엠버를 찾고 있는 거겠지. 하여간에, 뭐 이런 지독한 여자가 다 있어? 하긴, 그러니까 미래에 악령이 되었을 것이다.

“이 방 앞까지도 몇 번인가 다녀갔었지. 차마 문을 두드릴 엄두는 내지 못했지만.”

저 끈질긴 마리네즈가 차마 미카엘 카드리고의 방까지 들이닥치지 못한 이유는, 역시 그가 레드포드 저택의 중요한 손님이기 때문일 터였다. 총괄 집사와 메이드장까지 양육자들보다 미카엘을 더 우선시할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미카엘 자체가 내뿜는 위압감도 보통이 아니었으니, 제아무리 오만방자한 마리네즈라도 눈치를 볼 만했다.

나는 미카엘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골치가 아파졌다. 역시 난감한 시점에 엠버의 몸으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혹시 내가 가면 이 개복치 같은 여자, 마리네즈의 손에 죽는 거 아니야? 하지만 어차피 엠버는 죽을 운명인 사람이었으니까…. 가만, 그러고 보니 엠버가 어떤 이유로 저택에서 사라졌다고 했더라?

엠버가 다이안을 죽이려고 했다는 소문도 있었고, 전에 콘라드는 체스휘의 손에 엠버가 죽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워낙 뜬소문이 많이 돌아다니는 레드포드 저택이라, 엠버에 대한 말들도 어느 정도나 믿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하긴, 내 코가 석 자인데 엠버를 걱정할 틈이 어디 있겠어.’

그런데 생각할수록 미카엘도 의외였다. 설마 마리네즈한테서 나를 숨겨 주려고 이 방에 둔 건가?

“알려 주셔서 고맙네요. 방까지 조심해서 돌아갈게요.”

왠지 기분이 미묘해서 미카엘을 힐끔거리며 몸을 돌렸다.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만 있던 미카엘이 갑자기 몸을 움직였다.

드르륵.

그가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밀리며 내 앞길을 단숨에 가로막았다. 걸음을 멈춘 내게 미카엘이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등 뒤는 창문이 있는 벽이었다. 손에 들고 있던 신발이 밑으로 툭 떨어졌다. 내가 그것을 다시 주워들기도 전에 서늘한 손이 턱을 움켜쥐었다.

“볼수록 이상해.”

화원에서 그랬던 것처럼, 고개가 강제로 들리며 지척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처음에는 기분 탓인가 했는데, 역시….”

탐색하는 듯한 서늘한 눈빛이 나를 꿰뚫었다.

“한동안 내가 무섭기라도 한 것처럼 기를 쓰고 피해 다니더니, 오늘은 계속 겁 없이 굴고.”

“…….”

“꼭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같잖아.”

꼭 뱀이 먹잇감을 칭칭 동여맨 뒤 한입에 집어삼키기 직전의 그 순간인 것 같았다. 단숨에 속을 간파당한 기분이 들어 간담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미카엘은 그렇게 나를 송곳 같은 눈으로 얼마간 응시하다가, 다른 짓을 하지 않고 내게서 천천히 손을 뗐다.

“뭘 잘못해서 양육자 눈 밖에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보니 다른 양육자 쪽과 퍽 각별한 사이인 것 같던데.”

그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나를 내려다보았다.

“혹시 치정이 이유인가?”

“…….”

“그런 거라면 기분이 별로인데. 오늘부터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뭔….

이상한 놈이 이상한 말을 내뱉으며 내게 가볍게 턱짓했다.

“알아들었으면 그만 나가 봐. 여기서 밤을 새울 작정이 아니라면.”

따지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었지만, 왠지 지금이 아니면 이 방에서 나갈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떨어진 신발을 주워들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는 동안에도 진득한 시선이 내 등 뒤로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 같았다.

미카엘의 방문을 완전히 닫고 복도로 나오고 나서야 걸음을 멈추고, 손에 들고 있던 신발을 주섬주섬 신었다. 혹시 마리네즈가 보낸 사람들에게 걸릴까 싶은 마음에 주위를 살피며 빠르게 걸어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이 상황이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서 영 찜찜하고 아리송한 기분이 들었다.

미카엘 카드리고는 내 생각보다 오만하고 제멋대로였다. 도대체 그 머릿속에 무슨 생각을 품고 있는지 가늠도 안 됐다.

나는 층계참에 다다라, 괜히 인상을 쓰며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어?! 너….”

그런데 갑자기 앞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거기에 이어, 무언가에 놀란 듯한 탄성까지 귀에 울렸다.

‘앗, 이 귀여운 목소리는…?!’

탄성 하나만 듣고도 본능적으로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재빨리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복도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은발 적안을 가진 귀여운 소년을 발견한 순간, 지금까지 내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던 모든 고민들이 단번에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이안 도련님! 우와, 세상에. 이게 얼마 만이에요?”

오랜만에 만나는 다이안이 반갑다 못해 감격스러운 마음까지 솟구쳤다. 물론 지금 만난 다이안은 내가 키우던 그 소년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얼굴을 보니 반가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이안은 나를 발견하고 무심코 알은 척 소리를 낸 것이 무색하게도, 왠지 모르게 주춤거리며 굳어 있었다.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 계단 위에 엉거주춤 서 있는 다이안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밥도 잘 먹고, 아픈 곳은 없었고요?”

과거의 다이안을 그때 그렇게 혼자 두고 온 이후로 쭉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기에, 호들갑스럽게 안부를 확인했다.

“너 뭐야?”

그런데 굳어 있던 다이안이 갑자기 나를 확 밀쳤다.

“왜 갑자기 친한 척이야?”

시야에 비친 소년의 얼굴에는 뜻밖에도 분노와 원망, 그리고 배신감 같은 감정들이 복잡하게 얼룩져 있었다.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안 찾아와 놓고는, 이제 와서 반가운 척하면 다야?”

다이안은 내게 화가 난 것 같았다. 또 그는 화가 난 것 이상으로 상처받은 듯했다.

아무래도 이건 엠버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인 것 같았다. 그제야 나는 내 실수를 깨달았다.

미카엘이 방금 방에서 내게 했던 말처럼, 진짜 엠버와 나는 행동이나 말투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엠버가 다이안을 대하는 태도는 나와 다를 수밖에 없었을 테고…. 어린 다이안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서운하게 느껴졌을 가능성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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