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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08)화 (208/300)

어째서 복도의 찬 바닥에서 깨어났나 했더니, 엠버가 마침 쓰러졌을 때 내가 이 몸에서 눈을 뜬 모양이다. 물론 콘라드의 말대로 엠버가 정말 빈혈로 쓰러진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세게 넘어졌는데… 정말 괜찮은 거예요?”

모리나도 콘라드가 미덥지 못한 듯이 의심하는 눈초리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당연히 콘라드는 그 노골적인 불신에 자존심이 상한 눈치였다.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겁니까? 타나토스 세계 의료 협회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의인 동시에, 모두에게 인정받는 재원인 이 나를?”

아무튼, 내가 이렇게 엠버가 있는 1년 전의 레드포드 저택으로 다시 오게 된 건 다행으로 쳐야 할 것 같았다. 우선 아까처럼 악령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눈을 뜨지 않은 것도 확실히 안심할 만한 일이었다. 또 이대로 지하실의 검은 문을 통해 원래 내가 알던 레드포드 저택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 한결 커졌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내가 이 검은 문에 대해 유추한 내용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엠버가 되어 1년 전의 레드포드 저택에서 눈을 뜨게 된 이 기이한 현상이 환각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확실히 그것보다는, 내 영혼이 지하실이 검은 문을 통과해 다른 시간대의 저택으로 이동했다는 가설이 더 현실성 있다고 생각했다.

검은 문에서 영혼 상태인 악령들이 쏟아져 나왔던 것이나, 바로 아까 누구인지 모를 남자의 몸에서 눈을 떴던 것만 봐도 그쪽이 더 가능성 있었다. 세라가 가져가라고 줬던 내 소지품도 결국 들고 오지 못했지 않은가?

‘잠깐, 그럼 설마 원래 내 몸은 세라의 옆에 그대로 있는 건가?’

그러다 문득 뇌리를 스쳐 지나간 의문에 흠칫 몸을 떨었다. 조금 전까지는 정신이 없어서, 원래의 내 육신은 어떻게 되었을지 미처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내 탈출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 혹시 아직도 린 도체스터의 몸이 집착 감금 루트를 밟은 체스휘의 옆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조금 불안해졌다. 갑자기 급격한 감정의 변화를 겪어서인지 머리에 두통까지 이는 듯했다.

“왜 그래, 엠버? 머리 아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매를 찌푸리며 손으로 이마를 짚자, 옆에 있던 모리나가 걱정스러운 시선을 내게 옮겼다.

“어디 좀 봅시다.”

어쩐 일로 콘라드가 엄살이나 꾀병을 부린다고 욕하지 않고 제법 순순히 나를 진찰했다. 물론 이 상황이 여전히 귀찮고 짜증스러운지, 나를 마주한 얼굴에 영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기는 했다.

“어지럽거나 토할 것 같지는 않습니까?”

“그렇진 않은데….”

나는 콘라드의 손에 양 뺨을 붙잡힌 채로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콘라드는 내 눈을 크게 벌려 동공을 확인했다. 아마도 쓰러질 때 바닥에 찧은 듯한 옆머리도 다시 손가락으로 눌러 보고, 내 고개를 앞으로 숙이게 해서 혹을 직접 살펴보기도 했다. 의외로 꼼꼼하게 귀 안쪽을 들여다보는가 하면, 목에 손가락을 대서 맥박을 확인하기까지 했다.

“이전에도 지금처럼 의식을 잃고 쓰러질 때가 있었나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게…. 음, 그러니까….”

“지금까지 두 번인가, 거의 넘어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걸 본 적이 있었어요! 자잘하게 어지러워하는 경우는 더 자주 있었고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엠버의 룸메이트인 모리나가 나 대신 콘라드의 질문에 답변했다.

“넘어질 뻔한 것만 두 번…. 지금처럼 잠깐이라도 완전히 정신을 잃은 적은 없었고요?”

“어….”

“제가 보기로는 그랬는데….”

콘라드에 이어 모리나까지 나를 쳐다봤다.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이 퍽 부담스러웠다.

어, 어떻게 하지? 그냥 ‘YES OR NO!’ 중에 대충 하나를 골라서 대답해야 하나?

하지만 뜻밖에도 콘라드가 외알 안경 너머로 나를 잠깐 가만히 쳐다보다가 말을 돌렸다.

“흠, 일단 지금 상태는 괜찮아 보이니 차차 경과를 지켜봅시다.”

앗, 뭐지? 지금 일부러 말을 돌린 것 같은데. 꼭 내가 금방 입을 열지 못한 이유가 뭔가를 숨기고 싶어서라고 생각한 듯한 반응이었다.

나는 콘라드의 어울리지 않는 배려심에 놀랐다. 아니지, 콘라드의 경우에는 배려심이 아니라 귀차니즘이 아닐까? 굳이 나한테서 대답을 들으려고 노력할 의욕이 없어서 말을 돌린 것일 확률이 더 커 보였다.

“일단 메이드장에게 말해서 오후 업무는 그만두고 휴식을 취하도록 하십시오. 혹이 난 곳에는 얼음찜질을 좀 해 주시고요. 혹시 몸에 이상이 있으면 언제든 내 연구실로 사람을 보내도 됩니다.”

하지만 콘라드는 의외로 마지막까지 진짜 의사처럼 내게 말한 뒤, 나한테서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먼지가 묻은 옷자락을 손으로 탁탁 털면서 나를 한번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그러고 나서 콘라드가 몸을 돌려 그의 개인 연구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의사 선생님, 지난주 경마 순위가 제법 괜찮아서 기분이 좋다는 게 사실인가 봐.”

모리나가 멀어지는 콘라드의 뒷모습을 힐끔거리면서 내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어쨌든, 엠버. 메이드장님께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넌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방으로 가서 쉬자. 어휴, 바람만 불어도 날아가게 생긴 애가 진짜 이렇게 연약하면 어떻게 하니? 넌 체력부터 좀 길러야겠다. 세상에, 팔도 이게 뭐야? 매일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뼈밖에 없는 것 좀 봐!”

나는 호들갑을 떠는 모리나의 손을 잡고 일어나,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갔다. 엠버가 쓰러진 곳은 고용인들의 왕래가 거의 적은 복도였고, 또 지금은 업무 시간이라 눈에 띄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콘라드가 다녀가면서 소식을 들은 듯이 주변을 기웃거리는 사람들도 몇 명 있어서, 그들은 나를 보고 괜찮냐고 안부를 묻기도 했다.

나는 일단 모리나의 제안대로 방으로 향했다. 지금 당장 지하실에 가 보고 싶어서 마음이 급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모리나를 뿌리치고 지하실로 가 봤자, 그녀가 나를 뒤따라올 수도 있었고, 간간이 보이는 다른 고용인들도 문제였다.

‘칫, 처음에는 악령들이 아니라 안심했는데, 사람이 많은 것도 나름대로 불편하잖아.’

물론 아까처럼 누가 보든 말든, 나를 쫓아오든 말든, 그냥 지하실로 밀고 들어가도 되긴 했다.

하지만 이 엠버의 몸은 모리나가 말한 것처럼 연약하기 짝이 없는 데다 달리기 실력도 거북이처럼 아주 느려서, 뛰어 봤자 금방 붙잡힐 것 같았다. 그렇게 난동이라도 부리다가, 나를 수상하게 여겨 지하실의 출입을 막는다면 오히려 일이 더 번거로워질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지난번처럼 모리나가 다시 맡은 일을 하러 간 틈을 노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자, 빨리 누워. 너 안색이 진짜 창백해.”

“으응, 고마워.”

“금방 얼음주머니 가져다줄게! 그 후에 난 다시 나가 봐야 하는데 혼자 있을 수 있겠어? 혹시 지금 할 일이 별로 없어서 시간 되는 애 있으면 불러 줄까?”

“아니…!”

“깜짝이야. 왜, 다른 애들은 불편해?”

“그, 그렇기도 하고… 귀찮게 하면 미안하니까. 닥터 콘라드도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그냥 나 혼자 조금 쉬면 돼.”

모리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했지만, 더 강요하지는 않고 금방 얼음주머니를 가져다줬다.

왠지 이 상황에 기시감이 느껴져서 생각해 보니, 지난번에도 엠버의 몸일 때 모로스와 싸우다가 다쳐서 지금처럼 방에서 쉰 적이 있었다.

공교로운 우연이긴 하지만 내가 여기에 있을 때 두 번이나 이렇게 침대 신세를 지다니…. 아무래도 엠버가 약골이긴 한 것 같았다.

나는 얼음주머니를 머리에 대고 있다가,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갔다.

이 언니 체력이 영 별로라 추격전을 벌이면 내 쪽이 불리하지만 그래도 발소리를 죽이고 몰래 움직이는 건 자신이 있었다.

“엠버 씨?”

…라고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나?

목적지인 지하실을 향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인기척과 함께 엠버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시에 고막을 파고든 나지막한 남자의 목소리에 나는 머리카락이 삐죽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왜 방에서 쉬지 않고 여기에서 이러고 있어요? 방금 복도에서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서 와 본 참인데… 몸은 괜찮아요?”

다급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굳은 듯이 서 있다가, 누군가의 손이 내 어깨에 닿는 순간 바늘에라도 찔린 듯이 몸을 크게 흠칫 떨며 반사적으로 뒤돌아보았다.

이후 내 시야에 비친 사람은 역시 체스휘였다.

급히 뛰어오기라도 한 듯이 약간 헝클어진 더티 블론드 머리칼 아래로 살짝 크게 떠진 그의 눈이 보였다. 체스휘는 내 격렬한 반응에 조금 놀란 듯했다.

“미안해요. 내가 갑자기 손을 대서 놀랐나 봐요.”

하지만 그는 곧 내게 닿았던 손을 밑으로 내리며,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가 나한테 먼저 사과를 해 왔다.

“아니…. 괜찮아요.”

나는 굳은 입술을 떼서 짤막하게 대꾸했다.

체스휘와 마주하자 저절로 몸이 경직되었다. 머리로는 이 시기의 체스휘와 내가 알던 사람이 별개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외모는 똑같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본능적인 긴장감이 들었다.

게다가, 어쩌면 내가 사라진 걸 알고 체스휘가 나를 쫓아왔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역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린 도체스터를 모르는 진짜 1년 전의 체스휘인 것 같았다.

고작 1년 차이이니 외모상의 변화는 거의 없었지만, 이쪽은 안경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날카로운 눈매가 가려져서 순해 보였다. 체스휘가 이렇게 안경을 쓴 모습은 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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