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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06)화 (206/300)

그동안 간절하게 지금의 이 이상한 레드포드 저택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막상 이렇게 갑자기 예기치 못한 상황에 이르게 되자 당황스러웠다. 정확한 까닭을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까지 마음을 더욱 산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문득 세라가 나를 돌아보며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왜 이렇게 똑바로 못 걸어요? 아까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던데, 아직 덜 깼어요?”

“알면 조금만 천천히 걸으면… 예, 안 되겠죠? 최소한 너무 세게 잡아당기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입을 열자마자 무섭게 째려보는 눈빛에 그냥 내가 먼저 한 수 접었다.

의도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위험부담이 있는 와중에도 세라는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내 편의를 더 봐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염치없는 짓이었다.

게다가 상황이 급하니까 세라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 피가 안 통할 정도로 세게 내 팔을 움켜쥐고 우악스럽게 앞으로 잡아끄는 이유도, 생각처럼 내 걸음에 속도가 나지 않아서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세라에게 붙들려서 거의 끌려가는 동안 가뜩이나 어지러운 머리가 더 핑핑 도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조금 비틀거렸더니 세라는 그게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왠지 지금 세라의 안에서는 내가 위기 상황에서 남의 도움만 받고 민폐만 끼치는 아방한 캐릭터로 격하된 느낌인데…. 평소에는 내가 이러지 않거든요? 내가 세라 언니보다 체력도 훨씬 좋고 달리기도 더 잘하거든요?

세라의 날카로운 눈빛을 받고 좀 억울해졌지만, 뭐라고 변명할 시간에 차라리 집중력을 발휘해 똑바로 움직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눈물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세라가 그런 내게 미심쩍은 눈길을 보냈다.

“아까 보니까, 저택의 주인이 당신하고 내가 전에 복도에서 만난 걸 알고 있던데. 혹시 그래서 술을 일부러 먹인 거예요? 괴롭히려고? 아니면 지금처럼 밤에 딴짓을 못 하게 하려고 그런 건가?”

다행히 세라는 내가 아니라 체스휘를 원흉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뒤이어 나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도 참, 맹탕같이 생겨서는….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더니, 그 남자한테 바보같이 끌려다니기나 하고. 억지로 술을 먹이려고 하면 적당히 마시는 척만 하든가 했어야지. 그러다가 큰일 나는 거 몰라요?”

아니, 술은 내 의지로 마신 건데…. 오히려 체스휘는 나한테 술을 그만 마시라고 몇 번이나 권고했었다.

그 사실도 모르고 열심히 체스휘를 비난하는 세라를 보자 조금 뻘쭘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당연히 세라의 앞에서 사실을 밝힐 마음 같은 건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이쪽이에요. 내가 준 물건, 잊지 말고 손에 꼭 쥐고 있어요.”

잠시 후 세라는 나를 데리고 어디로 통하는지 모를 쪽문으로 들어갔다. 계단을 내려와 본관으로 이동한 건 알겠는데, 지금 세라가 향하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레드포드 저택에서 오랜 시간 지내 왔던 나조차도 처음 보는 쪽문이었기 때문이다.

‘1층에 이런 비밀 통로가 있었어?’

세라도 자주 다니는 곳은 아닌지, 벽을 더듬으면서 이동했다. 나는 점점 더 의문스러워졌다.

“여기서 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마요.”

나를 이 저택에서 나가게 도와주려는 것이 맞았던 듯이, 세라가 내게 말했다. 아무래도 목적지에 거의 다다른 모양이었다.

어딘가 눅눅하고 텁텁한 냄새가 먼저 코끝을 스쳤다. 그게 묘하게 익숙하다고 느끼기 무섭게, 어디에서 본 듯한 광경이 시야에 비쳤다. 사방이 어두웠지만, 말했듯이 나는 밤눈도 밝은 편이었기 때문에 여기가 어디인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고개를 들자, 어디에서 많이 본 낡아빠진 검은 문이 내 눈앞에 우뚝 서 있는 게 보였다.

‘뭐야, 혹시 싶었는데 역시 여기였어…?!’

세라가 나를 데려온 곳은 아까도 들어왔었던 지하실이었다.

아니, 그런데 이 지하실로 통하는 문이 하나가 아니었어? 이 통로는 처음 보는 건데. 그보다 문제는 그런 게 아니라…! 바로 아까 이 문에 손을 댔다가 악령이 튀어나오지 않았던가? 혹시 이번에 또 그럴 수도 있으니까, 지금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세라 씨, 이거 지금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앗!”

하지만 내가 입을 열자마자 세라가 있는 힘껏 내 등을 떠밀었다. 내 팔을 잡고 질질 끌고 왔을 때처럼 이번에도 굉장히 우악스러운 힘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떠밀려 넘어지기 직전에 몸을 바로 세우려다가, 나도 모르게 손으로 문을 짚어 버렸다.

그래도 어쩌면 이번에는 문이 반응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다. 아까는 악령들이 튀어나오긴 했지만, 그전에는 완전한 무반응일 때도 있었으니까.

파앗!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만진 문에서 환한 보라색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떴을 때, 나를 둘러싼 세계는 또다시 바뀌어 있었다.

***

“여긴 또 어디, 콜록.”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먼저 밭은기침부터 터져 나왔다.

지난번에 엠버의 몸에서 눈을 떴을 때도 지하실이 아닌 다른 장소에 가 있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나는 소파에 반쯤 눕듯이 기대앉아 있었다. 그런데 서둘러 몸을 움직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뽀얀 먼지가 피어올라 내 호흡기를 오염시켰다.

‘공기가 왜 이렇게 탁해?’

그래도 아까처럼 우글거리는 악령 떼가 튀어나오는 대신,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데 성공한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헙, 콜록! 콜록…!”

물론 미친 듯이 기침이 나오는 건 하나도 다행스럽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무튼, 나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있는 방에서 뛰쳐나갔다. 지하실의 문에 대한 내 짐작이 어느 정도 맞긴 했는지, 지금 내가 이동한 곳 역시 레드포드 저택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풍경은 내가 알던 것과 많이 달랐다.

“뭐야, 여긴?”

분명 레드포드 저택은 레드포드 저택인데, 시야에 비친 복도의 모습이 지금까지 중에 가장 낯설었다.

‘왜 이렇게 더럽지?’

벽지를 거의 뒤덮다시피 한 곰팡이가 사방에 퍼져 있는 게 보였다. 여기저기에 묻은 검은 얼룩 때문에 저택 안이 더욱 우중충하고 어둡게 느껴졌다.

복도의 장식품들은 또 어떻고. 화병과 작은 조각품 등은 거의 다 쓰러지거나 깨져 있었고, 액자도 삐뚤어지거나 바닥에 떨어져서 아주 엉망이었다. 거기에 더해 나무로 된 계단 난간과 바닥, 창틀도 전부 다 틀어지고 썩어서 거의 너덜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쇠로 된 것들 또한 모조리 부식되어 새까맣게 녹슬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충격적이었던 것은… 이 모든 게 방치된 지 굉장히 오래된 듯이, 뽀얀 먼지가 온갖 곳에 두껍게 앉아 있었다는 점이다.

늘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여 있던 바닥도 먼지 때문에 회색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걸을 때마다 아래에서 뿌연 먼지가 올라와서 기침을 유발했다.

그러고 보니 급하게 나오느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방금 내가 빠져나온 방도 비슷했던 것 같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믿을 수 없게도, 이곳은 폐허가 된 레드포드 저택이었다.

관리가 전혀 안 된 듯한 저택의 모습에 나는 망연한 기분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나를 둘러싼 풍경은 당연히 전혀 바뀌지 않았다.

게다가 이 섬뜩한 고요함은…. 단순한 내 착각이라면 좋겠지만, 왠지 이곳에서는 살아 있는 생물체의 온기나 기척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이 이곳이 완전한 유령 저택처럼 느껴졌다.

창밖은 온통 안개로 흐렸고, 탁한 공기가 깨진 유리창 밖에서 새어 들어 저택 안도 시야가 밝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아,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성수 꽃병이 없어서 검은 공기에 중독되기도 쉬울 것 같았다. 어쩐지 처음 눈을 떴을 때부터 공기가 더러운 것 같았는데, 그게 먼지 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소매로 코를 막았다.

응…? 그런데 뭐야? 왠지 내 손이 낯설었다. 게다가 소매를 보니, 입고 있는 옷도 잠옷이 아니라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야 깜짝 놀라서 인상을 찡그리며 내 몸을 훑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뭔가 위화감이 드는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이건 내 몸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원래의 나보다 체격과 키가 훨씬 더 큰 느낌이었고, 무엇보다도….

‘남자잖아…!’

단추가 몇 개 풀어져서 드러난 근육질의 가슴과 검은 바지에 감싸인 탄탄한 허벅지, 무엇보다도 다리 사이의 이질감으로 추론했을 때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손도 나보다 훨씬 컸다. 하지만 손가락이 길쭉길쭉해서 그런지 제법 예뻤다.

‘그런데 이 손…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한데?’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남자의 손을 움직여 묵직한 바지의 뒷주머니를 뒤적였다. 혹시 세라가 가져가라고 준 내 소지품이 이 안에 들어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잠시 후 내 손에 딸려 나온 건 내 소지품이 아니라, 낯선 총이었다.

뭐야, 내 총은 어디 갔어?

세라가 준 둘둘 말린 천 조각 속에, 손가락 두 개만 한 크기의 작은 주머니와 총이 분명히 있었는데? 급히 이동하느라 작은 주머니에 든 건 뭔지 따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내 총만큼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었단 말이다.

이곳에서 처음 눈을 뜬 방으로 다시 돌아가 다급히 주변을 살펴봤지만, 세라에게 받은 소지품은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지하실의 문을 통해 엠버의 몸으로 옮겨 갔을 때도 원래 소지하고 있던 물건은 가져갈 수 없었다.

젠장, 혹시 그래서 이번에도 원래의 내 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육체에 들어오고, 세라에게 받은 소지품도 들고 오지 못한 건가?

뒤늦은 깨달음에 무심코 입 밖으로 욕을 내뱉을 뻔했다.

열린 방문 너머의 복도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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