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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05)화 (205/300)

물론 지금 내 앞에 있는 남자와 둘이 있다가 이런 식으로 분위기가 흘러간 게 지금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럼 나는 뭐가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걸까?

내 안에서 부산물처럼 떠다니던 무언가가 시야에 번진 불빛 속으로 윤곽을 드러내며 떠오른 건 바로 그때였다.

체스휘가 복도에서 지나가던 고용인들을 붙잡아 망설임 없이 악령들에게 던져 주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가 두려움에 빠져 덜덜 떨던 고용인들을 나와 부딪쳤다는 이유 하나로 아무렇지 않게 손짓 하나로 눈앞에서 없애 버린 기억도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다정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몇 번이나 나를 속이고 거짓말하던 것도….

“원래 이 저택의 여주인은 따로 있어요.”

거기에 더해, 아까 식당을 나선 세라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메아리처럼 겹쳐져 웅성거렸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요? 사실은 그 미친 남자가, 때마다 당신 같은 여자를 한 명씩 데려와서 예전 여주인의 대용품으로 삼고 있다고.”

갑자기 소금기를 머금은 파도가 거세게 들이친 것처럼 속이 크게 울렁거렸다. 숨을 급하게 들이마시면서 나와 몸을 겹치고 있는 사람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

체스휘의 머리칼이 내려앉은 목덜미와 귀가 간지러웠다. 그의 손이 잠깐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답답하게 몸을 옥죄던 옷의 단추가 쉽게 풀어져 나갔다. 그 사이로 여지없이 뜨거운 열기가 파고들어 머리를 아득해지게 만들었다.

“잠깐만요… 흡.”

나는 체스휘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나조차도 이유를 알 수 없게도 조금은 다급한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기억은 안 나지만… 지금 얘기를 듣고, 좀 궁금해졌는데….”

“뭐가?”

반면 여전히 내 목덜미를 입술로 간질이면서 되돌아온 체스휘의 반문은 느긋하기만 했다. 낮게 가라앉은 낮은 목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울려서 솜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악마의 화원이라는 거요.”

“아아, 그거.”

“그러니까… 지금 가 보면….”

“급한 것도 아니니까, 나중에.”

당연히 체스휘는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일말의 관심도 없는 듯이 내 말을 쉽게 잘라 냈다. 그러면서 뭔가를 본격적으로 할 생각인 것처럼, 나를 눕힌 곳 옆에 거슬리게 자리한 식기와 컵 등을 한 팔로 대충 밀어냈다.

나는 내 목덜미를 파고드는 체스휘의 머리를 손으로 붙잡았다. 하지만 손가락에 힘이 빠져서 겨우 그의 머리카락만 조금 움켜쥐는 데 그쳤을 뿐이었다. 물론 체스휘는 그런 미약한 방해 따위는 가당찮기만 하다는 듯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음 순간 그가 심술을 부리듯이 내 목을 깨물어서 펄쩍 뛸 듯이 놀랐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방금 귀를 깨물릴 때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그리고 체스휘와 내가 그 후로 실랑이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다음 순간, 나는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식탁 옆으로 급히 고개를 돌렸다.

“우욱…!”

“잠깐만, 린 씨?”

갑자기 속이 뒤집어져서 그 후로 한참 헛구역질을 했다. 당연히 식당에서의 일은 흐지부지되었다. 체스휘가 내 등을 쓸어 준 건 생각나는데, 중간중간 필름이 끊긴 것처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다만 비몽사몽 중에 체스휘에게 안겨서 방까지 돌아온 것만큼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날 밤은 악몽이라 할 수 있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나는 어두운 레드포드 저택의 복도를 정신없이 달리고 있었다. 내 품에는 다이안이 있었고, 눈에 익은 악령들과 모로스들이 등 뒤에서 우리를 무섭게 쫓아오는 중이었다.

이번에도 나한테는 무기가 없어서 다이안을 데리고 그들을 피해 도망치는 게 최선이었다. 어째서인지 저택 여기저기에 발에 차일 것처럼 많이 널려 있던 무기들도 지금은 하나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 내 눈앞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이 다급한 상황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지, 혼자만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남자였다. 그는 다이안을 안은 채 복도를 달려오는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체스휘 씨!’

나는 반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드디어 우리를 도와줄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에 마음속의 불안감이 깨끗이 가시는 것 같았다.

‘린 씨, 힘들어 보이는데 도와줄까요?’

역시나 체스휘는 악령들과 모로스를 끌고 온 우리를 보고 자리를 피하는 게 아니라 선뜻 먼저 도움을 주겠노라 제안해 왔다.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서, 그의 권유에 고마운 마음으로 수락했다.

놀랍게도 체스휘는 단지 눈을 한번 감았다 뜰 정도의 짧은 시간이 지난 뒤,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왔다. 서슴없이 내게 뻗어진 그의 손이 다이안의 몸에 닿았다.

처음에는, 혹시 나 대신 체스휘가 다이안을 데리고 안전한 곳까지 도망쳐 주려는 건가 싶었다. 그래서 저항 없이 안고 있던 다이안을 체스휘에게 넘겨주었다.

‘이런 거추장스러운 건 없애 버리는 게 나을 텐데.’

하지만 다음 순간 체스휘가 한 짓은, 나한테서 옮겨 받은 다이안을 안는 게 아니라 뒤쪽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었다.

어린 소년의 몸이 새까맣게 우글거리는 악령들과 모르스의 무리 사이로 삼켜지는 광경이 내 눈앞에서 느리게 재생된 영상처럼 이어졌다.

나는 믿을 수 없는 기분으로 그 모습을 망연히 지켜보다가 뒤늦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급히 숨을 들이마시면서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뭐 이런 악몽이….’

기분 나쁜 꿈을 꿔서 그런지, 가뜩이나 무거운 몸이 더 찌뿌둥하게 느껴졌다. 숨을 깊이 마셨다가 내뱉으며 이마를 답답하게 덮은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아직 밤인 듯, 사방이 어둡고 조용했다. 방에는 나 혼자밖에 없었다.

저녁에 지나치게 과음해서 그런가? 유독 선명했던 방금의 꿈 말고도 오늘 밤에는 자잘한 악몽들을 많이 꾸었는데, 그래서 끙끙거리면서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옆에 체스휘가 있었던 기억이 났다. 그는 내 머리와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등을 토닥여 주기도 하면서 잠에서 깨어난 나를 다시 재워 주었다. 나는 악몽을 꾸고 일어나 체스휘의 얼굴을 볼 때마다 다시 안심하면서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체스휘가 옆에 없어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방금 그 꿈을 꾼 직후에 체스휘의 얼굴을 봤으면 나도 모르게 흠칫 놀랐을지도 몰랐으니까 말이다.

‘지난번에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에 없더니… 어딜 간 거지? 자기 방으로 돌아갔나?’

체스휘가 누웠던 자리에 손을 올리자 미약한 온기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체스휘가 자리를 비운 게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혹시 체스휘가 잠깐 다른 볼일을 보고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잠든 척 가만히 누워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체스휘는 다시 오지 않을 모양인데…. 나는 이대로 좀 더 누워서 날이 밝을 때까지 잘까 하다가, 그냥 이불을 걷고 침대 밖으로 나왔다.

바닥에 발을 딛자마자 저절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벌써 숙취가 오기라도 하는지,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으… 좀 적당히 마실걸.”

하도 스트레스가 심해서 술로 풀려고 했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이래서 기분이 나쁠 때 마시는 술은 조심해야 한다는 소리가 있는 건데.

“……!”

그런데 방에서 나와 복도를 걸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누가 내 팔을 세게 잡아 끌어당겼다.

체스휘는 이렇게 아프게 나를 붙잡거나 거칠게 잡아당기지 않기 때문에, 단번에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여자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세라 씨?”

“쉬잇!”

세라는 굳은 얼굴을 한 채로 내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빨리 이쪽으로 와요.”

잔뜩 긴장한 얼굴을 한 세라를 보니 나도 그녀를 따라 저절로 소리를 죽이게 되었다. 세라가 이 밤중에 몰래 그녀의 침실 밖으로 나와서 나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잠자코 그녀를 따라갔다.

세라가 나를 데려간 곳은 사용하지 않는 저택의 빈방 중 하나였다. 체스휘에게 이미 들킨 것을 우려한 듯이, 지난번에 우리가 만났던 방은 아니었다.

“이거 받아요.”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세라는 거기에 미리 숨겨 두었던 무언가를 내게 떠안기듯이 건네주었다.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부릅뜨고 말았다.

“당신이 여기에 올 때 가지고 있던 소지품들이에요. 옷은 찢어진 데다 더러워져서 그날 바로 태워 버렸고, 가지고 있던 물건들만 따로 보관해 뒀었는데 내가 챙겨 왔어요.”

“이걸 어디서….”

“그런 거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빨리 따라와요!”

세라는 또 나를 잡아끌어 어디론가 급히 이동했다. 우리는 또다시 어스름한 달빛이 고인 복도로 나왔다. 세라의 검은 머리칼이 그녀의 흰 목덜미 위에서 흔들리는 광경이 유독 선명한 색채의 대비를 이루었다.

나는 내 앞에 있는 세라의 뒷모습을 보며 설마 싶어졌다.

‘지금 세라가 나를 여기서 탈출시켜 주려는 건가?’

이 야밤에 내 소지품까지 찾아와서 이렇게 은밀하고도 다급하게 움직이는 걸 보면 왠지 그 추측이 맞는 것 같았다.

아, 아니…. 하지만 세라가 왜? 이렇게까지 날 도와주려고 할 이유가 어디에 있지? 지난번에 밤중에 몰래 만났을 때도 할 말은 다 했으니까 이제 두 번 다시는 아는 척하지 말라고 했었지 않나?

나는 세라를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기면서도 당황스러움에 입술을 달싹였다.

게다가 도대체 세라가 나를 어디로 빼돌리려고 이러는 건지도 의문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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