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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03)화 (203/300)

누가 봐도 도망가는 모양새였지만, 체스휘는 다급히 자리를 떠나는 세라에게 눈을 돌리지 않았다.

“린 씨가 다른 메이드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니 그래야겠네.”

체스휘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아예 식당 안에 있던 다른 고용인들도 전부 내보냈다. 그들도 세라처럼 꼭 이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로 한 치도 지체하지 않고 줄지어 식당을 나섰다.

아니, 내가 세라를 무사히 내보내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좀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되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졸지에 넓은 식당 안에 체스휘와 단둘이 남게 된 나는 은근한 부담감을 느꼈다.

“갑자기 너무 독한 술을 마셔서 속 아프지 않아요? 아까 먹던 거 마저 잘라 줄 테니까 먼저 물부터 마시고 있어요.”

하지만 체스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다시 나한테 줄 음식을 덜어서 나이프로 자르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태연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입꼬리를 들어 엷게 미소를 지은 얼굴이 괜스레 얄밉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게다가 이것도 그냥 괜히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왠지 또 체스휘가 뭔가를 알면서 일부러 모른 척해 주고 나를 봐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세라를 너무 순순히 보내 준 것도 뭔가 수상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또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었다. 그래서 나는 충동적으로 앞에 있는 술병을 집어 들었다.

체스휘가 그런 나를 발견하고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있던 손을 멈췄지만, 한발 늦었다. 체스휘가 나를 막는 것보다 내가 술병을 통째로 들어 그 내용물을 벌컥벌컥 속에 들이붓는 게 먼저였다.

“으윽, 크흡…!”

목으로 쓴 액체를 몇 모금 넘기기 무섭게, 불이 붙은 것처럼 속이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까처럼 기침이 터져 나오려는 걸 어렵사리 꿀꺽 삼켰다. 독한 술이 식도를 타고 위까지 흘러 내려가면서, 꼭 용암에 살이 녹는 것처럼 속이 지글거리며 끓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확 치솟았다.

“너어는, 진짜…. 그렇게 살지 마요.”

한꺼번에 취기가 오르는지, 머리가 어지럽고 갑자기 눈앞이 핑 돌았다. 아까부터 조금씩 알딸딸해지다가 세라를 보고 술이 확 깬 느낌이 들었었는데, 이후에 그녀가 식당을 나가고 덩달아 나도 긴장이 풀려서 다시 급격히 술기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진짜 그렇게 살지 마아…!”

나는 가까이에 앉은 체스휘를 삿대질하면서 소리쳤다.

시야가 핑글핑글 도는 느낌이 들면서 눈에 뵈는 게 없어져서 그런지, 롤러코스터라도 타는 것처럼 심하게 요동치는 감정을 내 뜻대로 제어하기가 어려웠다. 원래는 이런 식으로 체스휘를 자극하고 나면 그 뒷일을 어떻게 할지 조금 우려스러웠을 텐데, 지금은 눈곱만큼도 무섭지 않았다.

체스휘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한쪽 눈썹이 슬쩍 위로 올라가, 눈 위에 곧게 그려진 두 선이 비대칭을 이뤘다.

“왠지 이럴 것 같긴 했는데… 진짜 순식간에 취하네. 그러게 천천히 마시라니까, 말도 참 안 듣고.”

“나 안 취했어!”

“아, 응. 뭐, 일단 그런 걸로 해요.”

그런 걸로 하긴, 뭘 그런 걸로 해? 안 취한 게 사실인데!

“그보다 린 씨. 그렇게 살지 말라니, 나한테 뭔가 불만이 있었나 봐.”

체스휘가 흐음, 하고 나지막하게 숨을 내뱉으며 손에 들고 있던 포크와 나이프를 접시 위에 완전히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아까처럼 손에 턱을 느슨히 괴었다.

“그럼 내가 어떻게 살면 마음에 들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하면 예뻐해 줄지 한번 말해 봐요.”

듣기 좋은 나지막한 목소리가 내 귀에 흘러들었다.

왠지 체스휘는 이 상황이 흥미로운 것 같았다. 어찌 보면 이 기회에 내 감춰진 속내를 알아내려고 또 수작을 부리는 것 같기도 했고, 정말 순수하게 자신을 향한 내 생각이 궁금한 것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나는 대답해 줄 마음이 만반이었다.

어떻게 살면 마음에 들 것 같냐고? 이 남자가 지금 그걸 몰라서 묻나? 흠, 그런 것도 모르다니 참 불쌍하군. 그럼 내가 알려 줘야지.

“착하게 살란 말이에요, 착하게.”

분명 난 또박또박 말하고 있는데, 이상하게 내 귀에는 내 목소리가 ‘차카게 사을란 마뤼에효, 차카게에.’ 같은 괴상한 발음으로 들렸다.

“착하게?”

“응, 착하게!”

지금까지는 별로 안 착했던 것 같지만, 원래 사람은 변화하는 생물이라고 했다. 그러니 앞으로 노력하면 체스휘도 가망이 있지 않을까?

물론 그 가망이라는 게 좁쌀만 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좁쌀이라도 있으니, 체스휘의 인생도 완전히 절망적인 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본인에게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 같은 게 어디인가?

나는 체스휘의 용기를 북돋아 주듯이 앞에 있는 그의 머리통을 툭툭 두드렸다. 체스휘의 머리가 조금 전부터 갑자기 두 개가 되어서 번갈아 쓰다듬어 주려고 했는데, 다시 보니 그에게 뻗은 내 오른손도 두 개로 쪼개져 있었다. 그래서 굳이 순번을 따질 필요 없이, 동시에 체스휘의 머리 두 개를 토닥일 수 있었다.

응? 그런데 왜 갑자기 내 오른손이 두 개로 나누어졌지?

문득 스친 의문에 흠칫 놀라서 체스휘에게 닿았던 손을 급히 거두었다. 그러고 나서 두 개가 된 내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혹시 내가 잘못 봤나 했는데, 여전히 오른손이 두 개였다. 아닌가? 혹시 이게 내 왼손하고 오른손인가?

갑자기 자라난 의혹에 눈을 꾹 감았다가, 이번에는 내 양손을 한꺼번에 내려다보았다.

우와, 이번에는 손이 여섯 개로 늘어나 있었다.

신기해서 내 손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면서 여기저기 뜯어 보았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체스휘가 피식 바람이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입술 사이로 내뱉으면서 내 손을 움켜잡아 가까이 끌어당겼다.

“어떻게 사는 게 착한 건데?”

“그건… 나쁜 짓 하지 않으면 되지?”

“뭐가 나쁜 짓인지 모르겠는데 린 씨가 알려 줘 봐요.”

“음, 으음…. 뭐가 나쁜 짓이냐며언….”

체스휘의 질문에 이맛살을 구기며 고민했다. 가뜩이나 머리도 어지럽고 감각 자체가 둔해져 있는 느낌인데, 이렇게 어려운 질문까지 들으니 뇌가 더 굳어서 원활히 굴러가지 않는 느낌이었다.

체스휘가 빨리 대답하라는 듯이 엄지로 내 손등을 아프지 않게 긁었다. 간지러워서 팔을 뒤로 물렸지만, 체스휘에게 단단히 붙들린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손가락으로 내 손을 계속 은근히 문지르면서, 대답을 재촉하듯이 내 눈을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그러는 통에 집중해서 생각하는 게 더 어려워졌다.

게다가 지금은 나도 손이 여섯 개고, 체스휘의 손도 여섯 개라서 그런가? 살갗을 훑는 손가락의 움직임과 그 위로 퍼지는 은은한 열기가 평소의 여섯 배 정도로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려워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몸을 작게 들썩이게 됐다.

그러다 보니 가까스로 생각해 낸 답변은 객관성을 완전히 잃은 괴상한 헛소리와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나한테 거짓말도 하지 말고…. 내가 싫어하는 짓도 하지 말고…. 또 내 말도 잘 듣고….”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데?”

“허어어, 양심이 다 뒈졌나 봐….”

체스휘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질색하는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러자 체스휘가 이번에는 아예 어깨를 들썩이면서 웃었다. 그 모습이 퍽 얄미워서, 나는 이번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체스휘를 내려다보면서 씨근덕거렸다.

“너… 너 진짜 웃겨. 지금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뭘 자꾸 아니라고….”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난 린 씨한테는 거짓말한 적 별로 없어요.”

“웃기지 마!”

“아니, 진짜. 기껏해야 손에 꼽을 정도라고나 할까.”

“그 반대겠지!”

“안 믿네.”

내 강한 반발에 체스휘가 유감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내가 안타깝고, 또 내 신뢰를 받지 못하는 게 슬프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린 씨.”

하지만 다음 순간, 내 귀에 흘러드는 체스휘의 목소리는 한 자락 낮게 깔려 있었다. 나를 응시하는 눈동자에도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를 서늘한 이채가 서린 게 보였다.

“거짓말은 당신도 하잖아. 그런데 왜 나한테만 하지 말래?”

어째서인지 그 눈을 똑바로 마주한 순간, 잘못한 것도 없이 갑자기 말문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고 그래요…?”

“그럼 린 씨는 지금까지 나한테 거짓말한 적이 정말 한 번도 없다고?”

왠지 내게 고정된 체스휘의 눈이 내 깊은 속까지 관통해서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나는 괜히 딴청을 부렸다.

“나, 나 취했나 봐. 갑자기 막 졸려요….”

나는 의자에 다시 앉아, 잠이 오는 척 식탁 위에 몸을 기대며 엎드렸다. 체스휘가 손을 댔는지, 아래로 늘어져 있던 머리카락이 중력을 거스르며 살짝 위로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불리할 때만 취했다고 그러네. 방금은 멀쩡하다면서요?”

어느새 분위기가 바뀌어서, 이제는 체스휘가 꼭 나를 추궁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나는 눈을 꼭 감고 계속 자는 척을 하다가, 문득 이 상황에 이상함을 느꼈다.

아니지, 잘못한 건 내가 아니라 체스휘인데 왜 내가 죄지은 사람처럼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해?

또 체스휘의 술수에 놀아날 뻔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방금보다 두 배로 성이 난 상태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마음속의 분노를 끌어모아, 옆에 있던 체스휘의 멱살을 확 움켜쥐어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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