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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02)화 (202/300)

아까 낮에 그런 것만큼은 아니지만, 세라의 얼굴은 지금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창백하게 얼어붙은 얼굴을 한 세라가 걸어와서 쟁반 위에 있는 것들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녀의 손이 조금 떨려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은근히 올라오던 술기운이 세라를 본 순간부터 확 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경계심이 머릿속에 싹텄다.

세라가 왜 지하 저장고에 있던 술병을 이렇게 직접 들고 식당까지 왔는지 의문이었다.

저택의 고용인들은 원래 전담하는 일과 구역이 따로 나누어져 있었다.

원래 내가 아는 세라는 손님의 접객을 담당하는 메이드였다. 하지만 알다시피 레드포드 저택에는 손님이 방문하는 일 자체가 매우 드물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저택에서 유일한 의사인 콘라드의 자잘한 시중을 드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그나마도 콘라드는 평소에 사회성이 떨어져서 시중받는 걸 싫어하는 편이었고, 그래서 기껏해야 끼니 때마다 식사를 가져다준다거나 하는 정도가 시중의 전부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다른 메이드들 사이에서는 꿀 보직이라고 부러움을 왕창 사고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세라의 경우가 그렇다는 거였다.

불과 며칠 전에 내가 들은 말에 의하면, 체스휘가 주인이라고 주장하는 이 저택에는 의사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까 낮에 복도에서 봤을 때 세라는 세탁을 마친 수건을 욕실로 옮기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런 걸 보면 이런 식당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텐데, 왜 지금 여기에 와 있는 걸까?

갑자기 아까 복도에서 세라와 마주쳤을 때, 체스휘의 시선이 그녀에게 유독 오래 머물렀던 기억이 났다. 나도 모르게 세라의 얼굴을 보고 있던 시선이 체스휘에게로 미끄러졌다.

체스휘는 세라가 막 식탁 위에 올려놓은 술병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그는 아까처럼 세라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술병을 손으로 잡아 들어 올리는 그의 눈빛은 오히려 무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모습이,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은 듯이 손을 빠르게 움직이는 세라에게는 관심이 눈곱만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세라가 소임을 마친 뒤 막 자리에서 물러나려 했을 때, 체스휘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지나가듯이 식당 안에 울렸다.

“술을 잘못 가져온 것 같은데.”

“예?”

세라가 당황한 목소리로 무심코 반문했다. 하지만 그녀는 곧 아차 한 듯이 바로 입을 다물었다. 체스휘는 그런 세라를 여전히 쳐다보지 않고, 손에 들고 있는 술병을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내가 지하 저장고에서 이걸 꺼내오라고 했던가? 아닐 텐데.”

나지막하게 읊조려지는 체스휘의 목소리는 감정의 기복 없이 잔잔하고 단조로웠다. 잠깐 당황한 듯했던 세라가 고개를 숙여 체스휘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는, 말씀하신 대로 가져왔습니다.”

“정말?”

“…….”

“확실해요?”

마침내 체스휘가 들고 있던 술병에서 시선을 떼고 세라를 응시했다.

체스휘의 목소리는 나를 대할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를 질책하려는 의도라고는 없는 것처럼 부드러웠다. 그의 입술에도 희미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체스휘를 마주한 세라는 꼭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숨을 들이켰다.

뒤이어 뭐라고 변명하려는 듯이 세라의 입술이 작게 달싹여졌다. 하지만 그녀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지 쉽게 말을 솎아 내지 못했다.

저 예쁜 얼굴로 저렇게 곤란한 기색을 내비치면 저절로 마음이 약해질 만도 하건만, 체스휘는 여전히 먼지만큼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감정의 동요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세라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그냥 겉으로 봐서는 일부러 세라에게 억하심정이 있어 트집을 잡는다기보다는, 정말 단순히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도 정말 세라가 실수한 건지, 아니면 체스휘가 뭔가를 착각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체스휘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진짜 단순한 남자는 아니었다.

“응? 정말 확실하냐고 물었는데 왜 대답이 없지? 그게 그렇게 어려운 질문이던가.”

체스휘가 손에 들고 있던 술병을 식탁에 내려놓는 소리가 식당 안에 작게 울렸다.

“내가 가져오라고 한 건 보드카 바르카스가 아니라 와인 바르카디스인데.”

그 순간 세라가 헉하고 숨을 들이켜며 크게 뜬 눈으로 식탁 위의 술병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곧바로 서둘러 고개를 숙여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로 다른 술을 가져온 것 같….”

“난 아무거나 상관없는데요.”

나는 세라의 말을 끊고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러고 나서 체스휘가 세라에게 다른 말이나 행동을 더 취하기 전에 덧붙였다.

“지금 가져온 술도 괜찮아 보이는데 그냥 이걸로 마실래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체스휘도 굳이 세라를 더 추궁하지 않고 내 반응에 관심을 보였다.

“그럴래요? 하긴, 이것도 나쁜 술은 아니니까. 그런데 이건 도수가 너무 높아서….”

“마침 잘됐네요. 지금 마신 건 영 맹물 같아서 술 같은 느낌도 안 들었는데.”

“린 씨, 술 진짜 좋아하는구나. 그래요, 그럼. 이걸로 따라 줄게요.”

체스휘는 흔쾌히 새 술병을 따서 내게 술을 부어 주었다.

“도수가 제일 높은 보드카라 조금 희석시켜서 마셔야 되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하지만 나는 체스휘의 말대로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내가 독주를 잘 마신다는 걸 입증할 생각으로 바로 술잔을 들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큽…!”

그리고 바로 식도를 강타하는 고통에 목을 움켜잡고 말았다.

“그걸 또 겁 없이 한입에 다 마시려고 하네. 내가 기다리라고 했죠?”

체스휘가 작게 탄식하면서 미친 듯이 기침을 하는 내 등을 쓸어 주었다. 나는 그가 가져다준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어우 씨, 미친 거 아니야? 식도가 완전히 다 타들어 가는 줄 알았잖아!

어쨌든 체스휘의 관심은 세라에게서 완전히 떠난 것처럼 보였다. 세라도 일단 위기를 모면하자 마음을 놓은 기색이었다. 하지만 체스휘가 그만 가도 좋다고 말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도 식탁 앞에 서서 숨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그래서 나라도 세라를 보내려고 막 입을 열었을 때, 체스휘가 다시 옆으로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그런데 이 메이드, 얼굴이 묘하게 낯익은데. 혹시 전에도 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

체스휘의 말을 듣고 세라와 나, 둘 다 동시에 몸을 작게 움찔거렸다. 하지만 나는 곧 태연하게 체스휘에게 말했다.

“아까 복도에서 수건을 가져다준 메이드잖아요.”

“그거 말고요. 그 전에 어디서 봤었던 것 같아서.”

당연히 체스휘가 세라를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세라를 기억하지 못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주시하며 짐짓 기억을 되새기는 척했다. 당연히 체스휘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세라는 잔뜩 얼어붙은 상태였다. 체스휘의 손가락이 까딱이며 식탁 위를 느긋이 두드리는 소리가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다가 마침내 체스휘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입을 열었다.

“아, 얼마 전에 고양이를 찾을 때 린 씨하고 복도에 같이 있던 그 메이드였구나. 둘이서 꼭 내가 들으면 안 되는 비밀스러운 대화라도 나누는 것처럼 보이던데.”

챙그랑!

그 순간, 세라의 손에 들려 있던 쟁반이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다. 차라리 그냥 무덤덤한 척했으면 되었을 텐데, 세라의 반응을 통해 그녀의 동요가 지나치게 잘 드러나 보였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노력하는 듯했으나, 세라의 눈은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나도 체스휘가 세라를 그냥 우연히 이 자리에 세워 놓은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 지금 그는 마치 쥐를 가지고 노는 고양이처럼, 세라와 나를 한자리에 두고 심술궂은 짓을 하는 중이었다.

“미카엘 씨, 아까부터 뭐 하는 짓이에요?”

나는 체스휘와 세라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체스휘의 눈길이 다시 내게 향했다. 나는 약간 서늘해 보이는 체스휘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지금 내가 보는 앞에서 메이드한테 수작 걸어요?”

그 순간 식당 안이 조금 전까지와 다른 의미로 조용해졌다. 체스휘와 세라를 포함해, 식당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침묵했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체스휘는 설마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 몰랐는지, 귀를 의심하는 듯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는 지금 무슨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나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아까부터 계속 이 메이드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예전에 어디서 본 것 같다느니 하면서…. 지금 완전 수작질하고 있잖아요.”

“수작질이라니, 그런 말은 도대체 어디에서 들었는데?”

“어제 심심해서 읽은 책에 비슷한 내용이 있던데요.”

“저택에 그런 책이 있었다고?”

“아무튼 지금 내 앞에서 뭐 하는 거냐고요. 지난번에 고양이를 찾다가 나하고 우연히 마주쳤던 것까지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이 메이드가 인상적이었어요? 지금도 술 좀 잘못 가져온 게 뭐가 대수라고 굳이 시비 거는 척하면서 말까지 붙이고…. 이제 보니 이 메이드가 무척 마음에 들었나 봐요?”

“그게 무슨 소리야. 나한테는 린 씨밖에 없어요.”

“책에 나오는 남자들도 이런 상황이 되면 꼭 그런 입에 발린 거짓말을 하더라.”

“난 진심인데. 어떻게 해야 믿어 줄 거예요?”

“됐으니까 그냥 술이나 따라요.”

“이 메이드, 앞으로 두 번 다시는 린 씨 눈에 띄지 않게 저택에서 치워 버릴까? 그럼 내 말 믿을래요?”

“아니, 그냥 다른 메이드한테 관심 자체를 주지 말라고.”

이 속이 시꺼먼 남자가 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라를 치워 버리겠다는 소리를 해서 식겁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강세를 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순간, 체스휘에게서 무심코 터져 나온 듯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만 나가 봐요.”

뒤이어 체스휘가 옆에 서 있던 세라에게 손짓했다. 세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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