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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01)화 (201/300)

체스휘의 말처럼 저녁 식사 시간에 식당으로 내려갔을 때는 모든 만찬 준비가 다 끝나 있었다.

냄새만으로도 식욕을 자극하는 맛있는 요리들과 거기에 곁들여진 좋은 술. 식탁을 화려하게 장식한 꽃은 오전에 만난 정원사에게 내가 지나가듯이 언급했던 품종인 것 같았다.

“저녁은 평소보다 좀 더 신경 쓰게 했는데 마음에 들어요?”

체스휘는 나를 의자에 먼저 앉힌 다음 식탁 옆에 서서 검은 라벨이 붙은 진녹색 병을 들고 직접 입구를 개봉했다.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술잔에 옅은 노란색 액체가 조르륵 쏟아져 담겼다.

“지하 저장고에 있는 술이 궁금하다고 했죠? 한번 마셔 봐요. 식전주로 가볍게 들기 괜찮은 거니까.”

아까 점심 무렵에 체스휘가 했던 말은 단순히 그 순간에만 나를 달래려고 꺼낸 것인 줄 알았는데, 그는 정말 저택의 지하 저장고에서 술을 가져오게 했다.

나는 술병을 들고 선 체스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체스휘는 아까 모로스 때문에 더러워졌던 옷을 갈아입은 상태였다. 그래도 격식 있는 만찬 자리에서 제대로 예복을 차려입은 것보다는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옷 태가 나서 그런지, 꼭 내가 고급 레스토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의 체스휘는 앞머리의 반을 자연스럽게 옆으로 넘겨, 내가 앉은 자리에서는 그의 옆얼굴이 훤히 보였다. 이마에서부터 높은 콧날을 지나 가벼운 미소를 띤 입술과 날카로운 턱으로 이어진 얼굴의 윤곽이 꼭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처럼 유려한 선으로 그려져 있었다. 반듯한 이마를 매끄럽게 감싸며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그의 얼굴에 부드러운 음영을 덧그렸다.

워낙 이목구비가 섬세한 얼굴인 데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묘하게 사연 있어 보이는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라 그런가? 아니면 아래로 내리깐 긴 속눈썹이 조명에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 오늘따라 다른 때보다 유독 눈매가 깊어 보여서 그런 건가? 체스휘에게서 꼭 옛날 흑백 고전 영화의 남주인공 같은 클래식한 분위기가 났다.

나도 모르게 눈이 설핏 가느스름하게 좁혀졌다.

‘저런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게 고용인들을 죽여서 악령들한테 던져 줬단 말이지….’

낮의 일을 떠올리자 기분이 한결 가라앉는 느낌이라, 체스휘를 보고 있던 시선을 떨어뜨렸다.

아까 체스휘는 원거리에서 저격이 가능한 총 같은 무기를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모로스의 육신은 인간과 비슷했으니, 가까이에서 한 마리만 상대해도 어쩔 수 없이 그 흔적이 몸에 남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체스휘의 움직임은 굉장히 신속하고도 정확해서, 모든 일 처리가 끝난 후에도 그의 모습은 거의 말끔했다. 특히 체스휘의 옆에 바로 붙어 있던 내 옷에는 단지 피가 몇 방울 튄 게 전부였다. 생각해 보면 체스휘는 정신없던 그 소란 속에서도 모로스들이 나한테 손끝 하나 대지 못하게 신경 썼었다.

그런 부분에서는, 체스휘가 나를 얼마나 소중하게 대하는지 알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게서 보이는 이질적인 부분들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한 체스휘의 옷소매를 보다가, 그와 마찬가지로 아까 새로 갈아입은 내 옷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이 옷 역시 맞춤 제작하기라도 한 듯이 내 몸에 편안하게 딱 들어맞았다.

‘예전에 데려왔다는 여자도 이 사이즈의 옷을 입었나? 아니면 전부터 날 속일 생각을 하고, 일부러 나한테 입힐 옷을 새로 준비해 뒀던 건가?’

물론 세라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어느 쪽이 진실이든지 간에,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데는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아까 낮의 사건 이후로 가뜩이나 또 속이 얹힌 것처럼 불편한데, 거기에 더해 다른 종류의 불쾌감까지 갉작거리며 몸을 기어 다니는 것 같았다.

달그락.

그때, 옆에서 체스휘가 술잔을 다 채웠는지 식탁에 병을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낮에 많이 놀라서 그런가, 그 후로 왜 이렇게 영 기운이 없어 보이지?”

잇따라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자마자, 먼저 나를 응시하고 있던 체스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비스듬히 입술을 당겨 미소를 지으며 내 뺨과 턱을 손으로 한번 가볍게 쓰다듬었다.

“역시 식전주부터 먼저 마셔 볼래요? 그럼 긴장이 풀려서 기분이 나아질지도 모르니까.”

내게 권유하듯이 말한 체스휘가 걸음을 옮겨 의자에 앉았다. 이번에도 그의 자리는 넓은 식탁의 맞은편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옆자리였다.

“린 씨가 원래 좋아하던 술이니까 마음에 들 거예요.”

그 순간, 굳게 다물고 있던 입술 사이로 나도 모르게 메마른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가 원래 이걸 좋아했다고요?”

체스휘가 식탁에 팔을 올리며 수수께끼 같은 미소를 지었다. 손에 턱을 느슨히 괴고 나를 향해 가늘게 웃는 모습이 어딘가 비밀스러워 보였다.

나는 눈앞에 있는 술잔을 싸늘히 내려다보다가 손을 움직였다.

아까는 생각나는 대로 핑계를 댄 것에 불과했지만, 어차피 맨정신으로 있기 어려웠던 참이었다. 그래서 술잔을 들어 그 안에 든 내용물을 그대로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한 잔 더요.”

탁!

술을 호쾌하게 한입에 털어놓고 빈 잔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체스휘가 순식간에 텅 빈 내 술잔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가볍게 마시기 좋다는 말이 그렇게 한꺼번에 들이켜라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빨리 한 잔 더.”

내 재촉에 결국 체스휘가 못 이긴 척 빈 잔에 술을 한 번 더 따라 줬다. 나는 그것마저 단숨에 해치웠다.

“린 씨. 술이 마음에 든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이거 생각보다 도수가 높거든요.”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여기 더 따라 봐요.”

체스휘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볼 뿐, 이번에는 바로 손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나한테 술을 더 줘도 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내가 직접 그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아 내 잔에 술을 쏟아부었다.

체스휘는 내가 이럴 줄 몰랐는지 작게 입술을 벌렸다. 하지만 이내 그는 아무 말 없이 다시 입을 다문 뒤, 내가 자작으로 술잔을 비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체스휘는 이 술의 도수가 생각보다 높다고 했지만, 그건 내 주량을 몰라서 하는 소리인 것 같았다. 이래 봬도 레드포드 저택에 있는 독한 술들은 내가 거의 다 섭렵했단 말이다.

하지만 사실 지금 체스휘가 준 술은 나도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병의 생김새를 보니 낯설지는 않은데, 이상하게도 전에는 선뜻 손이 안 가서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술은 체스휘의 말대로 정말 내 취향에 잘 맞았다. 그래서 더 거슬리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심기가 좀 더 불편해진 상태로 혼자 술잔에 따른 술을 연거푸 원샷했다.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데…. 그렇게 급하게 마시면 금방 취할걸.”

여전히 손에 턱을 괸 상태로 나를 지켜보던 체스휘가 지나가듯이 말했다. 그는 나를 보면서 희미하게 웃는 건지 찌푸린 건지 모를, 애매모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체스휘는 나를 말리는 걸 포기한 것 같았다. 그는 그냥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나를 내버려 둔 채 손을 움직여 앞에 있는 음식을 내게 덜어 줬다.

“이것도 같이 먹어요. 그러다가 속 버려.”

처음에는 무시했지만, 체스휘가 아예 내 입 앞에 직접 포크를 가져다 대서 어쩔 수 없이 한 입 받아먹고 말았다. 그러자 체스휘의 눈과 입술이 설핏 가늘게 휘어졌다.

그때부터는 아예 재미라도 들린 것처럼, 먹기 좋게 한입 크기로 자른 음식들이 계속 내 입으로 날라졌다.

참나, 자기가 무슨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 주는 어미 새라도 되는 줄 아나?

“나 이거 말고 새 거 가져다줘요.”

“벌써 한 병을 다 비웠어요?”

“애초에 가득 들어 있지도 않았는데 뭐.”

이번에는 체스휘가 진심으로 놀란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술병을 비울 줄 몰랐던 모양이다. 그는 나한테 먹일 구운 채소와 고기를 자르던 손을 멈추고 내가 방금 식탁 위에 올려놓은 술병을 내려다봤다.

별것 아니라고 할 수 있는 반응이었으나, 약간 크게 떠진 체스휘의 눈을 보자 내 속이 아주 조금은 후련해진 느낌이었다.

“빨리 새 거 달라니까요. 딱 한 병만 더 마실 테니까.”

“그만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미카엘 씨는 하나도 안 마셨잖아요. 한 병 더 가져와서 이번에는 같이 마셔요.”

체스휘가 나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았다.

술 한 병을 꺼내오는 데도 이렇게 체스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게 더럽고 치사했다. 원래 이 저택에 있는 술은 몽땅 다 내 거였는데!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아쉬운 건 나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맨정신으로 있기 어려워서 술을 마신 건데, 한번 입에 대고 나니 점점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지금보다 좀 더 제대로 취한 상태로 방으로 돌아가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잠들고 싶은 기분이었다.

다행히 체스휘는 얼마 전에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그는 작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번에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이번에는 정말 나하고 반씩 나눠 마시는 거예요.”

“취하는 기분도 안 들고 멀쩡하기만 하구먼….”

“꼭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갑자기 주사를 부리고 그러던데.”

못마땅하게 중얼거리는 내 말에도 체스휘는 단호했다.

체스휘가 식당 구석에 있던 고용인들에게 손짓하자 그들은 바로 움직였다. 잠시 후, 누군가가 새로운 술병과 술잔이 담긴 쟁반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 그런데 또 공교롭게도 식당 안에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세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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