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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00)화 (200/300)

체스휘의 움직임을 따라 내 시야에 비치는 광경도 달라졌다.

시끄러운 발소리와 기괴한 음성이 들려오는 복도에는 더 이상 산 사람이 아니게 된 고용인들만 있었다. 그들은 조금 전에 내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까지만 해도 따뜻한 피와 살을 가진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에 핏발 선 눈을 한 채로 체스휘와 나한테 달려들었다.

캬아악!

체스휘의 말처럼 죽은 인간의 몸…. 즉, 빈 그릇 속에 들어가 모로스로 변한 악령들이 날카로운 손톱이 자라난 검은 손을 빠르게 휘둘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내 눈앞에 튄 건 붉은 피가 아닌 검은 피였다.

“금방 끝낼 테니까 잠깐만 눈 감고 있어요.”

여전히 지금 이 상황이 조금도 버겁지 않다는 듯이 평온하기만 한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체스휘는 어느새 부러진 금속 칼처럼 생긴 무기를 손에 들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저택을 돌아다녔을 때, 원래 레드포드 저택 곳곳에 장식되어 있던 무기는 체스휘와 고용인들이 모두 치우기라도 한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체스휘가 들고 있는 건 도대체 어디에서 튀어나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보니, 체스휘의 손에 쥐어진 무기는 칼이 아니라 복도의 벽에 걸려 있는 촛대를 뜯어낸 것이었다.

키야악…!

체스휘는 내 허리를 한 팔로 감아 고정한 상태로 민첩하게 몸을 움직여 또다시 우리에게 달려드는 모로스들의 목을 베어 내고 연달아 심장과 머리를 꿰뚫었다. 비명인지 고함인지 알 수 없는 모로스들의 소리가 뒤섞여 귀가 아릴 지경이었다.

그들을 모두 처리하는 데 긴 시간은 소요되지 않았다. 체스휘는 이지를 잃은 괴물로 변한 모로스가 떼 지어 달려드는데도 그것을 상당히 손쉽게 처리했다.

“역시 모로스는 악취가 심하네요.”

잠시 후, 자리에 멈춰 선 체스휘가 헝클어져서 눈을 찌르는 앞머리가 거슬리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고개를 작게 흔들어 털었다.

“옷도 더러워졌잖아…. 린 씨한테 예뻐 보이려고 새로 갈아입은 건데.”

그는 언짢은 듯이 혼잣말을 읊조린 뒤, 검게 얼룩진 금속 촛대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떨어뜨렸다.

내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해진 복도에 한 차례 ‘댕그랑!’ 하는 큰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체스휘도 그것을 느꼈는지, 내 허리춤을 감싸고 있던 팔을 풀었다.

“아, 미안. 나도 모르게 너무 세게 잡고 있었네.”

확실히 체스휘에게 줄곧 붙들려 있던 허리가 조금 아린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감각이 마비되기라도 한 것처럼, 체스휘가 말하기 전까지는 그런 사실조차 아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체스휘에게서 몸을 떼어 낸 뒤, 바닥에 발을 딛고 서서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쩐지 입 안이 바짝 마른 느낌이라 침을 한번 삼켰다. 체스휘에게 안겨 그를 따라 이리저리 몸이 흔들린 것 말고는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이상하게 오히려 체스휘보다 내가 더 숨이 찼다.

체스휘는 나한테 다친 곳이 없는지 확인하려는 듯이 내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눈매를 잘게 찌푸렸다.

“린 씨한테도 피가 튀었어요.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이런 바보 같은 실수를 했네요.”

불현듯 커다란 손이 내 얼굴로 가까이 다가와서, 나도 모르게 몸을 흠칫했다.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거의 반사적으로 보인 반응이었다.

그 순간 내 얼굴에 막 닿으려 하던 체스휘의 손이 멈춰졌다. 동시에, 체스휘의 시선이 내 눈을 꿰뚫었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그의 눈동자 안에 내 굳은 얼굴이 비치는 듯했다.

체스휘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보다가, 앞으로 내밀었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안 묻었는데.”

체스휘의 말처럼, 촛대를 잡고 휘둘러 모로스의 피가 묻은 오른손에 비해 나를 안고 있던 그의 왼손은 깨끗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뒤, 체스휘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나를 응시했다.

“혹시 놀라서 그래요? 이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기억이 없는 상태라서 그런가.”

의외라는 듯이 그의 고개가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체스휘를 향해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런 건 처음 봐서 조금 놀랐어요.”

그러자 체스휘가 나를 이해한다는 것처럼 어렴풋이 미소를 지었다.

“그랬구나. 그래도 최대한 빨리 깨끗하게 끝내려고 노력한 건데 내가 조금 부족했나 보네요.”

체스휘의 손이 다시 내 얼굴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일로 놀란 건 사실이지만, 단순히 눈앞에서 학살극에 가까운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동안 나도 모로스와 악령을 수도 없이 마주해 왔고, 그들을 내 손으로 죽였던 적도 셀 수조차 없었으니까.

게다가 체스휘의 말처럼 그는 정말 생각 이상으로 모로스를 깔끔하고 빠르게 처리했다. 모든 일이 끝난 지금도 도대체 뭐가 뭔지 조금은 얼떨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특히 체스휘가 한 일은,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신선한 발상이라 할 수 있었다. 악령을 죽은 사람의 몸에 집어넣어서 모로스로 만들어 없애다니….

확실히 악령은 제령 방식이 까다로운 데 비해 모로스는 일반 무기로도 해치울 수 있었기 때문에, 이쪽이 훨씬 빠르고 간단하게 일을 끝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믿기지 않을 만큼 굉장히 무참한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멀쩡한 사람들을 생으로 악령들의 먹잇감으로 던져 준 셈이 아닌가?

그리고 그토록이나 잔혹하고 무자비한 방법으로 고용인들을 죽인 이 남자는, 지금 깨지기 쉬운 유리 조각이라도 건드리듯이 조심스러운 손길로 내 얼굴을 문지르는 중이었다. 나는 어쩐지 오늘따라 그 괴리감을 참아내기가 조금 어려웠다.

“흠, 어쩌지. 더러워진 데가 잘 안 닦이네.”

체스휘는 얼룩이 묻은 내 얼굴을 잠깐 마뜩잖은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거기. 그 수건, 린 씨한테 필요할 것 같은데.”

그의 말을 듣고 나도 시선을 움직였다. 소란을 듣고 모여든 건지,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던 복도에 고용인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들은 난장판이 된 복도를 발견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사색이 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체스휘는 그들 중에서 세탁이 끝난 수건을 옮기려는 듯이 손에 들고 있던 메이드를 쳐다보았다. 하필 그녀는 세라였다.

체스휘의 부름을 듣고, 자리에 얼어붙어 있던 세라가 퍼뜩 정신을 차린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셨는지, 폐가 있는 가슴 부분이 눈에 띄게 들썩이는 게 보였다.

세라는 곧 수건을 들고 체스휘와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그 물병도 이리 가져왔으면 좋겠고.”

체스휘가 또 어딘가를 향해 작게 손짓하자, 쟁반 위에 물병과 컵을 들고 있던 고용인이 눈치 빠르게 다가왔다.

체스휘는 수건을 물에 적셔, 먼저 모로스의 체액이 묻은 내 눈가와 뺨을 닦아 줬다. 살갗을 문지르는 감촉이 깃털이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부드럽고 섬세하기 짝이 없었다. 체스휘의 부름을 받고 다가온 세라와 다른 고용인들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있었다.

“아, 됐다. 이제 깨끗해졌네요.”

잠시 후 체스휘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머금으며 내게서 손을 뗐다.

세라가 새 수건을 건네주려고 했지만, 체스휘는 필요 없다고 거절한 뒤 들고 있던 수건으로 검은 액체가 묻은 자신의 손을 닦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체스휘의 몸에도 모로스의 흔적이 거의 묻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기분 탓인가? 체스휘가 무표정한 얼굴로 옆에 있는 세라에게 잠깐 눈길을 두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곧 그가 긴 속눈썹을 내리깔며 시선을 떨어뜨려서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린 씨. 지하실에는 왜 간 거예요?”

그러다 문득 체스휘가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그는 검은 피가 튄 손을 무심히 닦아 내면서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있다가, 미끄러뜨리듯이 눈을 비껴 들어 나를 다시 똑바로 응시했다.

타이밍 좋게, 예전에 체스휘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술이… 있다고 해서요.”

“술?”

“네, 지하실에 맛있는 술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마셔 보고 싶어서요.”

그러자 체스휘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런 얘기를 어디에서 들었어요?”

“고용인들한테요.”

“어떤 고용인한테?”

“그건 모르겠어요.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어서.”

내 말의 진위를 가늠하듯이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내 얼굴을 잠깐 조용히 주시했다. 나도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체스휘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이윽고 체스휘가 모로스의 피로 검게 물든 수건을 옆에 있던 고용인에게 건네주며 입을 열었다.

“술 저장고는 그쪽 지하실이 아니에요. 다음부터는 번거롭게 직접 움직이지 말고 고용인이나 나한테 말해요. 얼마든지 가져다줄 테니까.”

다행히 체스휘는 내 말을 의심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물론 그것도 진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지금은 더 추궁당하지 않아서 나도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술을 마시기엔 아직 너무 이른 시간인 것 같고…. 저녁 식사 시간에 한 병 꺼내 오게 할까요? 린 씨가 좋아할 만한 걸로.”

체스휘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나는 좋다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더러워진 복도를 한번 둘러본 체스휘가 이내 내 손을 붙잡고 자리에서 걸음을 뗐다.

“그럼 우린 먼저 방으로 가죠. 여긴 린 씨가 있기에는 너무 지저분하네요.”

단지 그 말만으로도 고용인들은 체스휘의 뜻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체스휘와 내 발밑에서 검은 꽃이 먼지처럼 바스러졌다.

그것을 보자 방금 체스휘의 손에 죽어 악령들에게 던져진 사람들이 떠올라서, 왠지 검은 시체꽃이 짓밟히는 소리가 꼭 비명처럼 느껴졌다.

어째서인지, 그 조용한 소리와 함께 내 가슴 한 귀퉁이도 부스러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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