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98)화 (198/300)

우웅.

갑자기 공기가 요동치는 느낌에 문득 의구심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

방금 뭐였지? 분명 공기가 이상하게 울렁거리는 느낌이었는데? 꼭 바닷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얕은 파도가 밀려올 때처럼, 기묘한 감각이 피부를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찜찜한 기분에 살며시 눈살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폈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내가 뭔가를 착각한 건가 싶었으나, 그렇다기에는 조금 전에 폐부를 찌른 감각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체스휘 몰래 뭔가를 하려니까 괜히 예민해져서 그런가?’

하지만 역시 괜한 기분 탓인가 싶기도 해서, 나는 손으로 뒷덜미를 문지르며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여주인님.”

“아, 네. 좋은 오전이네요.”

쓸데없이 긴장한 모습을 보이면 고용인들이 의심할까 봐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움직였다. 다행히도 그 모습이 꽤 그럴듯했는지, 지하실로 향하는 나를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일전에 총괄 집사가 지하실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기억이 떠올라서, 도중에 나를 막아서는 사람이 최소한 한 명 이상은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아니면 혹시 내가 지하실로 가고 있는 걸 모르나?

하긴…. 이마에 ‘목적지는 지하실!’이라고 써 붙인 것도 아니니, 모르는 게 당연한가 싶기도 하고.

그러니 괜히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으로 수상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고용인들은 꼭 내게 먼저 말을 걸지 말라는 명령어가 머리에 입력되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들은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나를 향해 정중히 인사할 뿐, 굳이 다른 말을 건네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지난 며칠 동안 이 이상한 레드포드 저택에서 나한테 먼저 말을 건 고용인은 사라로사가 유일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방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는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고로, 내가 지하실에 가까워질 때까지 나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왠지 너무 쉬우니까 오히려 더 찝찝한데…?’

잠시 후, 나는 지하실 앞에 다다라 떨떠름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쯤 되니 근처를 오가는 고용인들도 거의 없었지만, 혹시라도 우연히 나를 발견한 사람조차 곧바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양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나는 누가 봐도 지하실의 문 앞에 서 있었는데, 내 앞을 막기는커녕 꼭 나를 투명 인간 취급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저택의 고용인들이 나한테 칼같이 선을 지키고 있다는 건 며칠 전부터 계속 느끼고 있던 사실이지만, 왠지 오늘따라 느낌이 평소와 좀 달랐다.

‘뭐야? 꼭 나를 일부러 피하는 것 같잖아?’

게다가 조금 전에 일부러 나를 발견하고도 못 본 척 서둘러 자리를 비킨 고용인은 분명 얼굴에 미약한 두려움을 담고 있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잠깐 머리를 굴려 생각해 보다가, 곧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체스휘의 손짓 한 번에 감쪽같이 사라지던 고용인들. 그때 공포에 질린 눈으로 체스휘를 보던 주변의 다른 사람들.

왠지 조금 전에 나와 마주친 고용인들의 시선이 어제 본 그 눈빛과 비슷한 것 같았다고 하면, 그것도 착각일까?

아니,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분명 착각이 아닌 것 같았다.

어제 체스휘가 한 짓이 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나와 실수로 부딪힌 고용인들이 그런 봉변을 당해서 다들 나를 피하는 건가?

왠지 전염병 환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영 꺼림칙해졌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고, 어차피 나로서는 그들이 내게 관여하지 않는 게 더 편리한 일이었다.

끼이익.

그래서 그냥 고용인들에게 신경을 끊고, 눈앞에 있는 지하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실에서는 묵은 습기와 먼지가 뒤섞인 텁텁한 냄새가 났다. 문 안쪽은 어두컴컴했지만, 나는 익숙하게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잠시 후, 마침내 내 눈앞에 나타난 검은 문은 여전히 기억 속에서와 똑같은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 문 앞으로 다가갔다.

어젯밤 불현듯 내 머리를 강타한 깨달음이 나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그래. 이 레드포드 저택에는 다른 곳으로 통하는 문이 두 개 있었어. 하나는 마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저택의 정문, 그리고 하나는 지하실에 있는 이 용도를 알 수 없는 검은 문.’

지하실에 있는 이 문을 처음 발견한 건 화랑의 초상화와 술래잡기를 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때 이 문에 손을 댄 직후에, 나한테 이상한 일이 벌어졌었던 기억이 났다.

시야에 눈부신 보라색 빛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갑자기 내가 린 도체스터의 몸이 아닌 메이드 엠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저택의 시간도 1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헛것을 본 줄 알았지만, 이후에 기억을 곱씹을수록 그것이 단순한 환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벌써 시일이 꽤 지난 일인 데다, 그사이에 여러 가지 사건이 있어서 이 검은 문에 대한 기억은 한동안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 또한 그때와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게 아니겠는가?

익숙하지만 낯선 레드포드 저택. 또 분명히 내가 아는 얼굴들이지만, 묘하게 위화감 어린 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람들.

어쩌면 세라의 말처럼, 정말 그들이 내게 일부러 전부 거짓말만 하고 있는 건 아닐 수도 있었다. 만약 내가 오해한 것처럼 정말 그들이 체스휘에게 일방적인 세뇌를 당한 게 아니고, 또 그들이 나를 일부러 속이고 있는 것도 아니라면….

혹시 예전에 내가 이 문을 만졌을 때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그러니까, 내가 본의 아니게 1년 전의 레드포드 저택에 갔었던 것처럼 말이다.

나도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직 명쾌한 해답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을 한번 해 봤다. 혹시 평행 세계처럼, 이곳이 아예 내가 있던 레드포드 저택과 같지만 다른 곳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그냥 막연한 직감 같은 거라, 나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다른 말이나 그럴듯한 증거 같은 건 따로 없지만….’

그래도 시험 삼아 확인해 봐도 나쁠 건 없지 않겠어?

나는 왜인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눈앞에 있는 검은 문을 보며 마른 입술을 혀로 한번 축였다. 그러다가 곧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보니까 이 문, 꼴이 왜 이러지?’

아까 저택의 정문을 보고 느낀 것처럼, 이 지하실에 있는 검은 문 역시 아주 낡아 보였다.

꼭 한동안 못 본 사이에 혼자 부식되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인데…. 총괄 집사가 관리를 제대로 안 한 건가?

게다가 문이 검은색이라 처음엔 눈에 띄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묵은 먼지라도 붙은 것처럼 표면이 얼룩덜룩했다. 거기에 더해, 꼭 내가 예전에 도끼로 찍어서 화랑의 액자를 망가뜨렸던 것처럼 누가 일부러 흠집을 내기라도 한 듯이 문의 여기저기에 파인 자국까지 나 있는 게 아닌가?

한마디로 말해서, 문짝이 걸레짝처럼 되어 있었다 이 말이었다.

‘뭐야, 이거…. 그래도 작동은 멀쩡히 하는 거겠지?’

나는 괜히 조바심이 나서 서둘러 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우웅.

다행히 문에서는 이전에 느꼈던 것과 비슷한 파동이 전해졌다.

파앗!

하지만 꼭 전구의 불이 나갈 때처럼 미약한 빛만 잠깐 눈앞에 반짝이다가 가라앉았을 뿐이었다. 그 후로는 더 이상 어떤 눈에 띄는 현상도 발생하지 않았고, 오직 짙은 정적만이 지하실 안에 고여 들었다.

거의 더듬듯이 문을 더 만져 봤지만, 딱히 내가 서 있는 장소나 내 몸이 바뀐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다.

뭐지? 허탕인가…?

나는 살짝 실망해서 손을 내렸다. 어쩌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지금이 하필 운 나쁜 타이밍인 걸지도 몰랐다. 예전에도 문에 손을 댈 때마다 매번 반응이 있는 건 아니었으니까.

아쉽지만, 일단 지금은 체스휘에게 들키기 전에 다시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막 문 앞에서 몸을 돌리려 했을 때였다.

‘…고파.’

우우웅.

갑자기 검은 문에서 작은 파동이 번지더니, 어쩐지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갑자기 지하실의 온도가 10도는 뚝 떨어진 것 같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한기가 급격히 밀려들면서, 꼭 내 본능이 무언가를 경고하듯이 온몸의 솜털이 바짝 곤두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검은 문이 내 앞에 종양 덩어리처럼 하나로 뭉친 무언가를 줄줄이 토해 냈다.

‘배고파. 피, 피를 내놔….’

‘전부 다 한입에 씹어 먹어 버릴 거야.’

‘추워. 네 가죽을 내게 줘.’

마치 검은 베일을 쓴 여인처럼, 꼭 필터를 한 겹 덧씌우기라도 한 듯이 반투명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아니…. 아니다. 그건 결코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영혼들. 그것도 이렇게 단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거리는 느낌을 들게 할 정도로, 더러운 악취를 내뿜는 추악하디 추악한 원혼들….

문에서 꾸역꾸역 몸을 내밀던 악령들이 섬뜩한 탐욕과 귀기로 범벅된 눈을 내게 고정시켰다.

콰앙!

그 순간, 나는 재빨리 뒤돌아 지하실의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바로 앞에서 익숙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체… 아니, 미카엘…!”

나는 한달음에 달려가서 체스휘의 몸을 덥석 붙잡았다. 그러자 체스휘가 조금 놀란 듯이 어정쩡하게 몸을 굳히며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어? 이렇게 반갑게 달려와서 안기는 건 예상에 없었는데….”

체스휘의 입에서 조금은 당황한 듯한 곤혹스러운 느낌의 혼잣말이 나지막하게 읊조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