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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97)화 (197/300)

정원사는 내 말에 멈칫하다가, 내가 손으로 가리킨 저택의 정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택의 바깥 말입니까?”

“네!”

그런데 이 문,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인데 왜 이렇게 녹슬어 있어? 평소에 관리를 잘 안 하나? 페인트라도 덧칠을 좀 할 것이지.

“저기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요. 사방이 공허인 세계니까, 당연히 아무것도 없겠지.

나도 그 사실을 알지만 지금의 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 흉내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척 정원사를 찔러 보는 것뿐이었다.

“왜 아무것도 없어요?”

“이 바깥은… 그러니까, 안개밖에 없습니다. 여기는 빈 세계니까요.”

“하지만 여기 문이 있잖아요? 문은 안과 밖을 오고 가려고 만드는 거고요.”

“이 문은 지금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원사는 정문 밖을 향한 내 관심이 별로 탐탁지 않은 기색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이런 화제로 나와 대화하는 것을 불안해하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왜 사용을 안 해요? 그럼 저택에 있는 사람들은 밖에 나갈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는데요?”

마부 존 아저씨가 모는 마차를 타고 다른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걸 나도 이미 다 알고 있는데 어디서 발뺌이야!

하지만 정원사는 끝까지 나한테 진실을 말하지 않을 생각인 듯했다. 그는 곤란한 눈으로 나를 보다가, 결국 내게 더 설명하는 대신 이 상황을 회피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건 주인님께 물어보십시오.”

“체… 아니, 미카엘은 지금 여기에 없잖아요.”

“저는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더 안 물어볼 테니까, 마부 아저씨가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 봐요.”

“마부요…?”

정원사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마부를 아는 게 이상해서 그런가? 여기 사람들은 전부 세뇌인지 뭔지를 당해, 내가 며칠 전에 저택에 처음 온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저택을 돌아다니다가 보니까 마차가 있던데요? 그럼 마부도 있겠죠.”

내 핑계가 그럴듯하게 들렸는지, 다행히 정원사도 납득하는 것 같았다.

당연히 내가 마부인 존 아저씨를 찾는 이유는 그의 마차를 타고 저택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내가 저택을 아무리 열심히 돌아다녀도 마부는 눈에 띄지 않았다. 마침 오늘부터 주말이라 밖으로 나가려면 지금이 기회인데, 도대체 어딜 가 있는 거지?

“레드포드 저택에는 마부가 없습니다.”

그런데 정원사가 나한테 또 어처구니없는 거짓말을 했다.

“마차가 있는데 마부가 왜 없어요?”

“사용하지 않는 마차니까요.”

저택의 정문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그러더니, 이번에는 또 마차도 마찬가지라 그러네?

뻔한 거짓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정원사를 쳐다봤다. 그러자 내 눈치를 보듯이 불편하게 눈을 굴리던 정원사가 이내 고개를 숙이며 말을 돌렸다.

“죄송합니다. 저는 이만 일을 해야 해서…. 자세한 설명은 주인님께 들으십시오. 주인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말씀해 드릴 수 없습니다.”

“미카엘은 내가 원하는 건 다 해도 된다고 그랬는데.”

“예, 그러니까 저보다는 주인님께….”

참나, 체스휘가 퍽이나 말해 주겠다.

하지만 이렇게 난처해하는 사람을 붙잡고 더 다그치는 것도 못 할 짓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애초에 뭔가를 크게 기대하고 여기에 온 것도 아니었다.

“알겠어요. 그럼 마저 일 보세요.”

나는 정원사를 두고 먼저 뒤돌아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걷는 동안, 뒤에서 안도 어린 한숨 소리가 작게 들리는 듯했다.

저 사람이 지금 나와 만난 이야기를 체스휘에게 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

적어도 세라 외에는 체스휘의 명령에 거의 절대적이다시피 복종하는 듯했다. 조금 전에 정원사가 내 물음에 계속 거짓말을 하던 것도 그렇고 말이다.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일이니 괜찮았다. 방금의 일이 체스휘의 귀에 들어가면 들어가는 대로 나한테는 나쁠 게 없었다.

‘어쩌면 체스휘의 눈을 돌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어젯밤, 막 잠이 들기 직전에 그동안 내가 놓치고 있던 어떤 것이 머릿속을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쩌면 내가 지금까지 헛다리를 짚고 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레드포드 저택과 같지만, 모든 게 낯설던 이 감각. 꼭 시공간이 뒤틀리기라도 한 것처럼 저택의 풍경과 이곳의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던 위화감. 나는 이런 것을 예전에도 경험해 본 적이 있었다.

‘그나저나…. 체스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나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레드포드 저택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체스휘는 요 며칠 동안 이렇게 가끔 한 번씩 소리소문없이 자리를 비울 때가 있었다. 도대체 나한테 말도 없이 그가 어디에 가서 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때가 기회인 것도 사실이니까….

나는 체스휘가 없는 틈을 타서 다음 목적지인 지하실을 향해 걸음을 서둘렀다.

***

미카엘은 속눈썹을 간질이며 시야로 파고드는 햇빛에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그의 시선이 미끄러지듯이 움직일 때마다 주변을 지나가던 고용인들이 몸을 흠칫거렸다. 애써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 중인 듯하긴 했으나, 내내 바닥을 향한 그들의 눈동자와 굳은 몸짓에서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저택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곳의 주인인 미카엘은 손가락 하나로 그들을 죽일 수 있는 신 같은 존재였다. 그러니 이렇게 미카엘의 시선 한 자락이라도 닿을세라 몸을 사리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미카엘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조용히 몸을 옹송그리며 옆을 지나가는 고용인들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린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발밑을 기어가는 개미, 혹은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와 조금도 다를 게 없었다. 그러니 그들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있을 리가 없었다.

혼자 복도를 걷다가 천천히 멈춰 선 미카엘의 눈동자에는 지금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광경이 비치고 있었다.

숨을 죽인 채 조용히 복도를 걸어가던 고용인들이 한순간 그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방금 청소를 끝마쳐 반짝이게 윤이 나던 복도는 순식간에 낡고 부서진 장소로 변모했다.

녹슨 창틀이 끼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덜렁거리고, 깨진 유리 조각으로 더럽혀진 복도에는 뿌연 먼지가 카펫처럼 깔렸다. 빛조차 모조리 삼켜 버릴 정도로 어둡고 탁한 공기가 저택 전체를 한결 음울하고 섬뜩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미카엘이 다만 눈을 한번 감았다 떴을 때, 그의 시야에는 여전히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한순간 땅으로 꺼지기라도 한 것처럼 완전히 사라졌던 고용인들도 여전히 미카엘의 눈치를 보면서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 재게 발을 놀리는 중이었다. 미카엘이 서 있는 저택의 복도도 언제 폐허처럼 변했었냐는 듯이 다시 새것처럼 깨끗해졌다.

눈을 깜빡일 정도의 짧은 순간에 나타났다 사라진 기묘한 광경이었으나, 미카엘은 방금 본 장면이 단순한 착시 현상이나 환상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다.

지금 그가 있는 이 공간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속도로.

‘역시… 이곳에는 오래 머물지 못하겠군.’

잠깐 자리에 멈췄던 미카엘의 발이 앞으로 천천히 옮겨졌다. 린과 함께 있지 않을 때 으레 그렇듯이 지금도 무료한 빛을 띠고 있는 수려한 얼굴에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 언뜻 떠올랐다.

지금처럼 틈날 때마다 누더기를 기우듯이 공간을 수복하는 것에도 언젠가 한계가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그 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이럴 줄 알면서도 린을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기에 당황하거나 놀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역시 막상 맞닥뜨린 이런 상황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미카엘은 복도를 걸으면서 옆으로 손을 뻗었다. 고용인들은 그 모습이 낯설지 않은 듯이, 그런 그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미카엘의 손끝이 벽에 닿아 표면을 훑듯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던 공기가 미약하게 일렁였다. 꼭 잔잔하던 호수에 작은 돌멩이가 떨어져 주변으로 물살이 번져 가는 것처럼 복도 안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 미카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 극렬한 변화를 눈치챌 만한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적어도 린을 제외하고는.

미카엘은 복도를 걸으면서 고개만 살짝 옆으로 돌려 어딘가를 두 눈으로 응시했다.

조금 전까지 정문 앞에 가 있던 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다음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늘도 그녀는 저택 안을 부지런히 돌아다닐 생각인 것 같았다.

햇빛이 고인 미카엘의 보라색 눈이 설핏 가느다랗게 좁혀졌다.

예전부터 느꼈는데, 이상할 정도로 린에게는 암시가 잘 듣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는 그럭저럭 괜찮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았으나, 그것이 얼마나 갈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사실 미카엘에게 있어서 린의 기억이 온전하고 아니고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단지 그의 일이 조금 번거로워질 뿐, 딱히 거슬리는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그것보다는 린이 그가 아닌 다른 것에 쓸데없는 감정 소모를 하며 헛된 기대와 좌절을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쪽이 좀 더 불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카엘은 멀리서 느껴지던 린의 움직임에 조용히 주의를 집중하다가, 이내 벽에 닿아 있던 손을 뗐다.

그는 줄곧 무표정하던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그리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당장 급하게 해야 할 일을 끝마쳤으니 이제는 다시 그의 사랑스러운 여인을 보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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