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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96)화 (196/300)

“때마다 그런 영양가도 없는 헛소리 좀 안 하면 어디가 덧나는 거냐? 주객전도에도 정도가 있지, 무슨 양육자 때문에 전부 다 포기하니 마니 하는 말을 해? 너희들이 한가하게 그런 약한 소리나 지껄이고 있으니까 매번 나보다 순위가 낮은 거야.”

미뉴엘은 이제 진심으로 신물이 난다는 듯이 다이안과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비비를 향해 야유했다.

“비비가 이제는 힘들어서 다 그만두고 싶다고 그랬다고? 보나 마나 평소처럼 얄팍한 생각으로 징징거린 거겠지. 이 저택에서 한번 나가면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데, 그건 각오하고 있대? 지금까지 양육자한테 보호받기만 했으면서, 밖에서 자기 혼자 살아남을 자신은 있고? 우리를 여기로 보낸 사람들이 멍청하게 자기 발로 기회를 걷어차고 뛰쳐나간 녀석을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겠다. 쓸모없다고 당장 갈아서 거름으로나 안 주면 다행이겠지.”

“넌 무슨 말을 그렇게까지 해?”

“내 입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 하겠다는데 뭐! 내가 이런 말을 못 할 건 또 뭐야?”

“죽지는… 않을 수도 있잖아. 적어도 자격이 없다고 판단돼서 탈락한 게 아니면….”

어쩌면 비비를 다시 설득해서 이곳으로 돌려보내려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이려다가, 다이안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가 생각해도 대의를 위해 소년들을 이 레드포드 저택으로 보낸 어른들이 좋은 말로 그들을 설득하려 들 것 같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레드포드에 선별해 보낼 소년들의 수가 넉넉한 것은 아니니만큼, 그런 수고를 감수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긴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차라리 미뉴엘의 말처럼 인내심이 없고 나약한 개체라며 포기할 가능성이 더 클 것 같았다.

“안 죽어도, 돌아가서 뭘 할 건데?”

미뉴엘은 별 어이없는 소리를 다 들었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삐딱하게 앉아서 다이안을 흘겨봤다.

“우리한테 부모가 있어, 형제가 있어? 애초에 우리가 뭘 위해서 태어나서 여기에 왔는데?”

“…….”

“아니, 그런 걸 다 떠나서 너희는 진짜 그 배양실로 돌아가고 싶어? 난 차라리 여기서 모로스한테 죽으면 죽었지, 거기로는 다시 안 돌아갈 거야.”

한결 싸늘하게 식은 음성이 고요한 방 안에 단호하게 내려앉았다. 그 말에 반박할 사람은 적어도 이 방 안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조금 전까지 미뉴엘에게 대항하던 다이안도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리고 마침내 줄곧 굳게 침묵하고 있던 루스카가 입을 열었다.

***

“야, 다이안.”

루스카의 방에서 나온 이후, 미뉴엘이 다이안을 불렀다.

방에서 언쟁을 벌이는 내내 짜증스러워 보였던 미뉴엘이었기 때문에, 혹시 방금 루스카와 대화한 내용에 대해서 또 꼬투리를 잡으려는 건가 싶었다.

“네 양육자는 너한테 별말 없었어?”

하지만 미뉴엘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이안은 한순간 멈칫했다.

“내 양육자랑 네 양육자, 같이 증발했잖아. 혹시 그렇게 사라지기 전에 너한테 뭐 다른 말 한 건 없었냐고.”

지난 며칠 동안, 양육자가 두 명이나 죽은 것 말고도 또 다른 사건이라 할 만한 것이 있었다.

다이안과 미뉴엘의 양육자, 즉 린과 체스휘가 저택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들은 미뉴엘의 말처럼 하루아침에 하늘로 솟거나 땅으로 꺼지기라도 한 것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사실 루스카나 비비는 이기적인 소리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다이안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이쪽이었다.

“아무 말도 없었어.”

“그래? 그런데 넌 의외로 멀쩡해 보인다?”

다이안의 담담한 얼굴을 본 미뉴엘이 의외라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집 나간 주인을 기다리는 똥개처럼 불안해서 안절부절못할 줄 알았더니.”

물론 처음에는 다이안도 당황스럽고 두려웠다. 그동안에도 린이 자리를 비운 적은 몇 번 있었지만, 지금처럼 그에게 아무런 언질도 없이 사라진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미뉴엘의 말처럼, 주인이라도 잃은 강아지처럼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슷한 시점에 모로스가 되어 형체를 남기지 않고 죽은 마리엔의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혹시 린도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양육자가 죽거나 페어가 끊기면 느낌으로 알 수 있다는 다른 소년들의 증언과 달리, 다이안은 아직 린과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받았다.

다이안이 마음의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게 무슨 소리예요! 다이안 도련님이 여기 있는데 제가 어딜 가요.”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이안 도련님이 있는 곳으로 다시 돌아올 거예요.”

분명 린이 다이안에게 그렇게 말했으니까.

“괜찮아. 린이 어디를 가든 꼭 나한테 다시 돌아올 거라고 그랬으니까.”

다이안은 린을 믿었다. 그러니 그녀가 돌아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래? 혼자 사라진 것도 아니고, 체스휘랑 같이 없어졌는데?”

한편, 미뉴엘은 다이안의 평온한 모습에 또 배알이 뒤틀린 모양이었다.

“소설책에서 주인공들이 그런 짓 많이 하던데. 그런 걸 뭐라고 부르더라…. 아, 그래. 둘이서 사랑의 도피라도 한 거 아니야? 소설책에서 보면 그런 시답잖은 짓들 많이 하던데.”

그는 괜히 심술궂은 소리를 꺼내 다이안의 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다이안은 평소처럼 미뉴엘의 도발에 말려드는 대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철 좀 들어, 미뉴엘.”

“뭐? 너, 너 그거 지금 나한테 한 소리야? 그게 무슨 건방진 소리…!”

당연히 미뉴엘이 발끈해서 펄쩍 뛰었으나, 다이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먼저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뒤에서 미뉴엘이 계속 씩씩거리면서 뭐라고 소리치는 게 느껴졌지만, 굳이 다시 돌아가 그를 상대하지는 않았다.

물론 다이안도 불안한 마음이 아예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건 린을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최소한 린이 스스로의 의지로 먼저 다이안의 옆을 떠나 아직도 감감무소식인 건 아닐 거라고 믿었다. 다이안이 불안한 것은, 혹시 지금 린에게 어떤 위험한 상황이 벌어져 아직까지도 그의 앞에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단지 짐작일 뿐이었지만, 역시 마리엔이 죽고 린이 사라진 며칠 전 그날에 뭔가 아주 기묘한 일이 저택에서 벌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다이안은 어두운 눈으로 밝은 햇빛이 들어오고 있는 창밖을 보았다.

‘린…. 정말 어디에 있는 거야?’

저벅.

그러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자, 복도에 서 있는 소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단정한 붉은 머리칼에 안경알 밑에서 반짝이고 있는 은회색 눈. 6호실의 소년, 제이였다.

“제이?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야? 너도 루스카한테 가려고 왔어?”

제 양육자인 길버트만큼이나 얼굴을 보기 쉽지 않던 제이였기에, 다이안은 의문을 느끼며 그에게 다가갔다. 제이는 자신에게 걸어오는 다이안을 가만히 보다가 닫혀 있던 입술을 뗐다.

“나, 그날 봤어.”

“보다니, 뭘?”

“네 양육자.”

바로 그 순간, 다이안의 눈에도 섬광 같은 이채가 반짝였다.

***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더니 체스휘는 이미 침실을 떠났는지 내 옆에 없었다. 나는 그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침 산책을 핑계 삼아 저택의 정문 쪽을 얼쩡거렸다.

“예, 좋은 아침입니다. 린 님.”

마침 그 근처의 덤불을 원예용 가위로 정리 중이던 정원사가 나를 보고 하던 일을 멈추며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나는 괜히 주변의 꽃을 구경하는 척, 그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혼자 일하세요? 관리해야 할 나무랑 꽃들이 많아서 혼자서는 힘들 것 같은데.”

“저 말고 저택의 조경을 함께 관리하는 조수가 두 명 더 있습니다.”

정원사의 설명을 듣고 나는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구나. 어제 정원하고 온실에 가 봤는데 경관이 멋지더라고요. 지금 여기에 있는 꽃들도 다 아저씨가 키운 거예요?”

“앗, 맞습니다. 여주인님 마음에 드신다니 영광입니다.”

정원사는 내 칭찬을 듣고 허리를 좀 더 깊이 숙여 내게 인사했다. 다른 고용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원사 역시 기본 얼굴은 무표정이었지만, 지금의 내 칭찬에는 기분이 한결 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식당하고 방을 매일 장식하는 꽃도 아저씨 작품이죠? 특히 어제 식당에 있던 빨간 꽃이 아주 예쁘던데.”

“그러셨습니까? 그럼 방에도 몇 송이 가져다드릴까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정원사는 내가 계속 자신이 키운 꽃을 치하하자 처음보다 확연히 마음이 열린 기색이었다.

“그럼 저야 좋죠. 그러고 보니 그 꽃, 지금 여기에 있는 이 꽃하고도 생김새가 비슷하네요.”

“여주인님께서 보시는 눈이 있군요. 둘이 비슷한 품종이긴 합니다.”

“아, 역시.”

나는 정원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가, 마침 꽃 덤불 옆에 있던 정문을 보고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문밖에는 뭐가 있어요? 여기서는 뿌연 안개밖에 안 보이네요.”

사실 내 본래 목적은 이쪽이었다. 지금까지 괜히 꽃을 구경하는 척, 정원사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은 것도 전부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한번 나가 보고 싶은데, 이 문 좀 열어 주면 안 돼요?”

어젯밤 세라와의 만남에서도 결국 저택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알아내지 못했다. 사람들이 이상해진 이유를 찾기는커녕 체스휘에 대한 수상하고 기분 나쁜 이야기만 듣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내가 원하는 해답을 찾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방법을 바꾸어, 이 레드포드 저택에서 벗어나 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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