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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94)화 (194/300)

뭐야, 조금 전까지는 내 말이 맞다고 하더니 또 저택이 원래 이랬다고? 혹시 세라도 이 잠깐 사이에 머리가 또 이상해진 거 아니야?

“세라 씨의 말이 이해가 잘 안 되는데요…. 내가 알고 있는 것들, 전부 꿈이 아니라면서요. 다 거짓말이라고 방금 당신이 그랬잖아요?”

입 안이 점점 마르는 듯한 느낌을 무시하고 세라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녀가 오묘한 표정으로 조금 전 자신이 한 말에 부연 설명하듯이 입을 열었다.

“맞아요. 내가 그랬죠. 하지만 그건 이 저택에 문제가 있다는 소리가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여기에서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는 당신 하나뿐이니까.”

“저기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나는 일단 손을 들어 세라의 말을 가로막고, 방금 그녀가 한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머릿속이 아직 정리가 덜 되어서 그런지,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세라에게 뭐부터 다시 확인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뒤죽박죽인 생각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채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선… 어떻게 체스휘 씨가 원래 이 저택의 주인일 수가 있어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랑 같은 양육자였잖아요? 그러니까 저택의 주인은… 딱 꼬집어 누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저택에 있는 사람 중에 주인에 제일 가까운 건 여기 사는 아이들 아니에요? 그런데 세라 씨는 또 아이들하고 양육자들이 원래 저택에 없었다고 했으니까…. 뭐야, 이게 지금? 도대체 인과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야?”

하지만 막상 입으로 소리 내서 말하고 보니, 뭐가 뭔지 더 헷갈렸다.

답답한 건 세라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녀는 꼭 열등생을 보는 것 같은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인내심을 좀 더 발휘해 보기로 마음먹었는지, 세라는 내 의문을 무시하지 않고 좀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애초에 전제 자체가 다르다는 거예요. 저택의 주인과 고용인들이 당신을 속이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이 저택에 대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거짓말하고 있는 건, 며칠 전에 여기에 처음 온 당신에 대한 거니까.”

세라의 말을 듣고, 나는 그제야 그녀의 말에 아주 중요한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며칠 전에 여기에 처음 왔다니요? 세라 씨처럼 나도 계속 여기에 같이 살았었잖아요? 갑자기 왜 또 모른 척해요?”

“그런 기억 없는데요. 난 당신을 며칠 전에 처음 봤어요.”

“뭐라고요?!”

세라의 말을 듣고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얼음물을 급하게 들이켰을 때처럼 갑자기 골이 띵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세라 씨가 왜 며칠 전에 날 처음 봐요? 우리 같이 여기서 일한 시간이 몇 달은 되는데! 당신은 메이드, 나는 양육자!”

“확실히 난 여기에서 메이드로 일한 지 오래되었지만, 당신은 며칠 전에 저택의 주인이 데려와서 처음 만났다니까요. 이 얘기, 몇 번이나 다시 해야 돼요?”

“세라 씨가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그렇죠!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체스휘 씨는 저택의 주인이 아니라 양육자였고,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우리 말고 다른 양육자도 있었고…. 아, 그래! 레이븐이라고 기억 안 나요? 4호실 양육자요. 세라 씨한테 집적거리던 그 남자요!”

“레이븐? 그건 또 누구야? 당신이야말로 못 알아들을 소리 좀 그만해요. 당신 이름이… 린이었죠? 그렇게 부르는 걸 들었는데. 지금 머리 괜찮아요? 상태가 좀 안 좋은 것 같은데….”

“난 멀쩡하거든요!”

세라는 나를 계속 의심 어린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녀의 말에 내가 발끈해서 소리쳤는데도, 내 머리의 건재함이 못내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다.

어쨌든, 나는 내가 세라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드디어 깨달았다.

결국 세라도 다른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녀만은 정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과연 그 전제 자체가 잘못되어 있었다. 세라 역시 이미 세뇌를 당한 건지, 이 저택과 나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머리에 입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까부터 계속 우리 두 사람의 대화가 어딘가 헛돌았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세라가 정상인(?)처럼 보였던 게 모조리 사기였다는 걸 알게 되자 갑자기 맥이 탁 풀리면서 허탈해졌다.

결국 이 한밤중에 위험을 감수하고 체스휘 몰래 밖으로 빠져나와서 세라를 만난 보람이 없는 건가? 가만, 그런데 세라는 그럼 도대체 뭐가 거짓말이라는 거지?

“잠깐, 그럼 내가 체스휘 씨랑 고용인들에게 속고 있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그건…. 시간도 별로 없고, 이번에는 진짜 한 번만 말할 거니까 잘 들어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세라가 한결 나지막하게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그녀는 괜히 닫힌 문 쪽을 쳐다보며 혹시 바깥에 다른 인기척이 없는지 살피다가, 이제까지 중에 가장 진지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면서 낮게 속삭였다.

“원래 이 저택의 여주인은 따로 있어요.”

“예?”

“당신이 체스휘라고 부르는 저택의 주인 말이에요. 그 남자가 우리한테 여주인으로 모시라면서 여기에 데려온 여자는 당신이 처음이 아니에요.”

이건 또 무슨 소리지?

나는 세라의 입에서 나오는 이상한 말에 심각한 인지 부조화가 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멍하게 세라를 쳐다보자, 그녀가 정신 차리라는 듯이 내 손을 아프게 꽉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요? 사실은 그 미친 남자가, 때마다 당신 같은 여자를 한 명씩 데려와서 예전 여주인의 대용품으로 삼고 있다고.”

***

세라와 헤어지고 나서도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나는 이 저택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알아내려고 세라와 만난 건데, 느닷없이 체스휘의 과거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소리만 듣고 왔다.

나 말고도 예전에 이 저택에 데려왔던 여자들이 있었다니…. 게다가 그 여자들에게도 나한테 말한 것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가 이곳에서 함께 살았었다는 식의 똑같은 거짓말을 했었다고?

물론 세라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냥 무시하고 잊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세라에게 들은 말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린 씨는 밤 외출을 참 좋아하나 봐.”

침실에 다시 돌아갔을 때 체스휘가 잠에서 깨어나 있는 걸 알았지만 놀라지 않았다.

한숨 섞인 나른한 목소리가 방금 잠에서 깬 사람처럼 약간 낮게 잠겨 있었다.

“나가서 한참이나 안 오던데.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역시 지금 막 일어난 건 아니었다.

나는 침대 앞으로 다가가, 내 자리의 이불을 끌어안고 누워 있는 체스휘를 내려다봤다.

체스휘는 느리게 눈을 깜빡이면서 나를 보다가, 몸을 조금 움직여 옆에 누우라는 듯이 내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분위기로 봐서는, 내가 세라와 만난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이 침실에서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체스휘에게 그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퍽 전전긍긍했었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게 느껴졌다.

슬리퍼를 벗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체스휘가 데워 놓은 자리에 바로 눕는 대신, 무릎을 세우고 앉아 그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체스휘의 눈이 설핏 가늘게 좁혀졌다. 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의중을 헤아리려는 듯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 눈을 마주했다. 그러다가 체스휘가 막 입을 열었을 때, 나도 몸을 움직였다.

내 머리카락이 체스휘의 위로 쏟아져 흘러내렸다. 달빛을 머금은 보라색 눈이 한결 가까이에서 나를 올려다보았다. 체스휘는 내 손에 몸을 눌린 상태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체스휘를 내려다보는 동안, 아까부터 고요하게 일렁이던 가슴이 조금씩 크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나는 충동적으로 고개를 숙여, 체스휘의 어깨와 목덜미를 덮은 흰 셔츠 위로 입술을 묻었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려, 그의 체취가 밴 살을 한입 가득 베어 물었다. 턱에 지그시 힘을 주자, 맞닿은 남자의 몸이 미세하게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좀 더 세게 이를 악물었다.

이런 장소, 이런 시간에 남녀 사이에서 흔히 있을 만한 다른 은밀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온전히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아프게 만드는 데만 목적이 있는 움직임이었다.

무슨 성질 사나운 동물도 아니고, 느닷없이 이를 세우고 살을 짓씹는 나를 보고 당황할 만도 한데 체스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자신을 아프게 하는 동안 나를 밀쳐내거나 왜 이러냐고 한번 묻지도 않고 가만히 몸을 대 주고만 있었다.

내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도 체스휘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 내가 한 행동의 의미가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것처럼, 들여다보는 듯한 시선으로 내 눈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다가 곧, 잘 모르겠다는 듯이 그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입술을 달싹였다.

“아픈데.”

귓가에 나지막하게 흘러드는 목소리는 내가 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나를 만족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나는 체스휘를 쳐다보지 않고 그에게서 내려와 침대에 누웠다. 아무 말 없이 체스휘를 등지고 옆으로 몸을 돌린 뒤, 이불을 끌어와 덮었다.

“지금 뭐 한 거예요?”

체스휘도 몸을 움직였는지,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는 진심으로 조금 전에 내가 한 일이 뭐였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는 이불을 좀 더 잡아당겨 코 밑까지 그 안에 파묻으면서 작게 웅얼거렸다.

“졸려요. 잘래.”

등 뒤에서는 잠깐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기분 탓인지, 집요한 시선만 내 뒷모습에 날아와 꽂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시 후, 체스휘의 손이 내 몸에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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