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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93)화 (193/300)

낮에 나를 데리고 레드포드 저택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소개해 주더니, 안 그런 척하면서 체스휘도 은근히 피곤했던 걸까?

당연히 내 기억은 멀쩡했으므로 저택의 안내 같은 건 하등의 쓸모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체스휘가 간혹 나를 떠보듯이 굴어서, 그럴 때마다 가짜 질문 공세로 그의 주의를 돌리려 한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물론 체스휘가 진짜 나를 철석같이 믿고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는 꼭 아이에게 처음으로 걸음마를 가르치는 어른처럼 지겨운 내색 한번 없이 친절하게 저택을 구경시켜 주고 내 질문에도 차근차근 대답해 줬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런 상황이 유쾌한 듯이 보이기도 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고 보니 내가 양육자로 저택에 처음 왔을 때, 체스휘가 저택을 안내해 주기로 했었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 계획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무산되었는데, 왠지 이번에 공교로운 기회로 그 약속을 대신 이행하게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깊이 잠든 건가?’

나는 잠든 체스휘의 얼굴에 대고 손을 몇 번 흔들어 봤다. 하지만 여전히 깊게 눈을 감은 사람에게서는 어떤 미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 마음을 이렇게 심란하게 만들어 놓고, 혼자만 새근새근 잘 자다니…. 조금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고, 얄미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그보다는 생경한 기분이 컸던 것 같다. 왠지 체스휘가 이렇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꼭 그의 비밀스러운 장면이라도 몰래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쩐지 외계인의 비밀이라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나한테 있어서 이 체스휘라는 남자는 미스테리한 부분이 굉장히 많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이 이상한 레드포트 저택에서 눈을 뜬 이후부터는 더욱이 그랬다.

나는 잠든 체스휘를 쓰다듬고 싶은 충동과 때리고 싶은 충동 사이에서 갈등했다. 아까부터 애써 억누르고 있던 감정들이 지금 이 순간을 기점으로 다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말 한마디로 정의 내리지 못할 복잡한 감정이 울컥 넘칠 것 같아서 잇새에 힘을 줬다.

나는 이 남자에게 매우 화가 났고, 다른 한편으로는 서운하면서 실망스럽기도 했다. 그런 마음이 드는 이유는, 내가 이 남자에게 멋대로 무언가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건지 자세히 알 방도는 없었지만, 어쨌든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나를 제 뜻대로 움직이려 하는 체스휘를 보자 조금은 무섭고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그것보다는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우스운 배신감이 압도적으로 컸다.

나는 침대에 앉아, 여전히 잠든 듯이 눈을 감고 있는 체스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가 이내 조용히 몸을 움직였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완전히 침대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체스휘의 손이 갑자기 내 손목을 붙잡아서 흠칫 놀랐으나, 다행히 그는 잠결에 그런 것 같았다. 나는 체스휘의 손을 살살 떼어 냈다.

어쨌든, 체스휘가 이렇게 깊게 잠든 건 내게 잘된 일이었다. 그래서 이 틈에 발소리를 죽이고, 신속히 방에서 벗어났다.

‘본관 건물 4층 동쪽 복도, 두 번째 계단 옆 방.’

세라가 내게 알려 주었던 장소를 입으로 되뇌며 어두운 복도를 걸어갔다.

하지만 약속 장소에 갔을 때 세라는 없었다. 나는 불안하게 시계를 확인했다. 공교롭게도 시간은 막 2시 1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5분만 기다릴 거라고 하더니…. 정말 칼같이 더 안 기다리고 그냥 갔나? 이런 정 없는 여자!

“왜 이제 와요?”

“으헙!”

나는 상투적인 비명을 내지를 뻔했다가, 가까스로 입을 틀어막아 소리를 삼켰다.

“다행이네요. 여기서 소리를 지를 정도로 머저리 같은 사람은 아니라서.”

고개를 돌리자, 세라가 얇은 잠옷 차림으로 벽에 붙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계속 저기에 서 있었는데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다른 곳에 숨어 있다가 지금 다시 온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약속 시간은 분명 2시 아니었던가요? 내가 분명 5분만 기다리겠다고 했을 텐데.”

나를 쳐다보는 세라의 얼굴을 보니 이 상황이 썩 달가운 눈치는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눈물 나게 반가웠다.

“세라 씨…! 정말 나와 줬군요!”

나는 한달음에 세라에게 달려가 그녀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게다가 지금까지 기다려 주다니, 매정한 여자라는 생각 취소!”

“뭐라고요? 기껏 나와서 조마조마하게 마음 졸이고 있던 사람한테 그런 무례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세라는 부담스러운 듯이 몸을 흠칫거리면서 금방 내 손을 떼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먼저 포기한 건 세라였다. 그녀는 복도에 나와 있던 나를 데리고 옆에 있던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 온 거,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았겠죠?”

“아마도요?”

“아마도라니, 좀 더 책임감 있는 대답을 해 줄 수 없어요?”

“체스휘 씨라면 잠든 걸 확인하고 나오긴 했어요.”

복도를 유심히 살피면서 문을 닫은 세라가 내 말에 조금 크게 떠진 눈으로 나를 돌아봤다.

“잠들었다고? 그 남자도 잠을 잔단 말이에요? 왠지 의외네.”

세라도 체스휘가 잠들었다는 게 놀라운 모양이었다.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도 체스휘가 자는 걸 보고 왠지 좀 놀랐으니 그녀의 반응이 이해는 되었다.

“어쨌든…. 시간도 없으니 짧게 말할게요. 이미 눈치챈 것 같긴 한데, 당신은 그 남자에게 속고 있어요.”

그리고 뒤이어 나를 진지하게 응시하며 내뱉은 세라의 말에, 나는 진심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에요…!”

며칠 만에 처음으로 듣는 정상적인 소리에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역시 세라는 다를 줄 알았어! 세라만큼은 나한테 진실을 말해 줄 줄 알았다고!

“역시 진짜가 아닌 거죠? 내가 양육자나 다이안의 얘기를 할 때마다 꿈이라고 하면서 나를 정신 나간 여자로 취급하는 거, 전부 거짓말인 거죠?”

나는 세라의 입으로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어서, 그녀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그거 거짓말 맞아요.”

그리고 마침내 그녀가 내게 단호하게 말해 준 순간, 지금껏 은연중에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초조함과 긴장감이 일시에 사라졌다.

“원래 내가 이렇게 오지랖 넓은 성격이 아닌데, 그냥 모른 척하는 것도 찜찜해서…. 다른 고용인들은 당신한테 이런 말, 절대 해 주지 않을 테니까. 하, 사실 이런 데는 끼지 않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인 건 알지만, 어쩌다가 이미 나서 버렸으니….”

세라는 회의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는 듯이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

“솔직히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는 건 나도 알지만, 당신은 이미 이상한 걸 눈치챘잖아. 그렇죠? 그러니까 지금 이건 내가 실수하고 있는 게 아닌 거야.”

어떤 의미로는 그녀답지 않은 짓을 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 스스로 합리화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세라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그녀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세라 씨 말이 다 맞아요! 어차피 세라 씨가 아니었어도 이상한 건 진작 다 알고 있었다고요! 그동안 주변 사람들이 죄다 말도 안 되는 소리만 해서 얼마나 답답했는데요! 아무래도 그 사람들, 전부 세뇌라도 당한 것 같아요. 나랑 체스휘 씨를 저택의 주인이라고 하지를 않나, 다이안하고 양육자들을 모른다고 하지를 않나. 참, 그러고 보니 어떻게 세라 씨는 이렇게 멀쩡한 거예요? 하긴, 나도 이상해졌다가 갑자기 정신이 돌아왔는데 세라 씨도 그런 경우인가?”

나는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목소리를 작게 줄인 상태로 말을 이었다. 세라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말을 더해 갈수록 세라의 눈빛이 이상해지는 걸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그래서, 도대체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예요? 다이안하고 다른 사람들은 진짜 다 어디로 간 건데요? 참, 마리안 씨는 정말 죽은 거 맞아요? 혹시 그것도 내가 헛걸 보거나,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 아니에요? 아니, 아니…. 그런 설명은 다 나중에 해도 되니까 일단 이 저택부터 빨리 원래 상태로 되돌립시다. 우리 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죄다 머리가 이상해진 것 같은데, 그것도 해결하고요. 세라 씨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알아요?”

“잠깐, 잠깐만요. 지금 무슨 소리예요?”

“예? 무슨 소리기는요? 이 저택을 다시 원상 복귀시키자는 얘기를 하고 있었잖아요.”

“원상 복귀하다니…. 뭘요?”

“방금 들었잖아요? 저택하고 사람들이요.”

어째서인지 세라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 세라와의 대화가 갑자기 도돌이표를 찍는 것 같아서 나도 의아함과 답답함을 느꼈다.

“저기…. 지금 하는 말을 들어 보니까, 아무래도 뭔가 중차대한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세라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린 채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그런 뒤 그녀가 덧붙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나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 레드포드 저택은 원래 이랬는데 뭘 바꿔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러니까, 이 저택은 원래 이랬다고요. 바꿔야 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이 체스휘라고 부르는 그 남자는 오래전부터 이 레드포드의 주인이 맞았고, 우린 세뇌를 당해서 그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말하는 아이들이니, 양육자니 하는 것도 여기에 원래 없던 게 맞고요.”

지금 세라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나는 멀거니 눈앞에 있는 여인의 얼굴을 응시했다.

내 몰이해와 상관없이, 나를 마주하는 세라의 눈빛은 견고하기만 했다.

갑자기 발목을 타고 한기가 기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얇은 잠옷 속으로 서늘한 공기가 스며서 그런지, 피부에 소름이 돋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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