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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92)화 (192/300)

“흠, 그래요. 말이 나온 김에 일단 저 쓸모없는 사람들부터 치워야겠네요.”

“치워요?”

그러다 체스휘에게서 지나가듯이 흘러나온 말을 듣고 흠칫했다. 갑자기 얼마 전에 체스휘가 콘라드를 앞에 두고 ‘처리할까요?’라고 말했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살짝 주저하다가 물었다.

“뭘… 하려고요?”

“그러게. 어떤 벌을 줄까요?”

하지만 체스휘는 아까 ‘오늘 아침 먹고 뭐 해요?’라고 내게 물었을 때처럼 오히려 내게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반문했다. 이번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은 듯한 무게감 없는 목소리였으나, 어쩐지 그 안에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함정이 도사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피해를 입은 건 린 씨니까, 직접 골라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한데.”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던 체스휘가 이내 결정했다는 듯이 불길하게 웃었다.

그는 내 어깨를 잡아 고용인들이 있는 방향으로 돌렸다.

체스휘와 내가 폭군도 아닌데, 고용인들은 마치 죽을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굳어 있었다. 잔뜩 얼어붙은 채로 숨 한번 크게 내쉬지 못하고 있는 고용인들에게서 꼭 사형 선고라도 앞둔 것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요 며칠 동안 계속 느꼈지만, 저택의 고용인들은 체스휘를 생각 이상으로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꼭 지옥의 풍경이라도 목도한 듯이 희게 질린 고용인들을 보자 내 마음이 다 불편해질 정도였다.

“봐요. 어떻게 혼내 줄까요?”

반면 내 귓가에 재차 흘러드는 목소리는 벨벳처럼 구김 하나 없이 매끄럽고 부드럽기만 했다.

솜털이 바짝 일어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낮고 고요하게 귓가에 속삭여지는 목소리가 꼭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한 쓸모없는 눈을 뽑아서 앞으로 영영 보지 못하게 만들어 줘도 괜찮고.”

그래서 그 나직한 속삭임에 담긴 내용이 단번에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면 더러운 몸을 부딪히기 전에 제때 자리를 피하지 못한 저 다리를 먼저 잘라서 없애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한데.”

무엇이든 원하는 걸 말해 보라는 듯이 체스휘가 나를 채근했다.

“아니면, 따로 원하는 거라도 있어요? 생각나는 다른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 봐요.”

만약 사람을 달콤한 말로 홀려 타락시키는 악마가 있다면 지금 내 뒤에 서 있는 남자가 아닐까 싶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사람을 현혹시켜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고 싶게 만드는 기묘한 힘이 있었다. 심지어 어떤 의미로 그는 묘하게 나를 부추기는 것 같기도 했다.

“뭐가 제일 좋겠어요?”

나는 체스휘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려 그의 눈을 응시했다.

체스휘는 한낮의 응달 속에 자란 들풀 같은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따뜻하지만 어딘가 싸늘하기도 한 눈이 내 속을 들여다보듯이 시선을 마주했다. 지금까지 몇 번 그랬듯이, 그는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반응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한순간,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농담이에요.”

다만 다음 순간 체스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내게 익숙한 얼굴로 소리 없이 웃었다.

“린 씨가 그런 걸 원할 리가 없죠. 그리고 내가 린 씨에게 그런 걸 보게 할 리도 없잖아.”

고개를 든 체스휘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처음에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마치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이 내 시야에 비친 광경의 아주 사소하면서도 중요한 부분이 통째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라졌어…?”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내 앞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증발하듯이 사라졌다. 체스휘가 한 번 더 딱 소리 나게 손가락을 마찰시키자, 한 사람이 더 사라졌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마치 마법 같은 일이었다.

방금까지 눈앞에 있던 사람이 너무 깔끔하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오히려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굳이 설명하자면, 그냥 얼떨떨했다.

하지만 고용인들의 얼굴은 질식할 듯한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것만 봐도 이 상황이 뭔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 뭘 한 거예요?”

“린 씨가 눈 버리면 안 되니까 그냥 깔끔하게 정리해 버리는 게 제일 나을 것 같아서요. 금방 끝나니까 잠깐만 기다려요.”

체스휘는 여전히 대수롭지 않은 일을 하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의 손가락이 마찰하면서 한 번 소리를 낼 때마다 시야에 있는 사람들도 한 명씩 사라졌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지만, 고용인들의 반응을 보면 지금 그의 말처럼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하는 건 아니었다. 고용인들의 두려움이 그들을 지켜보는 나한테까지 전염될 것 같았다.

나는 체스휘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려던 찰나에 얼른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냥…! 지금 같이 방으로 가요. 고양이 때문에 한바탕 뛰었더니 피곤하네요.”

다행히 체스휘는 내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침 식사를 하다 말았죠. 방으로 남은 음식을 가져오라고 할까요?”

“그것도 괜찮겠네요.”

체스휘가 내 말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뒤, 바닥에 있는 고용인들을 다시 내려다봤다. 나는 체스휘의 주의를 돌리기 위해 아무 말이나 입 밖으로 꺼냈다.

“지금 바로 가요. 나 다리 아프니까 업어 줘요.”

“업어 달라고요?”

“네. 빨리요, 빨리!”

내가 이런 요구를 하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체스휘는 잠깐 멀거니 눈을 깜빡이다가, 내 재촉에 떠밀려 몸을 움직였다. 나는 내게 등을 보인 채 몸을 낮춘 체스휘에게 덥석 업혔다. 그러고 나서 빨리 가라는 듯이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이제 방으로 가요.”

“편해요?”

“네, 딱 좋네요.”

“좋아요?”

“그렇다니까요.”

체스휘는 고개를 돌려 또 나를 멀뚱히 보다가, 곧 내가 좋으면 그걸로 되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속은 한 치 앞도 모를 정도로 시꺼먼 주제에 생각보다 단순한 구석이 있어서 또 금세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잘 잡아요.”

“이렇게요?”

“응, 그렇게.”

체스휘는 나를 업은 상태로도 자리에서 가뿐히 일어났다. 등이 태평양처럼 넓은 데다 힘도 좋아서 그런지 자세가 굉장히 안정감 있었는데, 그런데도 그는 굳이 내게 당부한 뒤 걸음을 옮겼다. 억하심정이 든 내가 목을 조를 듯이 팔에 세게 힘을 줬는데도 그는 그저 즐거운 듯이 웃기만 했다.

다행히 체스휘는 별다른 말이나 수상한 행동 없이, 남은 고용인들에게 가볍게 고갯짓했다. 그러자 고용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매우 조용하고도 신속하게 물러났다.

체스휘와 나는 함께 방으로 향했다.

또 하나 다행스럽게도, 체스휘는 나한테서 이상한 느낌을 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감이 좋은 남자라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날 하루는 도대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성가셨던 건, 체스휘가 한번 나를 업어 주더니 거기에 재미라도 들린 듯이 어딜 갈 때마다 자꾸만 나한테 등짝을 보여 주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잘 거예요? 평소에는 어떻게든 안 자려고 하더니. 아직 같이 하고 싶은 게 많은데.”

“나 진짜 피곤해요.”

“아…. 하긴, 오늘 갑자기 머리에 집어넣은 정보량이 많긴 하니까. 내가 생각이 짧았네요.”

체스휘는 내가 일찌감치 잠자리에 눕자 조금 아쉬운 듯하다가, 이내 이해한다는 듯이 수긍했다.

“그럼 잘 자요, 린 씨. 오늘도 좋은 꿈 꿔요.”

그는 오늘 하루가 퍽 만족스러웠는지, 배부른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느른히 내 옆에 누워 어제처럼 나를 재워 주려고 했다. 나는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오늘은 세라와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라 일찌감치 자는 척만 할 생각이었다. 어제는 나도 모르게 진짜 잠들어 버렸지만, 오늘은 중요한 일이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지.

하지만 문제는 내가 체스휘의 재능(?)을 너무 만만히 생각했다는 거였다.

“헉!”

한밤중, 나는 급하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번쩍 눈을 떴다.

분명히 잠깐 눈만 감았다 뜬 것 같은데, 고개를 돌려 시계를 보니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생각보다 내가 깊게 곯아떨어졌던 모양이다.

‘이, 미친 인간 수면제…!’

세라와 약속한 2시가 거의 다 된 걸 확인한 뒤 나는 부랴부랴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벗어났다. 아니, 벗어나려고 했다. 침대 위에 있는 다른 사람이 갑자기 눈에 띄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내 옆에서 잠든 체스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펄쩍 뛸 뻔했다.

‘뭐, 뭐야? 방으로 돌아간 거 아니었어?’

놀라서 소리를 낼 뻔한 입을 손으로 막은 뒤 잠깐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잠시 후, 나도 모르게 미끄러뜨리듯이 손을 내렸다.

내 시선은 줄곧 침대 위에 있는 남자에게 고정돼 있었다.

체스휘는 새근새근 얕은 숨소리만 내쉬며 자고 있었다. 달빛이 비스듬히 팔을 베고 옆으로 누운 남자에게 창백한 색채를 덧씌웠다. 아래로 내리깔린 금색 속눈썹이 조금 전의 내 움직임에 미세하게 떨리다가 이내 완전히 잠잠해졌다.

내가 바로 옆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는데도, 체스휘는 잠에서 깨어날 낌새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는 굉장히 놀랍고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아까 내가 눈을 감기 전에 봤던 자세와 별로 달리진 것도 없는 걸 보니, 나를 재워 주다가 체스휘도 깜빡 잠든 모양이었다.

그런데….

‘잠자는 숲속의 공주…?’

왜 자는 모습이 이렇게 곱지?

나는 뭐라고 형언하기 어려운 기분으로, 눈을 감은 체스휘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왠지 체스휘가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든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게다가 평온하게 눈을 감은 얼굴이 그의 본래 이름처럼 천사 같았다.

나는 체스휘에게 들키기 전에 빨리 방에서 나가야 한다는 사실마저 잠시 잊고, 곤히 잠든 그의 얼굴에 시선을 빼앗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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