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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91)화 (191/300)

미카엘의 입술이 희미하게 움직이며 미소 비슷한 것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를 응시하는 그의 눈은 묘하게 메마른 듯이 느껴지기도 했다.

“다이안. 그리고 미뉴엘.”

이내 미카엘의 입에서 매끄러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자기를 부르는 줄 알았는지, 접시에 코를 박고 있던 고양이들이 고개를 들었다. 그나마 노란 고양이는 금방 관심을 끄고 흰 고양이의 앞에 있던 달걀을 훔쳐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흰 고양이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미카엘을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고양이의 루비 같은 붉은 눈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위화감 같기도 하고 기시감 같기도 한 묘한 느낌이 뒷덜미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잠깐 멈칫하다가 입을 열었다.

“알았다. 네가 다이안이고, 네가 미뉴엘이구나?”

손을 들어 고양이의 털에 묻은 달걀 부스러기를 털어 줬다. 내 말이 맞다는 듯이 흰 고양이가 야옹 하고 한번 길게 소리를 높여 울었다. 나를 지켜보던 체스휘가 설핏 찡그린 듯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정확히 그 반대예요.”

“아, 네가 다이안이야?”

흰 고양이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듯이 또 야옹야옹거렸다.

체스휘는 여전히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손에 턱을 괸 채로 나를 가만히 주시하고 있었다. 꼭 내 반응을 하나하나 관찰하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나는 노란 고양이에게 접시를 통째로 빼앗긴 흰 고양이에게 달걀을 따로 조금 더 덜어 준 뒤 다시 내 몫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 고양이들, 몇 살이에요?”

“다이안은 세 살, 미뉴엘은 두 살이에요.”

“얘가 형이에요?”

“아니, 이번에는 둘 다 암컷인데.”

“아, 그럼 형이 아니라 언니구나. 그런데 ‘이번에는’이라니요?”

“예전에도 고양이를 키웠었거든요.”

“미카엘 씨, 고양이를 좋아하나 보네요.”

“나보다는 린 씨가 좋아하죠.”

“내가요?”

체스휘는 내 반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식탁 위에 있던 물 잔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툭 건드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계속 나한테 고정되어 있었는데, 이번에도 희미하게 미소 지은 표정과 달리 내게 꽂힌 눈빛만큼은 약간 건조하고 서늘한 느낌이었다.

“외로움을 많이 타서 그런가. 그래서 나로는 부족했던 건가 싶기도 하고.”

뒤이어 나지막하게 읊조려진 목소리는 어쩐지 내가 아니라, 그 자신이 줄곧 품어 왔던 의문에 대한 결론을 내린 뒤 혼잣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어떤 방법이 좋을지 계속 고민하고 배워 가는 중이에요.”

그는 곧 가볍게 웃으며 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압축시켰다. 나는 체스휘에게 그냥 그 부분에 대한 더 깊이 있는 질문을 하지 않고 그러냐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후에도 대화를 하다가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그에게 바로 물어봤다.

손에 기대어 모로 기울어진 체스휘의 얼굴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내가 쉴 새 없이 이것저것 물어봐도 체스휘는 전혀 귀찮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 상황이 조금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나한테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게 그로서는 꽤 재미있는 소일거리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냐아!

“앗! 잠깐, 미뉴엘!”

그러다가 노란 고양이가 아까부터 호시탐탐 노리는 듯하던 방울토마토를 통째로 물고 도주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양이를 쫓아갔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체스휘가 그런 내게 미처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이었으니, 내 행동이 몹시 재빨랐던 것만큼은 확실했다.

“요 녀석, 거기 서…!”

사실 방울토마토가 고양이들이 먹어도 되는 음식인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몰랐다. 그러니 지금 내가 이렇게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는 건 꼭 고양이가 물어 간 음식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솔직히 체스휘의 동체 시력이라면 고양이가 식탁 위의 음식을 낚아채 가는 것을 어렵지 않게 목격했을 테니, 방울토마토가 금지 음식이라면 나보다는 그가 먼저 움직였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럼 내가 무슨 이유로 이렇게 뛰고 있느냐면….

단순히 내 안에 사냥꾼으로서의 추적 본능이 있어서, 도망치는 고양이를 무조건 뒤쫓고 있는 건 아니었다.

복도를 내달리는 동안 심장이 엇박자로 마구 두근거리며 뛰었다. 물론 갑자기 전속력으로 달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만이 지금 내 심장이 달음박질치는 이유인 건 아니었다. 나는 지금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뭐야? 조금 전까지 내가 어떻게 됐었던 거지?’

식탁 앞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던 때만 해도 분명 나는 어딘가 이상했었다.

그러니 체스휘를 미카엘이라고 부르고, 저택 안에서 마주친 세라를 알아보지 못하고, 고양이들의 이름을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아예 어제까지의 기억이 통째로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었다.

게다가 정말 체스휘의 말처럼 이 레드포드 저택에서 그와 함께 오랫동안 둘이 살았던 것처럼 생각하기까지 했다. 꼭 무의식에 그런 정보가 새겨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 모든 현상이 어그러진 것은 체스휘가 고양이의 이름을 내게 말해 주었을 때부터였다.

마치 다이안이란 이름이 내 안에서 일종의 방아쇠가 되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름을 가진 소년과 꼭 닮은 고양이의 붉은 눈과 시선을 마주한 순간, 그 방아쇠가 당겨져 형체 없는 총알에 관통당한 것처럼 갑자기 머릿속에 번쩍 기억이 돌아왔다.

나는 이미 시야에 보이지도 않는 고양이를 쫓아 계속 뛰면서 조금 전까지의 상황을 곱씹었다.

내 상태가 이상해진 건 오늘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뜬 직후부터였다. 꼭 나흘 전에, 모두가 이상해진 레드포드 저택에서 처음 눈을 떴던 날 같았다.

‘하지만 체스휘는 이상해진 나를 보고도 태연했어.’

체스휘는 분명 기억을 잃고 그를 미카엘이라 부르는 나를 보면서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럼 역시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체스휘라는 의미일 거다.

‘어젯밤에 나를 재운 뒤에 무슨 짓을 했나?’

갑자기 뒷덜미가 서늘해지면서, 가슴에 작은 구멍이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사이로 스산한 한기가 새어 들었다.

뭐라고 딱 잘라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이 복도를 뛰고 있는 내 발뒤꿈치에 불쾌할 정도로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혹시 식당에서 내 행동이 부자연스럽지는 않았을까?’

기억이 돌아온 직후에 평온함을 가장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느라, 세세한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혹시 그래서 체스휘가 내 기억이 돌아온 걸 알아차리지는 않았을지 우려스러웠다.

“잠깐…! 거기 앞에 조심하세요!”

그러다 불현듯, 누군가 소리 높여 크게 외친 음성이 내 귀에 날아와 꽂혔다.

지금까지는 고용인들이 나를 보고 길을 터 주어서 막힘 없이 복도를 달릴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때 옆에 있는 문을 열고 나타난 고용인들이 문제였다.

“어억, 갑자기 뭐야!”

“어이쿠!”

“으악…!”

하지만 그들을 발견했을 때는 속도를 늦추기도 늦었을 때라, 나는 전속력으로 달려가 그대로 사람들에게 몸을 박고 말았다.

미처 충돌을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고용인들은 도미노처럼 내게 떠밀려 넘어졌고, 나도 그들과 정면에서 부딪친 뒤 그 반동으로 튕겨져 나갔다.

만약 그때 누군가 타이밍 좋게 등 뒤에서 나를 떠받치듯이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에 나자빠졌을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바로 균형을 잡지 못해 한순간 휘청거렸으나, 내 허리를 감싼 팔이 좀 더 강하게 힘주어 나를 끌어당겨서 다행히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의 질주로 숨이 차오른 가슴이 가파르게 오르내렸다. 그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나지막한 숨소리가 귓가에 간지럽게 번졌다.

무심코 고개를 들자, 가까이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보라색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갑자기 왜 그렇게 뛰어가요? 다칠 뻔했잖아.”

체스휘가 살짝 찌푸린 눈으로 나를 한 차례 훑어봤다. 꼭 몸에 생채기라도 나지 않았나 확인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여전히 체스휘에게 몸을 의지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입술을 벌렸다.

“고양이가 방울토마토를 물어 가서요.”

“그게 왜요? 먹어도 되는 음식인데.”

“그래요? 몰랐어요. 먹으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다리에 힘을 줘 자리에 똑바로 섰다.

체스휘는 꼭 우스운 사고를 친 어린애를 보고 먼저 혼내야 할지 귀여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결국 둘 다 하기로 결정한 듯이, 내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부드러운 손길로 쓸어 넘겨주면서 짐짓 타이르듯이 말했다.

“복도에서는 앞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보고 뛰어야죠. 특히 1층은 돌아다니는 고용인이 많으니까.”

“네….”

“복도뿐만이 아니라 계단에서도 조심해야 돼요. 왠지 린 씨는 혼자 팔랑거리면서 뛰다가 넘어질 것 같아서 걱정돼요.”

“아, 예….”

내가 이 나이 먹고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나 싶어서 기분이 떨떠름했지만, 조금 전에 내 부주의로 사고가 난 건 사실이라 그냥 가만히 있었다. 게다가 이 편이 좀 더 자연스러운 느낌일 것 같기도 했다. 기억이 날아간 이상한 상태의 나라면, 체스휘가 뭐라고 하든 그의 말에 쉽게 수긍할 듯했으니까.

그래서 조용히 있자 내가 풀이 죽었다고 착각했는지, 체스휘가 조금 더 다정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물론 린 씨가 잘못했다는 건 아니에요. 당연히 고용인들이 안 부딪히게 알아서 피해야 정상이지. 하지만 개중에는 지금처럼 굼뜬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 말을 듣고 무심코 눈길을 돌렸다.

방금 나와 몸을 부딪친 고용인들이 시선 끝에 닿았다. 그들은 조금 전에 충돌한 사람이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사색이 된 얼굴로 얼어붙어 있었다. 여전히 바닥에 넘어진 그대로 돌덩이처럼 굳어서,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퍽 가련해 보였다.

‘나하고 부딪히기 전에 알아서 피해야 정상이라고…? 어떻게?’

내가 폭풍 질주를 해서 달려들 때마다 점프라도 해서 피해야 하나? 이제 보니 체스휘에게는 악덕 고용주다운 면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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