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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90)화 (190/300)

이상하네, 저렇게 예쁜 메이드를 전에 봤으면 생각이 안 날 리가 없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저 정도로 예쁜 메이드가 왜 이제야 눈에 띄었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방금 옆을 스쳐 지나간 검은 머리 메이드는 묘하게 자꾸 내 눈길을 끌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뒤돌아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차피 그래 봤자 일개 고용인일 뿐,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금방 머릿속에서 메이드의 얼굴을 지우고 복도를 다시 걸어갔다.

고용인들이 아침 일찍 환기를 위해 열어 둔 창문에서 상쾌한 공기가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모처럼 잠을 푹 자고 일어나 개운하게 맞이한 아침이라, 사라로사의 말대로 산책을 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계단을 내려가던 중에, 층계참에 서 있는 남자가 내 눈에 띄었다.

그는 창문 앞에 서서 안으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단지 창틀에 팔을 댄 채 상체를 느슨히 앞으로 기대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 모습이 퍽 그림 같았다.

그러다 이마 위로 한두 가닥 내려온 머리카락이 눈매를 찔러서 간지러운지, 창밖의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던 보라색 눈이 설핏 가늘게 좁혀졌다. 느릿하게 깜빡이는 눈꺼풀을 따라 햇빛에 반짝이는 속눈썹도 덩달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는 그냥 의미 없이 허공에 시선을 두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반대로 분명한 목적을 갖고 창밖의 한 지점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때마침 계단을 올라오던 고용인들이 층계참의 창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흠칫했다. 하지만 그들은 주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이 곧 발소리를 좀 더 작게 죽인 채 조용히 그의 뒤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뒤이어 나를 발견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고용인들을 잠깐 쳐다보다가 대답 없이 그들을 지나쳤다.

“미카엘.”

내 부름에 남자가 창틀에 몸을 기댄 상태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혼자 뭐 해요?”

나는 미카엘의 눈을 마주하며 계단을 마저 내려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혹시 나 기다렸어요?”

다른 곳도 아니고 층계참에서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미카엘이 천천히 창틀에 기댔던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마주하고 있던 시선의 높이가 순식간에 위로 올라갔다.

미카엘의 키가 쓸데없이 커서 조금 불만스러웠지만, 그렇다 해서 내가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나는 손을 들어서, 햇빛을 머금은 그의 머리카락을 건드렸다.

“오늘은 머리를 다 올렸네. 이마가 예뻐서 이런 것도 잘 어울리네요.”

미카엘은 한 손으로 창틀을 느슨히 짚은 채 비스듬히 서서 나를 내려다봤다.

“그런데 뭘 보고 있었어요? 화원?”

나는 조금 전까지 그가 어디에 시선을 두고 있었는지 궁금해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저택의 뒤쪽에 자리한 후원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평소와 다를 것도 없는 광경이라, 나는 미카엘이 왜 저런 재미없는 풍경을 보고 있었는지 의아해졌다. 그리고 무심코 시선을 돌리다가, 창틀을 짚은 미카엘의 손에 이상하게 힘이 들어가 있는 걸 우연히 발견했다.

“뭐 하는 거예요? 창틀에 금 갈 것 같은데.”

뼈마디와 힘줄이 불거진 손등 위로 내 손을 겹쳤다. 그리고 미카엘의 손을 움켜쥐어 창틀에서 떨어뜨렸다.

그런 뒤 바로 손을 놓으려고 했는데, 막 내 손이 떼어지려던 찰나에 이번에는 그가 먼저 나를 붙들었다.

손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온기에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애꿎은 창틀에 고문을 가하는 것도 이상하더라니, 그는 내 손을 잡은 채로 마주한 눈만 물끄러미 들여다봤다.

미동 없이 고요한 눈이 언뜻 서늘해 보였다. 그렇게 미카엘은 무언가를 확인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이내 입매를 천천히 당겨 여트막하게 웃어 보였다.

“어제는 잘 잤나 보네요. 다행이다.”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번졌다.

그런데 기분 탓인가? 왠지 흔한 안부 인사인 그의 말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 이번에도 차도가 없으면 어떻게 할지 고민이었는데.”

미카엘은 여전히 내 눈을 응시하면서 비어 있는 다른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듯이 문질렀다.

차도라니, 내가 한동안 잠을 못 잔 걸 두고 말하는 건가? 그러고 보니 어제는 미카엘이 옆에서 재워 줘서 평소보다 잠을 일찍 잔 것 같았다.

‘응…? 그런데 내가 그동안 왜 잠을 못 잤었지?’

그러다 갑자기 머릿속에 의문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눈을 떴을 때부터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꼭 내가 무언가를 잊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분명 이런 기분을 바로 얼마 전에도 느껴 본 적이 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도 무언가가 간당간당하게 생각날 듯 말 듯 했다.

하지만 그런 의구심은 미카엘이 내 손을 아프지 않게 살짝 잡아당기는 순간, 다시금 뿌연 안개에 가려져 사라졌다.

“그런데 어디 가던 길이었어요? 혹시 식당?”

미카엘의 물음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모처럼 일찍 일어나서 아침 먹기 전에 산책이나 하려고요.”

“그랬구나. 그럼 같이 가요.”

미카엘이 자연스럽게 깍지 껴 잡은 내 손을 끌어당겼다. 나는 그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

1층으로 내려가자 복도를 오가는 고용인들이 더욱 많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미카엘과 나를 보고 움직임을 멈춘 채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미카엘은 여느 때처럼 그들에게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무심히 지나쳤고, 나도 익숙하게 그를 따라 1층의 로비를 가로질렀다.

그렇게 함께 정원으로 향하는 길에 미카엘이 내게 물었다.

“정원으로 갈까요? 마침 장미가 예쁘게 피었던데.”

“그래요.”

“아침을 먹은 후에는 뭐 할 거예요?”

“글쎄, 딱히 할 일은 없는데….”

그러고 보니 원래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지냈었지?

조금 전에 그랬던 것처럼 또 이상한 의문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굉장히 뜬금없는 궁금증이었는데, 평소에 내가 이 저택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냈었는지 이상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미카엘과 함께 아주 오랫동안 여기에서 살았던 건 확실한데….

“특별히 해야 할 일 같은 거 없어요?”

그때, 나를 보던 미카엘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나는 그의 물음에 멈칫하다가, 곧 눈을 가늘게 좁히며 그에게 반문했다.

“왜요? 나한테 뭐 시킬 일 있어요?”

“아니, 그냥 한번 물어봤어요.”

“뭐야, 싱겁게.”

미카엘은 평소에 내가 고양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걸 가장 좋아했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시간 때우기로 책을 읽는 걸 즐겨 했었다고도 설명해 줬다. 그래서 저택의 서재도 거의 도서관처럼 꾸며져 있으니 나중에 시간이 날 때 같이 가 보자고 하기에, 나도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나, 왠지는 모르겠는데 어제까지 내가 뭘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괜찮아요. 지금처럼 궁금한 게 생길 때마다 내가 하나씩 얘기해 줄 테니까.”

나는 미카엘의 말에 ‘아, 그러면 되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카엘이 워낙 흔들림 없는 태연한 태도로 말해서 나도 별다른 불안감은 들지 않았다.

미카엘과 정원으로 걸어가다가, 문득 아까 봤던 검은 머리 메이드가 또 멀리서 지나가고 있는 게 언뜻 시야에 비쳤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걸음이 늦춰졌다.

“왜 그래요?”

“아니요, 그냥…. 아무것도 아니에요.”

계속 무언가가 생각날 듯 말 듯 하는 게 찝찝했다. 하지만 곧 그것을 털어 버리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미카엘의 손을 잡아끌었다.

미카엘이 나를 보며 소리 없이 웃어서, 나도 그를 따라 웃었다.

다른 누군가가 보면 지루하게 흘러가는 일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나는 이 평온함이 마음에 들었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내가 사는 동안 마음 둘 곳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 하나면 충분했다.

***

미카엘과 정원을 산책하고 와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다.

메뉴는 과일을 곁들인 샐러드와 옥수수 크림 수프, 마멀레이드 잼을 바른 따끈따끈한 우유 빵, 후추를 뿌려 구운 베이컨과 익힌 달걀로 가볍게 차려졌다.

미카엘은 아침 식사 내내 밥을 먹는 내 모습만 쳐다봤다. 처음에는 그냥 모른 척하려다가 왜 그렇게 부담스럽게 보냐고 한 소리 했더니, 내가 이렇게 잘 먹는 걸 오랜만에 봐서 그렇다고 했다. 과연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흐뭇함이 어려 있었다.

미카엘의 말에 의하면 그동안 내가 잠도 잘 안 자고 밥도 잘 안 먹었던 모양인데, 뭐 하러 그런 짓을 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야옹!

“안 돼, 이건 너희들이 먹는 거 아니야.”

그때, 아까부터 의자 밑에서 얼쩡거리던 고양이들이 갑자기 식탁 위로 뛰어 올라와 내 접시를 탐냈다. 나는 얼른 손으로 그들을 막았다.

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포기할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내 접시 위로 자꾸만 주둥이를 들이미는 고양이들을 말리다가 지쳐서 미카엘에게 도움의 시선을 보냈다.

“이거 고양이들한테 줘도 돼요?”

이런 광경이 익숙한 듯이 손에 느슨히 턱을 괴고 앉아 우리를 보고만 있던 미카엘이 대답했다.

“샐러드에 든 익힌 달걀은 조금 줘도 돼요. 대신 간이 안 된 걸로만.”

그렇군.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아직 소스를 치지 않은 샐러드를 뒤적여 달걀을 조금 꺼내 고양이들에게 줬다. 그러고 나서야 식탁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원래도 이런 식으로 미카엘과 밥을 먹을 때마다 고양이들과 실랑이를 하면서 떠들썩한 시간을 보냈을까?

“얘네들, 이름이 뭐예요?”

나는 이번에도 기억나지 않는 것을 미카엘에게 물었다.

그러자 잠깐 고양이들에게 향했던 그의 시선이 다시 내게 미끄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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