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89)화 (189/300)

“어떻게 알아봤어요?”

체스휘가 입술 끝을 미세하게 끌어당기며 내게 물었다.

“성인일 때의 모습이야 카드리고 저택에서 사진으로 봤다고 쳐도, 어릴 때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텐데.”

달빛이 내린 화랑에 고요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애초에 이 정도로 어린 나이에 사진을 찍은 적도 없었고, 설령 있다고 한들 그걸 아직까지도 카드리고에서 보관하고 있을 리가 없는데.”

체스휘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초상화에 다시 시선을 두었다. 나도 그를 따라 눈길을 옮겼다.

“그렇다 해서 이미 알고 있는 미래의 모습으로만 추측하기에는, 이 초상화 속 얼굴이 어른이 된 후의 모습과 너무 다르지 않나?”

그건 그런가…?

체스휘의 말을 듣고 나서 다시 보니, 확실히 내가 어릴 때의 미카엘 카드리고를 직접 보지 않았다면 이 초상화 속의 인물을 한눈에 알아보기 어려웠을 만도 했다.

일단 그림과 사진이라는 것 자체의 차이점이 있었고, 그것 말고도 카드리고 저택에 있던 사진 속 어른 미카엘과 이 초상화 속 소년 미카엘의 사이에는 거의 15년 정도의 시간적 공백이 있었다.

그 정도의 시간이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크고 작은 변천사가 충분히 일어날 법했다. 실제로 미카엘은 소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분위기가 많이 다른 편이었다.

그러니 웬만해서는 단순히 눈썰미가 좋다는 이유로 한눈에 그들을 연결 짓기 쉽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실 내가 카드리고 저택에서 어릴 때의 미카엘의 모습이 나오는 환각을 봤다고 솔직히 말하기에는…. 그게 진실인 건 맞지만, 왠지 너무 허무맹랑해서 더 궁색한 변명처럼 느껴지지 않나?

“아니, 그보다…. 이 그림, 그럼 진짜 미카엘 카드리고가 맞다는 거예요?”

이 남자가, 내 질문에 대답이나 제대로 할 것이지 또 되려 나한테 반문을 하고 있었네?

나는 체스휘에게 휩쓸려 잠깐 간과할 뻔한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그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저택에 살던 아이들만 초상화로 남기는 거 아니었어요? 그런데 왜 여기에 미카엘이 있어요?”

“린 씨는 같은 무덤 출신이면서 모르는 게 많네요.”

체스휘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서 또 무덤 소리가 나온다고? 물론 미카엘 카드리고와 린 도체스터가 제44세계에서 같은 무덤 출신으로 멸시당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밖의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알지 못했다.

“알다시피 내가 원래 꿈을 꾸면 좀 오락가락하거든요? 그러니까 체스휘 씨가 딱 알아듣게 설명 좀 해 줘 보시죠?”

그렇지 않아도 그동안 체스휘에게 불만이 쌓였던 나는 살짝 비꼬듯이 말했다. 하지만 체스휘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응시하기만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봐서 점점 속이 불편해졌다.

뭐야, 내가 까다로운 질문을 했나? 왜 이렇게 말없이 쳐다보기만 해?

그러다 이내 내 시야에 비친 체스휘의 얼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하긴, 그런 건 굳이 기억할 필요 없죠. 경우에 따라서는 그냥 잊는 게 나은 기억도 있으니까.”

내가 처음 보는 체스휘의 표정에 한순간 멈칫한 사이, 그는 혼자서 결론을 내린 모양이었다. 체스휘는 내게 더 설명해 주지 않고 노골적으로 말을 돌렸다.

“그보다 내 질문에는 답변 안 해 줬잖아요. 어떻게 알아봤냐니까요?”

내가 사납게 노려보는데도 미소 지은 그의 얼굴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지금 또 대답을 회피하는 건가? 나는 요 며칠 동안 계속 체스휘에게 화가 났다가 실망했다가, 혼자서 제법 격렬한 감정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조용히 들쑥날쑥하는 내 감정을 나조차 종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뭘 어떻게 알아보긴, 관상이 똑같으니까 알아봤지. 보기만 해도 열불이 나는 게, 아주 그냥 한눈에 같은 사람이란 걸 알겠더구먼.”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도 대놓고 노골적으로 체스휘를 향해 비아냥거렸다.

그런데 체스휘가 뭘 잘못 먹기라도 한 걸까?

내 말을 들은 그가 갑자기 나를 보고 사르르 예쁘게도 미소를 지었다.

“그렇구나. 모습이 많이 변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니, 꼭 운명 같네요.”

“네? 이 세상에 있는 운명이 다 사망하셨나요?”

나는 질색하는 눈으로 체스휘를 봤으나, 그는 확실히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내 말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서, 악의로 그 말을 꺼낸 내가 괜히 민망해질 정도였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체스휘는 가끔가다가 한 번씩 이렇게 이상한 타이밍에 버튼이 눌려 혼자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질 때가 있었다. 나는 그 타이밍이 언젠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손이 부족하니까 한 마리는 린 씨한테 줄게요.”

갑자기 체스휘가 나한테 대뜸 흰 고양이를 안겨 줬다. 나는 얼떨결에 고양이 다이안을 전해 받고 주춤했다. 체스휘는 착시 현상이 들 정도로 달콤하게 미소 지은 채, 내게 고양이를 넘겨 빈손으로 내 한 손을 덥석 붙잡았다.

“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요? 밤이 늦었으니까 그만 방으로 가요.”

나는 또 엉겁결에 체스휘에게 손을 잡혀 끌려갔다. 반사적으로 체스휘의 손을 뿌리치려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체스휘는 왠지 내가 직접 내 손으로 지금 이 순간을 깨트리기 망설여질 정도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갈등하는 사이, 우리는 방에 도착했다.

체스휘는 나를 내 방까지 데려다주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나를 침대에 눕힌 다음 이불까지 곱게 덮어 줬다.

“오늘은 내가 재워 줄게요. 잠들 때까지 옆에 있을 테니까 푹 자요.”

게다가 그걸로도 모자라서,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어린애를 재우듯이 몸을 도닥여 주기까지 했다. 당연히 나는 이 상황이 기가 막혔다.

“눈 감아요.”

“지금 뭐 해요?”

“뭐 하긴요. 재워 준다니까.”

“아니, 누가 그런 걸 해 달라고….”

“자기 싫어요? 그럼 아예 밤새울래요?”

“…….”

체스휘의 목소리는 여전히 조곤조곤했으나 나는 왠지 거기에서 까닭 모를 위협을 느꼈다.

슬쩍 시선을 들어 올리자, 여전히 은은한 미소를 띤 얼굴로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는 체스휘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는 담백했으나, 눈에 고인 어스름한 열기와 감정까지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얌전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체스휘가 잘했다는 듯이 나를 또 토닥여 주었다. 잘 자라고 인사하며 내 이마에 내려앉는 입맞춤이 쓸데없이 다정했다.

…이 사람이 뭘 알면서 이럴 리는 없는데.

이런 건 아주 어릴 때 양부모한테나 받아 본 일이어서 기분이 싱숭생숭해졌다. 체스휘가 이렇게 가끔 내 약한 부분을 예고 없이 찌르고 들어올 때면 쓸데없이 마음이 약해졌다. 나도 내가 바보 같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이상하게 체스휘 때문에 화가 나면서도 그의 얼굴만 보면 강하게 나갈 수가 없었다.

예전에 회사 동료가 난 연애를 하면 호구가 되는 스타일인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 건가 싶어서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야옹.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양이들이 나한테 가까이 다가와 몸을 바짝 붙이고 자리를 잡았다. 사방을 둘러싼 온기가 뼛속까지 스미는 것 같았다.

나는 잠깐 가늘게 떴던 눈을 다시 감았다.

물론 나도 기회를 봐서 적당히 잠든 시늉만 할 생각이었을 뿐, 진짜 이대로 체스휘가 보는 앞에서 눈을 붙일 생각은 없었다. 그냥 조금 자는 척하다가, 체스휘가 나간 뒤에 일어날 생각이었다.

하지만 체스휘는 의외로 인간 수면제로서의 역할에 재능이 있었다.

그 말이 무슨 의미냐면, 믿을 수 없게도 내가 체스휘의 옆에서 아주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점차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언뜻 ‘잘 자요.’ 하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체스휘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그날 밤의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

짹짹.

어디선가 새가 영롱하게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잠에서 깨 몸을 뒤척이다가, 눈꺼풀 사이를 강제로 비집고 들어오는 밝은 햇빛에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벌써 아침인가?

이제 그만 일어나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포근한 침대와 이불의 유혹을 이겨 내기가 어려웠다. 어쩐지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해서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멀리서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어, 내가 있는 침대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서 반짝 눈을 떴다.

“아, 깨셨네요?”

곧바로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고막을 스쳤다.

“아직 주무시면 조용히 그냥 나가려고 했는데. 혹시 지금 아예 일어나실 건가요?”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사라로사였다. 그녀의 질문에 아직 잠이 덜 깬 채로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라로사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바로 세안하실 물을 들여올게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창가로 걸어간 사라로사가 커튼을 걷자, 창문에서 밝은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한순간 희게 변한 시야에 눈을 가늘게 좁혔다.

사라로사는 다시 방을 가로질러 문밖으로 나갔다.

야옹!

그 직후, 고양이들이 침대 위로 뛰어 올라왔다. 나는 경쟁이라도 하듯이 양쪽에서 치대는 고양이들을 대충 쓰다듬으며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지난밤에는 굉장히 단잠을 잔 것 같았다.

아직 잠기운이 남아서 그런지 정신은 몽롱했고, 머릿속에는 꼭 뿌연 안개가 낀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멍하니 앉아 있을 때, 사라로사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가져다준 물로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모처럼 일찍 일어나셨으니 아침 식사 전에 산책이라도 하시면 어떨까요?”

“그럴까요?”

나는 사라로사의 권유를 받고 방을 나섰다.

복도에는 눈부신 빛이 가득했다. 밤사이 내려앉은 어둠을 씻겨 내리듯이 밝게 내리쪼이는 햇빛에 내 안에 있는 불순물들까지 전부 깨끗이 표백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인가? 오늘따라 몸과 마음이 아주 가벼웠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고용인들이 나를 향해 인사했다. 복도를 걷다가 문득 옆을 스쳐 지나가는 메이드에게 눈길이 닿았다.

검은 단발에 눈물점을 가진 예쁜 메이드였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다른 고용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본 얼굴인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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