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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88)화 (188/300)

밤에도 성수 화병을 치우지 않은 덕분에, 복도의 공기는 제법 신선했다. 하지만 해가 진 지 오래된 저택 특유의 스산한 기운만큼은 여전했다.

“다이안. 다이안?”

내가 작은 목소리로 고양이를 부르는 소리만 조용한 복도에 울렸다.

나는 고양이를 찾아 근처를 돌아다녔다. 그래도 고양이가 방에서 나간 게 바로 조금 전이라 그렇게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 같았는데, 의외로 주변에서는 생물체의 기척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혹시 이쪽 방향으로 간 게 아닌가? 그보다 가만히 있다가 왜 갑자기 방에서 뛰쳐나간 거람?

일단은 성수 디퓨저가 놓인 구역부터 확인해 볼 생각으로 몸을 돌렸다.

야옹.

그런데 바로 그때, 내가 찾던 고양이의 울음이 멀리서 작게 스치듯이 귓가에 울렸다.

“앗…. 뭐야, 저쪽이었어?”

처음에 걱정했던 대로, 성수 꽃병이 놓인 구역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다시 방향을 틀어, 방금 들은 소리의 잔상을 좇아 이동했다.

적막한 복도에 울리는 가느다란 고양이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그런데 왠지, 귀에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하나가 아닌 것 같았다.

잠시 후, 나는 시야에 비친 광경을 보고 헛웃음을 흘렸다.

“너희들, 여기서 2차전 시작한 거야?”

두 고양이가 야심한 달밤에 엎치락뒤치락 몸싸움하는 모습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더군다나 아까 낮에 보았던 것처럼 지금도 솜털 같은 앞발로 서로를 타격하는 모양새가 퍽 하찮아서 더 헛웃음이 나왔다.

아무래도 아까 흰 고양이가 귀를 쫑긋거리면서 방에서 갑자기 뛰쳐나간 건, 밖에서 다른 고양이의 소리를 들어서 그런 것인 모양이었다.

“아이구, 털 날리는 것 좀 봐. 이 야밤에 기운들도 좋다.”

나는 차가운 바닥을 뒹구는 고양이들에게 다가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저기, 얘들아? 너희 이제 그만 떨어지지 않을래? 응?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지요?”

한참 실랑이하던 중에 내 목소리를 먼저 알아차린 흰 고양이가 먼저 움직임을 멈췄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노란 고양이가 마지막으로 흰 고양이에게 냥펀치를 날렸다.

방심하고 있다가 당한 흰 고양이가 씨근덕거렸지만, 그래도 노란 고양이에게 다시 보복성 공격을 가하지는 않았다. 역시 노란 고양이보다는 흰 고양이가 좀 더 순한 성격인 것 같았다.

나는 꼭 친구나 형제와 싸우고 나서 엄마에게 이르러 온 꼬마애처럼 내 앞으로 달려와서 억울하게 애옹애옹 우는 흰 고양이를 쓰다듬어 달래 주었다.

“에구, 아팠어? 방금 맞은 데가 여기였나?”

냐앙!

“그래그래, 너도 호 해 줄까?”

노란 고양이도 지지 않고 바로 나한테 다가와서 같이 야옹거리며 울었다. 나는 공평하게 두 고양이 모두를 쓰다듬어 주었다.

“어휴, 그나저나 여기 털 날리는 것 좀 봐…. 에취!”

창문에서 쏟아지는 달빛 사이로 고양이들이 뿜어낸 털이 훌훌 흩날리는 게 보였다. 나는 대충 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재채기를 유발하는 털들을 날려 보내다가, 무심코 시야에 들어온 무언가에 움직임을 멈췄다.

벽에 걸린 수많은 초상화가 달빛에 희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 내가 고양이들과 함께 있는 곳은 레드포드 저택의 화랑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와 보았던 장소인 만큼, 내게는 익숙한 곳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지금 내 시야에 비친 광경은 뭔가 이상했다.

“뭐야….”

나는 고양이들을 쓰다듬던 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밑에서 보채듯이 야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내 시선은 계속 초상화가 걸린 벽에 못 박혀 있었다.

그곳에는, 분명히 남아 있어야 할 도끼질 자국이 없었다. 나와 술래잡기를 한 영혼이 들어가 있었던 빈 초상화도 없었다.

단순히 망가진 액자들을 치웠다기에는, 내가 조심성 없이 도끼를 찍을 때 벽에 깊게 새겨졌던 자국조차 아예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흔적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갑자기 내가 알던 레드포드 저택이 또다시 낯선 장소처럼 느껴져서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무의식중에 뒷걸음질 치다가, 앞에 있는 초상화들 중 하나에 시선이 닿았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다시 걸음을 멈췄다.

일전에 체스휘와 함께 밤 산책 삼아 저택 안을 거닐었을 때, 이 화랑에서 언뜻 내가 아는 사람과 닮은 소년의 초상화가 있는 걸 봤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워낙 찰나의 순간 스치듯이 목격한 것이었고, 그래서 단순히 ‘조금 닮았네.’ 하는 수준으로만 생각하고 말았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면에서 제대로 본 초상화 속의 얼굴은, 내가 아는 사람과 그저 닮은 수준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놀라서 입술을 벌렸다.

“…미카엘 카드리고?”

“불렀어요?”

“으악…!”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뒤에서 내 부름에 대답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진심으로 경기하듯이 놀라서 자리에서 펄쩍 뛰며 짤막한 비명을 질렀다. 내 발밑에 있던 고양이들도 덩달아 놀란 듯이 야옹야옹 울었다.

가슴을 부여잡고 반사적으로 몸을 황급히 돌리자, 나처럼 초상화를 감상하듯이 벽을 보고 서서 느슨히 팔짱을 끼고 있는 체스휘의 모습이 보였다.

곧 그가 나를 향해 시선을 미끄러뜨리며 입꼬리를 가늘게 들어 올렸다.

“왜 그렇게 놀라요? 꼭 혼자서 몰래 뭔가 비밀스러운 일이라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

나는 아직도 거칠게 벌렁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어버버거렸다.

“갑… 자기 뒤에서 튀어나오니까 당연히 놀라죠! 귀신인 줄 알았잖아요!”

와, 씨. 깜짝이야. 진짜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네. 무슨 사람이 이렇게 소리 소문도 없이 나타나?

하지만 체스휘는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의외라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해서 나를 더욱 열 받게 했다.

“이상하네. 린 씨, 귀신 안 무서워하는 거 아니었어요?”

“귀신보다 님이 더 무서워요….”

나는 구시렁거리면서 그래도 방금보다 한결 진정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면서 내 앞에 있는 남자의 얼굴을 몰래 힐끔 쳐다봤다.

오늘 낮에 세라와 만났던 일 때문인지, 이렇게 밤에 체스휘와 마주치니 괜히 속이 뜨끔거렸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세라와 만나기로 약속한 건 내일이었다. 만약 세라를 보러 나왔는데 체스휘가 나타났으면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을 거다.

나는 한결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어차피 체스휘는 내가 밤에 돌아다니는 걸 알고 있었으니, 지금 이렇게 우연히 그와 마주친 일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는 없었다.

“체스휘 씨야말로 이 야심한 밤에 어쩐 일이에요? 설마… 나 때문에 온 거예요? 혹시 나한테 위치 추적기라도 달아 놓은 건 아니죠?”

나는 체스휘에게 경계심과 수상함을 느끼며 물었다.

그러자 체스휘가 꼭 재기발랄함이 부족한 농담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혹은 과대망상증에 걸려 혼자서 민망한 착각을 한 사람을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딘가 내 자존심을 구겨지게 만드는 상냥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으음, 기대했다면 미안하지만 내가 지금 보러 온 건 린 씨가 아니라서.”

체스휘는 바닥에 있던 고양이들을 낮에 그랬듯이 양팔에 한 마리씩 안아 들면서, 조금 난감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애들이 잘 시간이 돼도 안 와서 찾으러 온 건데.”

“…….”

“원래 내 방에서 재우거든요.”

마치 실망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듯한 뉘앙스라, 나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괜히 또 자존심이 살짝 구겨졌다.

“그으, 래요? 고양이들이 체스휘 씨 방에서 잤었다니, 몰랐네요.”

그래도 애써 태연하게 반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갑자기 체스휘가 나를 보던 눈을 아래로 내리깔며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게 아닌가?

“내 방에 한 번이라도 와 봤으면 금방 알았을 텐데 서운하네요.”

“예?”

“나한테 너무 관심이 없는 거 아닌가? 상처받을 것 같아요, 나.”

정말 상심한 듯이 처연한 분위기를 풍기며 씁쓸하게 읊조리는 체스휘를 본 순간 말문이 막혔다. 체스휘에게 안긴 고양이들이 그를 위로하듯이 양쪽에서 애옹거렸다.

달빛 속에서 아련한 얼굴을 한 채 고양이를 소중히 보듬어 안는 미남의 모습은 그 자체로 제법 호소력이 있어 보였다. 그러니까, 만약 이 상황의 피해자가 나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느새 내가 나쁜 사람이 된 듯한 상황에 기가 막혔다. 하지만 체스휘가 이러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이럴 때 말을 더 길게 이어 가 봤자 또 나만 말려들 게 분명했다.

“허, 참…. 그보다 체스휘 씨. 저 초상화 뭐예요?”

그래서 그냥 헛숨을 내뱉으며 화제를 돌렸다. 내가 턱짓한 방향으로 체스휘도 시선을 돌렸다.

“저택에 어린애들 같은 건 없다면서요? 그런데 초상화는 그대로 있잖아요.”

“아아, 그건 지금 그렇다는 말이고, 아주 예전에는 있었죠.”

“그런데 왜 저기에 미카엘 카드리고가 있는데요? 아니면 혹시 그냥 닮은 사람이에요?”

얼마 전 라파엘을 따라 카드리고 저택에 갔을 때, 이상한 환상 속에서 어린 미카엘 카드리고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얼굴을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냥 우연히 닮은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체스휘에게 물었다.

그리고 잠시 후, 표정 없이 나를 보던 체스휘가 조용히 웃었다.

평소에 짓던 표정과는 어딘가 달랐지만, 나는 이런 얼굴을 한 체스휘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기다렸어요.”

예전에 갑자기 한밤중에 체스휘가 나를 찾아왔던 날, 그때도 그는 꼭 저런 눈빛으로 나를 봤었다.

“정말 오랫동안, 당신이 오기만….”

“기다렸어.”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희열과 다른 질척한 감정이 온통 뒤범벅되어 위험하게 일렁이는 눈빛…. 지금도 그것을 가까이에서 마주하자, 이상하게 숨소리를 죽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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